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아파트먼트 - 팬데믹을 추억하며
마시모 그라멜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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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모 그라멜리니의 [이태리 아파트먼트]를 읽었다. 부제는 “팬데믹을 추억하며”이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2년 전 이맘 때, 전세계 사람들은 처음 맞이한 바이러스 공황 상태에 어쩔줄 몰라하며 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일지 몰라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서유럽의 잘 사는 나라들이 하나 둘씩 바이러스에 봉쇄와 록다운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는 것에 반해, 그나마 우리나라는 마스크 대란을 제외하고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소설은 주인공 마티아가 2080년이 되어 손주들에게 옛날에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서로 만나지도 못하고 집안에 갇혀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2080년이면 2020년 9살로 나오는 마티아 또래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이 세상을 떠났을테니, 팬데믹을 기억하는 지금의 어린이들이 그저 한때 그런 악몽같은 일이 몇년 간 지속되었다고 기억했으면 하고 바랄뿐이다. 


사실 나에게도 2020년은 평생에 딱 한 번 주어진 안식년이었기에 아주 오랜시간 준비해왔던 계획을 펼치려는 생각에 설레며 기다리던 때였다. 한동안 외국에서 살기 위해 비자를 준비하고 인터넷으로 새로운 언어도 공부하며 그곳에서 다시 마주하게 될 뜨거운 햇살을 고대했다. 1월 말 코로나 바이러스가 점차 퍼지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도 이미 2015년에 메르스 사태가 일찍 종식되었기에 이번에도 그렇게 지나가지 않을까 안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때와 달라졌고,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나 하루 종일 인터넷 사이를 뒤져 비싼 돈을 주고 주문을 하고 며칠을 기다려 마스크를 받고서야 안심을 하기도 했다. 급기야 배급제처럼 주민번호 뒷자리가 해당되는 요일에 약국 앞에 줄을 서서 5장씩만 구입할 수 있었다. 마스크 대란이 일단락 되고도 팬데믹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름이 지나 겨울이 되자 바이러스는 때를 만난 것처럼 기승을 부렸고 QR코드 확인이라는 방역수칙이 생겨났다. 코로나가 무서워 벌벌 떨던 초기에는 확진자가 나오면 개인정보나 사생활 보호와 같은 기본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람의 동선을 무작위로 공개해버렸다. 어떤 사람이 성정체성이 드러날까 두려워 거짓말을 한 것을 두고 마녀사냥에 버금갈 정도로 파헤쳐 결국 그 사람은 아웃팅되었고 직장도 잃게 되었다. 


