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탐사선을 탄 걸리버 - 곽재식이 들려주는 고전과 과학 이야기
곽재식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격적인 과학 서적을 읽기에는 기본 소양이 많이 모자라고,

그럼에도 또 호기심은 있어 과학서적을 기웃거리나 대부분 실패하고, 그리고 절망하고,

난 안돼를 연발하면서 머리카락이나 쥐어뜯는 나같은 천생 문과생도 이 책은 읽을 수 있다.

그것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일단 가장 좋은건 문과생이 좋아하는 고전과 역사들을 재료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과학 몇 스푼이 딱 맛을 내는 감미료처럼 뿌려진다. 

그러면 음식맛은 음...... 당연히 맛있어 진다.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의 원형 우트나피슈팀의 방주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다른 지역의 여러 신화에서도 널리 회자되는 것은 이런 식의 대홍수가 이 시기 언제인가 있었을 가능성이 많았다는 것일거다.

그러면 작가는 살짝 지구의 기후 이야기로 옮겨간다. 

빙하기의 종말이었으면 어쩌면 이런 규모의 대홍수가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것.

지구는 아주 미세하지만 비틀거리면서 움직이고, 이 움직임 때무에 태양빛을 많이 받는 시절 또는 덜 받는 시절을 맞이할 때가 있어, 이것이 오랜동안 쌓이면 지구의 기후가 크게 바뀌기도 한다는 이야기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리고 빙하기의 종말 - 해수면의 상승과 기후의 온난화가 겹치면서 대규모의 홍수를 유발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우트나피슈팀의 이야기는 대홍수로 세상이 멸망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 후의 세상에서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 늘어나고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는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는 해석을 덧붙인다.

문과생은 생각하기 어려운 해석으로 나같은 독자에게는 새로운 눈을 떠게 해주는 해석이다.

아 역시 다른 지식은 다른 눈을 뜨게 해주는구나 하고 감탄 중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연결이 항상 성공적일 수는 없어서 가끔은 연결에 무리가 있거나 지나친 일반화로 인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중국의 소설인 <수호전>을 다루면서 이 소설이 나오는 배경인 송대의 경제발전을 연결시키는데, 이 송대의 경제발전을 '점성도'라고 하는 가뭄에 잘 자라는 벼품종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하고, 이것을 다시 주희의 성리학이 등장하는 배경으로 직결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만약 베트남에서 건너온 점성도라는 벼품종이 없었다면, 지금 한국인들이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성리학 문화도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바로 선언해버린다. 

경제발전이라는 것은 온갖 다양한 요소들의 합작품이다. 북방유목민족에 밀려 남쪽으로 밀려갈 수 밖에 없었던 송왕조가 어쩔 수 없이 강남지방을 본격적으로 개발할 수 밖에 없었던 정치적 상황, 그에 따라 선택된 벼의 품종- 베트남에서 온 점성도가 없었다면 그들은 그에 맞는 또다른 품종을 찾아내거나 만들어냈을 것이다. - 이모작, 삼모작이 가능한 기후환경, 나침반의 발명 이후 바닷길을 이용한 상업 무역의 발달..... 이 모든 것들을 한가지 벼의 품종으로 선언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 된다.

또한 성리학이란 학문 역시 송대의 경제발전에 어느정도 기대고 있는 것은 맞지만 더욱 본격적인 등장배경은 북방유목민족에 쫒겨난 중국 한족의 문화적 자존심을 주된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과장된 선언적 단정들이 나타날 때마다 책을 읽다가 살짝 깬다고 할까? 


또 하나 230페이지에 조선의 증기기관 발명시도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조선의 김기두라고 하는 기술자가 증기기관으로 운행하는 배를 만들었는데 석탄 대신 숯으로 배를 움직여서 결국 실패햇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는 이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고, 흥선대원군의 명령이었다는 기록만 있어 조선이 새로운 기술이나 산업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어 조선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없지 않았을까라는 말을 전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사실상 조선이 기술에 관심이 없어서 기록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조선이 증기기관으로 가는 데 사용한 엔진은 그 유명한 제너럴 셔먼호의 엔진이다.

