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
히사이시 조 지음, 이선희 옮김 / 이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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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에서 감동이란 삶을 느낄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

언뜻 감동은 자연적인 것인데 어떻게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의 주인공이 히사이시 조라면 (그의 영화 음악을 들어 본 사람이라면) 어떤 의미인지 공감할 것이다. 그는 음악이라는 예술을 창작하고 있다. 시작은 클래식 음악에서 시작했지만 현재는 영화 음악가로 더 유명하다.

이 책은 그의 음악 인생을 보여준다. 인간적인 그의 모습이 아닌 음악가, 곡을 만드는 창작가로서 모습을 담고 있다. 우리에게 준 감동은 그의 인간성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음악 때문이니까. 그가 어떤 음악관을 가지고 창작 활동을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는 자신을 예술가 보다는 비즈니스맨에 가깝다고 말한다. 순수 예술을 추구하던 시절도 있었던 그가 비즈니스에 뛰어든 것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예술은 사라질 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창조의 샘이 마르지 않도록 오케스트라 지휘, 피아노 연주회, 영화 감독까지 다양한 음악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대중적인 음악을 하지만 억지로 감동을 만들지는 않는다. 물론 대중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대중에게 잘 보이려는 의도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감동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자신에게 솔직하면 대중에게도 통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미 애니메이션 영화 <원령 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바람계곡의 니우시카> 등의 영화음악으로 알려졌고, 이후 우리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영화음악으로 2005년 대한민국영화대상 음악상을 수상했다.

원래 애니메이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데 우연히 <바람계곡의 니우시카>를 보고 무척 놀랐다. 장면과 음악이 어우러져 감동을 줬기 때문이다. 이전에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면서는 뮤지컬을 보는 듯 유쾌한 느낌은 있었지만 다소 가볍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있었다. 관객을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에는 영상과 음악의 조화를 꼽을 수 있다. 영상을 위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영화 자체를 드러내는 테마음악인 것이다.

그는 진정한 프로다. 훌륭한 음악은 각고의 노력과 인내로 얻어진 결과다. 그에게 있어서 음악은 창작의 고뇌를 상징하지만 창작이 된 순간의 행복을 누릴 줄 안다. 그가 프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작품에 대한 집착, 독선에 빠지지 않는 균형감각, 강인한 정신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에게 일이란 점点이 아니라 선線이다. 음악은 일이자, 그의 인생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곡을 쓰기 위해서 계속 곡을 쓰는 것.

프로professional란 계속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히사이시 조

진정한 프로는 아름답다.는 말은 그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것 같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음악가로서 진정한 프로인 그가 존경스럽다. 그의 말처럼 역사적으로 일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지만 음악적인 감동이 얼었던 마음을 녹이는 것 같다. 아름다운 음악을 통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세상에 음악이 없었다면 감동을 만들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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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벗겨줘 - 빨간 미니스커트와 뱀피 부츠 그리고 노팬티 속에 숨은 당신의 욕망
까뜨린느 쥬베르 외 지음, 이승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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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입는 옷 속에는 어떤 심리가 숨겨져 있을까?

이 책은 19개의 에피소드와 진단이 나와 있다. 첫 인상을 결정하는 외모만큼이나 옷차림도 그 사람의 평가 기준이 된다. 세련되고 우아한 옷차림은 그 사람을 돋보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그들 스스로 선택하는 옷이 어떤 심리적 의미인지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어린 시절 나는 꽤 공주 풍의 옷들을 좋아해서 멋쟁이란 얘길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내 아이처럼 옷을 입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오빠와 같은 스타일의 옷을 사 주셨고 함께 그 옷을 입으면 마치 형제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이 순전히 내 선택이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어른들이 남자인 오빠를 더 특별히 여긴다는 나만의 생각이 남성적인 옷을 선택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옷의 의미는 우리 내면에 숨겨진 심리를 외적으로 드러내는 특징이 있다. 정말 남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남자들의 특권이 질투가 났던 것 같다. 특권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남자들이 우위에 있다는 느낌이 싫으면서도 부러웠다.

