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과 울림 -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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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8 김상욱
F=ma
https://youtu.be/7bHYTenCwQY
가속은 곧 힘, 힘은 곧 가속도 되니 F=ma 다 Mass 와 acceleration~
슈퍼밴드에 과학선생님 출신 싱어송라이터가 만든 곡 ‘대리암’과 ‘F=ma’에 꽂혔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입에서 저절로 흥얼흥얼.
김상욱의 과학공부를 몇 년 전에 보고 주기율표 담요를 사니 김상욱의 양자공부를 받았?는데 차마 못 펼치고 있다 이 책을 먼저 보았다. 김상욱의 물리공부 쯤 될 내용이다. 그런 이름으로 신문 연재 했다는 듯.
진동과 파동이 아닌 떨림과 울림이다. 한글어, 울림 소리로 바꾸니 훨씬 시적이다. 물리 법칙을 이야기하면서 읽는 이가 쫄만한 수식은 최대한 배제하고 직관적인 설명, 참신한 비유, 문학적인 문장들로 이야기를 꾸렸다. 과학을 잘 모르니 정확한 설명인지는 모르지만 어렵고 벽처럼 느껴지는 물리에 대해 뭔가 아름답네 하고 관심을 갖게 해 준 점이 좋았다. 
4년 전쯤 물리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비천한 문돌이의 짧은 식견에 고교 수학 이과 과정도 해야 할 거 같고, 그 전에 중학 수학도 복습해야 할 것 같고...그러다 잊고 지냈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다시 도전해 봐야지. 수학과 물리의 아름다움이 뭔지 죽기 전에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다. (될까?) 그전까지는 이런 착한 교양서들이나 청소년 과학 도서로 만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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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5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ㅋㅋㅋㅋ 아앜ㅋㅋㅋㅋㅋ 저 대리암 알아요!!!! 그편 보고 자지러졌는 뎈ㅋㅋㅋ 그쌤 탈락 했죠?

반유행열반인 2020-09-05 09:49   좋아요 1 | URL
제법 오래 갔죠 ㅋㅋ대리암보다 난 F=ma가 더 좋았어요 ㅋㅋ그런데 그 분 수업은 음청 재미없을 거 같음 ㅋㅋㅋㅋ

- 2020-09-05 09:52   좋아요 1 | URL
막상 과학보다는 음악에 열정있으실 분임ㅋㅋㅋㅋ 여튼 기억에 남는 걸 보면 좋은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9-05 09:55   좋아요 1 | URL
네 저 슈퍼밴드 음청 열심히 봐서 그 분 유튜브도 구경가고 했어요 ㅋㅋㅋ저의 젊은 시절 캐릭터랑도 일부 겹침 ㅋㅋㅋ(인디밴드 가수 겸 교사 ㅋㅋㅋㅋ)다 지난 일 ㅋㅋㅋㅋ

- 2020-09-05 10:09   좋아요 1 | URL
가수반반 티쳐반반 진짜 무한매력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9-05 10:13   좋아요 1 | URL
이젠 그냥 티쳐반반 찌그래기반반 쟝쟝이웃반반 ㅋㅋㅋㅋ

- 2020-09-05 10:24   좋아요 1 | URL
그 티쳐 이웃 참 좋다 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9-05 10:30   좋아요 1 | URL
쟝쟝님 줄댓글 달아주는 거 보니까 막 털뭉치 친구들에 둘러 싸여 침대 위 뒹굴대며 주말이잖아 늘어질테다 하는 쟝쟝님 상상했다 ㅋㅋㅋㅋ그런 거 왜 좋지... ㅋㅋㅋ마음껏 늘어져랏

- 2020-09-05 10:42   좋아요 1 | URL
털뭉치 무한쓰다듬기 시전중. 사과하나 먹고 계속 누워있다. 이젠 내가 장판인제 장판이 난지!!!
 
