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삶이 지친 당신에게,

오늘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권합니다.






■ 영화 정보

제목: 리틀 포레스트 (Little Forest)

감독: 임순례

출연: 김태리, 류준열, 문소리, 진기주

장르: 드라마

개봉: 2018년

러닝타임: 103분

원작: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만화 『리틀 포레스트』





■ 영화 줄거리


고시 준비에 또다시 실패한 혜원.

편의점 도시락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문득 고향을 떠올립니다.

사라진 엄마가 남긴 집과 텃밭이 있는 그곳.

도시의 빽빽한 시간과는 다른, 익숙하고 느긋한 계절 속에서 혜원은 스스로 음식을 해 먹으며 천천히 자신을 회복해 갑니다.

고단했던 일상과 막막했던 미래를 뒤로한 채, 그녀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며 잊고 있던 삶의 본모습을 다시 마주하기 시작합니다.



■ 영화가 주는 메시지


리틀 포레스트는 "쉬어도 괜찮아"라는 말을 가장 부드럽고, 가장 단단하게 건네는 영화입니다.

이야기에는 극적인 사건도, 자극적인 반전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삶에 닿는 숨결은 깊고 진합니다.


"천천히 해도 괜찮아. 돌아가도 괜찮아. 그것이 삶이다."

영화는 계절과 음식, 그리고 시간을 빌려 조심스레 말합니다.

무언가를 이루는 삶이 아니라 그저 살아내는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 영화에, 책을 더하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 백영옥


지치거나 힘든 친구들에게 자주 선물했던 책 중 하나입니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은 리틀 포레스트처럼 이 책도 다정하고 느린 시선으로 삶을 바라봅니다.


"행복은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

작은 일상의 기쁨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이 책은 부드럽게 전합니다.

영화가 마음에 밥상을 차려준다면, 이 책은 마음에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줄 것입니다.



■ 하나의 감상


심적으로 지치거나 힘들 때면 일부러 꺼내보는 영화 중 하나입니다.

처음엔 도피 같았던 혜원의 귀향, 이는 결국 조용하고 단단한 회복의 여정이었습니다.

자연과 밥상, 사람과 계절이 어우러지는 이야기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더 많은 성취가 아니라, 더 깊은 숨이라는 것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는 것을 영화는 제게 말없이 가르쳐주었습니다.



■ 건넴의 대상


고향, 엄마의 밥, 손맛이 그리운 분

바쁜 일상 속에서 자꾸 무기력해지는 분

작은 일상의 따뜻함을 다시 느끼고 싶은 분

다시 나답게 살아가고 싶은 분




다음 주에도 마음을 데워줄 따뜻한 영화를 소개할게요.

혹시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댓글로 들려주세요.

당신의 이야기가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함께하는 모든 순간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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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마 2025-04-27 2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정말 애정하는 영화중 하나예요. ^^
이 영화를 좋아하신다만 일본판 원작영화(만화말고 일본에서도 영화로 제작되었거든요)도 강추 드려요. 뭐가 더 낫다 좋다 이런 차원이 아니라, 일본판 또 그 나름의 특유의 감성이 있어 무척 좋았답니다.

하나의책장 2025-05-03 18:05   좋아요 0 | URL
저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입니다.
일본판도 당연히 봤어요 • ᵕ •
한국판, 일본판 몇 번이나 봤는지 몰라요.
둘다 따뜻한 감성이지만 영화에서 주는 느낌은 전혀 달라 둘다 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저자 이치조 미사키

모모

2021-06-21

원제 : 今夜, 世界からこの戀が消えても

소설 > 일본소설

소설 > 세계문학 > 일본문학

소설 > 테마문학 > 영화소설




너를 잊어도, 나는 너를 다시 사랑할 거야.




■ 책 속 밑줄


나는 평생 나 자신을 놀라게 하는 일 없이 살 줄 알았다.

내 행동에 나답지 않다든가, 스스로가 믿기지 않는다든가 같은 느낌을 받으며 놀라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시험 점수나 성적도 그렇다. 놀랄 만한 성과나 결과는 없다. 스스로를 잘못 보는 일도 없고, 다시 보게 되는 일도 없다.

