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 - 지리산 자락에 정착한 어느 디자이너의 행복한 귀촌일기
권산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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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기서 뭐하나?
지인들조차 가끔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의 대답은 퉁명스럽다.
     - 내가 여기서 뭐하겠나?
서울이었다면 겪지 않아도 되는 질문이다. 단지 시골에 산다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질문이다. 따라서 서울이건 시골이건 무시해도 되는 질문이다. 세상에는 서울에 사는 디자이너도 있고 시골에 사는 디자이너도 있다. 사는 곳이 바뀐다고 먹고사는 방식을 바꿀 필요는 없다. "거기서 뭐하나" 라는 질문 속에는 "도대체 너의 생각은 뭐냐?"라는 밑장을 한 장 깔고 있다. 특별하게 생각이 바뀐 것도 없다. 그래서 역시 나의 대답은 또 퉁명스럽다. "넌 특별한 생각 가지고 서울에 사냐?" (4쪽, 여는 글, '거처를 위하여' 에서)
 
   

책 제목에 끌려서 읽은 책,
다 읽고 나니 제목이 좀 약하다는 느낌이다.
내용에 비해 제목이 딸린다, 라는게 내가 이 책에 보내는 애정 표현이다.
좀 더 멋지고, 좀 더 임팩트 있는(?) 그런 제목을 달아주시지요!  

1963년에 부산에서 태어나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일찍 '붓'을 꺾었던 남자가
2006년에 아내와 함께 전라남도 구례로 귀촌해서
4년 간 쓴 일기장이다. 

구례에서, 농사가 아닌 '웹사이트 운영'으로 밥벌이를 하면서
살아온 4년이라는 시간에 대한 리뷰. 그래서 내가 따로 책에 대한 리뷰를
쓸 건 없지싶다.

그냥 궁금하면 읽어보시라.
참고로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퉁명스런 말투로, 그러나 참 '그럴듯한'(백배 공감이 간다는,
또는 믿어진다는 뜻임) 귀촌 현실을 풀어내는 작가에게 빠져들어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유기농 밀가루 재배 과정을 기록하고, 지리산닷컴 회원들에게 판매한
이야기에서 부터, 3부 '이웃과의 인터뷰'에 나오는 한 사람 한 사람 이야기에
감동받는다.

나도 귀촌할 생각이다. (귀농 말고) 헌데 산 마을 말고,
바다 가까운 곳으로 갈거다. 바다 마을 귀촌 일기 예약!!!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아주 훌륭한 가이드북이다. 



▼ 재미있는 분류 하나,

   
  귀향이 아닌 귀농이나 귀촌인 경우 몇 가지 유형이 있다. 도식화할 수는 없지만 귀농이나 귀촌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으니 한번 카테고리를 정리해보자. 

     1. 은퇴형 귀촌
     55세 이상의 연령층이 많다. 보통 농사를 짓지 않는다. 남은 생에 대한 여유자금이 있다. 서울에 여전히 집 한 채 정도 유지하는 경우도 많다. 원두커피와 음향장비를 가지고 있다. 지역민이 되는 것은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주소지가 귀촌한 지역이 아닌 경우도 제법 있다. 전원생활을 즐긴다. 보통은 기존 마을 주민들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외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차茶를 구입하고 즐긴다. 

     2. 계획형 귀농
     수년간 준비한다. 도시에서 비교적 안정적이거나 버틸 만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생활이 맞지 않고, 도시는 사람 살 곳이 못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이 많은 편이다. 도시 시절부터 책장에는 니어링 부부의 책이 구비되어 있었다. 아이들 교육문제가 귀농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단기적인 '버티기 자금'을 준비하지만 대략 '농사지어 생활하기'는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우므로 삼 년 안에 쌈짓돈이 바닥난다. 진정한 버티기로 돌입해서 자구책을 찾거나 다시 도시로 떠난다. 처음에는 원두커피와 음향장비를 가지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간혹 귀농에 대한 후회가 밀려들기도 하지만 돌아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도시에서 다시 집을 마련할 방도가 없다. 하지만 대략 버틸 수는 있다. 집과 약간의 농사지을 땅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이민 간 대학교수 출신이 세탁소를 운영하듯이 도시에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막일도 점점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차를 만들어 판매한다. 

     3. 허술한 귀촌
     여행 왔다가 밤하늘의 별을 보다 "자기 우리 여기 살자! 어차피 도시에서 답도 없는데"라는 말을 시작으로 사태가 전개되기도 한다. 기존 시스템 속에서 애당초 자리 잡기 힘든 이력들인 경우가 많다. (나도 이 카테고리에 속한다) 대개 자력으로 집을 짓거나 마련하기 힘들다. 빈집을 노리거나 저렴한 가격의 농가를 개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넉넉치 않은 자금력으로 아주 단기간을 버티거나 약간의 농지를 대농하거나 이런저런 일들, 가령 녹차나 효소 만들기, 계절별로 농산물 수확하는 품앗이 등을 습득하면서 저렴하고 부정기적인 수입을 확보한다. 하지만 농사가 아닌 다른 방도를 찾는 데 항상 집중한다.
    대부분 블로그를 가지고 있고 '그러나 자연 속에서 행복하다'는 포스팅을 하고 시스템 종료하고 나면 바로 경제문제로 부부싸움에 돌입한다. 원두커피와 제대로 된 음향장비로 음악을 즐기고 싶지만 시설 자체가 없다. 이런 사람들은 차를 만드는 곳에서 품을 판다. 

     4. 포괄적으로 예술가들
     저렴한 작업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 특성상 도자, 목공, 염색 등의 공예 족이 많은데 재료 공급 등의 환경적인 면과 적은 돈으로 공간 마련이라는 현실적인 측면이 결합한다. 농사일에는 비교적 관심이 없다. 할 수 없이 간혹 품앗이에 동원되나 일을 하는 내내 '이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는 생각이 강하다. 마을 주민들과 소통이 원활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불화하지는 않는다.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착하거나 현실대응력이 지극히 미약하다. 따라서 도시로 돌아갈 생각도 거의 하지 않는다. 18세기가 아닌 관계로 사실 시장에서 성공하는 예술가들은 골프장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낭만적인 미학관이 강하여 이런 현실과 타협하지 못한다.
     '원래 잃을 것이 없다'는 사고방식은 계속 버틸 수 있는 강력한 자산이다. (나는 이 카테고리에도 속한다) 이런 사람들은 간혹 누군가에게서 차를 얻는다. 

     이상은 삼 년차 귀촌인의 약간 비장하면서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다. 평소 '객관은 없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사람은 경제에 가장 많이 지배당한다. (199~201쪽)
 
   
 
아무튼, 나는 지금 도시인이고, 귀촌한다면 위에서 말한 1번과 4번을 합하고
거기에 또 나만의 이야기를 섞은 새로운 형태로 하고 싶다.
그동안, 이 책과 아래 사이트를 많이 참조할 생각이다.

▶지리산닷컴
www.jirisan.com
▶운조루 사이트 www.unjoru.net 
▶농부 홍순영 사이트 
www.ecosoon.com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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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1-08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나요? 별 다섯이네요!
안 그래도 어제 한줄 리뷰 올리신거 보고, 혹 하는 마음에
책 상세 설명을 보러 들어갔답니다.

꼭 농사 짓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마을로서 옹기종기 사는 형태인거죠?
아.. 어떨까요?

잘잘라 2010-11-08 09:38   좋아요 0 | URL
한마디로 아주 솔직한 책이예요. 그러면서도 재미있어요. 제 생각에 하이라이트는 3부, 인터뷰 기사가 아닐까 해요. 사람이야기라서 그렇겠죠.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질긴 면두 있구.. 암튼, 살아가는 이야기,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 여운이 길어요. 강추!^^

herenow 2010-11-17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렁 책바구니에 담아두었습니다.
저도 '귀농'이라면 후덜덜하지만 이런 식의 '귀촌'이라면 귀가 솔깃!
요렇게 긴 글을 타이핑해두신 걸 보니 컨디션은 빨리 회복되신 듯?!

잘잘라 2010-11-17 22:40   좋아요 0 | URL
저어기.. 귀농이든 귀촌이든 우선 결혼은 하고봐야겠던데, 그게 좀 걸려요. 이리 저리 알아봐도, 농사를 짓든 안짓든, 촌에서 자리잡으려면 돈보다는 가족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아참, 그리고 저는 수간호사에게 인정받은 '모범 환자'였다는,, 자랑이었습니다. ㅋㅋ)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 - 지리산 자락에 정착한 어느 디자이너의 행복한 귀촌일기
권산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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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책 좋아 좋아 좋아요. 살아있는 정보, 신선한 사진, 색다른 시각에 대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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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 스탠퍼드대 미래인생 보고서
티나 실리그 지음, 이수경 옮김 / 엘도라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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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달러의 법칙 

만일 당신에게 5달러와 두 시간을 주고 그것을 활용해 돈을 벌라고 한다면? 이것은 내가 스탠퍼드 대학교 강의 중에 학생들에게 내준 과제다. 나는 14개 팀에게 '종자돈' 5달러가 든 봉투를 나눠주고, 아이디어를 짜는 데는 얼마든지 시간을 들여도 좋으나 일단 봉투를 연 다음에는 두 시간 내에 최대한의 수익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수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각각의 팀에게 일요일 저녁까지 과제를 완수하고 슬라이드를 만들어 제출한 뒤 월요일 오후에 다른 학생들 앞에서 3분간 프레젠테이션을 하도록 시켰다. (18)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두 시간 동안 상당히 많은 돈을 번 팀들은 5달러를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5달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문제를 너무 협소하게 바라보는 방식이라고 여겼다. 즉 그들은 본질적으로 5달러라는 금액이 전혀 주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며 과제를 보다 넓은 시각에서 다시 바라보기로 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학생들은 관찰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주변에서 '문제'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직접 경험했거나 주변 사람들이 경험하는 문제, 주변에서 본 적은 있지만 해결하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 문제 말이다. 흔히 볼 수 있고 때로는 다소 짜증스러운 문제지만, 그 누구도 눈여겨보거나 중요하게 고민해보진 않은 문제들이었다. 학생들이 돈을 벌기 위해 택한 방법은 바로 그런 문제를 찾아내 해결하는 것이었다. 성과가 매우 좋은 팀들은 600달러 이상을 벌어들였고, 전체 14개 팀의 평균 수익률은 무려 4,000퍼센트였다. 많은 팀들이 5달러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수익률은 엄청나게 높은 것이다.(18~19) 