처음에는 마치 사람들의 이성과 감성이 마비된 것처럼 일단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일들이 벌어져도 무신경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부터 완강히 확진자 동선을 공개하지 않거나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대체 제네들은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란 의문과 더불어 선진국이라는 허울좋은 미명에 가려진 부실한 체계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냐고 으스대기도 했다. 하지만 팬데믹을 2년이상 보내며 과연 우리가 대응한 방식이 정당한 것이었는지, 그저 코로나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되는 것인지 자문할 때가 온 것 같다. 백신 패스와 같이 접종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건강상의 이유로 접종이 불가한 사람은 부당한 처우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사고가 지속될 때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팬데믹은 어떤 식으로는 비참한 결과와 슬픈 결말을 가져다 주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전쟁처럼 언제 다시 마스크를 벗고 편안하게 심호흡을 하며 재채기를 해도 사람들은 눈총을 받지 않을 날이 올 것인지 좀처럼 예상이 되지 않는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홀로 보낸 2년여의 시간 동안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심각하게 환경에 대해서, 한 사람의 인권에 대해서,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혜택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사람들을 헤아려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소설의 주인공 마티아의 엄마와 아빠가 멀고도 가까운 부부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처럼 팬데믹의 구름이 지나가면 우리에게도 어떤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마티아의 가족처럼 우리에게 허락된 세상은 거실, 주방, 방, 발코니와 아파트의 옥상이 전부였습니다. 집에서의 시간이 길어지자 맞닥뜨린 어려움이 바이러스에서 우리 서로에게로 옮겨졌습니다. 우린 가족이었지만 단 한 번도 온전히 가족으로만 존재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겐 학교가 있었고 아빠에겐 직장이 있었고 엄마에겐 직업이 있었습니다. 록다운 전의 우린 하루 중 반 이상을 가족이 아닌 이름으로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살았습니다. 록다운이 시작되고 한 달이 넘게 가족의 공간과 시간만이 우리에게 허락되었습니다. 그건 마치 처음으로 가족으로 살아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김민주 추천사 중에서(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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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2 (양장)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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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작가의 [스노볼 2]를 읽었다. 제작년에 [스노볼]을 읽을 때만 해도 후속편이 나올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2권을 읽기 위해서 1권에 대한 감상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아도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대충 주인공 전초밤은 혹한의 추위를 이겨내며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고 스노볼 안에 사는 사람들은 추위와 상관없이 편안한 삶이 주어진 반면에 그들은 액터와 디렉터로 마치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처럼 자신들의 일상을 드라마로 스노볼 외부에 사는 사람들에게 보여줘야만 했다. 디렉터가 된다면 스노볼 안에서 살 수 있게 되리라는 꿈을 가진 초밤은 자신을 캐스팅한 차설을 통해 당대의 최고의 스타 고해리의 삶을 살게 되며 스노볼에 감춰진 비밀에 다가서게 된다. 1권에서 초밤은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가진 복제 인간이 끊임없이 고해리의 삶을 살도록 셋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생방송 중에 그 비밀을 폭로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2권에서는 초밤의 폭로에도 불구하고 스노볼 세계를 구축한 이본 일가가 여전히 그곳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밤은 이본 일가의 후계자 이본회를 통해서 스노볼이 어떻게 온기를 유지하는지 알아내게 된다. 바로 사형수들을 환각과 최면으로 지하에서 발전기가 돌아가게끔 강제 노동을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바깥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도록 그들의 기억을 지우고 바깥은 세상은 바이러스에 오염되어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현혹시키는 것이다. 이본 일가는 스노볼 안에서는 지상에서 유일하게 따뜻함이 유지되는 곳이라는 설정과 지하세계에서는 또 다른 설정으로 사람들을 농락하며 지배자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초밤과 새린, 시내, 소명은 모두 같은 복제 인간으로 이본 일가를 무너뜨리는데 합심하게 된다. 여기에 비록 같은 지배자 집안이었지만 이본회가 초밤을 도왔기에 그들 세계는 전복될 수 있었다. 이본 일가를 무너뜨리는데에 도움을 준 신이채 또한 결국 초밤을 도운 이유가 바로 이본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지배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은 인간 본성의 깊숙한 곳에 누구나 타인의 고통으로 쾌락을 누리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이용할 악함이 자리잡고 있기에 그것을 잘 다스리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본 일가나 신이채와 마찬가지의 선택을 하게 되지 않을까란 두려움이 생겨나게 한다.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고, 뻐꾸기 새끼는 알에서 부화하자마자 그 둥지의 다른 알과 부화한 새끼 들을 밖으로 밀어내 제거한다. 그게 뻐꾸기의 본능이라고 한다. 본능에 악의는 없다. 다만, 악의 없는 본능은 때때로 다른 존재를 위협한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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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8
이장욱 지음 / 민음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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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작가의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을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8번째 작품이다. 2005년에 나온 작품으로 20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스크린 도어가 없는 지하철 승강장이 몹시 낯설게 느껴지는 것처럼 당시에는 아직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기 전이었고, 소설의 소재가 된 것처럼 달려오는 지하철에 몸을 던저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가 간간히 전해지곤 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끔찍한데 스스로 그런 선택을 했던 이들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일까? 소설에는 7월말 더위가 한창일 때 일주일 동안 동일한 지하철 여게서 일어난 세 번의 투신 사망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미 마지막 죽음 이후에 그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무엇일지 의문을 제기하며 한 여성의 비롯되었다는 조금은 의아한 추리가 시작된다. 