그런데 그날 방과 후, 나는 나 자신에게 놀랐다.



"너랑 사귀어도 되지만 조건이 세 개 있어."

설마 고백을 받아들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눈앞에서 그 애가 손가락을 하나씩 들며 사귀기 위한 조건을 제시했다. 놀라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뚜렷하게 '그래'라고 조건을 받아들여 놓고 이제 와서 말하기는 껄끄러웠다.

히노는 내일 방과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오해를 푸는 것은 그때로 미뤄도 되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생각도 조금은 정리될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아직 불타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집으로 향했다.

그게 나와 그 애의 첫 만남이었다.



"널 좋아해도 될까."

그렇게 물었을 때는 이미 바람이 그쳐 있었다. 지금을 다 말하기도 전에 끝나버리는 지금 이 순간을 생각했다. 그래. 좋아하는구나. 말로 하고는 실감했다. 나는 너를…….

히노가 천천히 시간을 들여 나를 돌아봤다.

"안 돼."



"우리 아버지가 그러더라. 잘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게 훨씬 쉽지 않다고. 그러니까 가미야 넌 남들이 말하는 잘난 사람보다 훨씬 훌륭해. 이런 말은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고생하는데도 비뚤어지지 않았어. 이것도 아버지가 한 말인데, 고생한 사람은 대개 비굴해지거나 성격이 나빠진대. 그런데 넌 다정하거든. 아주 많이. 아주아주 많이."

그 말이 어제 헤어질 때 히노가 한 말과 겹쳤다.



"기억을 잃는다는 건, 사랑을 매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야. 그리고 나는 매일 너를 사랑하게 될 거야."



그렇다면 내일의 히노가 조금이라도 일상을 즐겁게 느낄 수 있도록, 히노가 쓰는 일기를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 채워주자. 그것을 읽고 내일의 히노들이 조금이라도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미래에 대한 공포를 덜어줄 수 있도록. 새롭고 즐거운 일상을 시작하자. 그게 바로 희망일 것이다. 안 그래, 히노?



누구나 그렇다. 좋은 사람이 되기 싫은 인간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와 나는 내내 도망만 쳤지만 나쁜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그저 빛을 잃었던 것뿐이다. 히노에게서 빛을 받은 지금의 나는 알 수 있다.



"어떤 사랑은, 잊히지 않아서 아프고, 어떤 사랑은, 잊혀져서 슬프다."



■ 끌림의 이유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설정 안에서, 기억을 잃어도 감정은 남는다는 기적 같은 사랑을 그려냅니다.

사랑이란 결국 기억에 기대는 것일까요? 아니면 감정 그 자체일까요?

매일 사랑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이 애틋한 전제부터가 제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 끝을 알고서도 사랑을 택하는 용기를 보니 그들의 하루하루는 마치 연습 없는 무대 같았습니다.

다시 사랑하게 되는 운명을 따라가다 보면 사랑이란 감정이 얼마나 근원적인지 문득 깨닫게 됩니다.



■ 간밤의 단상


누군가를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요?

기억이 사라져도, 마음이 앞서간다면 그건 진짜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연인이지만 연인이 아닌 그들의 이야기는 슬프지만 아름다웠습니다.

잊혀지는 고통 속에서도 다시 사랑을 선택하는 두 사람을 보며 사랑이 가진 가장 깊은 모양을 떠올렸습니다.



한 사람을 매일 사랑할 수 있을까요?

같은 순간을 반복하면서도 새로운 감정으로 다시 그 사람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기억이 사라지고 하루가 리셋된다 해도 그 감정이 다시 피어나는 사랑이라면, 그것은 마치 단순한 사랑을 넘어 존재의 증명일지도 모릅니다.


히노의 기억이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감정은 더 단단해지고 선명해졌습니다.

히노를 향한 서툰 다정함 또한 마음이 몽글몽글해집니다.

