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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들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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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만 보내준다는 말에 얼른 신청을 하였다. 완성본이 아닌 가제본으로 왔는데 책을 펼쳐보고 한 번 놀랐다. 가제본에는 4부까지 실려있다. 신기하게도 읽다보니 재미도 있다. 불운했던 시대의 법조인들의 이야기지만,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 읽다가 그만 두었던 태백산맥을 완독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저자 소개: 김두식》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군법무관, 서울지검 서부지청 검사, 변호사로 일했다. 코넬대 로스쿨에서 석사학위(LL.M.)를 취득한 후 한동대 법학부 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법, 형사소송법, 형사정책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헌법의 풍경』을 비롯해 『평화의 얼굴』 『불멸의 신성가족』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불편해도 괜찮아』 『욕망해도 괜찮아』 『공부 논쟁』(공저) 등 몇권의 책을 썼다.

 

프롤로그
한국 현대사에 정통한 독자들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나온 이름의 태반은 금시초문일 것이다. 이들은 해방을 전후한 시절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철저하게 망각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법조계만큼 종사자들의 자서전이 많은 직역도 드물다. 그러나 해방공간에 관한 기록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좌익과 중도에 속한 사람들이 거의 사라졌으니 그나마 남아 있는기록도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좌익경력을 가지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자기 과거에 대해 철처히 함구했다.(중략)이 책은 바로 그 껄끄러운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방후 우리나라 법조 직역의 형성과정을 복원하려는 시도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매우 간단하다. 김영재 강중인 조평재 윤학기 백석황 이정남 같은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들은 누구였고, 일제시대 무엇을 했으며, 해방공간에서 어떤 꿈을 꾸었고, 그 꿈은 왜 좌절되었나? 초창기 혼란 속에서 만들어진 법조계의 기본틀은 우리에게 어떤 유산을 남겼나?

1부는 1937년 합격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고등시험 사법과 제도를 탐구했다. 바로 제1법률가군 이야기다. 안동지역 유수의 독립운동가 가문과 친일 가문이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당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다들 빈곤한 시절이었으므로 합격자라면 누구라도 자신을 역경의 승리자로 포장하고 싶었겠지만, 객관적인 자료들을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고등시험 합격자 중에는 유난히 면장집 아들이 많다. 당시 기준으로는 사회경제적으로 최상층부에 속했다. 부잣집 출신일수록 상급학교에 진학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시대다. 재력은 거의 그대로 학력에 반영되었다. 개천에서 난 용은 허상일 뿐 실체가 아니었다.

2부는 일제시대 '이류' 법률가로 취급 받았으나 해방이후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과 함께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형성한 조선변호사시협 출신들의 삶을 다뤘다.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허헌 변호사의 인생을 살펴보았다. 판검사를 거치지 않은 순수변호사의 아버지 격이던 허헌은 해방후 좌익과 중도진영의 지도자로 변신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김일성종합대 총장 등을 지냈다. 그가 왼쪽으로 기울게 된 뿌리를 탐구하는 것은 해방공간 좌익진영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3부는 해방으로조선인 법률가들에게 벼락처럼 찾아온 새로운 기회를 이야기한다. 남한을 점령한 미군정은 일본인 판검사를 재판에서 배제하고 조선인 법률가로 그 자리를 채웠다.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들과 조선변호사시험 출신들은 이른바 자격자로서 가장 먼저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미래가 보장되었던 이들의 임용과정에서 친일경력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인맥과 운이었다. 삼팔선 이북지역에서 해방을 맞이한 판검사들은 월남시기에 따라서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했다.

4부는 해방공간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던 조선공산당 등 좌익세력을 일거에 불법화시킨 1946년 5월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을 이야기 한다. 조선정판사'위조지폐'사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단일사건이 아니었다. 조선정판사 사건에 앞서 우리 법조계는 '김계조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김용무 대법원장, 이인 대법관 등 한민당 세력이 장악한 법원과 검찰은 첫 판검사 임용 때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았다. 오승근 판사, 백석황 검사로 대표되는 좌익 또는 중도성향의 법률가들은 '김계조 사건'을 계기로 이 상황을 바로잡고자 했다.