평양에 식량을 구한다고 들어왔던 미국의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평양항구에 상륙후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고 사람들을 살상하자, 열받은 평양주민들이 배를 급습하여 불태우고 선원들도 모두 죽여버린 사건이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다.

일은 벌어졌고, 이것을 수습해야 하는 평양감사 박규수는 정말 난감햇을 것이다.

나쁜 놈들이긴 하지만 남의 나라 상선과 선원들을 모두 불태우고 죽여버렸으니 잘못하면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를 대사건인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은 조용히 묻히고 함구령이 내린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박규수는 제너럴 셔먼호의 엔진과 남은 부재들을 중앙으로 올려보내고, 흥선대원군은 이것을 이용해서 서양의 배와 같이 빠른 배를 한 번 만들어보라고 한 것이 저 사건인 것이다.

물론 실험은 실패했다.

아무런 기술적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 엔진을 이용해 배를 가게 하긴 했는데 연료를 뭘 써야 할지를 몰랐던 조선에서는 그나마 높은 열을 내는 숯을 열심히 땠던 것.

배는 가기는 가는데 한시간 동안 몇십미터쯤 움직였다고 하니 실패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실험이나 결과, 과정은 제너럴 셔먼호사건이 비밀이었으므로 절대 기록에 구체적으로 남길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과정은 다음의 세가지 과정을 반복한다.

이 두가지를 연결하다니 참신한데! 여기에 이런 과학이 숨어있단 말야? 와 신박하다!!!

아 이건 좀 무리가 있는 연결인데? 좀 억지스럽지 않나?

에이 이건 역사지식이 좀 부족한 것 같아. 다른 상황도 고려해야 하지 않나?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09-13 01: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포스팅 제목을 천재 문과생으로 읽었습니다 😊
역사 신화와 연결시킨 과학 흥미가득
이제 화상탐사선엔
걸리버 닮은 AI가 탑승🙊

바람돌이 2022-09-15 12:40   좋아요 2 | URL
앗 그렇게 읽으셨으면 그냥 계속 천재로 기억해주시길...... ㅎㅎ
이 책은 과학을 잘 아는 사람은 읽으면 심심할듯요. 저처럼 진짜 문외한인 사람은 재밌게 읽었습니다.
걸리버 닮은 AI 기대되네요. ^^

stella.K 2022-09-13 10: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꽈엔 도통 문외한인 저 같은 사람이 읽으면 좋겠군요.
곽재식 좋아하긴 하는데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네요.
요즘.책 많이 읽으시네요.
명절 잘 지내셨죠?^^

바람돌이 2022-09-15 12:41   좋아요 2 | URL
저도 진짜 문외한인데 재밌게 읽었습니다. ^^
이분은 유튜브나 팟캐스트로도 유명하시더라구요.
요즘 어쨌든 억지로라도 집에서 쉬고 있으니 책은 열심히 읽어지네요. 스텔라님도 즐거운 명절 되셧기를요. ^^

mini74 2022-09-13 12: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약간의 갸우뚱~ ㅎㅎ 뭔지 알거 같아요 바람돌이님*^^* 문과생도 읽을 수 있지만 문과생이기에 찾아낼 수 있는 모자란 부분이 있는거 같아요 ~~ 이 글 곽재식 작가님께 보내드리는 거 어떠세요. 아주 좋아하실거같아요 바람돌이님 *^^*

바람돌이 2022-09-15 12:42   좋아요 1 | URL
보다가 갸우뚱???? ㅎㅎ 작가님께 보내라고요? 아휴 미니님 저 부끄럼도 많고요. 낯도 가리고요. 감히 이런 생각도 잘하고요. ㅎㅎ
그냥 여기서 저런 얘기 쓸때도 쓸까 말까 고민 백번쯤 하고요. ㅎㅎ