온 더 무브 - 올리버 색스 자서전, 개정판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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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5 올리버 색스

이 책을 몇 달 전에 읽으려다 세 쪽만에 덮고 그 탓을 번역에 돌렸다. 가독성 없다고 번역가 때리고 싶다고. 벼르고 벼르다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세상에나 술술 넘어갔다. 책에도 문장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는 문장이고 번역이고 작가고 탓하기 전에 그 책을 읽을 때 내 상태가 정상인가, 제 정신인가 먼저 돌아봐야겠다. (다시 한 번 미안해요. 분이 풀린다면 나를 때려요 엉엉)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환각, 의식의 강을 읽고 네 번째 읽게 된 색스 박사 책이다. (그러고도 아직 사 둔 뮤지코필리아가 남아 있지. 후후)
이 책의 제목은 시인 톰 건이 이 십대에 쓴 시의 제목과 같다.

아무리 나빠도 우리는 움직인다. 아무리 좋아도
절대에 가닿지 못하는, 안식할 곳 없는 우리,
언제나 멈춰 있지 않아, 더 가까워진다.

신경과 의사이면서, 해양 생물, 식물, 시지각과 뇌(색맹, 시각언어로써의 수화) 등 다방면의 과학 분야, 문학, 음악 등까지 두루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글로 남긴 색스 박사의 인생을 그의 목소리로 듣는 즐거운 기회였다.
조현병을 앓는 가족(색스의 경우 형), 약물 중독, 우울증, 내향적인 성격 등 공통된 경험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그러나 색스 박사는 의사로서,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가진 탐구자로서 열심히 신경과 뇌와 감각에 대해 파고들었지만 나는 그냥 멍청한 문돌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환각을 읽을 때는 마약쟁이가 뭔 의학적 호기심 운운하면서 되게 정당화하려고 애쓰네, 싶었는데 이 책에서는 자신이 명백히 중독이었음을 인정하고 그 기저에 사랑의 상실, 외로움 같은 이유를 덧붙이니 조금 더 이해가 되었다. 그의 곁에는 그를 지지하고 찾아주는 가족들, 친구들이 있었기에 최악의 상황에서 망가지지 않고 평생 (다시 올 수 있는 유혹을) 견디며 살아간 것 같다.
일생에서 만난 네 번의 사랑 또는 연애, 그 중 하나는 70대에 시작되어 삶의 끝까지 이어졌다는 점도 놀라웠다. 성적 지향이 달라도 연애에 아파하는 건 비슷하다. 그 다름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아픔과 긴 연애 공백은 안타깝기도 했다.
모터 사이클에 매달려 넓은 미국 땅을 여행하고, 고화석이 편편히 깔린 수백만년 된 지층 사이를 거닐고, 잔잔한 연못이나 파도 치는 바다에서 수영하거나 스노클링을 즐기는 젊은 박사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무거운 역기를 들어올리다 깔리거나 등반 중에 황소를 만나 다리 근육이 절단나거나 피오르에서 노 하나를 잃고 남은 하나로 죽어라 저으며 돌아오는 모습도. 내가 경험하지 못한 그런 경험들이 인생을 얼마나 즐겁게, 또는 긴장감 넘치게 만들었을까.
가족, 친구, 동료 작가, 동료 학자들과 주고 받은 서신도 좋았다. 같은 관심 분야를 가진 사람들과 긴 편지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건 또 얼마나 소중한 경험이었을지. 톰이 보낸 편지에서 색스의 글에서 ‘인간애’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칭찬한 부분이 좋았다. 글에서 필요한 게 뭘까 돌아볼 기회가 되었다.
지각 작용에 대해 리처드 그레고리가 ‘지각 작용은 감각 정보가 단순히 눈이나 귀를 통해 재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뇌에 의해 ‘구성되는 것... 기억과 개연성과 맥락에 따른 예상이 부단히 입력되면서 뇌 안의 만은 하부조직이 작동함으로써 그 정보가 구성된다’고 보았던 것, ‘뇌가 생각을 가지고 논다’라고 한 주장은 환각이나 감각, 환각, 착각에서 접했던 것이라 여기서 다시 보니 좋았다.
다른 챕터들은 쉬이 즐기며 읽을 수 있었는데 뇌와 의식의 재발견 부분은 조금 어려웠다. 에덜먼의 신경다윈주의 자체가 엄청 어려운 주장(아니면 내가 멍청해서 못 알아 듣는 것) 같은데 여러 세대에 걸쳐 자연선택이 일어나듯 한 개체가 살면서 신경세포단위에서 끊임 없이 변화하며 범주화하고 이를 통해 각자의 지각 능력을 형성하며 뇌의 지도를 그려간다고 주장한 것 같다. 색스 박사 덕에 어렴풋하게나마 독특한 이론을 소개 받았다. 박사가 이 이론을 통해 시사받은 것을 말하는 이 부분도 좋았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신경다윈주의는, 우리 스스로 원하건 원하지 않건, 저마다 독자적으로 자기를 계발하며 평생에 걸쳐 각자의 특성에 맞는 길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운명임을 암시한다.’
이 책을 보고 나니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는 것을 더 미룰 수 없을 것 같다. 꼬질거리고 글자도 너무 빽빽한 중고책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어렵더라도 올해 내에 천천히 다 읽어 보아야겠다.
포트노이의 불평부터 자기 앞의 생, 그리고 이 책까지 우연히도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비슷한 시기에 여럿 접하게 되었다. 그들의 민족적 자부심과 유대감, 거기에 그들이 당한 고난, 뭔가 복잡다단한 특색이 있는 것 같다. 다만 세 책에 나타난 유대인의 모습과 자기 인식이 이렇게나 다른 걸 보면 어떤 사람들을 민족, 인종, 국민으로 뭉뚱그려 파악하는 편견에 빠지지 않도록 신중해야 할 것 같다. (당장 한국인으로 뭉뚱그려지는 우리 주변 사람을 봐도 너무 다르고 다양하잖아. 왜 남들을 볼 때는 그걸 쉽게 잊고 다르게 보는 걸까.)
인간에 대한 애정. 환자와 가족과 동료와 수많은 동식물체까지 아우르는 관심과 사랑. 그의 글이 과학이라는 전문적인 분야를 다루고 있음에도 두루 읽히는 이유 같다. 나는 사실 아직까지도 수많은 의심을 내려 놓지 못하고 읽거나 보고 듣는다. 정말 그런 기분이었어? 그런 의도였어? 그런 생각이었어? (이 책 보면서도 가끔 그랬다. 몹쓸 병.) 심지어 나자신의 어제 오늘 내일도 믿지 못한다. 아님 어때. 하고 그냥 들어주고 받아들이는 날이 오면 좀 달라질까. 나도 남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러면 글도 삶도 나아질까. 내 신경세포들은 왜 이런 쪽으로 강화된 걸까요. 자꾸 한 방향으로만 갈까요. 반대로 계속 자극하고 강화하면 재구성될 수 있을까요.