5부는정부수립을전후해 법조계에서 벌어진 각종 좌익 관련 사건을 다룬다. 1947년 12월 '사법기관 내의 남로당 프락치'로 구속된 남상문 홍승기 서범석 등 이른바 '적색 사법관' 사건,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 진압의 한복판에서 군경에 학살된 순천지청 박찬길 검사 사건, 1946년 7월의 서울지방검찰청 김영재 차장검사 사건, 그해 12월의 2차 '법조프락치'사건, 1950년 3월의 이홍규 검사 사건 등은 좌익을 박멸해야 한다는 극우세력의 편집증적 집착과 권력욕구가 만들어낸 '관제 빨갱이'의 대향연이었다. 이 책은 남쪽 출신과 북쪽 출신의 지역적 갈등도 이 사건들의 조작과 과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추정한다.

6부는 한국전쟁이라는 쓰나미가 법조계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김병로 대법원장, 김갑수 내무부차관 같은 극소수의 고위직 법조인들은 비교적 빨리 피란길에 올랐다. 유병진 판사, 오제도 선우종원 검사 같은 월남민 출신들도 본증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한강을 넘었다. 피란 중에 김갑수, 오제도는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과 그 '처리요령'을 만들어 부역자 처벌을 준비했다.

7부는 이른바 '이법회'또는 '의볍회' 문제를 발굴함으로써 초창기 법조계 5년의 역사가 오늘에 끼친 영향을 설명한다. 1945년 해방 당일에 시행 중이었던 조선변호사시험의 응시자들은 일본의 항복으로 시험을 끝마치지 못했다. 4일간 치러질 예정이었던 시험이 2일차 정오의 항복방송과 함께 중단되고 일본인 시험관들이 사라져버린 까닭이었다. 응시자들은 궁지에 몰린 일본인 시험위원회를 압박해 합격증을 받아냈다. 응시사실만 있으면 모두 합격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결성된 이법회 구성원들은 해방후 각종 시험에서 필기시험을 면제받아 초창기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인력풀이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법회 구성원들이 그경력을 감췄기 때문에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그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조직이었다.

 

프롤로그만 간단하게 적어도 많은 분량이다.1932년도 월급에 대한 대목만 옮겨 보았다.

 

국내 독립운동이 혹한기를 맞아 지하로 들어간 대신, 경성을 중심으로 '모던'의 시대가 꽃피기 시작했다. 1932년 4월 경성제대를 졸업한 김영재는 일단 취업부터 해야 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재학시절에 이미 결혼한 김영재에게는 아내와 아들이 딸려 있었다. 화려한 학벌이었지만 대공황 직후의 조선에서는 그럴듯한 일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그해 5월 15일 김영재가 찾아 들어간 직장은 경기도청이었다. 월급 65원을 받는 '고원(雇員)' 자리였다. 관청에서 임금을 받고 사무를 돕는 고원으로 일하다보면 판임관에 해당하는 '속(屬)'이 될 수 있었고 오래 근무하면 고등관 승진도 가능했다.

 

실제로 경성 제대의 많은 졸업생들의 법원의 서기나 지방관청의 하급관료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관립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하급관료인 판임관이 될 수 있었지만, 1930년대에는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행정부로 갈 경우에는 고원부터 시작해야 했다. 똑같은 고원이라도 학력에 따라서 초임월급이 달랐기 때문에 경성제대 출신 김영재가 받은 65원은 동일직급에서 최고수준이었다. 중등학교를졸업한 조선인의 고원초봉은 30원, 전문학교를 졸업한 조선인은 40원, 일본의 사립대를 졸업한 조선인은 45원에 불과했다. 월급 65원의 경기도청 고원은 당시 조선 상황에서 결코 나쁜 자리가 아니었다. p49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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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멈추기 전에 - 서울대학교병원 뇌신경학자의 뇌졸중을 피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
이승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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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멈추기 전에]tvN유 퀴즈 온 더 블럭, 유튜브 언더스탠딩화제의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전문의 이승훈 교수는 뇌졸중을 많은 이들이 가장 무서워하지만 사실 가장 예방이 쉬운 병이라고 단언하며 뇌졸중을 없애겠다는 진심을 담아 책을 썼다.

 

책은 4개의 장을 통해 독자가 뇌졸중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방치된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심장 리듬을 되찾고 4단계 단계별 전략으로 백년 가는 뇌를 만들라고 한다.