한 팀은 대학가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문제를 하나 찾아냈다.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곤 하는 모습을 생각해낸 것이다. 그 팀원들은 먼저 남녀 한 쌍의 2인 1조 커플로 여러 맛집에 미리 예약을 했다. 그런 다음 예약 시간이 다가올 즈음 식당 앞에 가서, 긴 줄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원하는 이에게 그 예약권을 최대 20달러까지 받고 팔았다. (20)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은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먼저,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예약권을 훨씬 더 잘 판다는 점이었다. 이는 아마도 사람들이 남자보다는 젊은 여성이 다가올 때 더 편안함을 느끼고 그래서 더 쉽게 말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기존의 방식을 수정해, 식당들을 돌며 예약하는 일은 남학생이 맡고, 줄을 서 있는 손님에게 예약권을 파는 일은 여학생이 맡기로 했다. 또한 그 학생들은 식당에 자리가 났음을 알려주는 진동 호출기를 사용하는 식당의 경우에 예약권을 팔기가 훨씬 용이하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손님들은 학생들이 식당으로부터 미리 확보해둔 호출기를 넘겨받으면서, 자신이 내는 돈에 대해 실제로 유형의 무언가를 얻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손님들은 자기 차례보다 빠른 새로운 호출기를 얻기 위해 자신의 돈과 호출기를 훨씬 더 기꺼이 넘겨주었다. 학생들은 손님한테 받은 호출기의 예약 시간이 가까워지면 그 호출기를 다시 다른 손님에게 팔 수 있었던 것이다. (20~21) 

또 다른 팀은 훨씬 간단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들은 학생회관 앞에서 자전거 타이어의 공기압을 체크해주고 공기 주입이 필요할 경우 1달러를 받고 공기를 넣어주었다. 물론 가까운 곳에 타이어 공기를 채울 수 있는 주요소가 있었지만, 이 팀의 학생들은 학교 친구들이 자신들을 도와주는 차원에서 학생회관 앞 서비스를 이용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손님을 몇 명 받아보고 난 후, 그들은 자전거 이용자들이 의외로 굉장히 고마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근처 주요소에 가면 무료로 타이어에 바람을 넣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직접 쉽게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전거 이용자들에게는 학생회관 앞 서비스가 매우 편리하고 유용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21)
한 시간쯤 지난 뒤부터 학생들은 자전거 이용자에게 돈을 받지 않았다. 대신 원한다면 기부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훨씬 많은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즉 손님들이 정해진 가격을 낼 때 보다 무료 서비스를 받고 자발적인 보상을 하는 경우에 학생들의 수입이 더 늘어난 것이다. 식당 예약권을 팔았던 앞의 팀과 마찬가지로, 이 학생들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성과가 더 좋아졌다. 손님의 반응이나 피드백에 따라 서비스 제공 방식에 조금씩 수정을 가하면서 갈수록 방식이 개선되고 훌륭해졌던 것이다. (21~22)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팀은 따로 있었다. 이들은 주어진 자원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았고, 결국 650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자원이 5달러도, 두 시간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월요일의 3분 프레젠테이션 시간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고 판단했다. 이 학생들은 스탠퍼드 대학에서 인재들을 채용하길 원하는 한 회사와 계약을 맺고, 그 회사를 위해 3분짜리 '광고'를 제작했다. 그리고 월요일에 과제해결 프레젠테이션 대신 그 광고를 발표했다. 이는 매우 뛰어난 발상이었다. 그들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유용한 자원을 발견해냈다. (22) 

다른 11개 팀도 나름대로 독특한 아이디어로 돈을 벌었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비엔나 댄스파티에서 사진 찍어주는 부스를 운영하기도 했고, 학부모 주간에 주변의 맛있는 식당들을 표시해놓은 지도를 팔기도 했으며, 직접 디자인한 맞춤형 티셔츠를 친구들에게 팔기도 했다. 이익이 아니라 손해를 본 팀도 있었다. 비가 오는 날 샌프란시스코에서 우산을 팔려고 들고 나갔는데, 막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날씨가 거짓말처럼 활짝 갠 것이다. 또 세차를 해주거나 레모네이드를 판매한 팀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수익률은 학생 전체의 평균 수익률에 훨씬 못미쳤다. (23) 

이 '5달러 프로젝트'는 학생들에게 창조성과 기업가정신을 가르치는 훌륭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 한 구석이 조금 불편했다. 무언가의 가치가 언제나 금전적인 보상에 의해 측정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과제를 내 줄 때는 약간 방법을 바꿨다. 이번에는 각 팀에게 5달러 대신 클립 열 개가 들어 있는 봉투를 나눠주었다. 그리고 그 클립과 네 시간을 사용해 최대한의 '가치'를 창출해보라고 말했다. 그 가치란 꼭 돈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다른 방식으로 따질 수 있는 것이어도 좋다고 했다.  (23)

이 방법은 카일 맥도널드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카일 맥도널드는 빨간 클립 하나로 시작해 나중에 집 한 채를 손에 넣은 청년이다.(빨간 클립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www.oneredpaperclip.com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여러 번의 거래와 그 과정에 얽힌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고, 자신과 거래를 원하는 사람을 찾았다. 그렇게 거래를 계속 이어나가 결국 1년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 정말로 집 한 채를 얻은 것이다. 빨간 클립 한 개를 물고기 모양 펜과 교환하고, 그 펜을 다시 문손잡이와 교환하고, 다시 문손잡이를 캠핑 스토브와 교환하고... 이런 식으로 그는 매번 다른 사람을 만나며 거래를 이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거래 아이템은 가치를 점점 더해갔고 1년즘 되자 그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집을 갖게 되었다. (23~24) 

가장 흥미로운 팀은 짧은 비디오 영상을 준비해온 팀이었다.(생략) 그들은 어디선가 클립 열 개를 커다란 포스터 보드와 교환한 뒤, 쇼핑센터 앞에 포스터 보드를 세워놓고 '가치'를 창출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포스터 보드에는 "스탠퍼드 대학생을 팝니다. 하나 사시면 두 개를 덤으로 드려요!"라고 적혀 있었다. 놀랍게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다가왔다. 학생들은 쇼핑객들을 위해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었고, 옷가게에서 재활용품 쓰레기를 밖으로 꺼내는 일을 도와주었다. 또 사업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한 여성을 돕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내기도 했다. 그 여성은 고맙다며 학생들에게 자기가 쓰지 않는 컴퓨터 모니터 세 개를 선뜻 내주었다.
나는 그 이후에도 유사한 과제들을 학생들에게 내주고 있다. 그들에게 나눠주는 물건은 클립에서부터 포스트잇 메모지, 고무 밴드, 생수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한정된 시간과 자원 하에 그들이 성취해는 결과물을 보고 나도, 그들 자신도 매번 놀란다.(25)
예를 들어 그들은 포스트잇 한 묶음을 가지고 독특한 음악 프로젝트를 만들었고, 사람들에게 심장병에 대해 알리는 캠페인을 열었으며, 에너지 절약에 관한 공익광고('플러그를 뽑으세요'라는 제목)를 만들기도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결국 혁신 토너먼트Innovation Tournament라는 대회로 발전했고, 이제는 전세계 수백 개 팀이 이 대회에 참여하고 있다. (혁신 토너먼튼 우승팀에 대해서는 STVP 기업가정신 코너 웹사이트 http://ecorner.stanford.edu.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가자들은 더 참신한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세상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바로 곁에 두고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기회와 가능성을 찾아낸다. 그들은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창의적인 태도로 접근함으로써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엄청난 가치를 창출해낸다. 포스트잇으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과정 전체는 영상물로 만들어졌으며 이를 활용해 <이매진잇Imagine It>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도 했다. (<이매진 잇> 다큐멘터리는 http://www.imagineitproject.com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26) 

선마이크로 시스템즈의 공동설립자이자 유명한 벤처 캐피털리스트인 비노드 코슬라는 이렇게 말했다. "문제가 클수록 기회도 더 크다. 문제가 아닌 것을 해결해달라고 돈을 지불하는 사람은 없다."(27) 

나는 스탠퍼드 대학교 공과대학에 있는 기업가정신 센터인 스탠퍼드 테크놀로지 벤처스 프로그램(Stanford Technology Ventures Program, STVP)의 이사로 10년 동안 일해왔다. 우리의 목표는 과학자와 공학도들에게 기업가정신에 대해 가르치고 그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기업가정신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를 제공하는 ㄱ서이다. 전세계적으로 대학들의 수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는 학생들이 단순히 전문지식으로 무장하고 학교를 졸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성공을 이루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일터에서, 그리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업가정신을 가진 리더가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28) 

STVP는 교육과 학술적 연구, 그리고 전세계 학생과 교직원, 기업가들과의 교류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 'T형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T형 인간'이란 적어도 한 분야에 대한 깊은 전문지식을 갖춘 동시에 혁신 및 기업가정신에 관한 폭넓은 지식도 겸비한 사람을 말한다. 혁신적 사고와 기업가정신은,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추동력이다. (30) 

학교에서는 대개 학생들을 개인별로 평가하고 상대평가에 따라 성적을 매긴다. 다시 말해 누군가 승자가 되면 누군가는 패자가 된다. 이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방식일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조직이 돌아가는 방식과도 커다란 차이가 있다. 학교 밖 세상에서 대개 사람들은 공통의 목표를 위해 팀을 이루어 움직이고 승리 역시 팀원 모두가 함께 공유한다. 실제로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개인들이 소규모 팀을 이루고 그 팀이 다시 더 커다란 팀에 소속되어 움직이며, 매단계마다 모두가 함께 성공을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31)

 
   
   
  우리가 익혀야 할 또 다른 중요한 기술은 남을 돕은 기술이다. 나는 대학에 다닐 때 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통화가 끝날 즈음이면 항상 "내가 뭐 도와줄 건 없니?" 하고 물으셨다. 따뜻함이 담긴 어머니의 이 말은 내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어머니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필요하면 기꺼이 도와주시려고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위안이 되었다. (205)  
   
