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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er than day before
  • 작고 빨간 의자
  • 에드나 오브라이언
  • 14,220원 (10%790)
  • 2022-04-22
  • : 41


 

이달에 에드나 오브라이언 작가에 대해 알게 됐다. 누군가 호기심이 생긴다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바로 그렇다, 책을 사제끼는 것이다. 포크너의 책처럼 미리 사둔 책이라면 좋겠지만, 모든 작가의 책들이 다 그럴 순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보니 비페이위의 책도 두 권이나 샀네. SNS에서 트레일러로 잠깐 만난 에드나 오브라이언 작가의 다큐멘터리 영상도 작가에 대한 호기심을 더 자극했다.

 

<작고 빨간 의자>는 아일랜드 출신 작가 에드나 오브라이언의 17번째 장편소설로 작가의 거의 마지막 작품에 가깝다. 그 후 오브라이언 작가는 <소녀>를 발표하고 작년에 93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그리고 <작고 빨간 의자>는 3년 전에 국내에 출간됐는데 벌써 절판됐다. 절판된 책을 쿠팡을 통해 입수해서 읽게 될 줄이야 세상에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아일랜드 서부 클루노일라라는 작은 마을에 어느 날 알렉산드리아 출생의 몬테네그로에서 왔다는 점잖은 신사 블라디미르 브라간이 등장한다. 그의 별명이 부크(늑대)라고 했던가. 시인이자 문학인 그리고 대체의학을 전파하는 뉴에이지 의사는 도무지 씨알도 먹히지 않은 것 같은 조용한 마을에 이른바 힐링 센터를 개업한다.

 

클루노일라의 사람들은 이 이방인에게 대체적으로 호의적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수녀님을 상대로 야릇한 분위기에서 치유 사업을 개시한다. 역시 가톨릭의 나라 아일랜드답게 수녀님을 첫 고객으로 삼은 전략은 대단히 유효했다. 그리고 블라드의 사업은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부유한 상인 잭의 젊은 아내 피델마와 블라드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서사는 롤러코스터 모드에 돌입한다. 아이가 없었던 피델마는 블라드를 통해 아이를 갖고 싶었던 걸까? 매혹적인 이방인의 존재는 클루노일라 마을의 처자들에게는 어쩌면 유혹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블라드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전조는 있었다. 벙어리 이주노동자 무조는 블라드를 보고 경기를 일으켰던가.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피크닉을 나섰다가 경찰에게 신분 조회를 당할 뻔하지도 않았나. 하지만 블라드는 호기롭게 이런저런 위기들을 피해 나간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기 전까지 말이다.

 

어쩌면 이 지점을 1차 클라이막스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그의 정체가 ‘보스니아의 도살자’였고 현재 지명수배 중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클루노일라 주민들은 충격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블라드를 찾아온 무뢰한들에게 임신 중이던 피델마가 몹씁 짓을 당하면서, 잭과의 결혼 관계는 파탄에 이른다.

 

여기까지가 1부에서 다뤄지는 내용들이다. 피델마는 인근 수녀원에서 몸을 추스린 뒤, 이웃나라 영국 런던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피델마는 아프리칸 난민 출신 자스민에게 일종의 구원을 얻게 된다. 그리고 보니 어떤 의미에서 피델라 역시 난민 신세가 아니었던가. 종교와 관습 그리고 문화가 전혀 다른 타국에서 삶이란 어떤 것인지 백인 여성이긴 하지만 무일푼 신세의 피델마를 통해 독자들은 간접 체험을 하게 된다.

 

어느 곳에서 정착해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일단 살 곳이 필요하다. 자스민이 자신의 거처를 잠시 내주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머물 곳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피델마에게는 생존하기 위해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런 위기의 순간마다, 피델마는 은인들을 만나 위기를 극복해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아마 영국이 EU 국가이던 시절이라, 아일랜드 출신 피델마 역시 거주와 일자리 찾기는 다른 난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하지 않았나 싶다.

 

고향에서 험한 일을 당하고 자의반타의반으로 난민 신세가 된 피델마는 이른바 “센터”에서 모종의 구원을 얻게 된다. 그곳에는 정말 세계 각처에서 다양한 이유로 피란 온 이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넘실거렸다. 특히, 자신이 한 때 사랑했다고 믿었던 남자 블라드의 진짜 정체를 접하게 되면서 피델마는 충격에 빠진다. 보스니아 출신 라도반 카라지치라는 희대의 악당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 블라드는 집단학살과 인종 청소를 주도한 도저히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그런 사실들을 접하게 되었을 때, 피델마의 감정은 어땠을까.

 

런던에서 청소부로 변신해서 그럭저럭 생활하던 피델마는 직장 동료 메두사의 공작(?)으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다. 그 때도 블루이가 등장해서, 그녀에게 은퇴견 보호소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준다. 그리고 독지가 제임스의 호의로 그의 집에서 지내게 되고, 제임스의 죽은 아내에 대한 사연을 듣고 위안을 얻는다. 아일랜드에 있던 남편 잭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피델마에 대해 어느 정도 용서를 해줘서 금전적 지원도 받게 된다.

 

마지막 3부에서는 피델마에게 온갖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블라드와의 재회가 마련되어 있다. 인류에 대한 범죄로 네덜란드 덴하흐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된 블라드는 자신이 기소된 일체의 범죄들을 부인한다. 법정에서 그에 대한 증언과 항의가 이어지지만 이 악랄한 확신범은 반성의 기미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피델마 역시 그의 회개를 기대하며, 접견을 요청해 보지만 소용은 없었다. 자신의 죄를 반성할 만한 인간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런 죄는 아예 짓지 않았겠지.

 

내가 보스니아 내전을 다룬 책들을 읽으면서 정말로 두려워했던 것은, 보스니아 내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이좋게 지내던 이웃들이 순식간에 적으로 돌변해서 입에 담을 수도 없이 끔찍한 범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렀다는 점이다. 단지 민족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에 대해 파렴치한 잔혹안 인종 청소작전을 구사할 수 있었다는 게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천하의 악당 블라드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처절하게 응징당하는 장면을 기대했지만, 그런 극적인 사건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센터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귀환을 기대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어쩌면 악행에 대한 처벌이 현실에서 판타지라는 사실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에드나 오브라이언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주들은 색정증 환자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데, 피델마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지 조금 궁금해졌다. 피델마는 그냥 조용한 마을에 사는 외로운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다만 어두운 시간에, 만나서는 안될 루시퍼의 유혹에 빠진 희생자가 아니었을까. 센터의 젤믹은 그런 피델마에게 막말을 퍼붓고 공모자라며 인신공격을 마다하지 않는다. 겉으로만 볼 때, 젤믹의 주장이 틀렸다고 치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작고 빨간 의자>에 이어 절반가량 읽은 <8월은 악마의 달>도 마저 읽어야겠다. <작고 빨간 의자>는 상당히 흥미로운 책인데, 절판되어 아쉬울 따름이다.

 

[덧붙임] 책의 제목 <작고 빨간 의자>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사라예보 포위전에서 희생당한 이들 가운데 643명의 어린이 희생자들을 상징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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