부모님이 사내 아이 같은 모습을 인정하신 것도 무의식적인 소망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는 동안에 옷은 부모의 꿈, 부모의 방식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 엄마의 의도 대로 선택된 옷을 입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진다. 그래서 나중에 선택권이 주어져도 그것이 진짜 내 선택인지 혼란스럽다.

책 속의 진단처럼 우리가 입은 최초의 옷은 부모님의 선택이었다. 일상의 습관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지배한다. 현재 나의 스타일은 부모님의 기준과 흡사하다. 옷 스타일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오늘 나는 어떤 옷을 입었는가? 보여지는 멋스러움 보다는 편안함을 선택했다. 그것이 내 삶의 방식이다.

책 속에 소개된 에피소드는 우리 일상 중 극히 일부분이다. 또한 프랑스의 경우다. 많은 부분 공감하면서도 낯선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역시나 자유로운 프랑스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으로 자가 진단을 하며 읽었다. 꼭 들어맞는 사례는 없었지만 만약 나라면 식의 상상을 하니 재미있었다. 심리학은 어렵다. 알다가도 모르는 사람 마음을 옷을 통해 살펴봤다. 늘 우리가 입는 옷은 어떤 행동이나 말보다 자신의 심리를 더 잘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러나 섣불리 다른 사람의 심리를 진단하지 말기 바란다. 드러나는 옷차림은 심리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감출 때도 있기 때문이다.

<나를 벗겨줘>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과는 달리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옷은 우리의 몸을 가렸고, 이 책은 그 속마음을 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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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위대하지 않다 (양장)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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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것이 이 책이 주는 매력이다. 단지 제목만으로도 논란의 여지를 준다.

종교를 믿는 다수에게는 불쾌감을 줄 것이다. 아마 책 내용도 보기 전에 저자를 오만한 인간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신의 존재를 평가한 단 한 마디의 위력은 대단하다.

나 역시 책을 읽기 전부터 제목을 화두 삼아 생각에 빠졌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는 말이 내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그다지 충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신의 존재와 종교에 관해 생각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극단적으로 신은 죽었다.거나 신은 없다.가 아니므로.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사고가 필요하다. 이제까지 성역처럼 굳건히 유지된 종교의 영역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용기와 지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일반 사람들도 종교적인 토론은 피한다. 그건 각자의 취향처럼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로 인해 이 사회, 세상이 악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은 모두의 문제가 된다.

저자는 수많은 종교 중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를 먼저 살펴본다. 각 종교의 경전을 통해 신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이다. 우선 구약과 신약 성서의 내용에 대해 이성적인 잣대로 다양한 의문점을 제기한다. 이제까지 기독교를 믿으면서 의문이 생기는 것조차 회피해야 했던 내겐 새로운 해석이다. 종교적인 의문은 나약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비난 받기 쉽다. 그래서 종교적인 의문을 품기 보다는 권위 있는 종교적 신념을 따르는 길을 택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어린 시절 종교에 대해 느꼈던 충격이 떠오른다. 전지전능한 하느님은 남자로 표현되고, 여자는 죄인이기 때문에 성전에서는 머리를 가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무척 속상했었다. 왠지 남자가 더 우월한 존재인양 뻐기는 것 같아 기분 나빴다. 그런데 아무도 그런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따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까.

그 뒤에 미션 스쿨이란 곳에 6년을 다니면서 종교적 혼란을 경험했다. (다른 얘기지만 우리나라는 왜 종교 단체가 마음대로 학교를 설립하게 만들면서 정작 학생들은 학교를 선택할 수 없게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 종교의 자유가 학생은 제외되는 건지. 전학 온 어떤 친구는 불교 학교여서 매주 불경을 외어야 했다고 한다. 사실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른다.) 학생들의 종교와 상관 없이 진행되는 성경 수업에서는 어떤 목사가 기적을 행하는 비디오를 보곤 했다. 어떤 친구는 천주교에 대한 비판과 교황은 악마적인 존재라는 다소 과격한 만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꽤 친한 친구였는데 종교적인 면에서는 나를 길 잃은 양 취급을 했다. 그러나 정작 혼란스러운 것은 어느 쪽을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왜 같은 하느님을 믿으면서 서로의 종교를 비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느님이 한 분뿐이시라면 굳이 어떤 형태의 종교를 믿든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신이 종교를 만들었다면 더욱 그렇다.