   
  사람들이 때때로 낭패를 겪는 이유 중에 하나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책무를 맡으면 결국 이도저도 못하고 망치기 십상이다. 인생은 마음이 끌리는 매력적인 기회들이 무수히 놓여 있는 뷔페와도 같다. 하지만 접시에 너무 많은 음식을 담으면 소화불량에 걸린다. 당신은 인생이라는 뷔페에 차려져 있는 기회들을 전부 시도해도 된다. 단, 한꺼번에 그러지는 말아야 한다. (213)  
   
   
  터무니없어 보이는 기회를 반드시 붙잡아라.(218)  
   
   
 

제로섬 게임에 휘말리지 마라 

경쟁하는 것과 목표에 집중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경쟁을 한다는 것은, 성공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실패하는 자가 있는 제로섬 게임이 진행됨을 의미한다. 목표에 집중한다는 것은 열정을 발휘해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229)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공하려면 경쟁하는 것보다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229)

 
   
   
 

노드스트롬을 아는 사람에게 이 백화점에 대해 물어보면, 아마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경험했거나 목격한 놀라운 고객 서비스 경험을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은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운 좋게도 노드스트롬 집안의 형제들이자 현재 백화점 운영을 맡고 있는 에릭 노드스트롬과 블레이크 노드스트롬을 만나서, 그들이 어떻게 직원들에게 고객중심 가치관을 갖도록 만드는지 들을 기회가 있었다. 놀랍게도 노드스트롬에는 뛰어난 고객 서비스를 위한 특별한 원칙이나 놀라운 비결이 없었다. 노드스트롬의 판매직원들은 입사 후 짧은 오리엔테이션만 받는다. 이 백화점을 직원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스스로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고객의 입장에 서서 행동하라고 말한다. 직원들의 스타일이나 성격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들은 저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고객을 대하며, 따라서 똑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다양한 접근법이 등장한다. 또한 이 백화점에서는 서로의 경험담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분외기가 조성되어 있어, 훌륭한 고객 서비스 사례는 다른 직원들에게 깨달음과 자극을 준다. 노드스트롬은 직원들에게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그 과정에서 실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블레이크와 에릭은 만일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다가 실수를 했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괜찮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실수를 저지른 직원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노드스트롬 백화점에서는 모든 것이 훌륭한 고객 서비스를 전달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모든 매니저들은 자신의 팀이 성공적인 고객 서비스를 수행하도록 이끌며, 모든 직원이 고객을 '가장 중요한 상사'를 대하듯 행동한다. 블레이크, 에릭, 피터를 비롯한 경영진은 매장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낸다. 늘 백화점 매장을 돌아다니며 고객들이나 판매 직원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경영진은 이처럼 고객이나 직원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매우 익숙하다. 그들 자신도 노드스트롬의 상품창고나 신발 매장에서 일하거나, 신발 부서나 개별 매장들을 관리하건, 구매 책임자나 지역 담당 매니저로 일하다가 지금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최고의 백화점을 이끌고 있는 리더인 그들은 지금도 항상 더 개선하고 발전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겸손한 자세로 고객의 말을 경청하고, 그렇게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감을 갖고 개선 방안을 실천한다. 그들은 더 큰 고객 만족을 달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객들이 원하면 언제든 자신들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블레이크, 에릭, 피터 삼형제는 언제나 직접 전화를 받고 이메일을 체크하며 직접 고객들의 문의에 응답해준다. 

고객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은 노드스트롬의 기업문화에 대단히 굳게 뿌리박혀 있다. 노드스트롬 삼형제는 그 기업 구조가 고객 제일 위에 있고 경영진이 맨 아래에 존재하는, 거꾸로 된 피라미드라고 설명한다. 이 회사에 입사한 사람은 누구든 직장 내에서의 지위가 점점 '내려가는' 셈이다. 그리고 이 피라미드의 맨 아래 칸에는 1명의 최고경영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블레이크가 사장, 에릭이 매장 담당 사장, 피터가 머천다이징 담당 사장이다. 그들은 긴밀하게 결속된 하나의 팀으로, 각자 자신의 강점을 발휘하며 회사를 이끌어간다. 또한 사업에 관한 비전을 공유하고 협력적인 분위기 속에서 일한다. 

(생략) 

블레이크와 에릭은 서비스를 제공할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은 일이 마치 타석에 서는 야구선수가 새로운 기회를 얻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고객을 만날 때마다 훌륭한 서비스와 경험을 창출할 새로운 기회를, 판매직원의 평판을 높일 기회를 만난다고 생각한다. 설령 고객과의 만남이 판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나중에 언젠가는 반드시 보상이 돌아온다. (23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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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부이치치의 허그(HUG) - 한계를 껴안다
닉 부이치치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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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참 인상적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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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11-03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저도 이 책 읽기 시작했어요.^^

잘잘라 2010-11-03 19:40   좋아요 0 | URL
반가운 책 동무, stella09님^^
 
오리진이 되라 - 운명을 바꾸는 창조의 기술
강신장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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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이준관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여름밤은 뜬눈으로 지새우자.
아들아, 내가 이야기를 하마.
무릎 사이에 얼굴을 꼭 끼고 가까이 오라.
하늘의 저 많은 별들이 
우리들을 그냥 잠들도록 놓아주지 않는구나.
나뭇잎에 진 한낮의 태양이
회중전등을 켜고 우리들의 추억을
깜짝깜짝 깨워놓는구나.
아들아, 세상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많은
너는 밤새 물어라.
저 별들이 아름다운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 열 손가락에 달을 달아주마.
달이 시들면
손가락을 펴서 하늘가에 달을 뿌려라.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짧은 여름밤이 다 가기 전에 (그래, 아름다운 것은 짧은 법!)
뜬눈으로
눈이 빨개지도록 아름다움을 보자. (78쪽)

 
   
   
  히딩크는 이야기한다.
"훌륭한 축구선수는 결코 공을 잘 차는 선수가 아니다. 훌륭한 축구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끊임없이 상대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창출해내는 창조자들이다." (84쪽)
 
   
   
 

아오모리 사과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나는 그것을 '아오모리 메시지'라 부른다. 

이 세상에 사과의 종류가 몇 가지나 되는지 아시는가? 내가 어릴 때는 사과의 종류가 많았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다. 내가 좋아했던 스타킹을 비롯해 인도, 골드, 홍옥 등 종류가 많아서 골라 먹는 재미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센 놈이 나타났다. 부사. 부사는 고스톱으로 치면 쌍피짜리다. 그 전의 사과는 모두 한 종류였다. 당분이 많거나, 수분이 많거나... 그런데 부사는 수분도 많고 당도도 높다. 그뿐이랴, 저장성이 좋아서 반년은 너끈히 버틴다. 사정이 이러니 다르 사과가 남아날 수 있겠는가. 부사가 나오면서 사과의 세계에는 일대 구조조정이 이루어져버렸다. 

그런데 아오모리 사과는 이렇게 말한다. 

"이보세요. 사과에는 부사, 홍옥 같은 것만 있는 게 아니랍니다.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이 세상에는 그보다 몇 만 배 더 많은 사과가 있답니다. 그게 뭐냐고요? 합격의 사과, 위로의 사과, 사랑의 사과, 낭만의 사과, 응원의 사과, 축하의 사과, 영감의 사과, 고독의 사과, 이별의 사과, 협력의 사과 등등 복잡한 인간의 갑정만큼 다양한 사과들이 많다니까요. 그런데 만약 당신이 이런 사과가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신다면, 미안하지만 우리는 당신을 도와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102~103쪽)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이미지의 배반>을 보자(106쪽 참조). 파이프 그림을 그려놓고 그 아래에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뒤통수치는 멘트를 달아놨다. 파이프를 파이프라 부르지 못하는 이 역설 앞에서 사람들은 일순 움찔한다. 이게 왜 파이프가 아니란 말인가? 

그림은 이렇게 말한다. '이 그림은 단순한 이미지일 뿐, 담배를 넣을 수도 불을 붙일 수도 없으니 파이프가 아니다.' (105쪽)

(생략) 

마그리트는 작은 것을 크게 확대하거나 생물과 무생물, 현실과 비현실, 과학과 예술 등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 이미지 배반을 감행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인식을 전복시키고, 고정 관념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안내한다. 모든 익숙한 것을 기이하고 낯설게 느끼게 함으로써 우리를 착각하게 하고, 동시에 착시를 경고하는 것이다. (106쪽) 

 

하이믹스1:
예상을 뛰어넘는 엉뚱한 것과의 융합
 

사례1: 오토코마에 두부(두부+남자)    
몇 해 전, 일본에서 새로운 개념의 두부가 나와서 세상을 뒤집었다. 그 두부의 이름은 '오토코마에(男前).' '사내다운'이라는 뜻인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싸나이다운' 정도 되겠다. 아주 터프한 싸나이다운 두부! 

도대체 두부가 남자답다는 게 무슨 뜻일까? 두부는 다 거기서 거기, 두부 위에 두부 없고 두부 밑에 두부 없다. 바늘 하나 꽂을 데 없는 레드오션 중의 레드오션 시장인데, 새로운 두부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우리의 관념이다. 그런데 일본의 어느 두부가 '남(男)' 자를 새기고 나왔는데, 반응이 장난이 아니다. 2006년 일본의 히트상품 6위에 오르더니, 2년 연속 40억 엔씩 파는 기염을 토했다. 남자다운 두부,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107) 

이 두부는 이토 신고 사장의 작품이다. 그는 아버지가 하는 두부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후계자 수업을 시작했다. (생략) 

그가 별짓을 다 해보고 고생 끝에 얻은 결론, 그것은.. 

'결국 두부에도 남다른 세계관을 넣어야 한다.' 

이것이었다. (생략) 그는 고민했다. '두부의 세상에 도대체 뭘 갖다 붙일 것인가?' 그러다가 엉뚱하게도 두부와 가장 멀리 있는 존재에 눈길이 갔다. 누구냐 하면, 바로 남자다. 그래서 나온 것이 '남자다운 두부'다.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기본적으로 이 두부는 괜찮다. 고급두유를 써서 고소한 데다, 기계를 쓰지 않고 사람 손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한번 먹어보면 누구나 그 맛에 반하게 된다. (사람들이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느다는 게 문제일 뿐.) 그래서 한번 먹어보게 만들려고 남자를 붙인 것이다.(108쪽) 

괴상한 이름에 카리스마 넘치는 남성 패키지, 그리고 이 의미심장한 슬로건... 

