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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자, 별 하나
  • 경이로운 한국인
  •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 16,200원 (10%900)
  • 2025-03-31
  • : 2,975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국민이 한국인이다. 학교에 다닐 때 전교조 선생들이 이승만을 악마화하고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아야 할 나라라고 가르쳐서 헬조선이라는 생각과 체재를 바꿔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계속 했고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야하나라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다. 서평을 쓰기 위해 이승만 박정희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이승만이 우리나라를 기독교정신으로 미국과 협정을 맺으면서 필리핀이나 북한 아프리카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지금처럼 급부상하는데 모든 초석을 다졌다는 걸 알고 대한민국에 대한 굉장한 자부심이 생겼다.

토지계획과 여성들에게 선거권도 주고 여성들에게 교육도 시키고 6.25전쟁때 도망도 안 갔다는 걸 알았다. 박정희도 다른 나라 사람들은 세계적인 지도자이고 나라를 진정으로 발전시킨 지도라는 걸 알게 되면서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은 충만해졌다. 우리나라가 중국 속국이라고 하는데 중국은 공산주의이고 유물론 국가인데 기독교 정신으로 세운 우리나라랑은 결을 완전히 달리하기 때문에 중국과는 상관없는 독립국가이고 중국은 창의력이 없는 나라이지만 우리나라는 창의력이 넘치는 나라이다. 난 대한민국과 한국인을 너무너무 사랑한다.

그들에게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자자손손대대로 물려주고 계속 우리나라가 번영하는데 이바지하는 한국인이 되고 싶다. 국제정세안에서 우리나라를 보니까 더 잘 보이고 프랑스인이 말하는 한국인은 어떤지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저자 장클로드 드크센조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번역가, 강연자로 1986년에서 2018년까지 엑스마르세유 대학교에서 한국학을 가르쳤고, 한국학 연구소를 창설해 20년간 소장으로 제직했다. 현재 아시아학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수행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드크레센조’ 출판사를 창립하고 문예지 《글마당》을 창간했다. 부인 김혜경 엑스마르세유대학교 한국학과 교수와 함께 한국소설 이십여 권을 공역했고, 2016년 문화 체육관 광부 프랑스 내 ‘한국의 해’ 감사패, 2016년 한국문학번역원 공로상, 2023년 한국문학번역대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에 나온 저서로는 《다나이데스의 물통:이승우의 작품 세계》등이 있다.

한국은 휴전국가이면서도 막상 전쟁 분위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 나라다. 1990년대 말부터 치밀하게 준비해 온 소프트파워의 결실로 이 나라는 자국의 영화와 드라마, 음악을 아시아 여러 국가에 수출하기 시작해서 이제는 전 세계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한국은 최고를 넘어 이제 세계적인 k팝 그룹으로 통하는 BTS가 국내 총생산의 0.3프로를 차지한다. 삼성은 20프로다. 한국문화와 정치, 경제에 대한 분석과 연구가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아직 ‘한국통’을 보기 어렵고, 동아시아 전문 기자들이 있다고는 해도 이 나라 사정에 밝은 경우가 드물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많이들 언급하지만, 한국인들에 관해서는 통계 수치나 역사적 사건 속에 나타나는 집단으로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가정과 식당, 병원 같은 곳에서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떻게 인사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도 어색하지 않은 게 친구 사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인지, 아니면 유교 문화 탓인지 한국인들은 느낌이나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는 일이 드물고, 논쟁을 피하는 편이다. 민감한 주제는 친구 간에는 말을 아낀다. 보기에 적잖은 한국인이 상대가 감당하지 못할 말을 쏟아내지 않으려고 자제하는 것 같다. 따라서 생각을 표현하고 의견을 주고받고 속내를 털어 놓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내심 서운한 수도 있다. 따라서 이따금 적막이 흐르는 이 같은 ‘자체 검열’ 에 적응하는 편이 나은데,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다 알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아도 어떻게 마음을 안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한국인들은 종이에 글자를 쓸 때 새끼손가락을 바닥에 괴고 쓴다. 그건 나도 그렇게 쓰는데 저자는 자세히도 본 것 같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한글의 네모난 형태로 인해 손목의 균형을 잡아야 해서 그런 것 같다. 새끼손가락으로 받쳐주면 아무래도 안정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이든 복도를 지나가면 느릿느릿, 아니면 잽싸게 신발을 끌고 가는 소리가 들린다. 젊은이들, 그중에서도 특히 여학생들이 곧잘 그런데 하이힐 제외하고 어떤 종류의 신발이든 마찬가지다. 저자가 지방에 강연이 있어 KTX를 타고 가는데, 사십 대로 보이는 두 여자가 통로를 지나면서 또 운동화를 질질 끌고 가는 걸 봤다.

