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을 향하여
안톤 허 지음, 정보라 옮김 / 반타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번역가이자 작가인 안톤 허가 영어로 쓴 과학소설이다. 그가 영어로 번역했던 <저주토끼>의 작가 정보라가 한국어로 번역했다. 이런 사실이 재밌어서, 그리고 제목이 흥미로워서 읽기 시작했다. 


그는 언어와 시와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그것이 영원까지 이어지리라 생각한다. 더불어, 희망과 사랑의 힘도. 이 책을 과학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나노기술과 인공지능을 소재로 했기 때문인데, 난 그가 보여준 전개 방식이 과학적으로는 큰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과학적 소재는 단지 그의 생각을 펼쳐 보이기 위한 은유일 뿐인지도 모른다. 딱딱한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좀 더 정통적 과학소설을 내가 더 좋아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가 석사 공부할 때 전공했다는 19세기 영시가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흥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한국인이 썼음에도 한국 문학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는 시 하나를 정보라의 번역과 원문으로 다음에 옮겨 놓는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 '내가 죽음을 위해 멈춰줄 수 없어서'이다. 


내가 죽음을 위해 멈춰줄 수 없어서

죽음이 친절하게 나를 위해 멈추었네

마차에는 우리들만 타고 있었네

그리고 불멸이.


우리는 천천히 타고 갔네— 그는 서두름을 알지 못했고 

나는 치워두었네 

나의 노동과 여유를, 

그의 정중함 때문에


우리는 학교를 지났고 아이들이 힘쓰고 있었네

쉬는 시간에 고리 속에서

우리는 바라보는 곡식들의 들판을 지났네

우리는 저무는 해를 지났네


아니 차라리 그가 우리를 지났네

이슬이 떨림과 냉기를 끌어내었네

내 드레스는 오로지 얇고 가벼웠으며

나의 숄은 오로지 그물 비단이었으니


우리는 어느 집 앞에서 잠시 멈추었는데

그 집은 땅이 부풀어 오른 듯 보였네

지붕은 거의 보이지 않았네

처마 장식은— 땅속에


그때부터 수 세기였네 그런데도 

그날보다 더 짧게 느껴지네 

내가 처음 짐작했던 날, 말들의 머리가 

영원을 향해 있다고 (289~290 페이지)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He kindly stopped for me—

The Carriage held but just Ourselves— 

And Immortality.


We slowly drove—He knew no haste

And I had put away

My labor and my leisure too,

For His Civility—


We passed the School, where Children strove

At Recess—in the Ring—

We passed the Fields of Gazing Grain—

We passed the Setting Sun—


Or rather—He passed us—

The Dews drew quivering and chill—

For only Gossamer, my Gown—

My Tippet—only Tulle—


We paused before a House that seemed

A Swelling of the Ground—

The Roof was scarcely visible—

The Cornice—in the Ground—


Since then—’tis Centuries—and yet

Feels shorter than the Day

I first surmised the Horses’ Heads

Were toward Eternity—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ueyonder 2025-09-19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이상한 부분 하나:
301페이지(‘크리스티나‘ 챕터)를 보면 ˝‘이주‘ 이후에 난 10년 정도 보존 처리 됐어.˝라고 알레프가 말한다. 하지만 303페이지를 보면 ˝알레프는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90년 동안 보존 처리되었던 것이다.˝라고 나온다. 둘 중 무엇이 맞는지? 원문의 실수인지, 아니면 번역 과정의 실수인지?
댓글저장
 















<세 개의 쿼크>를 읽다가 발견한 오식 2개만 지적해 놓는다. 


  쿼크로 이루어진 모든 강입자는 무색이다. 중입자는 세 개의 쿼크로 이루어져 있지만, 중간자는 쿼크 한 개와 반쿼크 한 개로 되어 있다. 반쿼크의 색깔도 정해줘야 한다. 빨간 쿼크에 대응되는 반쿼크는 노란(vellow)색이 되고, 초록 쿼크에는 심홍색(magenta) 반쿼크, 파란 쿼크에는 청록색(cyan) 반쿼크가 대응된다. 이렇게 쿼크와 반쿼크에 색깔을 부여하면, 쿼크와 반쿼크로 이루어진 중간자도 무색이 된다. (262 페이지, 밑줄 추가)


반쿼크의 색깔에 오류가 있다. 빨간 쿼크에 대응되는 반쿼크는 청록색이고, 파란 쿼크에 대응되는 반쿼크는 노란색이다[*]. 382페이지에는 올바르게 언급되어 있다. 


... 수병들의 반란은 시민과 노동자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1918년 11월 4일 저녁, 킬은 혁명군에게 점령 당했다. 혁명의 불길은 독일 전역으로 거세게 번져나갔다. 1919년 11월 9일, 베를린에서는 빌헬름 2세의 퇴위가 발표되었고, 독일이 민주 공화국임이 선포되었다. 빌헬름 2세는 분노했지만, 그렇다고 적을 눈앞에 두고 베를린을 향해 진격할 수도 없었다. 황제는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11월 혁명'이라고도 부르는 이 무혈 혁명은 바이마르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390 페이지, 밑줄 추가)


빌헬름 2세는 1919년 11월 9일이 아니라 1918년 11월 9일에 퇴위했다. 킬에서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킨지 며칠 안 되어서다. 