아무리 나빠도 우리는 움직인다. 아무리 좋아도
절대에 가닿지 못하는, 안식할 곳 없는 우리,
언제나 멈춰 있지 않아, 더 가까워진다.

작은 희망이나마 주는 구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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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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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1 무라타 사야카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해 본 적이 없다. 궁금해졌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꾸릴 수 있을까. 최저임금8350원*8시간*5일*4주=1336000원. 혼자 몸은 겨우 건사하겠지만 저축을 하거나 가족을 부양하기엔 무리같다.
소설은 그리 길지 않아 금방 읽었다.
주인공 게이코 후루쿠라는 남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18년 간 일한 편의점에서는 주변인들의 모습을 모방하며 걸맞는 말과 태도를 하고, 편의점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일한다.
그녀에게 편의점은 일터이자 학교, 식당, 사회, 종교, 삶 그 자체이다.
주인공 생겨 먹은 것도 특이한데, 작가가 오랜 기간 편의점에서 일했다고 한다. 책 말미에 작가가 편의점에게 쓴 러브레터를 보면 참 특이하다 싶다.
후루쿠라와 달리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을 무시하고, 조몬시대 타령하며 여자들에게 피해망상을 가지고, 스토킹하고, 그러면서도 후루쿠라를 착취하고 빌붙어 살려 하는 시라하라는 발암 캐릭터도 나온다. 남들이 결혼 안 하냐고 귀찮게 하는 것을 피하려고 그런 인간 말종을 집에 들어 먹이까지 줘가며 부양하는 후루쿠라가 딱했다.
다시 편의점 인간이 되기 위해 구직활동도 시라하도 내치고 각성하는 결말은 복잡한 심경으로 보게 되었다. 만족감을 가지고 발붙이며 자신의 존재를 형성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겠다, 싶다가도, 결국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화자의 입장에서는 무난한 곳이지만 온갖 편의점 알바 경험담에서 등장하는 존중 받지 못하는 상황-최저임금, 손님의 횡포, 주인의 횡포, 도난, 폐기 음식 둘러싸고 치사한 꼴 겪는 것 등등-을 생각하면 마냥 편한 마음은 아니다.
김애란의 나는 편의점에 간다도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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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마누엘레 피오르 그림,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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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1 에밀 아자르(로맹가리)