그녀를 사랑한다는 마음이 오늘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고 그들의 사랑은 더 이상 둘만의 것이 아닌, 읽는 이의 마음에도 머물게 됩니다.


그들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기억은 지워져도 감정은 매일 새롭게 사랑을 쓸 준비가 되어 있으니깐요.



■ 건넴의 대상


첫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사람

슬프면서도 서정적인 이야기에 끌리는 독자

기억과 감정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

사랑이라는 단어에 아직 마음이 떨리는 사람




사랑이 지워져도, 그 감정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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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의 책 DIGEST

4월 넷째 주, 책이 남긴 사유와 울림






■ 이번 주 <간밤에읽은책> 돌아보기


월요일 |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해방이라는 단어가 감추고 있는 이중성.

아버지라는 존재가 남긴 그림자 속에서 기억과 진실, 가족과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화요일 | 『단 한번의 삶』 – 로버트 제임스 윌러

전쟁터의 마지막 순간에야 비로소 떠오른 연민과 회한.

삶의 존엄성과 존재의 의미를 묻는 묵직한 이야기였습니다.



수요일 | 『파친코』 – 이민진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가족사와 정체성의 서사.

이방인의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과 존엄을 다시금 마주했습니다.



목요일 | 『세이노의 가르침』 – 세이노

삶을 대하는 태도부터 구조까지 직시하게 만드는 통찰.

자기계발을 넘어 실천으로 이어지는 냉철한 안내서였습니다.



금요일 | 『밝은 밤』 – 최은영

여성들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기억, 연대, 그리고 치유.

조용하지만 깊고 강한 감정이 사로잡은 한 주의 마무리였습니다.
































■ 이번 주 <모든도서리뷰> 돌아보기


『감상의 심리학』 – 오성주

예술을 감상하는 우리의 내면은 어떻게 형성될까?

감성의 기원과 구조를 심리학적으로 풀어낸, 지적 탐구의 여정이었습니다.



『소년이 온다』 – 한강

광주의 그날을 가슴에 품고 써 내려간 목소리들.

읽는 내내 무겁고 아프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야기였습니다.


『스토너』 – 존 윌리엄스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의 평범하고 단순한 인생이지만, 그렇기에 더 깊은 여운이 남게되는 작품입니다.




















■ 이번 주 <함께읽는시집> 돌아보기


나태주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짧은 문장 속에 담긴 깊은 관계와 존중의 윤리.

소박하지만 긴 여운을 남긴 시였습니다.



















이번 주, 어떤 문장이 당신의 마음을 잠시 멈추게 했나요?

책은 여전히 우리 일상에 말을 걸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도, 한 줄의 문장이 따뜻한 하루의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독서 여정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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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저자 최은영

문학동네

2021-07-27

소설 > 한국소설




나는 나의 밤이 영영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 밤은 결국 나를 밝히는 빛이 되었다.




■ 책 속 밑줄


나는 희령을 여름 냄새로 기억한다. 사찰에서 나던 향 냄새, 계곡의 이끼 냄새와 물 냄새, 숲 냄새, 항구를 걸어가며 맡았던 바다 냄새, 비가 내리던 날 공기 중에 퍼지던 먼지 냄새와 시장 골목에서 나던 과일이 썩어가는 냄새, 소나기가 지나간 뒤 한의원에서 약을 달이던 냄새…… 내게 희령은 언제나 여름으로 기억되는 도시였다.



어린 내 눈에 희령의 하늘은 서울에서 보던 것보다 더 높고 푸르렀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건 할머니와 함께 본 희령의 밤하늘이다. 나는 그때 은하수를 맨눈으로 처음 봤는데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시 희령에 내려가던 날, 서른두 살의 나는 자동차 뒷좌석에 살림살이를 가득 싣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폭설이 내리는 2017년 1월의 어느 날이었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아가씨, 내 손녀랑 닮았어. 그애를 열 살 때 마지막으로 보고 못 봤어. 내 딸의 딸인데."

할머니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손녀 이름이 지연이에요, 이지연. 딸 이름은 길미선."

나는 할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할머니는 나와 우리 엄마의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서울 사는 애가 여기에 내려올 일이 없잖우."

