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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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6 가와바타 야스나리

밖은 30도라고 한다. 여름이 시작되는 무렵에 눈 고장의 겨울, 여름, 가을, 또 겨울을 읽었다.
집안에 갇혀 있지만 길을 나선다고 해도 그 계절의 그런 고장들을 그 시간들을 홀로 거닐수는 없다. 고마코도 요코도 만날 수 없고 유리창이나 거울에 비친 눈 등불 붉은 뺨 검은 머리도 볼 수 없다.
유유히 시골을 돌며 여행 다니고 그런 것들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글로 담은 백 년 좀 안 되는 옛날에 살던 탐미주의자 아저씨 덕에 나도 그 예쁜 것들을 글로 마음으로 보는 호사를 누린다. 차갑고 뜨겁고 눈이고 고타츠고 시원한 감촉의 지지미고 말이 그런 심상을 만들어내는 건 놀랍다.
불구경하다 은하수 쏟아지는 걸 신경쓰다 하는 부분에서는 버럭 짜증도 난다. 남은 죽네 사네 하고 불끄느라 애쓰는데, 그리고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듯 분명 요코가 저 불길 근처에 있을 건데 자꾸 예쁜 것만 그리고 있을래. 이쯤되면 미친 거 아냐. 괜히 혼자 감상에 빠져 가여운데 내가 해줄게 없네 마네 하면서도 여자들을 슬프게 만드는 시마무라가 얄미워서 옆에 있으면 딱밤을 갈겨주고 싶다. 감상에 빠지게 만드는 고마코도 요코도 될 수 없고 길 가다 혀 차는 동네 아낙1이 될 수 밖에 없어서 더 그렇다. 실내온도도 29도가 넘는데 서늘해져 가디건 입고 아 예쁘네, 참 이렇게 예쁘게 써도 되는 건가 하고 질투하는 풍경도 괴상하다. 다 읽고 나니 더워지는 걸 보면 다행히 미치진 않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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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5-26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싸 설국 별 다섯개!! 찌찌뽕....

반유행열반인 2019-05-27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찌찌뽕은 저번에 만화책 겹칠 때 할라다 꾹 참았는데...괜히 참았스요...ㅋㅋ
 
감정 독재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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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5 강준만
같은 시리즈의 생각의 문법을 먼저 봤었다. 
비합리적으로 사고, 행동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틀 50가지를 제시하고 간략하게 정리한 책이다. 
제목은 왜 이렇게 붙였을까. 다 읽고 나서도 이해가 잘 안 된다. 감정에 사로잡혀 이성적 판단을 그르치는 걸 표현하고 싶었나 본데 아무리 봐도 독재라는 말이 붙을 만 한지, 적절한 비유인지 납득이 안 된다. 
50가지 이론틀은 커뮤니케이션학, 심리학, 경제학, 조직학 등등 뿌리를 둔 학문이 다양하다. 깊이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각각의 이론을 더 자세하게 공부하고 싶으면 저자가 인용하고 맨 뒷면에 붙여둔 참고문헌들을 파 보면 좋을 것 같다.
 
모학문 없이 사회과학과 교육학을 잡다하게 버무린 전공이라 내가 뭘 가르쳐야 되는지 여전히 헷갈린다. 사회과학도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낯 뜨거운 수준이지만 제법 사회 현상과 사람들에 대해 설명할 때는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론이 많다. 
 (개별적이든, 모여있든)인간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그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많은 틀을 두루 알고 있는 것은 좋은 일 같다. 어느 하나의 틀과 관점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를 시도할 수 있다는 걸 아는 것, 같은 이유로 왜 남들이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 (거기에 더해 결국 우리가 본질에 다가서고 진리라 이름붙이며 확신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는 걸 아는 것. 흑흑) 그게 좋아서 사회과학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한편으론 이런 책들을 훑는 이유가 어떤 이론이라도 거스르는 사고와 행동을 위해 (난 아닌데?하고 설명할 수 없는 예외가 되기 위해) 무의식한테 스캔을 시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애를 어떻게 키우면 이렇게 반골에 반항아가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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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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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3 정은정

