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 그들은 왜 칼 대신 책을 들었나 ㅣ 서가명강 시리즈 14
박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2월
평점 :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서가명강’벌써 열네번째는 일본의 역사를 이야기 하는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입니다. 메이지 유신, 에도 막부? 들어는 본거 같은데 잘은 모르겠네요. 메이지유신과정과 인물들을 명쾌하게 분석한 책입니다.

지난4일 '라스트 사무라이' 사일런트役을 맡은 후쿠모토 세이조, 77세로 사망해 일본열도에 애도 물결이 일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사무라이(일본어: 侍)는 일본 봉건 시대의 무사(武士)를 뜻한다. 본디 가까이에서 모신다는 뜻의 단어 시(侍)에서 나온 말로써 귀인을 경호하는 사람을 가리켰으나, 헤이안 시대 이후 일반적인 무사를 가리키게 되었다. 주군을 잃은 사무라이는 로닌이라 불리며, 칼솜씨를 제외한 기술이 없어 특별한 직업 없이 유랑하거나 걸식하며 살인청부와 도적질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경제성장의 혜택을 입지 못한 계층은 정작 지배층인 사무라이였다.도쿠가와 시대 사무라이들은 주군인 대명에게서 봉록으로 쌀을 받아 생활하는 봉급생활자였다. 게다가 농촌을 떠나 대명의 성 근처에 살도록 되어 있었다.

18세기 말, 19세기에 들어가면 하급 사무라이들의 경제적 궁핍이 아주 심해진다. 많은 사무라이들이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해냈다. 그런데 일본에는 과거제도가 없다. 조선의 양반들은 가난해도 과거에만 붙으면 일거에 신세가 핀다. 그런데 사무라이는 문장 배우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 사회엔 당연히 과거제가 없다. 그럼 사무라이는 무엇으로 출세할 수 있나? 전쟁이다.

사무라이들은 칼을 휘두르거나 말을 타는 게 아니라 얌전히 칼을 허리춤에 찬 채 책을 읽고 있는 것이 당시 사무라이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도 있었습니다. 전국을 군현제로 만들어 도쿠가와 왕조를 만들도록 도와주겠다는 프랑스의 유혹도 막부는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다. 외세의 지원은 분명히 엄청난 힘이 되는 건 사실이었지만, 손실을 가. 아무리 권력투쟁이 격렬해져도 외세와 결탁하는 것은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정치 엘리트 간에 암묵적으로 진행되어 있었다. 그리고 라스트 사무라이, 사이고는 사후 우상화되었다. . 거기에는 근대 일본인의 아이덴티티 문제가 관련되어 있다. 메이지유신은 엄청난 서구화 변혁이었다. 나라의 생존을 위해서 열심히 서구화를 추구 하려고 노력했다.

일본하면 대놓고 일단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공자가 가이면 일본에 대해 그것도 역사에 관해 공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번 책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에서는 일본을 상대하고 경쟁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완벽하게 알고 전략적인 자세로 임해야 일본보다 우리가 우수한 민족이고 우리나라를 상대하기 어려운 나라로 인식시켜야 한다는 점입니다.
21세기북스에서 협찬해 주신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