어제는 백만년 (같은, 2018년 1월 이후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기생충을 보았다. 말하려는 게 너무나 분명한 비유를 담고 있었다. 설국열차의 수평적 이미지보다는 그 수직적인 이미지가 더 적합해 보였다. 그런데 뒤이은 장면의 설정상 어쩔 수 없는 건 알지만, 현실은 계급 계층이 낮을 수록 내려가는 게 아니라 올라간다? 신림동 달동네, 판자촌이었던 봉천고개 살아보면 알지. 
100에 30하던, 밤마다 변태들이 들여다보는 것 같은 두려움에 떨던, 곰팡이 퐁퐁피며 아토피를 심하게 만들던 반지하를 벗어난 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잠적으로 개포 주공 자가(그걸 들고만 있었어도, 하는 근심이 지금 어머님을 더 아프게 하는지도.)에서 전세로, 다시 보일러도 고장난 월세방에서 사춘기 긴 기간을 보내고도 다행히 번듯이 자라 나랑 같이 영화를 보러 간 사람. 
운 좋게도 시험 잘보는 능력을 가졌던 둘은 신림동 1층(이지만 역시 곰팡이 퐁퐁피어 아기를 아토피로 아프게했던 망할)다세대, 엘레베이터 없는 신림동 산꼭대기 4층 빌라를 거쳐 여전히 산꼭대기지만 곰팡이 안 피고 엘레베이터도 있는 옹벽뷰 아파트 저층에 안착했다. 
평창동 같은 곳의 대저택에 사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부끄럽고 미안해졌다. 내가 누리게 된 많은 안정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밀어내고 배제한 다음 얻게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퍼졌다. 써놓고 보니 누가 보면 재벌3세라도 되는 줄 알겠네. 이번달로 무급 전환된 육아휴직자 주제에. 

슬플 때는 책을 읽는게 답인데. 하필이면 읽고 있던 책이 자기 앞의 생이야.
친구가 자기 앞의 생을 가지고 어디 고등학교에서 특강을 부탁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읽어봤다. 
엘레베이터 없는 칠층의, 전직 창녀와 그녀가 위탁 받은 아이들이 사는 삶.아랍인, 유태인, 아프리카계 흑인, 트랜스젠더, 창녀, 마약 중독자, 창녀의 아이들, 독거 노인, 정신병자...  늙음과 병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가난하고 가족마저 없는 이들에게는 더욱 가혹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도와주는 이웃이 있고,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삶을 지탱한다. 그렇지, 그나마도 누군가 있어야, 돌려 받을 수 없는 사랑이라도 쏟아야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지하생활자, 은둔자, 도망자, 그의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누군가 다시 함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영영 가질 수 없을 때, 우리는 인간이 아닌 것이 된다. 그러면 자신이든 타인이든 파괴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슬프고 어두운 이야기들을 보며 위안 삼는 속물이 되기는 싫다. 벼랑 끝에 걸리거나 떨어지거나 죽었을 수도 있는, 그런데 그러지 않은 내 삶에 감사하자, 이런 마음도 싫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그런 삶들, 나도 언젠가 빠질 수 있는 가능성들에 대해 보고 들으며 슬퍼할 뿐이다. 해결할 의지도 넓은 사랑을 품을 그릇도 못되는 자신을 탓할 뿐이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나도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죽을 맛이었다. 이건 아닌데, 생이 이런 건 아닌데, 내 오랜 경험에 비춰보건대 결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뇌리를 스쳐갔다.’
‘나는 누군가를 인질로 붙잡아 죽이는 것 말고는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었다. 아아, 세상에는 관심을 끌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산과 바다로 동시에 바캉스를 갈 수 없어서 한군데를 선택해야 하듯이 사람들도 그렇게 선택당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관심을 끌지 못하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한다. 사람들은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고,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낸 나치나 베트남전쟁처럼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엘리베이터도 없는 칠층에 사는, 과거에 너무 고통스럽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유태인 노파 같은 건 누구의 관심사도 될 수 없다. 그런 사람이 관심을 끌 일은 없다, 절대로.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수백만 이상의 수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그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만큼 중요하지 않은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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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꽃 - 5.18 20주년 기념 소설집
최인석, 임철우 엮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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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9 공선옥, 문순태, 박양호, 윤정모, 이삼교, 이청해, 임철우, 채희윤, 한승원, 홍희담

