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신랑과 함께 영화관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이 그리 좋지 않았다. 좀 난해하게 보고 나온 영화였다고 할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우연찮게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볼 기회가 생겨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곤 깜짝 놀라게 되었다. 영화의 시작 화면부터 흘러나오는 멜로디 '인생의 회전목마'는 드라마 '애인 있어요'에서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도해강과 전남편 최진언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구슬픈 멜로디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메인 테마였던 것이다.

구슬픈듯 아름다운 멜로디를 배경음으로 깔고 두 손을 맞잡은 하울과 소피가 하늘을 걷는 이 장면에 취하듯 영화에 몰입에 몰입을 거듭하며 보고 있다가 한 화면에서 궁금증이 들었다. 이 영화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분명 일본 사람인데 소피가 황야의 마녀에게 저주를 받고 집을 떠나기 전에 챙긴 음식들이 '치즈와 빵'인게 의문스러워진 것이다. 옆에 있던 신랑을 콕찔러 물었다. 왜 일본 음식인 오니기리 같은 주먹밥이 아닐까 하고. 정말 무심한듯 '이 영화의 배경은 일본이 아닌데' 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 뱉어낸 말에 나는 그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리곤 부랴부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검색했더니 '다이애나 윈 존스'의 책들이 나왔다. 정말 일본 소설이 아니었구나 싶어서 하나하나 살펴보니 원작은 하울이 무척 바람둥이고 소피는 무지 시크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이 소설을 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어떤 부분들을 취하고 버리며 이렇게 멋진 장면들로 탄생시켰을지 하는 호기심에 원작도 읽고 싶다. 그런데 절판된 책들도 보인다. 제일 아쉬운건 만화책. 멋진 장면들을 책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만 같아 아쉬움이 크게 들었다. 그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용감무식한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으니.. 바로 원서를 구입한 일이다. 한글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내가 원서를 구입하다니. 이건 정말 내 인생에 유례없을 만큼 이 영화에 푹 빠져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매일 아주 조금씩 원서를 해독하는 일을 할 예정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해석을 한다지만 나는 해독을 해야할 만큼 영어실력이 아주 형편없는 고로. 조금씩 노력하다보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상상을 해본다.
무튼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인생의 회전목마'라는 멜로디 제목에서도 찾을 수 있고 또 하울이 소피를 군인들에게 구해내던 첫 장면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하울이 캘시퍼와 계약을 맺던 유년기 시절의 과거와 현재가 연결 되었고 하울과 소피는 아주 오래전 부터 알고 있던 사이라는 점. 또 헛된 아름다움을 쫓아 살아가는 삶보다 흐르는듯 지나는 시간 그대로의 삶을 받아 들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전쟁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 할 수 있는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참 어떤 분 글에 의하면 영화에서 안나오는 소피의 동생이 원작에서는 나온다고 했는데, 영화에서도 아주 잠깐 소피의 여동생 '레티'가 등장한다.

'체자리 카페'에서 일하는 동생 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