브로콜리너마저-보편적인 노래
https://m.youtube.com/watch?v=LQ6WVNqa4uo

책을 읽으며 나의 치킨 역사를 정리해 보기로 했다.
1. 가장 오래된 치킨의 기억: 전날 술마신 아빠가 사왔다고 엄마가 전기밥통에 든 처갓집 양념통닭을 꺼내주었다. (‘술마신’이 볼드체라 ‘아빠가 사왔다’는 데 인터넷에 떠도는 미담 같은 애틋함은 없다.) 80년대이고 5살이 안 됐던 것 같다. 고추장 맛이랑 케찹맛이랑 단맛이 나는 고기라니.
2. 초딩 때 드나들던(?) 치킨집: 걸어서 십분도 안 되는 데라 배달도 되긴 했을텐데 심부름으로 엄마가 준 지폐들고 가서 양념치킨 주세요, 하면 허름한 잠바 입고 눈썹 진하고 얼굴 빨간 치킨집 아저씨가 치킨을 튀기고 양념그릇에 버무려서 상자에 담아 주었다. 아저씨 손이 느려서 의자에 앉아 한참 기다렸다. 홀에 손님이라도 오면 대기시간은 무한대로 길어졌다. 아저씨가 치킨 만들다 말고 손님이 주문한 술안주로 노가리를 구우려고 석쇠에 넣는 걸 구경했다. 메뉴로만 보던 노가리가 그런 자그마한 생선인 걸 처음 알았다.
3. KFC: 군에서 90년대 중반에야 겨우 도농복합시로 승격한 촌 출신이라 KFC는 중3 때 친구들하고 대학로에 과학전시관 갔다 처음 가봤다. 처음 먹은 징거버거 우와 예술. 대학생 되고 서울 통학하면서 과외 가기 전 KFC에서 스마트초이스라는 메뉴로 자주 끼니를 때웠다. 알바비라도 버니 그런 걸 내 돈 주고 먹게 되었다.
4. 녹두 거리 치킨집: 대학 때 자취-산꼭대기 신혼집 시절, 솔직히 녹두 거리는 가격은 싼데 내 입엔 맞는게 별로 없었다. 구이통닭해주는 딱한잔은 싼 가격에 선후배들이랑 몇 번 갔다. 파파스 치킨은 너무 짰다. 또래오래나 페리카나 돈 좀 있을 땐 교촌치킨도 시켜 먹어 봤지만 내겐 별로 맛없는 치킨. 난 굳이 시켜먹으라면 피자를 먹었다.
5. 뿌링클: 치킨계의 치토스 같은 뿌링클(특히 순살)은 퍽퍽살 매니아, 뼈 바르는 것이 귀찮고 징그러운 환자, 초딩으로 이루어진 가족에게 특화된 메뉴였다. 과자 먹듯 치킨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종종 애용했다.
6. 에어 프라이어: 집에 이 요물이 들어오니 신세계가 열렸다. 취향에 맞는 부분육이나 닭볶음탕용 절단닭 준비. 전날 우유에 재웠다 소금 적당히 넣어 염지. 봉지에 닭+카레여왕에 끼워주는 라면스프 같은 마법의 매운 양념+튀김 가루 적당량 넣고 흔들기. 올리브유 적당량 발라 에어프라이어에 튀겨주면 핫크리스피 치킨을 저렴하고 담백하게 먹을 수 있다.
작년 4월 이렇게 닭다리 8개 튀겨 놓고 딱 한 개 먹었는데 진통이 와서…급히 119 전화해 구급차에 실려가...닭 튀겨 놓은지 40분 만에 애를 낳았다…2박3일 후 퇴원해서 그 때 남은 치킨을 다시 데워 먹었다. 닭다리만 보면 둘째한테 너만 빼고 치킨 먹는다고 화나서 튀어나왔지, 하고 말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돌쟁이라 못 알아 듣는다.)

이렇게 치킨 가지고 풀어 놓을 썰 없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채식주의자 빼고 몇이나 될까.