 

뇌졸중은 크게 허혈성 뇌졸중(뇌경색)과 혈성 뇌졸중(뇌출혈)로 구별된다.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다. 뇌혈관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점만 제하면 이 둘은 실제로 상당히 다른 질환이다. 뇌졸중 전문가 입장에서 이 질환처럼 쉽게 예방할 수 있고, 평소에 아주 조금의 노력을 기울이면 장년기, 노년기의 뇌졸중은 거의 100% 예방 가능하다고 한다.

 

전 세계 공통으로 프로세스를 시행하는 이유는, 뇌졸중이 뇌를 급성으로 침범하는 질환이면서, ‘시간이 곧 뇌이기 때문이다. 뇌 신경세포는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약한 세포다. 뇌 신경세포는 혈류가 단 1분만 중단되어도 죽기 시작하며, 성인의 경우 죽은 뇌세포는 거의 절대적으로 재생되지 않는다.

 

뇌경색은 뇌혈관에 동맥경화가 존재하지 않아도 일어날 수 있다. 심인성 색전의 뇌경색 증상은 뇌졸중 중에서 가장 무서운편에 속하지만 혈전이 크기만 클 뿐 잘 용해되고 치료가 잘 되는 편이라,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많은 보람을 느끼는 뇌졸중이다.

 

뇌출혈은 뇌실질출혈과 지주막하출혈로 나눌 수 있다. 지주막하출혈은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이 많다며 저자는 이종욱 박사의 예를 들기도 하였다. 뇌졸중 중에서 뇌출혈이 차지하는 비중이 20% 남짓인데, 이중 뇌실질출혈이 60%, 지주막하출혈이 40% 정도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흡연, 음주, 그리고 비만, 노화, 심방세동 등 뇌졸중의 위험 요인을 집중적으로 설명한다. 고혈압에서 가장 취약한 장기는 가장 중요한 뇌다. 가장 큰 원인은 뇌의 조직압이다. 다른 장기들은 세포 자체가 튼튼해서 이를 통과하는 혈관도 지지를 받게 된다.

 

염분보다 더 중요한 고혈압의 원인은 비만이다. 살이 찌면, 혈액을 보내야 할 세포가 늘어나는 것이니 당연히 혈액이 많이 필요하게 된다. 당뇨병은 전신에 영향을 주는 질환이다 보니, 단순히 혈당조절이 문제가 아니라 심혈관질환, 신장병증, 망막증과 같은 다양한 합병증의 주요 원인이 된다.



 


당화혈색소는 단순히 과거 혈당 수치를 추적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어서, 당뇨 치료의 효과를 모니터링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표로 활용 중이다. 고지혈증은 고혈압, 당뇨병과 함께 대사증후군의 일부로서 이러한 상태들은 서로 연관성을 가지면서 뇌졸중, 심근경색, 사지혈관질환 등의 발생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해악상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뇌졸중의 위험 요인보다는 사실 폐암을 포함한 거의 모든 암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흡연은 초기에 다양한 성분이 과도한 활성산소를 유발해 항산화 시스템을 고갈시키는데, 혈관 내피세포의 DNA를 손상시키고 세포의 재생 장애를 유발한다.

 

주변인이 뇌졸중일 때 주의할 점은 손을 따는 행위나 우황청심환을 먹이는 행위는 금지이고 당장 해야 하는 것은 119라고 하였다. 뇌졸중 입원 치료의 목적은, 재발을 방지하고, 뇌졸중의 악화를 최소한으로 억제하며, 합병증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고, 향후 뇌졸중 재발 예방을 위한 최적의 내과적 치료 방침을 세우는 것과 함께, 증상 호전을 위한 재활치료를 시작하는 것이다.

 

뇌졸중 재활치료는 소실된 신경 기능을 반복적으로 수행하게 하면서, 손상된 신경세포 주위로 시냅스가소성이 발휘되도록 유도하는 작업이다. 대다수 약물치료는 환자의 악화와 재발을 막는 것이지 회복을 촉진하는 게 아니다. 뇌졸중 응급치료는 초기에 환자의 증상을 획기적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이지만, 재활치료는 급성기 이후 느리지만 지속적인 뇌졸중 회복을 돕는 유일한 치료법이다.

 

이 책은 의학에 아무 지식이 없어도 읽을 수 있도록 썼으니 두려워 말고 책장을 넘기길 바랍니다. 부디 여러분이 어렵지 않은 이 책의 지침을 충실히 따른 결과 내가 보게 될 뇌졸중 환자의 씨가 마를 정도가 되면, 이 책을 쓴 보람을 비로소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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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미술관
최정표 지음 / 파람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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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미술관]KDI 원장을 지낸 경제학자인 저자가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러시아의 주요 미술관들을 탐방한 기록이다.