희선 2022-09-14 01: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잘 아시는 바람돌이 님은 역사를 알아서 조금 억지가 있다는 것도 아셨군요 홍수 이야기, 지금 일어나는 일과 비슷할까 싶은 느낌이 들어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지 않아야 할 텐데... 재미있게 보기에 좋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2-09-15 12:43   좋아요 1 | URL
어쩌다보니 제가 알고 있는 부분이 나온거네요. 머나먼 저 시절의 홍수나 자연 재해는 그야말로 자연의 사이클이었다면 지금의 기후위기는 우리 인간이 자초하고 계속 앞당기고 있다는게 문제겠지요. 그래서 더 위험한.....
자연과학쪽은 뭐라도 공부를 하다보면 이 지구의 운명을 걱정하지 않을수가 없는거 같아요.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
수잔 손택 지음, 배정희 옮김 / 이후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19세기의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얘기하며 여성의 재능을 꽃피울 조건을 이야기했다. 19세기의 버지니아 울프는 시대를 앞서갔다. 20세기의 수잔 손택이라면 버지니아 울프를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손택의 앨리스는 20세기에 맞는 질곡과 굴레를 표현하는 것을 기대하고싶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2-09-13 1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잔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 라는 글은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2-09-15 12:45   좋아요 0 | URL
수잔 손택은 정말 뛰어난 저술가인데 제가 가진 기대에 비해서 이 책은 좀 많이 헷갈렸습니다.
지금? 왜? 그리고 이렇게 뜬금없는 방식으로?
저는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었는데, 사진에 관하여도 읽어봐야겟네요.
 

 한반도의 고인돌은 크고 작은 다양한 규모의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다. 실현 가능한 모든 형식이 공존할 정도로 고유양식도 없으며, 1인 1기로 조성되어 합장 흔적 역시 거의 없다. 심지어 무덤이 아닌 단순한 기념물로 세워진 것들도 있다. 요컨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한반도의 고인돌이다. - P13

정신적으로 성숙한 공동체만 죽음을 묵상하고 기념할 수 있다.
그리고 풍요로운 생산물을 평등하게 누리는 사회만 많은 실용적 기념물을 만들 수 있다. 즉 한반도 고인돌 사회는 묵상하고 기념하는 정신공동체였고, 평등하고 협업하는 경제공동체였다. - P17

새 모양 토기와 배 모양 토기가 혼을 실어 피안의 세계로 보내는 도구였다면, 집 모양 토기는영혼의 영원한 안식처로써 껴묻었을 것이다. 고상형 집토기들은 모두무덤에서 발굴한 껴묻거리였다. 부장용 집토기들은 상징적 건축물이다. 고상 건물은 만들기 어렵고, 난방과 취사를 해결할 수 없는 데다 생활에 필요한 여러 공간을 조성할 곳도 없다. 하지만 가장 귀하고 안전한 집이기에 귀중품 창고나 제사 의례용으로 쓰였을 것이다. 무덤에 껴묻을 최고의 집을 선택하라면 당연히 고상형 집토기일 수밖에 없다. - P39

하늘을 향한 가야인들의 사후 세계관은 무덤의 위치에서도 잘 나타난다. 낮은 평지에 무덤을 둔 신라나 고구려와 달리 마을 앞의 높은구릉 위에 무덤을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높은 아크로폴리스에신전을, 낮은 네크로폴리스에 무덤을 조성했다. 그러나 가야의 아크로폴리스는 곧 네크로폴리스였다. 존귀한 영혼은 높은 곳에 묻혀 높은집에서 살며 높은 그릇으로 식사를 해야 한다고 믿었다. 지상의 낮은것들이 일상이라면 높은 것들은 존귀한 영원의 세계에 속한다. - P39

2009년 미륵사지석탑 해체 과정에서 금제사리봉안기를 발견했다.
그동안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 미륵사는 서동과 선화공주가 세웠다고 추정했는데, 금제사리봉안기」에는 전혀 다른 사실이 기록되어있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는 "사태적덕의 따님인 사택왕후가선한 인연으로 정재를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고 기해년 639년 정월 29일사리를 봉안했다"라고 새겨져 있다. 즉 미륵사의 주인공이 선화공주가아니라 백제의 사택왕후라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 P50