"진정한 오토코마에는 당신을 배신하지 않는다." 

이것으로 '게임 끝'이었다. 

이 아리송한 슬로건은 사람들을 자극한다. 모든 여성들은 가슴속에 로망이 있다. 진정한 남자를 한번 만나고 싶은 로망. 여자만 로망이 있을까? 남자들도 로망이 있다. 진짜 '싸나이'가 되어 모든 여성의 시선을 받아보고 싶은 로망. 오토코마에는 이 모든 감성을 단번에 공략함으로써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109쪽. 그림도 함께 참조) 

(생략) 이 두부는 300엔이다. 100엔의 세상에서 단번에 200엔을 넘어 300엔의 세계로 넘어가는 데 성공했다. 그 이유는 순전히 컨셉 때문이다. (110쪽)  

 

사례2; 나비도시 전라남도 함평(도시+나비) 

새로 부임한 군수는 함평을 차별화할 수 있는 포인트를 잡기 위해 마을을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 이런, 아무것도 없더라는 것이다. 재정자립도는 겨우 10% 초반, 정부 지원이 없으면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기의 마을'이 아닌가! 뭘로 먹고사나 고민하던 이 단체장은 지자체마다 한챙 유행인 축제를 해보려고 했지만, 그나마 다른 지역에서 이미 하고 있는 유채꽃축제나 메밀꽃축제 같은 아이템으로는 도저히 게임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에게 찾아온 아이디어가 바로 '나비'였다.  

그는 특이하게도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아닌 지역방송국 PD 출신이다. 그것도 생태 전문 다큐멘터리 PD. 그런 그의 눈앞에 마침 나비 한 마리가 팔랑팔랑 날아가는 것이었다. 

'그래! 요즘 도시에서는 좀처럼 나비를 볼 수 없으니, 이걸로 해보면 뭔가 되겠다!' 

그 즉시 전 세계 축제현황을 조사했는데, 다행히 나비 컨셉의 축제는 없었다. '그래, 우리는 무조건 나비도시로 가는 거야!'(113쪽) 

그런데 웬일, 함평엔 심지어 나비조차 없더란 말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온실을 짓고 씨앗 나비를 구해와 부화시키고, 나비가 도망 못 가게 꽃을 가꿔 축제를 준비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의 나비도시, 함평이다.  

함평은 맨땅에서 컨셉 하나로 승부를 낸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그들이 쥐고 있던 카드는 오로지 하나, 이제는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나비에 대한 '그리움'뿐이었다. 나비를 보면 누구든 어린아이 같은 순순한 미소를 짓는다는 것을 알고, 그 정서를 공략한 것이다. (114쪽)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흔히 예술가들은 창작을 가능케 하는 '영감(inspiration)'이 남다르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몇 년 전, 'inspiration'이라는 단어를 포털에서 검색해본 적이 있다. 두산백과사전에서 제공하는 해석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inspiration : 주로 예술작품의 창작과정에서 일어나는 사실.' 

 

 
   
   
 

컨셉 있음과 컨셉 없음 

신수정 선생이 서울음대의 학장을 하시던 2007년 이야기다. 서울음대의 축제 기간 중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이 와서, 본의 아니게 예술의 문외한인 내가 예술가들 앞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음악도들에게(129쪽) 다가갈 수 있는 소재가 필요해 대원문화재단 김일곤 회장께 SOS를 쳤다. 김 회장은 사업을 하는 분이지만 음악에 관한 지식과 음악사랑이 장난이 아니다. 음악가들을 응원하고 후원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고, 권위 있는 음악상인 '대원음악상'을 제정, 운영하고 있는데, 특히 브람스에 관한 강의는 너무나 재미있고 유익하다. 그분께 마침 시의성이 있고 주제에도 딱 맞는 에피소드를 하나 얻을 수 있었다. 

2007년 1월 12일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장 바쁜 오전 8시, 미국 워싱턴 D.C. 랑팡 지하철역에서 작은 연주회가 열렸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에 야구모자를 눌러쓴 연주자는 미국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인 조슈아 벨(Joshua Bell)이었다. 그는 무려 30억 원짜리 1813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ㄷ르고 연주를 시작했다. 

이 연주회에는 목적이 있었다. 이 멋진 연주를 듣고 과연 일반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그 반응의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바이올린 케이스에 돈을 넣도록 했다.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참담하게 끝났다. 

1분 이상 머물러서 들은 사람은 7명이고, 수입은 겨우 32달러. 

그날 그 자리를 지났던 사람들은 몰랐던 것이다. 그가 바로 그 조슈아 벨인 줄, 그의 손에 들린 악기가 그렇게 귀한 것인 줄. 물론 조슈아 벨도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그처럼 철저히 외면당하리란 것을! (130쪽) 

이 소식을 전해들은 유럽의 음악가들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역시 미국은 안 돼. 우리가 본때를 보여주자." 

유럽은 다를 것이라고 확신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좀 불안했는지 바쁜 출근길 대신 퇴근시간대를 택하고, 연주자도 기왕이면 예쁜 미인인 편이 낫겠다는 판단 아래 미모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인 타스민 리틀(Tasmin Little)을 내세웠다. 이윽고 2007년 4월 17일 저녁 6시, 런던의 워털루역. 

'미국과는 확실히 다를 것이다'는 예상 하에 연주가 이루어졌다. 어떻게 됐을까? 

결과는 미국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1분 이상 머물러서 들은 사람은 8명이고, 수입은 겨우 28달러. 

여기까지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이번에는 한국 음악가들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래서 얼마 후 2007년 5월 2일 8시 45분, 성신여대의 피호영 교수가 대한민국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는 강남역 6번출구에서 무려 70억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와 무려 1억짜리 활을 들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곡들을 연주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3개국 중 3등을 했다. 

2분 이상 머룰러서 들은 사람은 5명이고, 수입은 겨우 16,900원.(131쪽) 

자, 이 실험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초고가의 악기를 들고 절정의 실력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실패했다. 

이 시건(?)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또는 시사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첫째, 사람들은 너무 바쁘다! 1분을 멈추어서 지켜볼 여유가 없을 정도로 각박하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많은 연구를 하여 어떤 결과물을 내놓는다 해도 그들의 관심을 얻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만약 음악가들이 '좋은 악기와 특별한 선곡으로 훌륭하게 연주한다면 사람들이 우리르 봐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 단순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업을 하는 사람들이 '싸고 좋은 제품을 만들면 사람들이 그걸 사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것 역시 순진하고 단순한 생각이다. 좋은 연주를 하거나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본일 뿐이다. 거기에 아주 강력하고 특별한 '플러스알파'가 없다면, 성공은 이루어질 수 없다. 과연 무엇을 보태야 난리가 날까? 즉 놀라고 열광할까?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컨셉'이 있어야 한다. (132쪽)

열광의 조건: 컨셉 

일본에서 유명한 아사히야마 동물원. (133쪽) 

(생략) 

고스게 마사오 원장이 취임한 1996년 당시, 아사히야마의 연 관람객 수는 26만 명이었다. 액면가로만 보면 이는 그리 나쁜 성적이 아니다. 1시간 떨어져 있는 아사히카와의 총 인구가 35만 명이니, 줄잡아 지역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동물원을 찾은 셈이다. 하지만 동물원 운영에 필요한 절대 관람객에는 한참 모자라는 성적이었고, 급기야 매각설까지 나돌면 위기에 봉착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10 년이 지난 2006년엔 관람객이 270만 명으로 수직상승, 아니 말 그대로 '점프'했다. 2007년에는 300만 명, 2008년 330만 명! 인구 35만의 도시에서는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숫자가 만들어지자 난리가 난 것이다. (생략) 이 동물원에는 단 네 글자로 된 그들만의 '컨셉'이 있었다. 

기존의 동물원으 동물만 갖다놓으면 자신의 임무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저 밥이나 잘 먹이고 아프지 않게 돌봐주면 사람들이 보러 올 것이다.'(134쪽) 예전에는 그랬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갈 데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도 동물원에 안 온다. 왜? 동물원이라고 갔더니 동물 중의 95%가 엎어져 자고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 이빨이라도 보고 와야 보람이 있을 텐데 줄곧 자는 모습만 봐야 한다니, 이렇게 지루할 데가! 그러니 처음에 호기심에 갔다가 다음엔 절대 안 간다. 바로 옆에 있는 테마파크로 발길을 돌려버린다. (생략) 

아사히야마에게 다행이었던 것은, 고스게 원장이 사육사 출신으로서 현장경험이 풍부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동물을 너무나 잘 알고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이런 신념이 있었다. 

'동물들은 사람에게는 없는 놀라운 능력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놀라운 능력을 가진 동물 수백 마리가 있는 동물원이 지금처럼 재미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우리가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틀림없이 놀라움과 재미가 넘치는 특별한 동물원을 만들 수 있다.' 

그 신념을 바탕으로 구성원들이 함께 고심해서 만든 새로운 방향이 바로 그들의 컨셉이다.  

'능력전시!' (135쪽)

컨셉이 있어야 상상력을 꺼낼 수 있다. (136쪽) 

이제 세상의 모든 동물원들이 너도 나도 아사히야마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동물들도 좋은 시절 다 끝난 것이다. 이제 동물원에는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동물은 없다. (생략) 

이것이 과연 남의 일일까? 아니다. 동물도 경영자도, 공무원도 먹고 살기 힘들기는 다 마찬가지다. 어떤 업종이든 옛날처럼 적당히 때우며 버티던 시대는 끝났다. 우리의 생각이 멈추는 순간, 망가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동물원이 서커스단이 되듯이, 모든 업종의 경계가 깨지고 있다. (생략)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직원이 몇 명인지 아는가? 25명이다. 이 25명이 300만 명을 창출해내고, 또 즐겁게 한다. (138쪽) 

 

매력적인 컨셉의 두 가지 조건 

하이컨셉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에버랜드 사파리를 종횡무진하는 만능 엔터네이너들. 15년 전에 봤지만, 나는 지금도 이 놀라운 가치컨셉의 대가들을 잊을 수 없다. 내가 목격한 한에서 이 사람들만큼 자기 일을 멋지게 정의한 사람들도 없다. 