5년 전 쯤 나온 책이고 책이름에 치킨이 들어가니 눈이 갈 수 밖에 없다. 그 때도 궁금했지만 이제야 봤다.
치킨의 지위는 여전히 확고부동한 치느님.
책에서 다룬 그 때 막 성장 시작한 배달앱들은 이제 공룡을 넘어 고질라가 되었고 서로 점유율 싸움 하느라 행사 남발해서 자영업자들만 피터지는 중.
정부에서 치킨은 서민 음식이라 값 못 올리게 한 아이러니. (치킨집 사장님도 재벌 아니고 서민인데.) 배달료 별도라는 수로 결국 명목 치킨값은 동결이나 실질 치킨값은 상승했음.
KFC도 결국 생맥주를 팔기 시작했음.
뭐 이런 소소한 달라짐이 있었지만 프랜차이즈나 양계 등의 상황은 그닥 달라진 게 없어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다.

보편적 기억과 경험으로 공유되는 치킨이라는 음식은 단순해 보이지만 전혀 단순하지 않았다.
치킨을 다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닭요리로서 접근할 뿐 아니라 닭을 키우는 양계농가, 프랜차이즈 회사의 운영방식과 가맹점 점주들의 고충, 배달, 사람들의 공유 기억, 문화적 의미, 치킨의 부재료인 기름, 닭의 사료, 그 원료인 콩, 옥수수 등등, 치킨의 원조인 미국의 원형 치킨과 한국화된 양념치킨, 오븐구이치킨, 프라이드 치킨의 세분화된 종류, 월드컵, 야구장, IMF, 식품 기업, 축산 기업, 축산 농가, 물류 방식, 다룰 것이 끝도 없다.
그 끝도 없는 것을 세세하게 파고들고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경제적 함의를 돌아보게 한 것이 흥미롭고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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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5-24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닭다리 8개와 같은 날에 태어난 돌쟁이라니, 세상에서 제일 귀여울 것만 같다......

반유행열반인 2019-05-24 14:01   좋아요 0 | URL
치킨 잘 뜯어먹게 생기고 튼실했으면 좋았을텐데...바람일 뿐 작은 부모가 낳은 제 아이들도 어디가나 제일 작고 말랐네요.
 

-20190521 필립 로스

처음 읽은 필립 로스.
작가 이름을 주워 듣고 친구에게 물었다. 필립 로스 어때?
응. 밀란쿠 영감과 함께 세상을 지탱하는 또하나의 기둥이지.

기둥 둘 중 하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건 나중에 알았다.
책 네 종을 모았고 아직 읽지 않은 세 종이 책꽂이에 남아 있다. 흐뭇.

이 책은 내 나이 무렵에 작가가 쓴 것이다.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자신만만함이 있었다. 씹, 보지, 자지, 씨발, 딸딸이, 야 난 이런 말 거리낌없이 잔뜩 쓴단다. 쓰고 또 쓸 거야.
포트노이는 유대인 가족의 강박적 교육과 엄마의 강도 높은 잔소리와 나약한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수치심, 욕망, 결벽증 등이 비벼진 채 삐뚤어진 사람이다. 겉보기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서 정의 실현을 위해 일하고 있지만 성적으로 강박적이고 제대로 된 사랑도 못하고 새로운 가족도 못 이루고 기존의 가족도 끔찍스럽게만 느낀다.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
어느 정도까지는 그게 문제인가? 다들 그러고 살지 않을까? 싶고 측은한 느낌도 드는데 뒷부분에서 이스라엘에서 만난 여성에게 부당하게 (아니 그 정도가 아니지. 미친 개새끼같이) 구는 걸 보면 확실히 빌런이다.
왜? 난 왜 이모양인데? 난 왜 고통 받아야 되는데? 과거엔 이랬지 가족은 이랬고 만난 여자들은 저랬지 좋은 기억도 조금은 있지만 좆같은 기억이 더 많지. 누군가에게 상담을 요청하고 주절거리는 듯한 말투로 인생을 회고한다. 사실 인생을 반추하기엔 화자 역시 삼십 대의 젊고 창창한 사람이지만 온통 불평과 괴로움의 토로 뿐이다.
그런 포트노이에게 이스라엘 키부츠 여성의 입을 빌려 뼈때리는 일침도 날아오지만 뭐 그렇다고 포트노이의 현실 인식이 변한다든가 자신의 문제에 대한 극적인 깨달음을 얻는 기적 따윈 일어나지 않는다.