 

덴마크는 북쪽의 유럽 중 가장 남쪽에 있고 수도는 코펜하겐이다. 덴마크국립미술관은 서유럽 작품,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작품, 현대작품, 판화와 드로잉, 옛날 석고상 등 26만여 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였다. 미술관의 시작은 16세기 왕의 수집품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최고품은 모두 덴마크의 오아 크리스티안 2세에게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카를스베르 미술관은 칼스버그 맥주로 유명한 카를스베르 가문에서 만들었다. 카를 야콥센은 조각에 빠진 사람이었는데 고대 조각을 수집했고 미술관은 조각의 성지가 되었다.


현대 작품은 크고 난해하다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루이지애나현대미술관은 이런 작품을 잘 소화하고 있다. 유달리 두 작품에 시선이 집중된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과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이다. 한센은 돈을 많이 벌면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집 짓는 것과 예술품 수집이다. 예술품을 수집했고, 전시하기 위해 큰 저택을 지었다. 2년에 걸쳐 저택을 완공했고 지역 명칭을 따서 저택 이름을 오르드룹고르라고 명명했다. 오르드룹고르는 19세기 프랑스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데 인상파 작가들의 그림은 한센이 심혈을 기울여 수집한 것들이다.

 

노르웨이 편에서는 뭉크로 상징되는 노르웨이의 미술관들을 둘러본다. 오슬로에는 뭉크미술관이 따로 만들어져 있지만, 노르웨이국립미술관도 뭉크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관람객도 대부분 뭉크의 작품을 보기 위해 방문한다. 뭉크의 <절규><마돈나>는 모든 사람이 그 앞에서 꼭 사진을 찍으려 하는 미술관의 아이콘이다.

 

노르웨이는 피오르의 나라이고 피오르 관광의 출발점이 바로 베르겐이다. 베르겐은 1년에 300여 대의 크루즈 배가 정박하고 50만 명의 크루즈 승객이 베르겐을 찾는다. <솔베이지의 노래>를 만든 음악가 에드바르 그리그, <인형의 집>을 쓴 극작가 헨리크 입센 등이 베르겐 출신이다. 에드바르 뭉크는 20세기 전후의 노르웨이 화가로 노르웨이는 몰라도 뭉크는 알 정도다. 그의 대표작 <절규>는 세계현대미술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스웨덴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화가 로슬린의 <면사포 여인>이다. 로슬린은 당대 유럽 최고의초상화 작가였다. 가를 라르손의 작품 <큰 자작나무 아래서의 아침 식사>는 가족의 행복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스웨덴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일상 생활용품 등에 많이 패러디되어 사용되고 있다. 스톡홀름현대미술관은 입구의 정원에서부터 예술품을 감상 할 수 있다.

 

에르미타주미술관은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에 있는 미술관이다. 미술관을 만든 사람은 여자 황제 예카테리나다. 그녀가 특히 좋아했던 작품은 보석과 명문이 새겨진 작품이었다. 그녀는 일생 동안 4000점의 최고급 호화작품, 38000권의 희귀도서, 1만 점의 보석, 1만 점의 드로잉, 16000점의 코인과 메달을 수집했다. 수집품은 서유럽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러시아도 문화국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에서도 미술관에는 민간인의 기부와 기증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 트레티야코프는 처음에는 자기 집에 미술관을 열었다. 10년 후 많은 그림을 도난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동생이 수집한 서유럽 작품까지 기증을 받아 러시아 최고의 미술관으로 등극했다. 자택 미술관은 모스크바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모든 수집품을 자기 자택과 함께 모두 모스크바시에 기증했다. 모스크바시는 1893년에 이 미술관을 시립 미술관으로 만들어 공식적으로 개관했는데, 오늘날의 트레티야코프미술관이다.

 

[백야의 미술관]은 미술관의 역사, 소장품, 전시 디테일뿐만 아니라, 미술관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의 중요성, 미술관의 운영방식과 그 사회적 기능을 종합적으로 소개한다. 미술관은 부자들이 나서지 않고서는 설립도 어렵고 유지도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곳을 여행하지 않아도 책을 통해 유럽의 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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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이들에게
박상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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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작가로 사는 데에 거인이 되어 준 시대와 국적을 가리지 않고 힘이 되어 준 작가들의 작품과 그들의 삶을 글로 남겼다. 산문집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이 작품집을 낼 때 첫 독자로서 쓴 독후감이 담겨 있다.