통상적인 추리소설로서 지하철 승강장에서의 죽음을 소재로 선택했다면, 응당 자살이라면 그가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된 경위를 쫓아가게 될 터이고, 자살로 위장한 타살이었다면 범인을 색출하기 위한 주변 인물들의 탐문조사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러한 통상적인 추리의 단계를 거치지 않는다. 동일한 지하철 승강장에서 달려오는 열차를 향해 몸을 던진 이들은 객관적인 연결점을 갖고 있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교차점으로 등장하는 로또 복권이 없는 복권방을 운영하는 왼팔이 없는 할아버지는 결국 그렇게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세 명의 죽음을 자신이 어이없게 넘어지는 행동을 통해 연결시킨다. 가장 첫 번째 죽음을 맞이한 여성이 자폐아 판정을 받은 아이를 좀 더 일찍 병원에 데리고 갔더라면 이명과 두통을 일으키지 않고 들어오지 않은 열차에 몸을 싣는 허망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텐데. 그렇게 다리를 헛딛고 달려오는 열차의 유리에 부딪힌 여성의 얼굴이 흘러내리는 환상을 보는 기관사는 며칠 쉬라는 동료들의 말에도 괘념치 않고 바로 출근을 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곡선 주로를 달릴때 행여나 사람들이 달려나올까봐 경적을 울리는 심성을 가지고서는 기관사 일이 어울리지 않는 동료들의 말을 들었더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텐데. 아내를 허망하게 떠나보내고 아이와 더불어 애정을 갖고 키우던 치와와를 남자가 들어서 창밖으로 내던지던 순간 복권방을 운영하던 할아버지가 그것을 목격하지 않았더라면, 기관사의 대학 동기와 기관사의 예전 애인이었던 선배가 기관사 도천의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재회하여 하루밤을 보낸 후 추억을 떠올리지 않고 그냥 택시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갔더라면 할아버지는 선배와 부딪히지 않았을텐데. 그렇다면 흔들리던 할아버지가 백수였던 청년이 안고 있던 비글의 눈을 보고 무너지지 않았을텐데. 


죽음을 맞이한 세 명의 사람과 지하철 승강장에서 살아남은 세 명의 생존자들은 그 죽음의 사건과 직접적으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보이지만 그들 삶에 들이닥친 우연성은 일주일 동안 벌어진 자살 사건으로 추정되는 세 번의 죽음에 얽혀버리고 만다. 나이가 들수록 후회하는 일들이 많아진다.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런 만남을 갖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가정으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을 찾아내려고 한다. 하지만 그때의 내가 지금과는 다른 말과 행동과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또 다른 삶의 우연성이 개입하여 또 다른 후회를 떠올리게 할 것이다. 아주 많은 순간 냉철한 이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자신을 신봉하지만, 막상 지금까지 내가 살아낸 시간들을 떠올려 보면 도저히 나의 이성만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만연해 있다. 마치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겪어왔던 삶의 시간들처럼 말이다. 


“인생의 모든 것이 기이한 타이밍에 이루어진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인생의 희로애락에 치여 있다가 갑자기 자기 죽음 같은 것을 맞닥뜨리면,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리기라도 한 듯 그제야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일생 동안 돈을 벌기 위해 보낸 시간들, 다른 이의 허점과 약점과 단점에 대해 떠들면서 보낸 시간들,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며칠이 지난 후에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 사건들. 그런 것들이 문득 무의미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것을 허무라고 부르는 것이겠지만, 그런 것이 삶이라면 허무야말로 인생 자체이자 인간의 역사 전체가 아닌가.(82)”