현재 각황전은 2층이지만, 장육전은 3층이었다. 장육전 내부에는화엄경을 새겨넣은 거대한 석경벽을 세웠는데, 화엄석경은 임진왜란때 불타 지금은 1만 9,000여 조각으로 남아 있다. 추정하면 600여 매의 돌판에 총 55만여 자를 새긴 대규모 경관이었다. 내부 고주가 서있는 5칸 3칸 기둥 사이 사방으로 석경벽을 두르고, 이를 순회하며 화엄경 전편을 읽을 수 있는 구조였다. 이른바 장육전은 건축으로 쓴 화엄경이었고, 화엄사가 화엄종의 종찰이 되는 종교적 근거였다. - P68

몸체의 목조 기둥들은 무거운 지붕 무게 때문에 길이가 줄어들게된다. 특히 모퉁이에 지붕 하중이 집중되기 때문에 모퉁이 기둥은 안쪽 기둥보다 조금 더 줄어든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네 모퉁이 기둥을 조금 높게 하는 ‘귀솟음‘이라는 건축 기법이 발전했다. 경사진 지붕은 아래 기둥을 바깥쪽으로 밀어내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안쏠림‘이라 하여 수직선보다 약간 안쪽으로 기둥을 기울인다. 중국 송나라 때 출간된 건축 기술서 『영조법식』에는 귀솟음과 안쏠림의 기준수치를 계산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의 건축은 기계적인 중국식 기술보다는 전체의 조화를 우선하여 유연한 기술을 발달시켰다. 즉창작자로서 목수의 판단과 안목이 건축의 격을 좌우하게 된 것이다. - P92

이러한 세부 기법들의 개발은 물리적 변형을 보완하기 위함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심리적 불안을 제거하고 시각적 안정을 얻기 위한 방편이 되었다. 지붕 처마를 수평으로 맞추면 처마 선이 처져 불안해 보이므로 아예 추녀 부분을 들어 올린다. 지붕 끝의 추녀가 무게 때문에처지더라도 수평선보다 올라가 있어 안정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또 기둥의 가운데를 볼록하게 배흘림하면 원통형 기둥보다 더 견고해 보인다. 두 점을 지나는 직선은 단 하나지만, 곡선은 무수히 많다. 직선이 휘어지면 곡선이 되지만, 곡선은 휘어도 곡선이다. 귀솟음도 안쏠림도 배흘림도 물리적 변형을 막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수평, 수직,
직선으로 변하지 않는다. 변형되더라도 여전히 솟은 채로 쏠린 채로,
배흘린 채로 안정되어 있다. - P92

 텅빈 누각을 통해 낙동강 물줄기가 들어오고 지붕 위로병산이 펼쳐진다. 누각 아래로는 입구가 있어 사람들의 출입을 알 수있다. 누각의 존재는 자연경관을 산, 강, 사람의 천지인 경관을 수직으로 나눈다. 이는 성리학자들이 자연을 이해하는 태도이고, 이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는 서원의 주인인 원장이 앉는 자리다.  - P159

자연을 선택해 인공적환경으로 치환시키는 이러한 수법을 ‘차경‘이라 한다. 경제적이고 생태적인 차경 수법은 한국의 대표적인 조경법이었다. 건축물은 자연을담아내는 액자 역할을 한다. 액자가 크고 화려하면 그림이 죽는다. 건물이 화려하면 자연이 초라해진다. 만대루는 기둥과 지붕밖에 없는 매우 간단한 건물이며, 화려한 단청도 장식도 일절 없다. 건물은 자연을학문을, 정신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며, 그 담기는 내용물이 건축의 실체다. 성리학자들은 이러한 생각으로 서원을 건축했다. - P160

곡운구곡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었다. 김수증의 이상이 응축된 소우주였고 시와 그림으로 추상화한 거대한 건축이었다. 그는 화음동 삼일정의 세 추녀에 각각 음양, 강유인의라고 썼다. "인간사는음양의 굴곡이 있으니 때로 단단하고 때로 유연해야 하나, 늘 어질고의로움은 잊지 말라"는 일생의 깨달음을 남긴 것이다. - P193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도들은 오히려 한옥 교회를 배척했다. 유교적 체제의 봉건적 모순에 질식했던 그들에게 전통이란 버려야 할 적폐있고 서구의 것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또한 가톨릭이나 개신교가 선교모국의 건축과 문화를 이식했던 것처럼 서양식 고딕 교회를 더 이상적이고 현대적인 것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성공회는 토착 건축과 전통문화를 존중했다. 비록 그것이 시대를 너무 앞선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시대 성공회의 건축은 높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 P230