 

마크 트웨인, 현진건, 서머싯 몸, 한용운, 백석, 권정생 등 저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 작가들의 삶과 문학을 조명한다. 그들은 특별한 거인이고 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세상을 두루 살핀다.

 

시인들이 좋아하는 백석 시인은 이미지를 다채로운 감각으로 표현했다. 냄새와 맛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 오줌통을 옆구리에 차고 살아야 하는 병자여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낸 권정생 선생은 비참한 처지나 현실 속에서도 글에서는 유머를 잃지 않았다.

 

어머니는 병원에서 투병 중이다. 이제는 이승의 인연 줄을 놓고 싶지만 존재하는 것만으로/힘이 된다는/네 말 때문에 목숨줄을 붙들고 있다. 하지만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처럼 아름답게 떠나고 싶다던 어머니는 홀연히 하늘길로 떠나셨다.p67(전병석, 병상에서)

 

전병석 시집을 읽어 본 적이 있는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어머니가 퇴원하면 모시겠다고 나서는 자식이 아무도 없다. 어머니는 이를 눈치채셨을까? 혹은 요양원에 모시자는 이야기를 들으셨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둘러 세상을 떠나신 것이 아닐까? 전병석의 [역모] 시는 누구라도 닥칠 수 있는 일이어서 마음이 쓰리다.

 

박병률은 늦게 낳은 아들을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을 잃었다. 아들과 함께 참고서나 사러 갔던 서점.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 그 서점에 끌리듯 가게 되고, 몇몇 책을 읽다가 주저앉지 않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사업하다 망한 친구가 걱정되어 늘 안부를 물었던 박병률. 지금 세상에서는 오로지 자기만 중요해 남의 처지는 잘 돌보지 않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을 둘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감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야말로 글을 쓰는 첫 목적이자 마지막 목적이리라.

 

1장 나의 거인들, 2장 그리움이 안겨 준 사랑의 글들도 좋지만 3장 아름다움을 찾는 여정편 작가들의 수필집이 정감이 간다. 일상의 삶 속에 들어 있는 글감들이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일상의 모든 것이 단순히 지나가는 일이 아니다. 그 속에서 글이 될 만한 것을 잡아낸다.

 

어느 수필집에 있는 글에서 사촌 형의 결혼으로 형수가 될 신붓집에 따라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맛있었던 술을 마시고 자다가 그만 이불에 오줌을 쌌다. 우물가에 있는 양푼을 집어 들고 요를 창가로 밀어 놓고 맨바닥에 자는 척하고 누워 있었다. 난감하기 그지 없는 상황인데 글로 쓰니 유머러스하다.

 

수필은 소설보다 작가의 개인적 삶을 곧이곧대로 담는 경우가 많아 기록이 기능을 한다. 기록하는 이유는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일들을 정리하고자 하는 무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안과 의사인 한영자 작가는 환자들은 눈이 아파 병원에 왔지만, 정작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설명하지 않는다. 의사가 알아서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환자가 하는 말에서 그의 마음 상태를 읽어 낼 줄 아는 의사는 마음의 병까지 들여다본다. 환자 진료가 없는 틈에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오래된 습관이라고 한다.

 

문학을 한다는 것은 억압받는 약자들 편에서 그들의 내면과 외면을 그려 내는 일이다. 그렇다고 큰돈을 벌거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은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좋은 질문 속에는 이미 답도 같이 있다. 하지만 우리 학교 교육은 질문을 잘하는 사람을 걸러 내지 않는다. 문학은 종교를 통해 양과 질을 점차 확대하거나 심화해 왔고, 종교는 문학을 통해 교의를 인간의 현실적 삶 속에 융해해 왔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현재 자신의 삶과 세상의 다양한 삶의 형태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죽은 후보다는 현재의 삶이 훨씬 소중하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이들에게]는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한마디, 그들의 존재 자체만으로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커다란 힘을 얻는 것 같다. 책을 통해 서로에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특별한 사람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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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요리합니다, 정식집 자츠
하라다 히카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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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평범한 동네 음식점인 자츠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람들 삶의 다양한 감정들을 음식과 버무려 통찰하는 이야기면서 개성도 입장도 다른 두 여성이 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서로에게 스며들어 변해가는 풍경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소설이다.