“식장은 이틀 내내 한산했다. 한 인간이 지상에서 사라졌는데도 사람들은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남자는 약간의 비감에 젖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것이 죽음인데,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수만큼 무수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것이 죽음인데,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흔한 것 중의 하나인 것이다. 남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는 빈 객실이 거의 없었다. 안내 전광판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이름이 추가되었다. 방마다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가득했다. 어떤 방에는 초저녁부터 고스톱 판을 벌인 사람들이 한 켠에 모여 있었다. 쓰리고에 피박을 외치는 중년 사내들의 고함 소리가 간헐적으로 복도에 울려 퍼졌다. 웃음소리가 뒤따라 몰려나왔다. 누가 죽든, 생전에 알던 사람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 잠시 병원에 들러 조문을 한다. 조문을 마친 뒤 육개장을 먹고 술을 마시거나 고스톱 판을 벌인다. 조문객들은 이윽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귀가하고, 잠이 들고, 깨어나고, 다시 생을 계속할 것이다. 죽은 이가 바라보던 거리와 죽은 이가 왕래하던 건물들과 죽은 이가 잠자던 방 역시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어떤 시간도 어떤 공간도 전혀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남자의 비감은 깊어졌다.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제 지상에서 영영 사라져 버린 여자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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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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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작가의 [장미의 이름은 장미]를 읽었다. 각자 다른 이유로 여행과 언어 연수라는 계기로 머물게 된 뉴욕이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연결된 연작 소설집이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장미의 이름은 장미”,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아가씨 유정도 하지” 이렇게 4편이 수록되어 있다. 뉴욕이라는 배경만 같을 뿐 주인공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고 직접적연 연결성을 갖고 있는 수진과 이혼한 남편 ‘나’를 제외하고 약간의 접점만 갖고 있는 이들은 소설 초반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와 숨겨진 비밀들을 간직한 채 생겨난 소소한 갈등을 통해서 그들이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에서 승아는 어릴때 친구 민영이 뉴욕에서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계약직 만료를 얼마 앞두고 민영이 머무는 뉴욕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막상 공항에서 만난 민영은 승아를 그렇게 반겨주지 않고 민영의 거주지에 도착한 승아는 SNS를 통해서 본 민영의 삶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에 의아함을 갖게 된다. 시차적응에 실패한 승아가 잠든 후에 민영은 시니컬한 모습으로 일상을 이어가고 잠이 깬 후 혼자 남게 된 승아는 낯선 곳과 언어에 대한 두려움으로 승아의 집에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민영의 환대를 기대했던 승아는 실망감을 느끼며 일정을 당겨 한국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민영이 엄마의 생일 선물을 전해주기를 부탁받으며 어쩔 수 없이 불편한 동행의 며칠을 보내게 된다. 승아의 입장에서 민영의 입장으로 화자가 전환되며 민영이 승아를 받길 수 없었던 이유들이 드러난다. 그리고 승아와 민영이 갖고 있는 한계와 상처들이 드러나며 우편 배달부가 문 앞에 붙여놓은 안내고지 스티커는 매번 한 발씩 늦을 때마다 깊은 후회와 자신을 자책해온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에서 수진은 이혼을 하고 즉흥적으로 뉴욕의 어학 연수 코스를 신청하게 된다. 