아시다시피 사파리에서는 야생동물을 풀어 키우고, 관란객들은 버스를 타고 동물들을 코앞에서 구경한다. 그런데 에버랜드 사파리는 버스 운전기사가 아주 재미있다. 건빵 몇 개로 덩치 큰 곰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솜씨도 대단하지만, 애드립 또한 수준급이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옆에 연못이 보이면 운전사가 이렇게 묻는다. 

"어린이 여러분, 이 옆의 연못은 보통 연못이 아닙니다. 이 연못은 대장 곰들만 목욕할 수 있는 특별한 연못이어서 이름이 있거든요. 그 이름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세요?" 

아이들이 알 리가 없다. 그러면 운전기사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이 연못의 이름은 곰탕이에요!"라고 말한다. 동시에 "까르르~" 터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하지만 내가 정작 이들에게 감동한 것은 마지막 대목이었다.(141쪽) 

"어린이 여러분, 즐거우셨어요? 여러분과 함께한 저는 '만능 엔터테이너' 김철수입니다." 

아, 이들은 자신의 업을 '운전'이라는 좁은 시야에 가두지 않는다. 버스에 탄 관람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엔터테이너'라고 자신을 인식한 것이다. 이들 덕분에 사파리 투어가 즐거웠다면, 그것은 순전히 그들이 컨셉을 남다르게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들 사례를 들여다보면 하이컨셉이 가져야 할 조건을 알 수 있다. 

첫째, 고객가치의 언어로 정의돼 있어야 한다. 그냥 가치가 아니라 '고개가치'라고 해줘야 나의 고객이 누구인지 정의하고 시작할 수 있다. 그들이 기뻐할 일이 무엇인지를 정하는 것이 고객가치다. 그것으로 컨셉을 정의해야 한다. '나는 이 일에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가?'라는 프레임으로 필터링하면 전혀 새로운 풍경이 보인다.  (142쪽) 

둘째,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단어로 정의해야 한다. 단어가 같으면 다른 사람들의 상상력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면 아무리 멋있는 개념이라도 '나만의 컨셉'이 될 수 없다. (143쪽)  

 

하이컨셉의 핵심: '엉뚱하고 가치 있는' 

<황소머리>는 피카소가 가진 컨셉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느 날, 피카소가 고물상에서 자전거 해체 광경을 보고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로 제작한 이 간단한 조합물은, 문외한이 보더라도 "대단하다!"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일단 재료가 놀랍다. 고물 자전거 안장과 핸들, 이 두 가지가 전부다. 제작방법은 심플함의 극치로, 세심하게 깍고 조이는 '기술'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 그냥 안장에다 핸들을 거꾸로 갖다가 붙였다. 말하자면 원천재료나 기술이 참으로 보잘것없는 작품이다. (144쪽) 그런데 어느 기사를 보니 이 작품에 300억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이 매겨졌다고 한다. 어떻게 그런 가격이 매겨질 수 있었을까? 

그것은 오롯이 피카소의 상상력의 가격이다. 입이 쩍 벌어지는 창조의 상상력, 그 놀라운 컨셉.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찾지 않는다. 있는 것 중에서 발견할 뿐이다."(145쪽) 

'나는 무슨 장수인가?' 

이 질문을 받는 순간, 우리는 색다르고 유니크하고 가치 있는 답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된다. 어쩌면 이 질문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146쪽)

 
   
   
 

Inspiration Box 

자판기 앞에서 생각하는 '자판기 인생' 

어느 날 커피를 뽑아 마시다가 문득 종이컵에 눈길이 갔다. 컵에는 동전을 넣는 손 그림과 함께 이런 메시지가 있었따. 

"자판기 인생 - 당신은 돈을 넣어야 움직입니까? 사명으로 움직입니까?" 

오, 깜짝 놀랐다. 종이컵에서 이런 메시지를 보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반대쪽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세계적인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평범이다. 우리가 자기계발을 하지 않아 평범해진다면, 그것은 죄악이다. 사명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평범해질 틈이 없다.'" 

놀랍게도 한 패키지에 들어 있는 종이컵 30개의 메시지가 모두 다 달랐다. 이 종이컵의 컨셉은 명확하다. '컨텐츠 종이컵!'(149쪽) 

(150쪽 사진 참조 '생각하는 종이컵') 

게다가 가격은 일반 종이컵과 같다. 그러니 내가 그 다음부터 어떤 종이컵을 사겠는가. 심지어 너무 감동받아서 이 회사 이름과 전화번호를 프레젠테이션 자료에 넣어서 강연할 때마다 알려줬다. (생략) 

일하다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찾는 커피 자판기. 이 종이컵은 자판기라는 공간에 대한 관찰과, 거기에 무엇을 더할까를 고심한 생각의 결과물이다. 종이컵 하나가 '인생을 생각하는' 사색의 시간을 선사한 것이다. (150쪽)

 
   
   
 

보답의 에너지를 받는 데는 중요한 원칙이 있다. 그것은 내가 '먼저 주는' 것이다. 

누군가를 끌어당기려면, 내가 먼저 줘야지 그냥 맨입으로는 안 된다. 

뭘 주는가 하면,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다 줘야 한다. 즐거움도 주고, 꿈과 판타지도 주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좋은 생각도 주고, 그들이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어주고... (154쪽)

 
   
   
 

하이소울의 첫 번째 키워드: '미치도록 아름다운' 

2007년 가을, 나는 지인들과 함께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방문했다. 오랜만에 다시 보아도 여전히 파리는 밤낮없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눈부신 자태에 반하여 부지불식간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파리는 왜 이렇게 아름다울까?"
그런데 안내를 담당하던 가이드 선생이 이 어리석고 자조 섞인 질문에 예상치 못한 무척 흥미로운 대답을 해주었다.
"파리 사람들의 생각이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이지요!"
깜짝 놀라서 얼떨결에 "어떻게 다른데요?" 하고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정말 간결하면서도 시사적이었다.
"파리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불편한 것은 얼마든지 참아도 아름답지 않은 것은 절대 못 참는다'는 생각이 있지요.(생략)"
파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인 19세기 중반에 현재와 같은 모습이 형성되었다. 이 오래된 도시가 세계 사람들에게 여전히 감동을 주는 이유는 단 하나다. 상상할 수 없는, 또 세계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80~190쪽)  

 

하이소울의 두 번째 키워드: '겁나게 착한' 

더바디샵의 CEO인 아니타 로딕,(생략) 심지어 스스로도 "나는 CEO가 아니라 캠페인 책임자(Head of Campaign)다." 라고 천명할 정도다.
그녀의 신념은 더바디샵을 그렇고 그런 뷰티 브랜드에 머물지 않게 추동하는 강력한 엔진이다. 더다비샵의 '커뮤니티 트레이드(Community Trade)' 프로그램은 정단한 교류를 통해 후진국의 자생력을 키우고, 소비자에게는 좋은 원료로 만든 질 좋은 제품을 공급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이뿐인가. '고래 살리기 운동', '브라질 열대우림 보호운동' 등 자신의 비즈니스 영역과 그다지 상관없어 보이는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 결과 1998년에는 <파이낸셜 타임스>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용비행기나 롤스로이스보다는 명예로운 일을 위해 살고 싶다."
열대우림 보호운동에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 그녀. 다행스럽게도, 이런 '착한 기업'들의 사명은 '나 홀로 선행'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의 호응 속에 실질적인 성장에도 기여하고 있다.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단지 좋은 제품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가치'를 함께 사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184쪽)  

 

하이소울의 세 번째 키워드: '대담하고 상상을 뛰어넘는' 

'목표? 그것은 중간 레벨의 소울 아닌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남들이 정해준 어지간한 목표는 하이소울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로 세운 엄청난 목표가 있어야 한다. 고스톱으로 치면 3점으로 나는 것에는 관심도 없고, 어떻게 하면 이 판을 싹쓸이할지 골몰하는 것과 같다.
목표가 왜 중요한가? 그 이유는 목표가 높아야 큰 상상력을 꺼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제전쟁'이라 부르는 싸움의 진짜 이름은 '상상력 세계대전'이다. 경영대가 짐 콜린스는 "좋은 것은 위대함을 막는 최대의 적이다. 좋은 것을 버리고 위대함을 추구하라(Good to Great)."라고 일갈한 바 있다. (185쪽) 

짐 콜린스는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단어인 "BHAG"를 선사해주었다. 한마디로 '너무 커서 듣기만 해도 머리가 쭈뼛 설 정도의 대담한 목표(Big Audacious Goal)'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야 큰 상상력이 발휘되기 때문일 것이다.(186쪽) 

 

하이소울의 네 번째 키워드: '너무나도 완벽한' 

(생략) 1852년 프랑스의 왕후와 귀족들을 위해 여행가방을 제작한 것을 시작으로, 루이비통은 세월과 함께 명품으로서의 권위를 높여가고 있다.
루이비통은 단순한 명품이 아니다. 2007년에 조사한 브랜드 가치만 226억에 이르는 '명품 중의 명품.' 브랜드 가치 2위인 샤넬과의 차이가 무려 3배 이상인,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명품이다.
루이비통의 CEO 이브 카르셀은 이력이 독특하다. 프랑스 최고의 이공계 대학인 에콜 폴리테크닉을 졸업한 '공대생'이고, 사회생활은 세일즈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는 루이비통이 150년간 목숨처럼 지켜온 가치를 잘 알고, 그것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189쪽) 오늘날의 루이비통을 만들었다. 그 가치란 바로 '명품다운 완벽함'이다.
"생산수량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완벽한 제품을 만들었는지가 중요하다."
아무리 매장에서 물건을 보내달라고 아우성을 쳐도, 루이비통의 대답은 한결같다. 완벽주의는 그 어떤 것으로도 훼손될 수 없는 루이비통의 정신이다. 파리 본사에서 품질을 직접 관리하기 위해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자는 제안도 번번이 거절한다. 그 흔한 아웃소싱도 없다. 심지어 세일도 없다. 설사 팔지 못한 제품이 있더라도 세일을 하느니 차라리 버린다. 일반적인 비즈니스 상식에 반하는 비효율의 극치다.
그러나 진짜 아이러니는, 이들의 고집이 먹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완벽하니까.
'완벽'은 그 자체가 높은 목표를 추구하겠다는 신념이자,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가장 강고한 하이컨셉이다. 

