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나는 아프리카와 SF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소재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 작품을 만나기 전에는.
물론 이 소설은 SF의 과학적 측면보다는 사고실험에 가까운 소설이고, 이것은 여러 SF에서 시도된 방법이다. 즉,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SF가 활용되는 것이다.
이 '키리냐가'는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를 물리친 한 아프리카국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서구에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음에도, 동료들과 함께 서구 열강의 지배를 물리쳤을 때 아프리카의 전통을 유지하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민족 전통을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영적 지도자로서 외계 행성에 정착한다. 하지만 주인공의 신념과는 다르게 공동체는 변화하고, 결국 그는 그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그 사회를 떠나게 된다.
일단 주인공 응가이는 공동체에서 주술을 부리는 주술사로 활동하지만, 그의 주술의 기반에는 공동체의 생존을 좌우하는 기후를 조절하는 과학기술이 존재한다. 즉, 그는 생존을 좌우할 수 있는 권력도구를 손에 쥐고 자신의 신념을 일방적으로 공동체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전통에 집착하지만 그의 통치기반 자체가 전통과 같지 않다는 것을 그는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전통을 중시하는 것과 사회가 정체되는 것의 차이도 무시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사회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이 숙명이고 이를 거부하던 주인공은 결국 버림받게 되는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이 소설의 배경에는 아프리카가 유럽의 식민지 지배에서 받은 큰 상처가 숨어있는 듯 하다. 아프리카인들은 그들의 통치 아래에서 자신들의 전통 사회가 가진 중요한 가치를 상실했고 그것을 가슴아파한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전통을 보존하는 것은 그 형태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진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보존해야 하는 것이며, 인간이 편리함과 안전함을 추구하는 방법으로 과학기술을 받아들이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또 그것을 거부할 수도 없는 것이다.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조선 말 대원군의 쇄국정책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이 실패했듯이 대원군도 실패했다. 하지만 대원군의 쇄국정책의 실패가 반드시 우리 사회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신념만이 반드시 진리라는 그 믿음이 오히려 공동체의 실패를 초래한다는,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의 교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