어학원 클래스에서 자신이 나이가 제일 많을 것으로 예상하며 수진은 세네갈 청년 마마두를 만나게 된다. ‘하이 수진’과 ‘바이 수진’ 외에 다른 말을 하지 않던 마마두와 학원 카페테리아에서 우연히 함께 늦은 점심식사를 하며 그가 무슬림이고 외교관 아버지를 두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마두와 함께 짝을 이루어 수업을 듣고 조금씩 가까워지지만 수진이 다른 학원생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게 된 마마두는 다시 거리를 두게 되고 예전의 짧은 인사만을 하던 모습으로 돌아간다. 수진은 마마두와 다시 멀어진 후 홀로 코너스의 빵집에 들어가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여유 있는 오후를 보내려던 찰나 한눈에 홈리스로 보이는 남자가 악취를 풍기며 구걸을 하다 수진에게 당도하게 된다. 수진은 다른 손님들처럼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지만 그는 다른 손님들 앞에서와는 다르게 수진의 쟁반을 뒤엎어 버린다. 수진이 뉴욕의 카페에서 홈리스의 폭력적인 행동을 통해 철저한 이방인의 정체성을 깨닫은 것처럼 마마두 또한 그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아버지로 인해 뉴욕에서의 삶은 그에게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게끔 만들었다.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에서 현주는 여행을 통해서 만나게 된 한국계 이민자 로언과의 만남을 위해 다시 뉴욕행을 택한다. 현주는 뉴욕으로 떠나기 전에 귀에 이상이 생기게 되고 로언과 극장을 가서 이명이 들리는 통증을 느끼게 된다. 분명 귀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을 인지하지만 현주는 안그래도 잘 들리지 않는 이국의 언어와 이명으로 인해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답답한 상황을 그냥 내버려둔다. 학부때 방문했던 뉴욕에서의 경험을 발표한 작품이 주목을 받으며 극작가가 되기 위해 진학한 대학원에서 현주는 초초함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더 나은 작품을 써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그의 귀에 이상이 생기도록 한 원인일 수 있을테지만, 현주는 남자친구 로언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다. 좀처럼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현주에게 짜증과 답답함을 느끼는 로언은 현주가 놓아버린 상실감에 공감하지 못한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로언과 마지막 식사를 하며 현주는 식당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두 아이의 비명소리에 로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로 락다운을 알리는 안내문처럼 현주의 이명은 소통을 가능케 하는 또 다른 스토리텔러의 필요성을 간절히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에서 화자인 ‘나’는 중견 작가로 몇 년 전 수진과 이혼한 후 뉴욕에서 열리는 아시아 작가와의 대담에 초대받아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뉴욕은 수진과 신혼 여행을 다녀온 곳으로 팔순이 넘은 엄마는 왜 자신과 함께 그 먼곳까지 여행을 가려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대담을 준비한 교포 김선생을 통해서 에이미라는 교포 여성을 소개받아 어머니의 나들이를 독려하게 되는데, 에이미를 기다리는가 ‘나’는 엄마가 캐리어 속에 가지고 온 1953년도에 받은 엽서를 우연히 보게된다. 자신의 아버지가 아닌 엄마를 향한 연서를 보낸 그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할머니가 된 엄마와의 여행에서 자신이 알던 것과는 전혀 상반된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되고 자신과 수진의 관계를 떠올리게 된다. 에이미와의 동행을 통해서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는 엄마는 “천상여자, 현모양처, 알뜰한 당신, 어머니 손맛(228)”이라는 전형된 모습에서 탈피하여 엄마가 아닌 그냥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간듯 하다. 코니아일랜드의 바닷가에서 에미이와 손을 잡고 춤을 추며 ‘아가씨, 유정도 하지’라는 ‘울산 아가씨’를 부르는 엄마의 모습은 희생자의 모습을 강요당한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녀의 모든 삶이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알리는 신호처럼 보인다. 