'어지간한 목표'를 뛰어넘는 '담대한 목표'가 세상을 바꿔놓듯이, 끝까지 점검하고 공을 들이는 '완벽에의 집착'은 대충 편하게 가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만들어낸다. 당장은 느리고 비효율적이더라도 원칙을 지키고 제대로 해내는 것이 정말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길이다. (190쪽) 

 

하이소울의 다섯 번째 키워드: '그까이꺼!" 

세계 1위의 대한민국 조선 산업을 보자. 원래 근대 조선업의 불문율은 도크 공법이다. 도크(dock)는 선박을 건조 수리하는 시설로, 산 개 만드는 비용이 무려 2,000억 우너에 달한다. 그러니 조선업은 얼마나 큰 도크를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크 공법은 큰 풀장 같은 도크에서 배를 만들고, 다 만들어지면 도크에 물을 가득 채워서 바다로 띄워 보내는 방식이다. 유조선은 중형이라도 크기가 잠실운동장만 하니, 도크 없이는 배를 만들 수도 없고, 설사 만든다 해도 바다에 내보낼 수가 없다. 한국 조선업의 실력이 높아지자 선박 주문이 넘쳐나는 바람에, 도크가 없어서 주문을 못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우리나라는 땅도 부족하고 자금도 넉넉지 않다. 설사 자금 여력이 있어도 무조건 도크를 증설해나갈 수는 없다. 불황이 오면 고스란히 짐이 되기 때문이다. 이걸 어쩐다? 이 대목에서 대한민국 조선소의 창조력은 빛을 발했다. (191쪽) 

"아, 그까이꺼, 도크 없으면 배 못 만드나? 땅에서 만들면 되잖아!"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을 비웃듯이, 현대중공업은 땅에서 만든 배를 특수 지렛대를 이용해 바지선에 실어서 바다로 보내고, 바지선을 침몰시켜 배를 띄우는 데 성공했다. 세계 최초, 세계 유일의 '육상건조공법'이다.
게다가 기존의 도크에서 여러 척을 동시에 만드는 신공을 발휘하기도 한다. 같은 도크에서 만들고 있던 배는 바닥에 고정시켜놓고, 도크에 물을 채워서 완성품만 띄워 보내는 것이다. 이 '템덤침수공법' 또한 누구도 상상하지 ㅁ소한 기술이다.
그뿐이랴. 육상 도크를 고집하는 관행도 대한민국 조선 산업에서는 맥을 못 춘다.
"배를 꼭 땅에서 만들어야 하나? 바다에 띄워서 만들면 되잖아!"
이 역발상으로 삼성중공업은 세계 최초, 세계 유일의 바다에 뜨는 '플로팅 도크(floating dock)'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한국의 조선 산업이 도크를 늘리지 않고도 매년 20%의 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강한 신념과 역발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단 조선 산업뿐이겠는가. 앞이 보이지 않는 난제에 부딪힐 때마다 우리 선배들은 '그까이꺼,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덤볐다. 어떤 상황에서도 결과를 놓고 타협하지 않았다. 오늘의 한국을 일으킨 불굴의 '그까이꺼 정신!'(192쪽) 

신념이란 결국 '그까이꺼 정신' 아닌가. 모든 불가능은 상상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념의 높이가 단연 세계 최고다. 이겨내야 할 시련이 끝이 없었고, 그만큼 신념으로 이겨낸 경험도 많기 때문이리라.
당장은 가진 게 없어도 신념이 있으면 누구든지 잡을 수 있다는 게 '그까이꺼 정신'이다. 의지만 있으면 어떤 선발자로도 다 때려잡고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한국인만이 가질 수 있는 무한도전 무한신념의 언어! 그런 면에서 '맥가이버 정신'보다 더 센 게 그까이꺼 정신이다. 
맥가이버 정신은 무너가. 아무리 큰 위험이 와도 정신만 바짝 차리고 창의성을 발휘하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까이꺼 정신'은 무엇인가. 아무리 센 놈도 유니크한 정신으로 승부하면 다 이길 수 있다는 게 맥가이버 정신 위의 '그까이꺼 정신'이다.
'그까이꺼 정신'의 정수는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다. 서산 간척지 사업의 마지막 단계인 최종 물막이 공사. 초속 8m의 급류가 몰아쳐서 모든 물막이 공법이 무용지물이 되자, 그는 대담한 발상을 한다. 

"폐유조선을 침몰시켜버려!"
그 결과, 한 방에 끝났다. 공사비 280억 원 절감, 공사기간 35개월 단축.
이것이 반드시 하고야 만다는 '그까이꺼 정신'으 진수다. '그까이꺼'가 우리 안에 있는 상상력을 꺼낸다. 그것도 현실을 조금 개선하는 그저 그런 상상력 말고, 기존의 것들을 확 뒤징버엎는, 기존 가치를 전복하는 대단한 상상력을 꺼낸다. (193쪽)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은? 물론 메베레스트다. 그 높이가 8,848m로, 백두산보다 3배나 더 높다. 이 산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등정한 사람은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릴러리로, 1953년에 정상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한국인이 처음 등정에 성공한 것은 1977년으로, 고 고상돈 대원이 세계에서 58번째로 족적을 남겼다.
힐러리보다 24년 후에 올랐는데 그 등수가 58등이라면, 매년 2.4명이 에베레스트에 올랐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요즘은 1년에 몇 팀이나 에베레스트에 오를까?(199쪽) 
2004년 330명, 2006년 480명, 2008년 600명 이라는 기록이 마지막이다. 

왜 이렇게 만이들 올라갈까? 그 이유는 베이스캠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에드먼드 힐러리나 고상돈 대원이 등정을 시도하던 시절에는 베이스캠프 높이가 예외 없이 해발 3,000m 이하였다. 그들은 약 6,000m를 더 올라가야 정상까지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보통 5,200m, 세게 치는 사람은 6,000m 이상에도 베이스캠프를 친다. 남은 거리는 이제 3,000m가 채 되지 않는다. 옛날에 비해 순등정거리가 절반 이하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다. 

물론 옛날에도 베이스캠프를 높이 치면 안 된다는 법은 없었다. 기술력도 충분했다.
다만 그 당시 사람들은 그 정도 높이면 적당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200쪽)

 
   
   
 

늦게 온 소포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닺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헤쳐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204쪽) 
 

5장에서 소개한 아사히야마 동물원을 방문한 관람객은 2008년 약 330만 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중에서 아이들 손잡고 동물을 보러 온 사람은 30만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300만 명의 정체는 누구였을까? 놀랍게도 그들은 일본 본토에서 아사히야마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정말 그런지', '정말 그렇게 재미있고 놀라운 곳인지'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원래 동물원이란 아이들과 놀러가는 곳인데, 본래 취지에 전혀 맞지 않게 '확인'하러 간 사람이 10배나 더 많았던 것이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고, 롤프 옌센이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말한 핵심 메시지다. (205쪽)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를 한 가지 만들어내면 그 이야기가 개인이나 조직의 운명을 바꾸게 해준다는 말처럼, 죽이는(?) 이야기 하나를 만들어냈더니 3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이야기에 끌려 이 외딴 시골마을까지 몰려든 것이다.(206쪽)  

그래서 지금부터 우리 함께 이야기 나라로 여행을 가보려고 한다. 무엇보다 먼저, 이야기란 무엇이고,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에 열광하는지 알아보자. 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면 이야기의 원형을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즈니스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법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자. 먼저 이야기가 가진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이야기 한 편을 소개한다. 

로댕은 왜 10년 동아 <칼레의 시민>에 몰두했는가 

근대 최고의 조각가로 유명한 로댕은 주옥같은 작품들을 많이 창조했다. 그런 그의 대표적인 조각 작품 중에 <칼레의 시민>이 있다. 이 작품은 14세기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칼레 시를 대표해 죽음을 자청한 이들을 기리를 작품이다. 칼레 시에서 이 작품을 공모한다는 소식을 듣고, 로댕은 망설임 없이 참여해 이 작품에 10년을 쏟았다. 과연 어떤 작품일까? (206쪽) 

1347년,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를 침공하면서 영국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프랑스 칼레 시부터 공격했다. 조그만 성이라 애초에 한 달이면 가능할 것이라고 쉽게 보고 시작했는데, 이 작은 성은 완강히 저항하여 1년 가까이를 버티어냈다. 영국 왕의 마음이 어땠겠는가. '이런 괘씸한... 함락만 하게 되면 전 주민을 몰살시키고 말리라!'
칼레는 버티고 버텼지만, 결국 식량이 떨어지는 바람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어 영국군에 항복의사를 전했다. 이에 에드워드3세는 예고했던 대로 칼레 시민들을 몰살하려 했다. 그때, 한 신하가 나서서 말했다.
"폐하, 아니되옵니다! 우리가 이제 프랑스 본토에 발을 디뎠고, 앞으로 함락해야 할 성들이 수없이 많은데, 항복을 청해온 칼레의 주민들을 몰살했다는 소문이 나면, 나머지 성들의 저항을 더욱 격렬하게 만들고 말 것입니다."
듣고 보니 신하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그럼 좋다. 그러나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 그동안 우리 영국군을 괴롭힌 대가로 주민 6명만 죽일테니, 그 6명을 데려오도록 하라."
칼레 시는 대량학살을 면했다는 소식에 안도했으나, 어떻게 6명의 희생자를 고른다는 말인가. 이에 관해 회의가 벌어졌고, 대체적인 중론은 제비뽑기로 정하는 분위기로 모아지고 있었다. (207쪽)
그런데 어떤 지도자가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만약 우리가 나라를 위해 희생할 사람을 제비뽑기로 정한다면, 결과적으로 '재수가 없어서' 제비를 잘못 뽑아 죽은 것이 됩니다. 이러면 후손들 보기 부끄럽지 않겠소? 그렇기에 우리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자원 방식으로 희생자를 선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나는 이곳에서 가장 부자고 살 만큼 살았으니, 내가 먼저 자원하겠소!"
이 영웅적이 연설에 고무된 시민들이 '저요, 저요' 하고 손을 들어 순식간에 6명의 지원자가 다 찼다. 그 6명을 형상화한 것이 <칼레의 시민>이다. 이 동상은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먼저 첫 번째 인물, 외스타슈. 칼레 시 최고의 부자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앞장서 실천한 주인공이다. 이 사람의 표정은 의연하다. 하지만 손을 보면 반쯤 풀려 있다. 비록 자원의 방식을 주장하고 가장 먼저 손을 들었지만, 이 사람 또한 죽음이 두렵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을 로댕은 절묘하게 표현한다.
두 번째 사람, 장 데르는 칼레의 법률가다. 손에는 적군에게 넘겨줄 성문 열쇠를 들고 있지만, 얼구을 더없이 강직하고 단호하다. '비록 성은 빼앗기지만, 정신마저 굴복하지는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그리고 형제 피에르 드 위상과 자크 드 위상이 나온다. 그런데 동생은 얼떨결에 자원했나 보다.(209쪽)
아직 죽을 준비가 안 되었는지 울상인 채로 뒤를 돌아본다. 입은 반쯤 열려 있고, 손바닥은 힘없이 펼쳐져 있다. 그러자 걱정이 된 형이 귀엣말을 한다. "돌아보지 마, 마음 약해져."
그 다음 사람은 학자 장 드 핀네다. 이 사람의 얼굴에는 '살고 죽는 일은 어차피 부질없는 것'이라는 실존적 허무가 떠돈다. 그리고 마지막 사람, 아드리외 당드레. 이 사람에게는 특별히 '우는 시민'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자기가 희생을 자청해놓고도 죽는다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다. 죽음이 너무나 두렵고 그 공포가 극에 달해, 한마디로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 사람들은 이 작품 속의 '우는 시민'을 괴로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한다.  

