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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산문
장기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평점 :
-20201017 장기하.
장기하와 얼굴들-별거 아니라고
https://m.youtube.com/watch?v=DwXUiFb3B3U
“아름다웠던 사람아 그리운 나의 계절아
이 노래가 들린다면 한 번 더 내게 말해줄래
조그마한 약속마저 이제는 두려운 내게
뭐든지 두려워할 건 없다고
알고 보면 다 별거 아니라고.”
장기하와 친분은 없다. 굳이 말하자면 장기하와 친구인 친구들이 있다. 있었다. 딱 한 번 장기하가 나에게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십 년도 넘은 예전, 공연을 마치고 사인을 받을 때였다. “00(친구 이름) 친구시죠.” 그러고는 또 주절주절 뭔가 말했지만 저 한 마디만 기억난다. ㅋㅋㅋㅋ
그러니까 나는 팬일 뿐인데, 열성팬까지는 못되고, 장기하와 얼굴들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꾸준히 앨범 시디를 사 모으고 모든 트랙을 여러 번 들었다 정도의 팬이다.
글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먼저 유명해진 사람의 글을 접하면 가드를 올리고 썼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글쓰기가 생계이자 주업인 사람에 비해 감추고 가리고 보여줄 것을 골라야만 한다는 강박, 이미지 관리를 한다는 느낌. 그런 책은 유명세에 힘입어 잘 팔리는 듯 보이던데, 잘 알려진 사람의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면모를 보려는 기대로 책을 펼친 사람들을 실망시킨다. 이 책을 읽는 초반에 책 여러 권 쓴 선배가 자기 SNS에 이 책을 조금 가혹하게 평가했던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싶었다. 솔직히 나도 재미가 없다...하면서 책 읽기를 쉬었다. 그러고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을 잔뜩 찾아들었다. 그가 드럼치던 시절부터 뺀드뺀드짠짠에 첫 솔로로 낸 노래, 그리고 근 십 년 간 나온 이런 저런 곡들….여전히 좋았고 내 취향이었다.
책의 문장에는 장기하가 쓰는 노랫말의 느낌이 약간씩은 녹아 있었다. 그렇지만 글쓰기는 확실히 어려운 일이라, 노래로 부를 때의 맛깔스러운 강세와 리듬과 목소리 주변에 어우러진 멜로디와 비트 같은 게 제거되고 나니 읽기에는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나무늘보가 쓴 글을 읽는 것 같아...그래서 나도 느릿느릿 읽기로 했다. 느릿느릿 읽다보니 다 읽긴 했다. 아, 별로야, 하는 생각을 꾹 참고 200페이지 조금 못 미칠 무렵, 그러니까 책 후반부로 접어들자 그제야 이거 좋네, 하는 글이 나왔다.
‘사막에서 혼자’와 ‘인공지능의 바다’라는 글이 나는 이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다. 조슈아트리 사막을 여행하며 알몸으로 누워 별을 보고 사막 한가운데에서 홀로 보컬 녹음을 하는 일은 그 일을 겪은 장기하만이 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음원 스트리밍의 추천곡 리스트에 대한 단상도 음악을 신중하게 골라 듣고 무언가 느낄 줄 아는 사람, 음악을 통해 남들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하고 싶은 열망을 가진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비 내리고 해가 지는 스위스 산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중년 남자를 만난 이야기는 정말 부럽고 좋았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 부분은 꼭 베껴놔야지, 누군가의 호의를 마냥 의심하고 싶을 때 한 번 쯤 떠올려봐야지, 했다.
- 우리는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냈다. 그게 다였다. 의심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나는 토머스에게 물었다. “그제는 차도 태워주고, 어제는 만년설도 보여주고, 오늘은 집에까지 초대해주고…...생판 남인 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예요?” 토머스는 대답했다. “그저께 너 처음 봤을 때, 딱 봐도 외국인인 사람이 그 비오는 산을 혼자 오르고 있는 걸 보고 와, 이 친구 산을 엄청 좋아하네, 생각했지. 산 좋아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잖아.”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 3집부터 5집까지 앨범은 스테레오 아닌 모노로 제작되었다. 마지막 앨범 이름 모노 역시 그 모노였다. 5집 보컬은 사막에서 녹음될 뻔 했다. 장기하는 2019년에 한 곡도 쓰지 않았다.(여기까지는 알게 되어 신났던 부분) 매니저 너굴이 최근 결혼했다(어쩌다 보니 그분 차를 두 번 얻어탄 적이 있다. 홀대에 서러워하며 나와 맞지 않는 성격이다, 하던 기억도…). 장기하는 파주로 이사갔다. 자동차는 아이써티를 탄다.(여기까지는 별로 안 궁금한데...알게된 부분)
장기하가 라면에 생계란과 김과 햇반을 곁들여 먹는 부분은 제일 읽기 힘들었다. 남이 뭘 어떻게 먹는지 워낙 관심이 없어서 그 부분을 공들여 쓰고 읽는 게 공력 낭비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먹는 얘기가 제법 자주 나오는데 내가 먹는 일에 관심이 없어 그렇지,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르게 읽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간에 살을 빼고 그걸 유지하는 사람을 보면, 생활 습관을 바꾸고 지속하는 어려움을 생각할 때 존경심에 가까운 기분이 든다.
