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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ㅣ 에프 모던 클래식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커트 보니것식 블랙 코미디
이 책은 풍자와 해학, 블랙 유머가 잔뜩 있는 커트 보니것의 25편의 단편 집이다. 저자인 커트 보니것 (Kurt Vonnegut Jr.)은 1952년 소설 '자동 피아노'를 통해 등단을 하였고 1922년 11월 11일에
태어나 2007년 4월 11일에 숨졌다.
그는 미국 50~60년대 미국의 상황을 블랙유머를 통해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대가였다. 블랙유머[ black humour ]란
우울하고 불길한 내용을 익살스럽게 묘사하여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1950~60년대 미국의 상황이
어떠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1930~40년대
일제 강점기 시절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없이 당시 한국 소설을 이해 하려고 하는 것과 동일 할 것이다.
당시 미국은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 세계 최강 국가가 되고 많은
부를 축적하기 시작 하면서 본격적인 소비 문화가 시작 되었다. 또한 전쟁에 참전 하였던 많은 청년들이
귀국하여 연애, 결혼, 출산이 붐을 이루었다. 당시를 베이비붐 시대라고 이야기 한다.
경기가 호황을 이루자 자동차와 광고 산업이 필두로 발달을 하기 시작하고 중산층의 증가가 두드러진 시대이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과 맞물러 히피 문화, 인권 운동, 특히 흑인 차별 폐지 운동, 반공 운동이 강화가 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대략적인 맥락을 알고 책을 봐면 왜 커트 보니것이 블랙 유머의 대가 인지 더 이해하기가 쉽다. 25편의 단편은 현실을 꼬집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래에 닥칠 일에 대해서도 충고를 전하는 듯 하다.
단편집의 제목인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보면 Monkey House는
‘원숭이 우리’라는 뜻 외에도 속어로 ‘매음굴’을 뜻하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 단편은 지구
인구가 170억명에 이르자 세계적으로 더 이상 출산을 하지 않기 위해 모든 이들은 지속적인 약물을 투여함으로써
젊은 몸을 유지 할 수 있지만 성교행위를 하지 않고 순결한 삶을 영위 하기로 약속을 한다. 또한 국가에서
지속적으로 인구를 줄이기 위해 자살을 권하는 여러 단체를 운영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섹스, 샴페인 같은 쾌락을 추구 하는 것은 금기 되었다. 주인공 시인 빌리는
정체를 숨긴 채 윤리 자살 센터에서 일하는 여성 도우미들을 겁탈 하고 그녀들의 순결을 빼앗고 나아가 그녀들이 자신에게 굴복 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만만해 하던 윤리 자살 센터에서 일하던 낸시는 결국 시인 빌리에게 납치를 당하고 강제적으로 첫날 밤을 치른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그가 이야기한 대로 쾌락에 빠지게 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게 2018년 현실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이 단편은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쾌락이 주는 개인적인 즐거움을 과연 정부와 사회가 통제 하는 것이 합당한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된다. 하나의 인격이 아닌 생산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그의 파격적인 주장이
엿보이는 단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몽환적인 분위기에 살고 있는 듯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마을을 주제로 한 단편, 모두가 같은 지능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주제, 부와 명예보다 가난한
삶을 택한 주인공, 러시아와 미국 군인이 하는 인간 체스 게임 등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요약적으로
묘사 하고 있다.
1961년 나온 단편인 ‘해리슨
버저론’은 120년 후인
2081년을 냉소적으로 그린 미래의 모습을 담고 있다. 모두가 똑 같은 지능, 형태, 성격을 유지 해야 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고 매스 미디어가
온 세상을 지배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소설이 출판 되었던 1960년대에
신문, 잡지, 티비가 그런 역할을 했다면 2018년 현재 인터넷, 스마트폰,
유투브, SNS가 그런 역할을 감당하는 듯 하다.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 옳고 그름에 대해 과도한 정의감을 부여하여 마녀 사냥이 빈번한 세상 속에서 이
작품은 획일적인 인간의 모습의 종말이 어떠한지 보여준다.
‘영원으로의 긴 산책’의 내용은 단순 하다. 20살인 남녀, 친구로 지내다 못 본지 1년이 된 사이가 되어 버렸다. 남자는 결혼을 일주일 앞둔 여자를
만나기 위해 탈영을 하고 난데 없이 사랑 고백 및 청혼을 한다. 긴 산책 끝에 여자는 남자의 청혼을
받아준다. 결혼과 사랑에 대해 가벼운 시대를 풍자한 것인지 탈영과 전쟁에 대한 남성의 심정을 묘사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막장 드라마 소재로 가능한 내용이 당시 현실과 대조 해 본다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도 한다.
지금으로부터 50~60년이 지난
2070~80년에 지금의 현실을 풍자한 소설을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너무나 많이 변해서 이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릴까? 책을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은 인간에 대한 본성, 욕망은 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단편들마다 나온 시기가 나와 있지만 지금 쓰여 졌다고 해도 무방 할
정도로 현실성이 결여된 작품은 거의 없다. 그만큼 시대는 급속도로 변하지만 인간 본질은 변하지 않는
듯 하다.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이 세상은 더 나아지고 있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끝을 향해 파국으로 달려 가는 것인가?
커트 보니것을 통해 반세기 전에 풍자가 지금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서글프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글들이 있기에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