로뎅이 10년을 투자해 완성한 이 작품을 납품하려고 하자, 칼레 시에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좀 이상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부탁한 건 호기로운 영웅들의 모습인데, 이렇게 나약하게 떨고 있고, 울고 있는 사람들로 만들어놓으면 어떡하느냐, 이거 우리 못 받겠는데? 반품해야겠는데?' 이런 기조다.
그러자 로댕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모르는 소리, 이 사람들이 위대한 것은 죽음을 초월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우리처럼 죽음이 너무나 두려웠지만,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원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210쪽) 

예전에 CEO들과 영화공부를 한 적이 있다. 이름하야 '무비앤컬처' 총 5회 수업으로 이루어졌는데,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한 끝에 다음과 같이 커리큘럼을 정했다. 

1부: 영혼에 놓는 주사, 스토리(이야기 만드는 법) 
2부: 누구나 보지만 아무도 못 보는 영화 속 속살 이야기(영화학 개론) 
3부: 감동에 감동을 더하는 영화음악 이야기(영화 속 클래식음악, OST)
4부: 세상을 바꾼 위대한 미치광이들(위대한 영화감독들 이야기)
5부: 영화에서 배우는 유혹의 기술(위대한 '선수'들의 필살기 요악) 

그 중에서 1부인 스토리 만드는 법은 심리학박사이자 영화평론가인 심영섭 선생이 담당했다. 심영섭이라는 이름에는 '심리학과 영화를 두루 섭렵하겠다'는 그녀의 의지가 담겨 있다. 그녀의 재미있고 날카로운 입담을 따라가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몰랐지만, 이야기로 먹고사는 작가들은 수백 년 동안의 노하우를 모두 모아 이야기 만드는 공식을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미국 몬타나 주립대학의 토비아스 교수는 친절하게도 세상 모든 이야기의 원형을 4개의 나라, 20가지 플롯으로 정리해놓았다. (212쪽) 

먼저, 모든 이야기는 다음 4개의 나라에 속한다.
모험의 나라, 사라의 나라, 성공의 나라, 가족의 나라.
또 각 나라는 작은 나라(小國)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험의 나라에는 7개 소국이 있다. 영웅담, 추적, 구출, 탈출, 대재앙, 게임, 수수께끼.
사랑의 나라에는 4개 소국이 있다. 순수한 사랑, 희생적 사랑, 구원적 사랑, 금지된 사랑.
성공의 나라에는 6개 소국이 있다. 성공, 라이벌, 음모와 복수, 실패, 희생자, 역전.
가족의 나라에는 3개 소국이 있따. 성장, 갈등과 화해, 변모와 변신(213쪽) 

4개 나라에서 가장 점유율이 높은 국가는 '사랑의 나라'고 점유율은 약 80%라고 한다. 그리고 또 '사랑의 나라' 안에서의 점유율을 보면, '금지된 사랑'이 80%라고 한다. 계산해 보면 모든 이야기의 64%는 금지된 사랑 이야기라는 뜻이 된다.
이야기 나라의 20개 원형을 이리저리 뒤섞으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예를 들어 《해리 포터》는 모험의 나라 영웅담과 사랑의 나라의 순수한 사랑, 성공의 나라 중 음모와 복수, 가족의 나라 중 성장 이야기가 섞여 만들어진 이야기다. (214쪽)  

 

비즈니스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법: '드림 소사이어티' 

자, 다음 단계는 우리 이야기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먹히도록' 선사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룰 차례다.
1999년 어느 날, 코펜하겐에 있는 미래학연구소에 난해한 질문 하나가 날아왔다.
"정보화 사회 다음에는 어떤 사회가 도래할까요?"
이 단순하지만 중요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롤프 옌센 소장은 연구소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 정보화 사회 이후 어떤 사회가 올 것인가를 진단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그들의 결론은 '드림 소사이어티'였다.
드림 소사이어티란?
한마디로, 꿈과 감성 그리고 이야기가 주도하는 사회다.(215쪽)
이야기를 잘 만드는 사람이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라는 것이다. 롤프 옌센은 드림 소사이어티는 미래가 아니라이미 도래해 있다고 결론지었다. 오늘날 우리가 내리는 모든 구매결정을 되돌아볼 때, 우리는 더 이상 '상품'을 사지 않고, 상품 속에 들어 있는 '꿈과 감성과 이야기'를 구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우리가 만드는 모든 것들은 새롭게 정의되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해석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그 방버은 한마디로 우리가 생각하는 업종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다. 기존의 이름 아래서는 새로운 개념이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롤프 옌센은 업종에 대한 개념을 확 바꿔서 모든 상품은 다음의 6가지 시장에서 판매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 모험판매의 시장 
2. 연대감, 친밀감, 우정, 사랑을 위한 시장 
3. 관심의 시장 
4. '나는 누구인가'의 시장 
5. 마음의 평안을 위한 시장 
6. 신념을 위한 시장 (216쪽) 

1. 모험판매의 시장 : 이종격투기 K-1
2. 연대감, 친밀감, 우정, 사랑을 위한 시장 : 아이러브스쿨 
3. 관심의 시장 : 동서커피문학상
4. '나는 누구인가'의 시장 : 막걸리, 김연아
5. 마음의 평안을 위한 시장 : 도보 체험관광
6. 신념을 위한 시장 :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동서식품은 커피를 파는 기업이다. 그런데 이커피 장수가 2년에 한 번씩 '동서커피문학상'을 주최한다. 엉뚱하다고 하기에는 이미 20년의 관록이 붙은,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문학상이다. 왜 커피 장수가 문학상을 주최할까?
물론 엄청나게 착하고 보람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비즈니스에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서식품은 유치하게 "커피 사세요!" 하고 외치지 않는다. 그드르이 방식은 당구로 치면 '쓰리쿠션'이다.
"주부 여러분, 문학에 대한 우리의 꿈과 열정은 어디로 갔습니까? 이제 다시 펜을 잡고 문학의 꿈을 살리십시오! 저희가 돕겠습니다."(218쪽)
소녀시절에 감성 충만한 글 한 편 써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주부들이 동서식품의 메시지에 자극받아 십수 년 만에 펜을 잡고 앉았다. 하지만 삶에 매몰돼 어언 10~20년을 보내고 나니, 펜을 잡아도 글이 안 써지는 게 문제다. 그럴 때 주부들이 자연스레 찾는 것은, 맞다, 한 잔의 커피다. (생략)
동서식품이 한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집안일에 쫓기면서 점점 억척스럽게 변해가는 주부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녀들의 겉모습 몇 겹 아래에는 '문학'으로 상징되는 여린 감성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가만히 흔들어 깨웠다. (생략) 주부들은 자신을 '문학소녀'라고 불러주는 커피회사의 손짓에 기꺼이 문학소녀가 되어 '커피 한 잔'으로 보답했다. '아줌마'로만 인식되던 대상 속에 꽁꽁 감춰진 '감성'을 건드린 결과다.
동서식품은 그들의 고객들에게 이야기를 쓸 기회를 주었다.(219쪽) 

서울에 있는 어느 고깃집에 가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이 집 이야기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적이 있다. (생략)
고기를 시키면 은박지에 싸인 삼겹살이 나온다. (220쪽)
은박지를 벗기면 고기 위에 나뭇잎이 하나 붙어 있다.
"이게 뭐예요?"
"월계수 잎이에요."
"이걸 왜 붙여놨어요?"
직원은 손님에게 책받침 같은 걸 한 장 주고 자리를 뜬다. 책받침에는 월계수 삼겹살의 사연이 적혀 있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다.
"저희는 육질이 가장 좋은 고기를 고객들께 제공하기 위해 각 지방을 돌며 최고의 돼지들을 사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고의 돼지를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동네 별로 '돼지 달리기 대회'를 개최합니다. 1등 한 애가 아무래도 육질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희 집에는 돼지 달리기 대회에서 1등 한 애들만 옵니다. 1등 한 애들에게는 승리의 월계관을 수여합니다. 여러분이 드시는 고기는 1등을 했던 돼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1등의 증거로 그 돼지가 받았던 월계관에서 입사귀를 한 잎 떼어 붙여놓았습니다."
이걸 믿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재미있어서 여기저기 떠들게 된다. 이 이파리 한 장 덕분에, 그 동네 고깃집이 다 파리를 날려도 이 집은 걱정이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 집을 응원해주기 때문이다. 이 고깃집은 선생님처럼 사실을 말하는 대신 뱀장수처럼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뉴스처럼 무미건조하게 얘기하지 않고 드라마처럼 얘기했다. 그럼으로써 손님들을 일일이 끌어들이는 대신, 손님들이 알아서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응원하도록 게임의 법칙을 바꾸었다. (221~222쪽)        

 
   
   
 

Inspiration Box
세계 최고의 판타지 스토리, 라스베이거스 

"당신이 꿈꾸는 베네치아는 베네치아에 없다.
아마도 라스베이거스에 있을 것이다.
당신이 꿈꾸는 로마는 로마에 없다.
아마도 라스베이거스에 있을 것이다."
- <신동아> 2006년 8월호 

라스베이거스는 하이스토리의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도시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라스베이거스는 허허벌판 사막에 '컨셉 건축' 전략을 바탕으로 세워진 인공도시다.
그들의 건축 컨셉은 인문학 속의 이야기를 차용하는 것.
엑스컬리버 호텔은 중세 영국의 판타지를 활용했다. 그냥 외양만 빌려오는 수준이 아니라 중세의 성, 아서왕, 로빈 후드와 셔우드 숲.. 이 모든 이야기를 자기네 것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놓으면 너무 편하다. 왜? 굳이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전 세계 사람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224쪽) 게다가 선점의 효과가 만점이다. 한번 깃발을 꽂은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이 얼씬도 하지 않는다. 따라 해봐야 뒤꽁무니만 쫓아가는 꼴이니 안 한다는 것이다. 경쟁자들은 대신 다른 이야기를 찾아나선다.  

