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경건한 열망신학적 초안’(theologischen Entwurf)으로 해석하며(43)

 

경건한 열망신학적 초안’(theologischer Entwurf)으로 해석하며

 

독일어 원문: die als „theologischen Entwurf“ interpretierten Pia Desideria

 

표제어를 바로잡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누구보다도 알브레히트 리츨(Albrecht Ritsch, 1882-1889)(40)

 

누구보다도 알브레히트 리츨(Albrecht Ritschl, 1882-1889)

 

독일어 원문: vor allem Albrecht Ritschl

 

인명을 바로잡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세상 속에서의 금욕생활’(innerweltlichen Askese)이라는 개념으로(41)

 

세상 속에서의 금욕생활’(innerweltliche Askese)이라는 개념으로

 

독일어 원문: mit dem Begriff der „innerweltlichen Askese“

 

표제어를 바로잡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영어권에서 경건주의 역사[에른스트 스퇴플러(F. Ernst Stoeffler)]에 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최근의 서술(41)

 

영어권에서 경건주의 역사[어니스트 스퇴플러(F. Ernest Stoeffler)]에 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최근의 서술

 

독일어 원문: Die im englischsprachigen Raum verbreitetste neuere Darstellung der Geschichte des Pietismus (F.E. Stoeffler) [...].

 

번역자가 추가한 인명을 바로잡았다.

 

Fred Ernest Stoeffler = 독일계 미국 신학자

 

https://de.wikipedia.org/wiki/Ernest_Stoeffler

 

 

23쪽의 참고문헌을 볼 것:

 

Stoeffler, F. Ernest: The Rise of Evangelical Pietism, Leiden(1965), 219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요한네스 발만, 경건주의, 이상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5(2).

 

1689년 이후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August Hermann Francke)를 둘러싸고 라이프치히 소란이 일어났는데, 이를 통해 경건주의자’, ‘경건주의’, 그리고 처음에 자주 사용된 경건한 체하는 무리’(Pietisterey)라는 표현이 곧바로 독일 전역에 퍼져나가 일반적인 유행어가 되었다.(38)

 

1689년 이후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August Hermann Francke)를 둘러싸고 라이프치히 소란이 일어났는데, 이를 통해 경건주의자’, ‘경건주의’, 그리고 처음에 자주 사용된 경건 짓거리’(Pietisterey)라는 표현이 곧바로 독일 전역에 퍼져나가 일반적인 유행어가 되었다.

 

독일어 원문: Während der Leipziger Unruhen um August Hermann Francke wurden seit 1689 die Worte „Pietisten“, „Pietismus“ und das anfangs häufig gebrauchte „Pietisterey“ zu gängigen, bald in ganz Deutschland in Umlauf kommenden Schlagworten.

 

1694년 쿨피스가 초안을 작성한 경건주의에 관하여’(Über die Pietisterey)라는 칙령(308)

 

1694년 쿨피스가 초안을 작성한 경건 짓거리에 관하여’(Über die Pietisterey)라는 칙령

 

독일어 원문: Ein von Kulpis entworfenes Edikt „Über die Pietisterey“ von 1694 [...].

 

모든 분리주의적 모임을 엄격히 금지한 1706812일 자 칙령은 때때로 나라 안팎으로 몰려드는 소위 경건주의에 반대하며 다시 한번 날카로운 경고를 보냈다.(312)

 

모든 분리주의적 모임을 엄격히 금지한 1706812일 자 칙령은 때때로 나라 안팎으로 몰려드는 소위 경건 짓거리에 반대하며 다시 한번 날카로운 경고를 보냈다.

 

독일어 원문: Wieder schärferen Ton schlug an das Edikt vom 12.8.1706 „gegen die hin und wieder in und außer Landes umschwärmende sogenannte Pietisterey“, das alle separatistischen Konventikel strikt verbot.

 

번역을 바로잡았다.

 

주의할 것: 독일어 후철 erei’에는 경멸, 조소의 뜻이 담겨 있음.

 

https://www.dwds.de/wb/-erei

 

 

아래, 글을 볼 것:

 

In Württemberg reagierten Kirche und Staat zunächst 1694 mit einem so genannten Pietistenedikt auf die „Pietisterey“, wie die neue Frömmigkeitsbewegung despektierlich genannt wurde.

 

https://www.wkgo.de/epochen/absolutismus-pietismus-und-aufklrun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