할머니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려왔네요, 여기."

내가 말했다.

할머니는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증조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왔다. 잠시라도 뒤돌아보면 떠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십칠 년 동안 살던 집, 누린내가 가시지 않던 집, 똥지게꾼도 상대해주지 않아 스스로 오물을 퍼내야 했던 집, 해질녘 구석에 핀 꽃이 예뻐 바라보다 아무 이유도 없이 날아온 돌에 머리를 맞아야 했던, 무엇 하나 좋은 기억이 없던 집. 그 집을 떠나 기차역으로 가는데 그 짧은 길이 천릿길 같았고, 걸음걸음이 무거워 납으로 만든 신발을 신은 것 같았다. 그래도 떠나야 했다. 그게 사는 길이었으니까.



"가족이니까 무조건 참아야 해, 하는 말은 난 옳지 않다고 생각해."



"내가 널 사랑하는 게 네 잘못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냥 받아줘."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답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원하든 그러지 않든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지구가 수명을 다하고,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순간이 오면 시간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그때 인간은 그들이 잠시 우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도 기억되지 못하는 종족이 된다. 우주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곳이 된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 결말이다.



우리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대부분 백 년도 되지 않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우주의 나이에 비한다면, 아니, 그보다 훨씬 짧은 지구의 나이에 비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너무도 찰나가 아닐까.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나무로, 기러기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인간이었던 걸까. 원자폭탄으로 그 많은 사람을 찢어 죽이고자 한 마음과 그 마음을 실행으로 옮긴 힘은 모두 인간에게서 나왔다. 나는 그들과 같은 인간이다.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인간이 빚어내는 고통에 대해, 별의 먼지가 어떻게 배열되었기에 인간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했다. 언젠가 별이었을, 그리고 언젠가는 초신성의 파편이었을 나의 몸을 만져보면서. 모든 것이 새삼스러웠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전전긍긍할 때는 별다른 일이 없다가도 조금이라도 안심하면 뒤통수를 치는 것이 삶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했다. 불행은 그런 환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겨우 한숨 돌렸을 때, 이제는 좀 살아볼 만한가보다 생각할 때.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상실과 불행은 누구의 잘못도 아닐 수 있어. 하지만 그것과 싸우고 싶을 땐, 그 마음만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꼭 말해주고 싶어."



■ 끌림의 이유


『밝은 밤』은 '나-엄마-할머니-증조모'에 이르는 네 세대의 삶을 비춘 이야기입니다.

그녀들의 기억과 시간을 따라가며 개인의 서사와 감정을 세심하게 포착해냅니다.

서로 다른 사정을 품은 이야기들이 촘촘히 엮여지는데 그 서사를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깊은 여운에 잠기게 됩니다.

한동안은 말조차 잊게 되는 그런 감정의 파동이지요.


가장 가까운 가족 안에서도 온전히 이해받기 어려운 마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내미는 진심이 간밤의 나를 오래도록 붙들었습니다.



■ 간밤의 단상


『밝은 밤』은 슬픔을 소리 내어 울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냈지만, 충분히 위로받지 못한 그녀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읽는 내내 화가 났고 슬픔에 잠겼고 다시 화가 났고 또다시 슬픔에 잠겼습니다.

증조부가 조금만 더 다정했더라면 그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들의 인생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쉽사리 지워지질 않았습니다.


의식주를 제외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시선은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고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고 때로는 용기가 되기도 합니다.

삶의 어둠이 쉽게 걷히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잊히지 않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네가 너답게 살아가는 삶이 나는 좋았다."

그 말이 간밤에 깊은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 건넴의 대상


한국 현대사와 여성의 서사에 관심 있는 사람

가족 안에서의 감정 소모가 버거운 사람

일상에서 길어낸 문장으로 위로받고 싶은 사람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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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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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저자 존 윌리엄스

알에이치코리아(RHK)

2015-01-02

원제 : Stoner (1965년)

소설 > 영미소설

소설 > 미국문학





■ 책 소개


『스토너』는 미국 중서부의 한 대학에서 문학 교수로서 평생을 보낸 한 남자의 삶을 그려내었으며 잔잔하지만 강한 울림이 있는 작품입니다.