5.18 20주년 기념 소설집. 5월 18일 무렵 읽어야지 했는데 열흘이나 또 늦었다. 5월 가기 전에 다 읽은 것에 만족하기로.
이 책이 나오고도 또 20년 가까이 지났다. 서문의 말이 가슴을 친다. 그 때도 그랬는데 지금도 여전한 것들이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나없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말한다. 이젠 역사의 한 장으로 정리할 때가 충분히 되었지 않느냐고. 이제 그만 화해하고 용서하자고. 하지만 그들은 정작 망각하고 있다. 그러기엔 아직 너무나 많은 문제와 상처와 아픔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진정한 화해와 용서란 가해자 쪽의 뼈저린 참회와 속죄가 선행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을. 또한 우리 동시대인 저마다의 겸허한 반성과 책임의식을 통해 상처받은 쪽의 고통과 슬픔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오월은 결코 아직 과거형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기서 내건 조건들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오월은 현재형이다. 사월도 현재형이다.

여러 소설가들 작품을 모은 책은 언제나 편차가 크다. 윤정모의 밤길은 서정성이 좋았고 임철우의 어떤 넋두리의 날 것 같은 사투리를 가진 화자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도 좋았다. 지까심=김치 거리 라는 호남말도 알게 되었다. 재미나 세련미가 떨어지는 소설들도 있지만, 문학의 입을 빌어 생생하게 그 때 광주 사람들의 경험과 마음을 전해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5.18에 대해 이전까지 접한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새내기 때, 전공이 전해지기 전 배정된 과반에는 NL?이라 하는, 수배상태로 학교에 숨어지내는 고학번 선배나 이미 잡혀갔다 나온 선배들이 있었다. (산목련 사진 보여주며 봐봐, 북한 국화야. 김일성화 김정일화 그런게 국화가 아니란다, 하던 출소한?선배의 말을 들으며 삐질대던 때가 떠오른다...하하;) 오티(새로배움터라고 우리말로 순화된)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 참교육의 함성으로 같은 노래를 배워 의미도 모르고 신나게 불렀다. (나중에 전교조도 안 들어갔건만…) 학과에서 선배들이랑 전태일 평전, 우리 역사 이야기 같은 책 같이 읽으면서 5.18을 처음 제대로 접했다. 스무살에야 전두환이 왜 나쁜놈인지 알았다.
친해지지도 못한 3월에 과선배에게 대시하다 대차게 차이고 그 과반이 아닌 다른 전공을 선택했지만 짧은 시간 다양한?체험을 할 수 있었다.
과에서 멀어지면서 졸업 때까지 뿌리내린 곳은 노래패 동아리였다. 여기는 과거에 PD? 학생 운동 노선은 잘 모르고 내가 들어갔을 땐 그 흔적도 거의 없었다. 선배 중엔 내가 선동적?으로 노래부른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미 민중가요는 술자리나 동아리방에서 심심풀이로 부르며 겨우 명맥을 이어간 수준이었다. 공연에서는 인디밴드 노래나 에반게리온 수록곡 같은 걸 불러 공연 보러 온 졸업생 선배들이 고개를 저었다. 막스 어쩌구 하는 책들이 동아리방에 굴러다녔지만 선배 중엔 그걸 같이 읽고 설명할 사람도 이미 없었다. 최소한의 고민은 하고 공연을 꾸리자, 하며 겨우 유지된 세미나에서 공연 주제에 따라 파시즘, 군사문화, 여성주의, 대중문화, 철학 관련 교양서를 조금 읽은 수준이다. 정기 공연 외에 외부 행사는 419문화제나 월경페스티벌 공연 참가하고. 나머지 시간은? 연애하고 대항해시대하고 놀았지 뭐.