악당에 가까운 인물들에 이입되고 평소에는 발휘하지 못하는 공감능력마저 슬슬 돌아가는 게 이상하다.
포트노이 엄마가 강박적으로 구는 걸 보면 내가 키우는 아이들도 조금은 걱정이 된다. (개 같은 아버지가 키운 좆같은 어머니가 키운 삼대 째의 미래는...아 생각하기 싫으네…)

세상엔 나같은(나보다 더한 또는 나만도 못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으니 위안을 삼자, 이건 아닌 거 같고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니 그러려니 이해하자, 이것도 아닌 것 같고
사실 다 저 모양이야. 아닌 척 하는 거야, 이것도 아닌 듯하고

객관화와 반성의 기회를 조금이나마 갖는다면 가망이 없는 건 아냐, 나아질 여지가 있는 거야.
잘 쓴 걸 보고 재미있었으면 된 거야. 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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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거나, 마음을 울리거나, 눈을 감고 되새기고 싶은 글은 애초에 포기했다. 
메마르다 못해 쩍쩍 갈라진 문장, 냉소, 작은 흠을 붙잡고 “동네 사람들! 저것 좀 보래요!”, 맞춤법 나치당 소속(정작 본인 글은 인쇄 출판된 거 아니라고 관대함)
제대로 사랑 받지 못하고 자라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아이는 이렇게 됩니다. 를 현시하듯 내 말과 글은 언제나 모질다. (사랑 받지, 아니 작은 관심조차 받지 못한다면 차라리 모두 부숴버리겠어! 이런 거냐...)

이런 종자들을 간단히 퇴치, 퇴마하는 법을 알려드립니다. 무관심이 가장 유효한 약입니다. 
먹이를 주지 마세요. 교화시키려 들지 마세요. 대응하지 마세요. 좋아요도 싫어요도 누르지 마세요. 
저절로 알아서 말라 죽습니다.

솔직함과 무례함의 경계를 줄타기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 공감 능력과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 대부분이 그러듯- 각도기가 뿌숴진 채 대체로 무례함으로 결론이 나곤 한다. 결과는 상처 입은 누군가, 안 본 눈 사고 싶은 소수, 자책과 함께 자존감 하락, 또다시 삐뚤어질테다! 하면서 더 무례해지는 악순환에 되먹임까지...

갑자기 자기 반성 모드가 된 것은 우연히도 난 상관 안 해, 하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인 듯한 저자의 피드백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걸 안 봤으면 아마 계속 악당 짓거리를 하다 늙어(혹은 젊어서 사고나 병이나 상해나 살해로) 죽었을 것이다. 

허공을 향해 던진다고 생각했던 칼날들이 어딘가 박히긴 박히고 엄한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있었다. (혹은 정말 낮은 확률로 던지면서 생각한 누군가의 짧은 시간이나마 기분을 잡치게 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경험(주로 읽은 것)에 대한 정리, 생각한 것과 느낀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하기(또는 적어 놓고 빨리 털어버리기), 기억의 보조(나중에 읽고 아 그 때 이런 일이 있었군, 이런 마음이었군), 더 나아가 나는 이런 인간이구나, 를 다져가는 것-그렇다면 나는 형편 없는 걸 쓰면서 내가 형편 없다는 것을 계속 다지고 있는 것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굳이 쓴 글을 남들이 볼 수 있는 곳에 걸어 놓는 이유도 생각해 보았다. 
인정욕구.
그 이상이 있을까? 