한데 이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니다, 더 나이 든 사람들도 길에서 똑같이 하고, 동네 슈퍼에 가는 할머니도 슬리퍼를 찍찍 대며 간다. 그런데 남들이 다 보는 데서도 이렇게 신발을 끌고 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기운이 없는 걸까? 아니면 발을 질질 끌고서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 주려는 걸까? 그런 의미에서 조신함을 강요하는 유교 전통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유롭게 행동하고 싶다는 마음의 반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맞을 것 같다. 어쨌든 여기에는 한 가지 분명한 장점이 있는데, 한국 여성이 뒤에 오면 신발 소리 때문에라도 모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나도 운동화를 질질 끄는데 그건 편해서이다. 운동화를 슬리퍼화해서 금방 벗고 끼지 않아서 편해서 그렇게 신는 것이다. 저자가 잘 관찰하고 표현한 것 같다.

옛날 한국 사람들은 몸을 숙여 인사를 했고, 서로의 신분에 따라 인사법이 달라졌다. 고관대작은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 앞에서 고개만 까딱하는 정도였지만, 아랫사람은 허리를 굽혀 존경을 표시해야 한다. 위계의 표상이다. 신분제가 존재했던 옛날 한국에서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귀족 계층인 ‘양반’이 있었고 맨 아래는 ‘천민’이 존재했다. 그 사이에 ‘중인’과 ‘상민’이 있었다. 사회적 지위가 낮을수록 몸을 깊이 숙여야 했다. 노비의 경우 무릎을 구부리기까지 했다.

정치인, 고위공무원들, 고위공무원중, 판사도 그중에 들어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까 이들 모두가 쓰레기 중에 쓰레기 거지판사들이었다. 물론 정치가들은 억대로 받는 인간 이하라는 것은 예전부터 알았다. 유교적 관습에 따라 준수하는 여러 가지 의례 중에는 오늘날 더 이상 지키지 않는 것도 있고, 세월이 흐르면서 잊힌 것은 바로 ‘제사’다. 조선왕조 때부터 가정에서 제례를 지낼 수 있게 되었고, 그 뒤로 집에서 제사를 드린다. 이를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예전에는 꼬박꼬박 제사를 모셨지만, 오늘날은 그때그때 다른 것 같다.

제사상은 유교 전통에 따라, 특히 진설도에서 정한대로 차린다. 어떤 음식은 서쪽에 놓고, 다름 음식은 앞 둘이나 뒤 줄에 놓아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것이다. 상에는 국이나 생선처럼 생전에 고인이 좋아한 음식을 올린다고 했다. 위패나 지방을 써서 상 가운데 세워 놓고 쌀밥 한 그릇도 올리는데, 밥공기에 수저를 꽂는다. 고인이 편하게 드시기 위해서라고 한다. 밥그릇에 수저를 꽂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그러고서 절을 하는데 청주나 백주를 올리고 사진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다. 이때 계절에 상관없이 문이나 창문을 살짝 열어두어야 한다.