그런 경험들이 나중에 이상한데서 발목?을 잡았다. 사립학교 최종 이사장 면접이었다. 자기 소개서에 대학 생활 중 공부만 한 게 아니라 다양한 학내활동을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를 삼았다(=놀았다)며 사례로 노래패 활동을 적었는데, 이사장이 걸고 넘어졌다.
운동권이었지?
아닙니다.
집회라곤 이라크 파병 반대 한 번 나가봤는데 운동권이라 하긴 운동권들한테 부끄러운 수준 아닌가.
운동했네.
아니에요. 그냥 문화운동을…
노조할 거지?
안 합니다.
할 거 잖아.
피터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하듯 아니에요만 하다 나왔지만 최종 합격은 술 잘먹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는 선배에게 돌아갔다. 다행히 떨어진 줄 알았던 1차 시험 합격을 전날 밤 알게 되서 마음은 덜 무거웠지만. 기왕 떨어질 거면 폼나게 개길 걸. 그래 나 빨갱이다 이 더러운 자본가 친일 조상 덕에 사학재단 끼고 노조 탄압하는 나쁜 할배야. 빨갱이도 운동권도 아니니 거짓말이지만…

이후 현대사 민주주의 발전을 다루는 시간에 민주화기념영상 아이들이랑 같이 보고, 화려한 휴가도 보고, 소년이 온다도 읽고, 택시 운전사도 보고. 가르치며 배운 게 더 많다.

벌써 오 년 전 여름이네. 네 살된 애기 데리고 첫 장거리 여행으로 광주에 갔다. 삼만원 주고 산 휴대용 유모차는 송정역에 내려 개시와 함께 고장났고(어찌어찌 겨우 끌고 다니고), 송정리가서 맛없는 떡갈비도 먹고(호남 음식은 다 맛있다며!), 담양 죽녹원 갔다 돌아와 상무지구에서 먹은 콩나물 국밥은 맛있었다. 유흥가의 휘향찬란한 불빛을 보며 여기, 서울이랑 똑같잖아, 했다. 한밤 자고 518기념공원에 갔다. 기념관의 민주열사들 이름을 둘러 보고 518책자도 얻었다. 올해초에야 처음 다 읽었다. 김대중컨벤션센터도 구경가고(별 거 없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빙 돌며 구경하다 조선대에 가서 장미 구경을 하고 광주역 아름다운 가게에서 오백원짜리 동화책 두 권을 사서 서울로 돌아왔다. 진짜 한 게 없네. 동네 주민 체험하며 버스타고 돌아다니는게 매 여행마다 고집하는 방식이라 (같이 간 이들은 늘 개고생을 하고 그 덕에) 대단한 건 없었지만 소소한 여정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 정도가 내가 아는 오월과 광주다.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마 계속 들여다봐도 그 열정과 아픔은 제대로 알지 못할 것 같다.

올해 5.18 문학상 본상에 황정은의 디디의 우산이 선정되었다. 옳은 것을 향하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나 어디에나 있다. 탄핵 집회 딱 한 번 나가고 소심하게 집안에 노란 리본 열쇠고리 걸어 놓는 작은 마음이 옳음으로 나가는 물결에 보탠 바 거의 없지만, 책으로만 역사를 접하고 전두환 회고록에 100자평으로 욕하는(그러다 글 짤리고 더 분개하는) 방구석 투사일 뿐이지만, 어딘가 힘이 필요한 곳에 마음으로나마 원기옥에 기를 보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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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5-29 2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립학교 이사장이라는 존재들은 정말 멸종했으면 좋겠어요...... 아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

반유행열반인 2019-05-29 21:54   좋아요 0 | URL
초중고 공립 나와 직장 조차 사립하곤 인연이 멀었으니..운이 좋았던 거겠죠. 사립학교의 폐단?은 저때 베타버전 맛보기 쬐끔한 정도...구인하면서 응시료 받기, 종교재단은 법명이니 교인증명서니 요구, 합격되어도 발전기금 요구받는다는 소문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