“나는 왜 떠나온 것일까. 누군가를 더이상 미워하고 싶지 않을 때 혼자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기보다 규칙적이고 또 가시적으로 발전이 드러나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 대체 왜 그런 진지한 생각을 했을까. 그런 점 역시 내가 아는 범주 안에서 틀을 만들고 그 틀에 맞도록 의미를 재단하는 독선적인 진지함의 한 방식이 아니었을까. 나를 증오에 빠지고 용서를 외면하고 또 결별에 이르도록 만든 순정의 무거움, 그리고 서로 다름에서 생겨나는 일상의 수많은 상처와 좌절들, 낙관적이지 못한 복잡한 생각과 그것을 납득시키기 위한 기나긴 말다툼을 통과하고도 나는 여전히 그 틀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과연 떠나오기는 한 것일까.(117)”


“세상에 인간같이 지독한 게 없어. 이렇게 제 발로 의자에 묶여서 열두 시간 넘게 앉아 있는 동물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냐.(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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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 망가진 책에 담긴 기억을 되살리는
재영 책수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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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영 책수선 님의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을 읽었다. 부제는 "망가진 책에 담긴 기억을 되살리는"이다.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는 중 제목을 보고 '책 수선가'라는 부분이 몹시 흥미롭게 다가왔다. 책이라면 환장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책을 사랑하는 1인으로서 '책 수선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반가웠고 신기했다. 한때 이동진 평론가의 아카이브 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컬렉션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기 이전에는 책에 밑줄을 긋기도 하고 페이지의 한 귀퉁이를 접어서 다시 보고 싶을 때 얼른 찾을 수 있도록 표시를 해 두기도 했다. 책을 모으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고 아주 조심스럽게 책을 다루기 시작했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은 밑줄을 긋는 대신 언제든 옆에 있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고 이렇게 서재를 통해 다시 한 번 타이핑하며 기록을 남기곤 한다. 


하지만 책을 모은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계기가 있었다. 이사를 자주 다녀야 하는 형편이다 보니 책을 모으기 시작한 이후 첫 이사에 그만 질려버리고 말았다. 책이 망가질까봐 포장이사를 부탁할 수 없어서 포장만큼은 내가 스스로 하고 다시 풀어서 책장에 꽂아 넣는 것도 나 혼자 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책에 깔려 죽는다는게 이런 심정일까 싶을 정도로 몇 년 마다 이런 반복된 고통을 감내하며 책을 모을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책이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텐데 그걸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책 모으기를 단념했다. 


열 권 중에 한 두 권 정도 책장에 다시 꽂으며 마음이 양갈래로 요동친다. 한 권씩 시리즈가 늘어날때마다 흐뭇한 마음이 들면서 이렇게 내 책장에만 소유하는게 의미가 있을까? 방에 들어서 가지런히 나름대로의 빛깔을 뽐내는 책들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책이 가진 물성이 나를 위로하고 감싸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금 내 책장에는 오래된 책들이 거의 없어서 대부분 새 책처럼 보이기에 책 수선을 맡길 필요가 없기는 하지만 언젠가 이 많은 책들을 정리해야 할 날이 온다면 그러한 가운데 수선이 필요한 책이 생겨난다면 나도 한 번 의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책에 소개된 여러가지 사연을 가진 책들의 추억과 그 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의뢰인들의 마음이 전해져, 책이란 그저 그 책을 쓴 사람의 생각과 이야기만이 담긴 것이 아니라 책을 쓴 저자의 시간과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나눈 시간들이 더해진 세월의 더께가 덧칠해진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수선한다는 것은 책을 나눈 이들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책을 읽으며 책을 수선하는 게 이렇게나 많이 품이 드는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사진을 통해서나마 보게된 수선된 책을 돌려받게 될 의뢰인들의 행복해하는 얼굴을 상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 앨범이나 해리포터 처럼 추억이 담긴 책을 수선 선해 다시 선물받은 이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어쩌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이런 행복을 누군가에게 전해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내가 사랑하는 영화 <줄리&줄리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주인공 줄리가 일진이 사나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초콜릿 크림 파이를 만들며 남편에게 오늘 하루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푸념하면서 자기가 왜 요리를 좋아하는지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비록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날을 보냈다 하더라도 적어도 집에 와서 초콜릿 크림 파이를 만들기 위해 달걀 노른자와 초콜릿, 그리고 설탕과 우유를 함께 섞다 보면 그 반죽이 되직해진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안심이 된다는 말. 나도 그 마음이 뭔지 너무 잘 안다. 

구겨진 종이를 펴고 떨어진 낱장을 붙이고, 책을 분리하고 해체하는 일은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책 수선이라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긴장감 높은 일을 하면서 유난히 불안이 커질 때마다 만들어보는 나의 초콜릿 크림 파이들이다. 이 글을 읽은 분들 중에서도 만약 일을 하다 알 수 없는 불안에 문득문득 괴로운 사람이 있다면 다들 각자의 초콜릿 크림 파이를 가질 수 있기를, 가장 쉽고 선명한 위안에 기댈 수 있기를 바란다.(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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