 

남편으로부터 이혼 통보를 받아 혼란스러워진 사야카, 남편은 한 주에 두세 번 자츠에서 밥 먹고 술 한잔하는 것을 즐겨왔다. 여자가 생겼나 하는 의심이 싹텄고 사야카는 호기심에 그 식당을 가보았다. 낡은 정식집으로 음식이 달고 진한 맛에 놀랐는데 맥주와 곁들이며 이 맛이야 하는 남자 손님 목소리가 울렸다.

 

자츠에서 점원을 모집하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주인 미사에는 조우씨로 불리는데 모든 음식은 간장이라 부르는 스키야키 소스로 간을 한다. 몇 주 지나 단골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70대 다카즈 씨는 주에 몇 번씩 오는데 전 주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선대는 조우시키 였고 친척인 미사에가 20대에 이곳으로 왔단다. 부인이 쉰 살쯤에 세상을 떠나고 조우시키 씨가 와병생활을 할 때도 돌봐주었다. 선대가 죽고 결혼도 하지 않은 지금까지 가게를 하고 있었다.

 

사야카는 식사를 끝내고 술을 마셔야 한다는 견해로 살아왔고 밥을 먹으면서 술을 마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수제 크로켓을 만드는 날, 크로켓과 맥주를 마시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밥과 술이 맛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 남편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미사에는 자신은 무뚝뚝한데 싹싹하고 상냥한 사야카를 귀여운 아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름을 부르지도, 일을 하면서도 일일이 대답하거나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예전 친척인 나에를 데려와 알바를 하면서 서로 상처를 받았었다. 자신은 조우시키 처럼 사람을 대하는 법을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카즈가 자택에서 쓰러져 한동안 오지 않았는데 사야카에게 듣고 알게 되었다. 사야카가 자기보다 주변 사정을 알게 된 사실에 감탄했고 불안하기도 했다. 다카즈는 신경도 안쓰는 미사에가 냉정하다고 했다. 그는 열사병으로 쓰러진 뒤, 튀김과 술을 거의 주문하지 않는다. 다른 테이블에 샐러리맨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그때는 온종일 쉬고 싶고, 자고 싶고, 혼자 있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미사에는 예전 손수건 만드는 회사에서 경리와 사무를 보았다. 어떤 계기로 인해 직장 사람들과 깊이 어울리고 싶지도 않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는데 자츠에서 일해 보라는 엄마의 제안으로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동안 아르바이트생에게 음식을 가르쳐 준 적이 없지만 사야카에게는 만들어 볼 거냐 묻기도 하였다. 소질이 있는 귀여운 아이가 떠났을 때, 슬퍼질 것이다.

 

사야카는 남편이 먼저 이혼을 요구했던 이유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해서 밖에서 술을 마신다는 점과 지인인지 변호사인지 여자에게 상담하라고 했고 엄청나게 시끄러운 가게에서 얘기를 나누어야 했던 것, 정성껏 만든 요리를 거의 먹어 주지 않았던 것 등 부모님에게 얘기하는 동안 눈물을 쏟았다.

 

나이도 들었고 메뉴를 여러 가지 하는 것보다 한 두 가지로 정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새해가 되었고 코로나라는 유행병이 돌아 가게를 쉬게 되었다. ‘자츠는 선대와 주방장이 있어서 새벽까지 열었지만 미사에 혼자서 운영할 수 있도록, 조금씩 바꿔 준 사람은 선대였다. 그런 조우시키 씨를 마음 속으로만 좋아했던 옛날을 회상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본가를 찾았지만 오빠와 여동생은 냉대했다. 우연히 라멘 가게에서 주먹밥이 나오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라 호텔에서 며칠 쉬고 돌아와 도시락 가게를 열었다. 주먹밥을 나눠줄 날은 한참 멀었는지도 모르지만, 희망은 버리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에필로그에서 코로나로 다카즈 씨는 딸 가족과 동거를 시작했다. 미사에나 사야카에게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이 변했지만, 그 속에서도 또다시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음식들이 내 눈앞에 놓인 것 같아 먹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자츠에는 오래된 단골 손님들의 입맛을 알고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같이 일하면서 경영을 맡기고 싶다는 미사에의 제안을 사야카는 받아들일까 궁금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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