20세기 후반 유럽의 철학계는 2,500 년 동안 견고하게 쌓아온 저구 사유의 전통을 부정하고 분해하는 디컨스트럭션, 즉 해체주의적 파고가 높았다. 해체적 사고는 이성과 남성과 직선 중심의 전통을 감성,
여성, 곡선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다시 이분법적 서구 사상의 전동으로 회귀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크 데리다 등이 주창한해체적 사고는 달이성, 탈남성, 탈직선의 세계를 지향하여 다양하고자유로운 세계를 열고자 했다. - P295

1990년 탈냉전 이후 지구촌을 신자유주의라는 이념 아래 급속한세계화가 진행되었다. 금융 자본은 세계화의 동력이며 디지털 기술은대단한 수단이었다. 건축의 소중한 가치였던 역사적 지역적 맥락이란세계화 속에서는 구태의 껍질이 되었다. 새로운 건축적 가치란 얼마나많은 자본을 투여하고, 얼마나 빨리 첨단 기술을 도입하느냐로 바뀌었다. DDP는 일시적으로 불시착한 외계의 우주선인가, 아니면 새롭게열린 영원한 우주인가? DDP를 둘러싼 상반된 평가들은 건축 시장의세계화 속에 혼재하는 혼란과 갈등이다. - P298

 역사의 질곡과 진실을 알아야 역사적 건축에 도전할 수 있다. 그래서 건축은 기초적인 인문학에 속하며, 지식인 건축가는 포괄적인 인문학자로서 성찰하고 사유하며 깨닫고 실행해야 한다. 승효상은 자신의 사유를 명확한 언어로 표현하는 지식인 건축가이며, 10여 권의 깊이 있는 저서를 쓴 인문학자이다. - P309

사유원은 자연 속의 단독자로서 인간의 의미를 묻고 고독을 공유하며 어울려 생각하는 건축적 장소다. 여기에서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앞서 실존적 생명체로 존재하며, 자신의 내면을 응시해 근원과 영혼을 맞닥뜨릴 것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영원히 안 올지도 모르는 미래를 예측한 건축이라면, 사유원은 태초로 돌아가 변치 않을 본질을 담은 건축이다. 과거가 오래된 미래라면, 미래는 새로운 과거일수 있다. 근원과 본질은 여전히 중요하다. - P309

 그러나 삶과 일체화된 시간은 진동하는 추처럼 왕복적이다. 숨과삶을 품는 건축은 영겁을 지나도 근본과 현재 사이에서 또 묻고 또 대답한다. 과거가 영원한 현재라면 미래 또한 늘 현재일 수 있다. 근원을묻고 현재의 물음에 충실히 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미래다. - P3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육체적으로 매력적이면서 아버지와 남자형제들, 남편에게 참을성 있고 나긋나긋하고 고분고분하며 예민하고 배려할 줄 아는 여성이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이기심과 공격성, 자신에 대한 관심과 모순되는 것이므로마찰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바로 이런 이기심과 공격성이야말로 위대한 창조성이 피어날 수 있는 필연적인 조건인데 말이다. - P12

나는 일평생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을 쓰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를 해 왔다.
그러니까 이 연극은 어려움에 처한 여성들의 분노에 대한연극이며, 결론적으로는 상상력에 대한 연극이다. 정신적 김옥의 현실, 상상력의 승리 말이다. - P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러 관측 결과를 종합해서 내린 결론에 따르면, 지구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미세하게 비틀거리면서 움직인다. 그래서 조금이지만 태양빛을 평소보다 많이 받는 시절을 맞이할 때도 있고, 평소보다 조금 덜 받는 시절을 맞이할 때도 있다. 지구가 스스로 도는 각도의 축을 예로 들자면 1년에 약 0.013도 정도의 아주 작은 각도로 살짝살짝 기울어진다는 사실이 측정되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이 정도의 미세한 기울어짐이 몇만 년 동안 쌓이면, 빛을 받는 각도가 꽤달라져 지구의 기후가 크게 바뀌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 P35