신이 만든 종교를 가지고 서로 싸운다는 것이 모순이다. 무엇이 진실인가?

결국 종교는 인간이 만들었다는 점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종교의 본질은 인간을 개선하는 것이지 일정 종교의 확장은 아니다. 그런데도 종교를 내세워 논쟁하는 사람을 보면 그의 믿음을 의심하게 된다. 종교가 인간을 선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증거가 되니까.

다만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종교는 위대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볼 때 종교는 위험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종교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물든 인간에 의해 타락의 길을 걸었다. 종교라는 이름을 걸고 벌어진 전쟁과 대학살이 이를 증명한다. 종교가 아무리 숭고한 목적을 지녔다고 해도 비극적인 역사를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신에 대한 존재 유무와 평가는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는다. 이런 격렬한 논쟁을 감수하고 이 책이 출간된 이유는 무엇일까? 인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함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통해 지루한 종교적 논쟁 보다는 발전적인 토론의 장이 열리기를 바란다.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상상 속의 것이든 진짜이든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지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

진리의 소유 여부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 고트홀트 레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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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주는 엄마 - 아이의 자신감을 키워주는 육아 코칭
이와이 도시노리, 시도 후지코 지음 / 파프리카(교문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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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주는 엄마>는 실습서다.

일반 육아 책에 비해 얇은 편이지만 내용은 매우 실용적이고 효과적이다.

아이들은 외모나 성격처럼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인격체다. 우리가 심리 책을 본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기는 힘들다.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하는 문제들은 비슷하기는 하지만 해결방법이 똑같을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육아 전문가보다 엄마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내 아이를 가장 잘 이해하고 많이 아는 사람이 엄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이와의 대화 방법을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알려준다.

나는 어떤 엄마일까? 책에서 강조한 귀 기울여 듣기보다는 일방적인 명령을 하는 독재자 스타일 이었다. 그러니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힘든 것이 아니라 내가 아이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독재 치하(?)에서 순순히 말을 듣던 아이가 조금씩 크면서 반항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황했다. , 말 잘 듣던 착한 애가 왜 변했지?

품 안에 자식이라고 그저 내 품에서 아이를 놓지 않고 있었다. 아이는 독립적인 한 인격체가 되어가고 있는데 말이다.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아이를 이끌어주는 것은 아이의 독립심을 방해할 뿐이다. 그래서 치마바람이 부모가 원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아이의 행복은 장담하기 어렵다.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아기일 때는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커갈수록 기대와 욕심이 같이 커졌다.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엄마의 욕심을 채우려 했던 것 같다. 아이는 항상 엄마를 향해 마음을 열고 있는데 엄마가 그 마음을 몰라준다면 아이의 심정은 어떨까?

아내가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데 남편은 신문이나 TV를 보며 건성으로 대답한다. 하루의 일을 이야기하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남편에게 바라는 것은 공감이다. 아내의 감정을 이해해주는 것, 바로 귀 기울여 듣는 모습이다. 나 역시 이런 문제로 남편과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아이도 나와 마찬가지다.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이 존중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넌 어리니까 시키는 대로 해.라는 식의 독재는 가정 문제를 일으킨다. 사회, 국가만 민주주의가 아니라 가정 안에서 민주적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배웠던 좋은 부모를 위한 효과적인 대화법이 떠올랐다. 책에서는 초급편과 상급편이 나와 있다. 기술적인 면도 좋지만 그 뒤의 조언이 마음에 남는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갖자. 

아이에게 무슨 존경과 감사일까 의아해 할 수도 있겠지만 임신하고 출산했던 때의 감정을 떠올린다면 이해할 것이다. 생명의 신비와 경이로움, 벅찬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부모의 몫은 독립적이고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키워내는 것이다. 내 곁에서 웃고 떠드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부모로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힘든 것은 육아가 아니라 그 마음을 잊었기 때문이다.