문제는 항상 나를(혹은 내 글을) 치장하지 않으면서도, 나아지지 않으면서도, 
이런 나라도 괜찮아? 한술 더 뜨고 더 뜨고 역치에 다다를때까지 최선이 아닌 최악을 향해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글쓰기 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도 그렇다. 초등학교 때 실험 시간에 포화용액 만드는 것처럼 그렇게 조금씩 붓고 또 붓다 결국 가라앉은 앙금은 바닥에 단단하게 굳어 버린다. 그 다음은 쓰레기통으로.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는 삶은 꿈꾼 적이 없다. 그런 사람들은 정치계나 연예계로 가라지.
소수면 된다. 아니 단 한 사람이라도. 작은 부분이라도 있는 그대로 좋다고 해 주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바람이 소박해지니 덜 불행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조차 문제인 것 같다. 
있는 그대로, 그 자체가 바뀌어야 할 때일지 몰라. 
한 사람이라도, 다칠 만한 건 그냥 쓰지 말자. 
굳이 그런 걸 쓸 거면 일기장에 쓰고 너나 봐라. 

마음에 안 든다는 건 죽은 사람 책에나. (그런데 죽어서도 읽히는 사람들은 다 잘 썼지.)
살아 있는 사람 책에는 아예 편지 쓰듯 감상을 달까. 존대말로 쓸까. (그러면 욕은 못 하지. 이런 미친 새끼를 보셨나요. 이상하잖아.)
일단 삐뚤어진 마음부터 어떻게 해 봐야 될 것 같은데.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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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5-21 13: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칼 든 사람이 칼을 내려놓는 것보다, 칼을 든 채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인 국면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날카롭게 휘둘러야 최적의 깊이로 스며들어 도려내야 할 것만 도려낼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니 저는 이게 좋은 일이라고 봐요.
그 최적의 깊이라는 것은 때와 대상에 따라 자꾸만 달라지는 것이고 명확히 존재하는 것인지조차 실증할 수 없으니, 우리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경지에 수렴할 수 있을 뿐 도달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어쨌든 세상 어딘가에 기왕 상처가 생겼다면, 그 상처를 낸 사람과 받은 사람 모두가 그 상처를 핥는 것이 제일 바람직한 일이잖아요.
힘내세요. 전 열반인님이 어떤 분인지는 잘 모르지만, 이런 고민은 하는 사람만 한다는 것,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정한 사람이라는 걸 알 정도는 됩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05-21 13:57   좋아요 0 | URL
녹슨 커터칼 나부랭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손잡이도 없이 쥐고 휘두르니 민폐에 자해였네요. 이런 제게 과분한 위로입니다. 그래도 댓글마저 좋은 본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syo님 글의 밝기와 온도는 절대 못 따라가겠지만 애써 보겠습니다.

- 2019-05-21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잉, 아무도 안다칠 글이 세상에 있나요? 인정욕구가 뭐가 어때서요!!
하지만 열반인님이 뭔가 속상한일이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 ㅠㅠ ...
저는 조금이라도 써놔야 후련하더라구요.. 간지러운 데 긁기도 하고 피딱지 앉은데 또 긁어서 피나기도 하고.. 그르니까.. 읽고 쓰는 거 안해도 살 수 있으면 그렇게 하시고 ㅋㅋㅋㅋ 그것이 없는 삶을 사는 게 더 힘들거 같으면 되는대로..그냥 읽고 쓰며 살아요 우리 🤗... 전 열반인님이 후자일거라고 넘겨 짚으며 소심히 멈추지 마시라 격려의 코멘트를 달아봅니다용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19-05-21 20:08   좋아요 1 | URL
내가 이만큼 참고 읽었으니 이 정도 짧은 불평 쯤은 괜찮은 거 아냐? 했는데 괜찮은 게 아닌 것 같아요. 인싸에 대한 아싸의 심통부림, 지적질을 위한 지적질이 된 게 아닌지..싶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격려 말씀 감사드립니다. 글이라는 게 이렇게 쟝쟝님 하시듯 위로도 주고 힘도 주고 하는데 저는 받기만 하고 주는덴 왜 이리 인색한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