고인의 혼백이 집 안에 들어와 음식을 드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장손이 진행하지만, 음식은 큰며느리나 어머니가 장만한다. 고생은 왜 늘 여자 몫일까? 양구 근처의 어느 음식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제법 늦은 시간 이었고 저자까지 포함해서 모두 다섯 명이 모인 자리였다. 식사를 마치지 않았지만 곧 그칠 것 같지 않았다. 나가지도 못하고, 다시 식탁에 앉지도 못한 채 현관에서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주인아주머니가 잠깐 기다려보라면서 바깥양반 깨우러 가겠다고 했다. 일찌감치 들어가 곤히 자고 있던 아저씨는 마나님의 부탁에 군말 없이 나왔지만, 아직 잠이 덜 깬 표정이었다.

헌데 가늘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전날 카센터에 수리를 맡겨 차를 못 쓰는 상황이었다. 아저씨는 잠시 당황한 듯 했으나, 이내 뒷마당으로 가서는 먼지 쌓인 용달 트럭을 몰고 나타났다. 그러면서 여자 둘은 앞자리에 앉고, 남자 셋은 짐칸에 타라고 했다. 부슬비가 계속 내려 주인아주머니가 우산을 빌려주었다. 한국의 서비스는 과연 어디까지 가능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거의 ‘무제한 ’인 듯싶었다고 했다.



한국은 치안이 아주 잘 된 나라다. 물론 크고 작은 범죄는 존재한다. 하지만 대도시든 시골이든 어디서나 대체로 안전하다. 특히 서울의 치안 상태는 매번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굳이 없어도 되는 곳에 가드레일을 쳐놓고, 울퉁불퉁한 보도도 일일이 덮어놓는 데다 건물마다 보안 직원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준다. 카페나 식당에서도 만찬가지다. 주문을 하거나 화장실에 가려고 잠시 자리를 비울 때 테이블에 지갑과 휴대폰, 소지품 등을 그대로 두고 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처럼 제집처럼 드나드는 여행자한테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한국처럼 어디를 가도 안전한 곳에 있다가 제나라로 돌아가면 ‘정신 줄’을 꼭 붙들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관광객이든 저자처럼 이 나라에 어느 정도 익숙한 사람이든 외국인에게 매우 친절한 편이다. 한국 사람들이 하는 생각과 행동의 바탕에는 늘 ‘우리나라’가 있다. 단순한 애국심 이상의 드높은 긍지, 반만년 역사를 이어온 든든한 자부심,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면 살아가다가도 나라가 어렵거나 위기에 처할 때면 언제라도 힘을 모아 슬기롭게 극복하는 한국인들의 저력이 바로 우리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재활용 정거장은 일반 쓰레기 종량재 봉투뿐 아니라 페트병, 우유팩, 알루미늄 캔 등 다양한 재활용품에 적용되는 장치로, 경우에 따라 포인트까지 적립할 수 있다. 시내 전역 6천 곳에 분리수거를 위한 ‘주택가 재활용 정거장’을 설치했으며, 개발을 가속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물론 한국인들의 성향 덕분에 가능한 일로, 이 나라 사람들은 웬만하면 하라는 대로 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질문이 지식을 불러온다면, 그 질문을 불러오는 것은 바로 경이다. 이 같은 ‘통상적인 것을 낯설게 하기’를 통해 인간은 언제나 관습에서 벗어나고 신앙을 넘어서며 고집과 확신, 자명함과 단절하는 수단을 발견해 왔다.

저자는 한국인들을 가장 일상적인 장소와 보편적인 맥락에서 이해하려고 해보았다. 사소한 몸짓과 친숙한 장면,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 쉽게 지나칠 만한 상황, 또는 생각은 해도 이내 잊어버리는 상황,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성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모든 상항을 유심히 살펴보고자 했다. 거창한 의도 없이 소박하게 시도한 이 같은 ‘일상의 민족학’ 연구는 저자에게 한국의 문화와 관습, 역사뿐 아니라 이 나라의 고유한 특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저자는 한국인에 대해서 완벽히 알지는 못하지만 경이롭다고 했다. 나도 우리 민족이 경이롭고 뛰어나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한국인에 대한 얘기들은 재미있고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조금 새롭기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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