참고로 출간 당시 주목받지 못했다가 나중에 빛을 발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농장에서 태어나 대학을 통해 문학을 만나게 됩니다.

이후 교수가 된 후 결혼하고 자식도 가지며, 몇 번의 실패와 몇 번의 고독을 겪은 채 조용히 세상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평범하고 단순한 인생이지만, 그렇기에 더 깊은 여운이 남게되는 작품입니다.



■ 문장으로 건네는 사유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오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동료들이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중세 문헌을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다. 이 문헌은 지금도 희귀서적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명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영문과 교수 윌리엄 스토너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동료들이 미주리 대학 도서관에 기증."

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토너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도 그를 특별히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의 이름을 잘 입에 올리지 않는다. 노장교수들에게 스토너의 이름은 그들을 기다리는 종말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젊은 교수들에게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일깨워주지 않고 동질감을 느낄 구석도 전혀 없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대학 공부도 농장 일을 도울 때처럼 즐거움도 괴로움도 없이 철저하게, 양심적으로 했다. 1학년 말에 그의 평균성적은 B학점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정도였다. 그는 점수가 더 낮지 않은 것을 기뻐했을 뿐, 점수가 더 높지 않은 것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전에는 알지 못하던 것을 배웠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의 점수가 그에게 의미하는 것은 2학년 때에도 1학년 때처럼 해낼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에 불과했다.



"내 생각에 자네는 교육자가 되기에 적함한 사람이 아닐세. 재능과 학식보다 편견이 앞서는 사람이라면 절대 안 되지. 내게 그럴 힘이 있다면 십중팔구 자네를 해고했을 걸세. 하지만 우리 둘 다 알다시피 내게는 그럴 힘이 없지. 우리는…… 자네는 종신교수 제도의 보호를 받고 있네. 나도 그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그렇다고 내가 위선을 떨 필요는 없네. 난 이제 무슨 일에서든 자네와 얽히는 건 사양일세. 절대로, 그렇지 않은 척 가식을 떨지도 않을 거야."

스토너는 한동안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알겠네, 홀리.” 그는 피곤한 목소리로 말하고 나서 몸을 돌리려고 했다.



"그는 삶을 사랑했다, 그리고 삶이 그를 사랑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인생이 반드시 드라마틱해야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정받지 못하고 말없이 견뎌내어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것이 결국 내 삶에 최선을 다한 것이니깐요.

우리의 하루하루는 어쩌면 기승전결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루들이 모여 하나의 삶이 되는 것처럼 사소하고 평범한 존재의 존엄함 또한 꼭 깨우쳐야 합니다.





■ 책 속 메시지


책에서는 성공이나 명예가 삶의 본질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주인공 스토너는 문학을 사랑했고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했지만 무심한 결혼 생활을 보내야 했고 결국 사랑은 멀어졌으며 동료와는 갈등도 빚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문학과 학생 그리고 진실에 대한 충실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지켜나가죠.

즉, 이 책은 성공이 아닌 진실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스토너』는 우리에게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 하나의 감상


책을 읽고나면 문득 이런 물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스토너가 실패한 인물인가?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패배가 아닌 그에 대한 존경심이었습니다.


대학에서도, 집에서도 불안하기만 했던 그의 위치는 꼭 우리네 삶과 닮아있었습니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니지만, 세상은 쉽게 성공한 삶과 실패한 삶으로 나눕니다.

스토너는 자신이 선택한 일을 사랑했고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도 그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평범하고 조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내면은 그 누구보다 치열했으니깐요.

이 정도면 괜찮은 삶이었지!

이렇게 읊조린 스토너의 고백은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인생의 진짜 모습 아닐까요.



■ 건넴의 대상


조용하지만 단단한 인생을 살고 싶은 이에게

문학의 위로를 믿는 모든 독자에게

인생의 의미를 고민 중인 30-40대에게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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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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