호텔 룩소르는 전체 건물을 아예 피라미드 모양으로 만들어버렸다. 고대 이집트 이야기를 다 갖다 쓰겠다는 것이다. 입구에 버티고 있는 초대형 스핑크스는 이 호텔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를 말없이 웅변한다. 

시저스 팰리스는 한술 더 뜬다. 그리스 로마를 다 자기가 먹겠다는 심산 아닌가. (226쪽)
베네치아 호텔은 르네상스를, 알라딘 호텔은 아라비안나이트를, 뉴욕뉴욕은 뉴욕의 판타지를, 호텔 파리스는 파리의 판타지를, 이런 식으로 라스베이거스는 세계인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의 플랫폼을 선점해나간다.  

이처럼 이미 있는 이야기, 세계인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갖다 붙이면 우리가 만드는 것들을 더욱 힘 있게 하고, 쉽게 기억하게 하고, 사랑받게 할 수 있다. 그러니 '무조건 새롭게!'만 고집하지 말고 인문학 속에 있는, 세상 사람들이 이미 다 일고 있는 이야기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보기 바란다. (226쪽)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이상국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아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 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228쪽)
 

"이미 제3차 세계대전은 이렁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 전쟁'이다.
어른들이 우리의 아이와 손자, 그리고 앞으로 찾아올 세대를 향해 일으킨 것이다.
결국 우리는 사막으로 변한 세계를 자손들에게 넘겨주게 될 것이다."
- 미하엘 엔데, 《모모(Momo)》의 저자 (229쪽)

물 사업에 날개를 달아준 3가지 메가트렌드 

  • 도시화 : 도시의 삶은 너무 복잡하고 일 중심이어서 '나'를 만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도시민들의 삶은 찌들고, 영혼은 우울하며, 가족은 가족이 아니라서 너무나 외롭다.  
  • 온난화 : 지나친 개발로 환경은 파괴되고, 날씨는 불순하며, 자원은 점점 부족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을 만나기 어렵고, 마음 뿐 아니라 몸까지 피폐해진다.  
  • 고령화 : 우울하고 피폐해진 외로운 영혼들이 심지어 오래 살기까지 한다.(230쪽) 

한마디로 '사람들은 스트레스와 외로움으로 마음이 아프고, 또 지치고 병들어 몸이 점점 고통 받는다.' 

겉은 멀쩡해도 속은 아프고 우울한 것이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원인은, 우리의 삶이 너무 오랫동안 과속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이어도 많이 닳았고, 엔진소리도 좋지 않으며, 브레이크도 말을 잘 듣지 않고, 와이퍼도 시원치 않은 것이다.  (생략) 

그렇기에 '슬로(slow)'라는 단어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231쪽) 

어떤 제품이든 어떤 산업이든 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여줄 새로운 단어를 찾고 있다면, 그 단어는 바로 '슬로'다.(232쪽) 

 

월악산 기 수련원에서 얻은 가르침 

2009년 8월 11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는가?
이 날은 내가 개인적인 생활패턴을 바꾼 날이다.(233쪽) 
이 날 나는 장하게도, 담배를 끊었다. 30년 넘은 습관을 바꾸기 시작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았다. 나는 왜 그동안 담배를 끊지 못했을까?
흡연이 건강에 나쁘다는 걸 몰라서 못 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안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을 수 없었던 이유는 나의 삶의 방식 때문이다. 나는 늘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또 그러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 수십 년 동안 조급한 생활을 해온 것이다.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기 어려운 것은 담배가 좋지 않다는 것을 결코 몰라서가 아니다.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빠른 탓에 슬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그러고는 기존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성하고 다시 정의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나는 이 지혜를 어느 도사님에게서 얻었다. 

몇 년 전에 어느 산속 기 수련원에서 경험이 떠오른다. 애초에 기 수련원을 찾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 정신상품(?)을 파는 분들은 과연 어떤 원리와 이론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현대인이 아픈 이유는 몸과 마음의 밸러스가 깨졌기 떄문이라는 것이다. (234쪽) 이걸 바로잡아야 하는데, 보통 사람들 대부분 '마음을 다잡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그게 잘못됐다는 것이다. 가령 골초가 '담배를 끊어야지' 하고 마음을 아무리 백 번 천 번 먹어봐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마음을 변화시킨다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은, 순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오랜 수련을 통해 깨달은 진리는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가 먼저 몸을 귀하게 대접해 주면 몸이 금방 정신을 차리고, 몸이 정신을 차리면 마음은 그에 따라 절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그분은 몸을 귀하게 대접해주는 3가지 역량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 3가지는 기 체조, 기 마사지, 그리고 단식이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이 3가지를 통해 몸을 귀하게 대접해주는 방법을 배워간다면, 오래지 않아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기 체조는 특별한 호흡과 동작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이고, 기 마사지는 내 몸을 구석구석 만지는 것이다. 머리끝에서 얼굴, 목, 겨드랑이, 허리, 허벅지, 종아리, 발바닥까지... 평소에 손길 한번 안 주던 곳을 그야말로 구석구석 주무르게 된다. 그런데 그 이효과가 놀랍다. 몸을 만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얘들 너무 안됐다. 주인을 잘못 만나서. 어휴, 근육은 하나도 없고, 완전 물이네 물. 그동안 너무 함부로 썼구나. 이렇게 해서는 내가 정말 소중한 걸 잃어버리겠구나.'
자신에게 정말 소중했던 걸 그동안 못 보고 있었다는 반성이 절로 들었기에, 엄청난 골초였던 내가 그날부터 흡연을 자진해서 중단했다. 내 몸에게 너무 미안해서, 누가 옆에서 끊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금연을 결심하였던 것이다. (물론 몇 달 뒤에 다시 피웠다가 나중에야 끊었지만.) 당시 이 일은 내게 놀라운 경험이었고, 그때야 비로소 원장님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2010년 1월, 나는 회사를 옮겼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세계적인 기업 삼성을 떠나 천안에 있는 중견기업 세라젬으로 옮겨갔다. 소위 '월급쟁이'가 아니라 '파트너'로서 위치가 바뀌었기에 용감하게 옮기긴 했지만 걱정과 두려움에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은 이렇게 말했다. 

"난 다른 사람들에게 욕먹는 일에는 이미 이골이 났습니다. 내가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일 때마다 사람들은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그 디자인을 헐뜯고 비난했죠. 그런데 그렇게 욕하던 사람들도 결국 내가 만든 옷을 입더군요." (255쪽)

 
   
          
   
 

새로운 도전이 두렵고 불안할 때마다, 나는 이 말을 되뇐다.
"긍정은 천하를 얻고, 부정은 깡통을 찬다." 

1975년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이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을 불렀다. 오일달러가 넘쳐나는 중동국가에서 건설공사를 할 의향이 있는지 타진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너무 더워서 일을 할 수 없고, 건설공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이 없어서 불가능하다는 답을 한 터였다.
미션을 받고 한다음에 중동에 다녀온 정 회장은, 대통령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공사 하기에 제일 좋은 지역입니다."
"왜요?"
"1년 열두 달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공사할 수 있고요."
"또요?"(257쪽)
"건설에 필요한 모래, 자갈이 현장에 있으니 자재 조달이 쉽고요."
"물은?"
"그거야 어디서든 실어오면 되고요."
""50℃나 되는 더위는?"
"낮에 자고 밤에 시원해지면 그때 일하면 됩니다."
1970년대를 상징하는 중동 붐은 이렇게 시작되었다.(258쪽) 

수적천석(水滴穿石)이란 말이 있다. 작은 물방울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단단한 바위를 뚫는다는 뜻이다. 비록 시작은 미약한 아이디어로 출발하지만, 즐겁게 미치다 보면 창대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59쪽) 

생존경영연구소 서광원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진화와 도태의 차이는 위기에서 결정된다. 위기가 닥쳤을 때 꼿꼿하게 서 있을 필요는 없다. 필요하다면 납작 엎드려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웅크리거나 위축되거나, 수동적으로 안주하는 것은 자신을 죽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우리 몸속에는 혁신적인 도전과 발상으로 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해온 유전자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지금 이 위기 극복의 유전자는 우리의 결정을, 용기를 기다리고 있따. 이 유전자를 죽이고 살리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리처드 브랜슨은 말했다. "우리는 모두 빛나도록 창조되었다." (261쪽)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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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버트 루트번스타인ㆍ미셀 루트번스타인 지음, 박종성 옮김 《생각의 탄생 :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에코의 서재, 2007년 5월
  • 론다 번 지음, 김우열 옮김, 《The Secret 시크릿 : 수 세기 동안 단 1% 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 살림Biz, 2007   
  • 롤프 옌센 지음, 서정환 옮김, 《드림 소사이어티 : 꿈과 감성을 파는 사회》, 리드리드출판, 2000 
  •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죽음의 수용소에서》, 청아출판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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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우광, "변기회사 토토의 인간탐구법", 일본재발견, SERICEO, 2009년 6월 8일 
  • 이장직, "70억 원짜리 길거리 연주... 아무도 몰랐다.", 중앙일보, 2007년 5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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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선영, "고정관념 타파! 일본 히트상품", 마케팅전략, SERICEO, 2009년 8월 3일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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