개인적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음악가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벨벳 골드마인에서 크리스천베일이 청소년기에 좋아했던 맥스웰 데몬을 나중에 어른이 된 뒤에 취재하며 과거를 회상하듯, 팬으로서 관찰해 온 기억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다보니 그런 마음이 들었다. 각도기를 잘 재자 다짐하며...사실 읽고 보면 별거 없을 테니 (재미도 그닥….) 큰 기대는 하지 마시길…
음악하는 장기하를 처음 본 날. 사실 이건 후천적 기억이고, 스무살 새내기가 음악동아리에 들어가 처음 선배들을 만나는 날이었다. 선배들이 공연을 마치고 평가 회의 하는 자리에 우연히 1학년은 나 혼자 끼어서 회의를 구경했다. 그러다가 동아리방이 있는 건물 아래층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공연이 있다고 했다. (이름도 기억해 쓰바 페스티벌…) 회의를 하다말고 선배들은 동아리를 졸업한 선배 밴드가 나온다면서 나를 데리고 학생회관 라운지로 갔다. 거기서 눈뜨고코베인을 처음 만났다. 요즘의 나는 너바나는 듣지 않지만 눈뜨고코베인의 노래는 아직 찾아 듣는다. 그 정도로 최애 밴드이다.
얼마 전 식탁에 마주 앉은 (역시 그날 같은 공연을 보았고 같은 해 크리스마스에 홍대 앞에서 눈코의 공연을 함께 본) 동거인에게 물었다.
눈뜨고코베인 노래 엄청 좋은데 왜 인기가 없지? 왜 별로 못 떴지?
그게 인기가 좋으면 이상한 거 아냐? 하는 답변으로 내 취향의 소수자성만 확인했다.
다시 스무살 그날로 돌아가면, 솔직히 보컬 깜악귀의 엄청난 개성만 눈과 귀에 들어왔고, 깜악귀는 우리 동아리랑 상관 없고 줄 튕기는 두 오빠가 선배들이라고 했다. 다른 멤버에 비하면 다소 평범(멀쩡?)해 보이는 장기하가 드럼을 치고 있었다. 이기타가 찍어 준 눈뜨고코베인의 ‘외로운 것이 외로운 거지’ 뮤비를 선배들과 함께 찾아보며 킬킬 거렸다. 다른 멤버는 다 예명?닉네임? 같은 걸 쓰는데 드럼의 기하, 는 가명 같지만 본명이라 신기했다. 머리에 빨래집게를 꽂고 스틱 대신 페트병으로 드럼을 치는 무심하고 퉁퉁한 드러머 정도로 기억에 남았다.
같은 해 발매된 학내 컴필레이션 앨범 속 ‘만약 니가 아주 나쁜 놈이라면’으로 장기하의 솔로 작업물과 목소리를 처음 접했을 때 신선했고 충격받았다. 이 사람 재주가 많네, 크게 될 거야, 했다. 그런데 장기하는 곧 군대에 끌려갔다. 미니홈피 파도를 타고 들어가 일기 같은 걸 훔쳐보고는 곡을 쓰고 있구나, 했다. (부끄럽지만 미니홈피 훔쳐보기는 워낙 많이 해서 이건 다른 이와 헷갈린 왜곡된 기억일 수도 있다.)
제대 후 장기하는 ‘청년실업’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에 잠시 참여했다. 오랜만에 공연에서 본 장기하는 입대 전 알던 모습보다 체중이 한참 줄어들어 보였다. (청년실업을 함께 하던)이기타는 반대로 살이 찌기 시작해서, 두 사람은 조금 닮았다고 생각해왔는데 뭔가 장기하는 이기타가 되고 이기타는 장기하가 된 느낌이 었다. 장기하는 드럼 대신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했다. 그의 존재감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나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 EP앨범이 나왔다.(나중에 내가 EP로 가내수공업 앨범을 낼 때 그 앨범의 크래프트 케이스나 라벨지 같은 하드웨어를 벤치마킹했다...베낀 거지 뭐…) 친구 한 명과 선배 한 명이 얼굴들 멤버로 합류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백댄서겸 코러스인 미미시스터즈와 함께 디시인사이드의 인디밴드 갤러리 등에서 인기 패러디 소재가 되었다. 나도 부푼 팬심에 장기하의 노래를 엉망진창으로 따라부르고 녹음해 인터넷에 올리곤 했다(…). 멤버인 친구들이 초대해 준 덕에 홍대 앞 크고 작은 공연장, 각종 야외 락페스티벌, 세종문화회관 공연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2-3년 간 그들의 초기 공연을 잔뜩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친구가 군대를 가면서 멤버 탈퇴를 하고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시기가 와서 라이브 공연을 보는 일은 2집 이후로는 없었다. 그렇지만 무럭무럭 자란 아이가 이후에 나온 장기하와 얼굴들의 앨범들을 아주 좋아했다. 세 살 부터 열 살이 된 최근까지 아이는 그들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따라 부르거나, 노래 가사로 그림책을 만들거나, 경건한 자세로 시디 플레이어에 그들의 음반을 걸고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꼼꼼하게 들었다. 1곡 반복 기능을 알려주자 몇 시간 씩 같은 노래를 틀어 멀미가 난 적도 있다. (술탄오브더디스코의 통배권이 나왔을 때는...시디를 사주고 곡 반복 기능을 알려준 것을 매우 후회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해체 소식을 들었다. 아쉬웠다. 밴드 음악과 함께하는 청춘의 시기가 종료되었습니다, 하는 알림을 받는 기분이었다. 멤버였던 선배 하나는 이제 내 동거인과 텔레비전을 만들고 있다.(왕년의 기타리스트 둘다 텔레비전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 내게는 묘하다...비디오 킬더 래디오스타 하는 느낌...)
해체 후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까지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를 꾸준히 듣는다. 시디로 듣고, 음원앱으로 듣고, 유튜브로 뮤직비디오를 찾아본다. 노랫말과 나직한 목소리와 멜로디가 위로가 될 때가 아주 많았다. 그들의 음악을 아직 많이 좋아한다. 첫 책을 통해 장기하의 긴 글을 처음 접한 소감은, 음, 다음 책보다는 솔로 앨범이 많이 기다려진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