그러나 로마인들은 예외였다. 고대 로마 제국 사람들은 이미 수천 년 전 옛날에 상당히 실용적인 콘크리트 기술을개발해 냈다. 로마인들은 베수비오 화산 인근에서 발견되는 포촐라나 pozzolana라는 자갈을 알고 있었다. 화산 때문에생긴 이 독특한 자갈을 가루로 만들어석회석 가루와 함께 가공하면 시간이 갈수록 점점 견고해지는 콘크리트 재료가 된다. 바로 이 사실을 발견한 고대 로마인들은 건물에 콘크리트를 활용하는 방법을 발전시켜 나갔고, 차차 여러 가지 다양한 건축물을 지을 때 콘크리트를 널리 활용했다. 판테온을 지을 때에도 고대 로마인들은 바로 포촐라나를 이용하는 고대 로마식 콘크리트로 그토록 거대한 규모의 신전을 튼튼하게 짓는 데 성공했다. - P92

이는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하잘것없는 돌멩이에 적용되는 규칙과천상의 행성들에 적용되는 규칙이 같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행성들의움직임을 계산할 때는, 행성들이 아주 커다란 돌덩이와 다를 바 없다치고 계산한다. 단지 금성과 토성이 천상의 신령일 리가 없다고 의심하는 정도가 아니라, 금성과 토성이 그저 돌덩어리일 뿐이라고 보고계산해야 더 정확한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다. 현대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왕건이 믿었던 토성은 우주에서 가장 흔한 물질인 수소와 헬륨의 덩어리일 뿐이고, 조선 태조 이성계가 믿었던 금성은 길바닥의 흙부스러기나 매한가지인 성분으로 된 거대한 바윗덩어리일뿐이다. 그렇지만 몇백 년 앞선 송나라, 소송의 시대에는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 P147

 과자 포장을 할 때 질소 기체를 주입하는 이유도, 그것을 집어넣어도 내용물을 변질시키는 화학반응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화학반응을 잘일으키는 만큼 질소가 자기들끼리 너무 끈끈하게 반응을 하기 때문에다른 물질과는 화학반응을 일으킬 새가 없다고 생각하면 얼추 맞다. - P168

에디슨과 그가 차린 회사의 직원들이 남긴 진정한 공적은 전구라는기구를 누구나 널리 사용할 수 있도록 전기를 보급하고 전구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사업을 일으킨 데 있다.
에디슨은 전구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전기를 집집마다 공급할수 있는 발전소를 건설했으며, 그 발전소가 뉴욕 시내 곳곳에 전기를공급해 줄 수 있도록 전기선을 설치하고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해서공사를 진행했다. 전구 생산에 도움을 주는, 전구에서 공기를 빼내는펌프 같은 장비를 개발하기도 했고, 전구를 설치하고 연결하기 위한부품들도 개발했다(심지어 에디슨의 회사에서는 전기 요금을 매기기 위한계량기도 만들었다. 그 모든 것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밤에도 전기를이용해 도시를 온통 밝힐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애썼다. 빛이 우리 삶에 중요한 만큼, 도시 곳곳에 전선을 잔뜩 연결해 전기를 계속 공급하는 다른 시대, 다른 도시 풍경을 창조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그들의 발명품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세상을 바꾸어 놓는 데 성공했다. - P257

참호는 길게 이어지면서 굉장히 거대한 규모로 완성되었다. 심지어참호 안을 걸어서 유럽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갈 수도 있을 거라는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참호를 영어로 ‘트렌치rench‘라고 하는데, 참호속 병사들이 입었던 코트와 비슷한 옷이 영국의 버버리 같은 회사를통해 ‘트렌치코트‘라는 이름으로 널리 팔리기 시작한 것도,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 전투가 워낙 오랫동안 널리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 P2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