존경과 감사, 사랑의 마음으로 가족 간에 용기를 주는 멋진 책을 만나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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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슬립 - 전2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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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즐겨 하던 공상이 있었다. 내가 눈을 감고 신호를 보내면 현실과는 다른 세상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한창 유행하던 타임머신처럼 말이다. 그 때는 내 자신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다거나 전혀 다른 곳에서 살았으면 했다.

마치 행복은 산 너머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른이 된 다음에는 그런 공상을 접었다. 다른 누군가의 삶을 산다고 해서 더 행복하진 않을 테니까. 결국 세상이 바뀌고 모습이 바뀐다 해도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 소용 없다. 살다 보니 내 자신과 정이 들어서 이젠 다른 삶을 살라고 하면 거절할 것이다.

만약 타임슬립의 주인공이 된다면 거부할 수도 없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 책은 공상으로만 가능했던 시간 여행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바뀐다면 어떤 기분일까?

시간 여행이란 점을 제외하면 <왕자와 거지>를 떠올리게 된다. 2001년 9월 11 열아홉 살 오지마 겐타는 서핑을 하다가 정신을 잃고 깨어보니 1944년 9월 12이다. 그는 가즈미가우라 해군항공대 비행연습생 이시바 고이치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고이치는 첫 단독 비행 중 실종되었고 숨어있던 겐타는 탈영병으로 붙잡힌다. 거지가 된 왕자처럼 고된 군생활이 시작된다. 한편 실종된 고이치는 2001년 겐타의 역할을 맡게 된다.

왜 하필 2001년 9월 11이었을까?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미국 뉴욕의 110층 세계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 펜타곤이 공격을 받았다. 민간 항공기를 납치하여 자살 테러를 했으니 인명 피해는 엄청났으며 전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21세기 전쟁으로 불릴 만큼 심각했다.

바로 그 날, 타임슬립이 발생했다. 21세기를 사는 청년이 뜬금없이 전쟁 중인 1944년에 뚝 떨어진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재미를 좇으며 살던 철없는 열아홉 살이 아니다.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미국이 평화로운 21세기에 겪은 테러의 충격은 개인적으로 겐타의 심정과 같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이 가벼운 공상 소설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간 설정만으로 작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두 명의 주인공은 각각 과거와 미래를 경험함으로써 우리에게 말해준다. 현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이다. 또한 전쟁의 허무함을 알려준다. 전쟁의 진정한 승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가미가제와 같은 전술은 비극 그 자체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태도는 광기에 가까웠다. 자폭하며 죽는 것을 명예롭게 여기던 그들 땅에 원폭 투하가 되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때늦은 후회와 엄청난 희생이 뒤따랐다.

한 사람이 수천 명의 적을 물리친다면 그만큼 조국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 –가모시다

하지만 적에게도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이 있잖습니까.” –겐타

전쟁은 적도 우리처럼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인간이란 사실을 잊게 한다. 그걸 기억한다면 전쟁이 일어날 리가 없겠지만. 결국 전쟁과 테러와 같은 비극을 막는 길은 인간애다. 인간에 대한 사랑,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겐타와 고이치는 공교롭게도 미나미라는 한 여자를 사랑한다. 외모 뿐 아니라 성격, 기호까지 닮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두 주인공의 여정은 다음 해 8 16일까지이다. 전쟁이 끝난 후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내내 결말이 궁금했다. 언제쯤 우리의 겐토(왠지 고이치보다 정이 간다)가 원래 대로 돌아올 지 말이다. 마지막까지 긴장했다.

이 책은 두 권의 책이 하나의 비닐 커버로 쌓여 있다. 표지에 앞 권은 1/2, 뒤 권은 2/2 이라고 쓰여 있다.

끝까지 읽고 나니 그 의미를 알겠다. 결말에 대한 힌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책 속의 즐거움은 결말이 아닌 여정에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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