위의 오식이 이 책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난 여전히 이 책이 매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며, 저자의 노력에 큰 박수를 보낸다. 


---

[*]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Color_charg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세 개의 쿼크 - 강력의 본질, 양자색역학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김현철 지음 / 계단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연에는 네 개의 근본적 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중력, 전자기력, 약력, 그리고 강력이다. 전자기력은 전하를 통해 물질(원자)의 구성에 기여하며 전자기파를 발생시킨다. 약력은 핵의 붕괴에 작용하는 힘이고, 강력은 핵을 결합하는 힘이다. 전자기력과 약력은 전기약력으로 통합되었으며, 강력은 양자색역학으로 설명되었다. 전기약력과 양자색역학은 모두 양자장론에 기반한 '게이지이론'의 틀로 이해되어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으로 알려지게 된다. 단, 중력만은 위의 통합 노력에서 벗어나 아직까지 별개의 '힘'으로 취급된다. 중력과 나머지 세 개의 힘을 통합하고자 하는 노력이 양자중력 이론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이며, 초끈이론도 이러한 노력의 일부이다. 


김현철 교수의 <세 개의 쿼크>는 강력을 설명하는 양자색역학이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그 역사와 물리학자들의 삶과 일화와 의의를 일일이 짚어가며 우리 앞에 펼쳐 보여준다. 워낙 다양한 인물과 물리적 내용이 논의되므로, 읽을 때는 매우 흥미롭게 읽었지만 다 읽고 난 후 온전히 기억하기는 어렵다. 자연현상에 숨어 있는 규칙을 발견하기 위한 물리학자들의 노력에 대한 감탄과 여운이 깊게 남는다. 읽으면서 이러한 세세한 역사적 사실들을 집대성한 저자의 연구 분야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강력에 대한 3개의 시리즈 중 <강력의 탄생>을 잇는 두 번째 책이다. 세 번째는 아직 출간되지 않았으며, 1979년 이후의 이야기를 다룰 것이라고 한다. 


책 속 구절을 다음에 인용한다.


  데모크리토스는 세상을 이루는 건 아토모스(atomos)와 공허뿐이라고 주장했다. 물질을 이루는 아토모스와 원자가 숨 쉴 공간인 공허. 오늘날 진정한 아토모스는 쿼크이고, 공허는 양자색역학의 진공이었다. 진공이란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다. 진공 속에 전자 하나를 두면, 진공에서는 음전하와 양전하가 생겨났다 없어지길 끝없이 반복한다. 그래도 이건 양자전기역학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다루기가 까다롭지만 풀 수 있다. 그러나 양자색역학에서 진공은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끔찍할 정도로 어렵다. 그리고 쿼크는 강입자 속에 영원히 갇혀 있고, 그 사실을 명징하게 증명할 수학적인 방법은 여전히 부재하다. 강력의 근본 이론을 찾았다고 해서 종착지에 도달한 건 아니다. 이제 절반을 이뤘고, 강력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문제다. (434~435 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겔만은 논문 제목을 "중입자와 중간자의 개략적 모형'이라고 정했다. 그리고 언젠가 《피직스 레터》 논문집의 편집인이 자신에게 새로 생긴 논문집에도 논문을 투고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게 기억이 났다. 《피지컬 리뷰》나 《피지컬 리뷰 레터》에 이 논문을 보내면 분수 전하라는 말 때문에 논문 심사위원들의 비난이 쏟아질 뿐 아니라 게재 거절을 당할 위험이 있었다. 아무래도 《피직스 레터》에 논문을 보내는 게 안전해 보였다. 겔만은 1964년 1월 4일에 이 논문을 《피직스 레터》에 투고했다. 편집인이었던 폴란드 출신의 프랑스 물리학자 자크 프렌트키(Jacques Prentki)는 겔만의 논문을 읽으며 쿼크가 분수 전하를 가진다는 사실이 불편했지만, 논문을 받자마자 게재를 허락했다. 논문은 투고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1964년 2월 1일에 발표되었다. 틀린 논문이면 욕먹는 건 겔만일 테고, 훌륭한 논문이면 《피직스 레터》의 위상이 높아질 테니, 프렌트키에게는 아쉬울 게 없었다. 쿼크를 처음 제안한 이 논문은 오늘날 4000번이 넘게 인용되었으니, 프렌트키는 훌륭한 편집인인 셈이다. (231 페이지)


뭐든지 새로운 것에는 저항이 따른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5-09-05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댓글저장
 
모비 딕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14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디어 모비 딕 상권을 끝냈다. 우리의 주인공인 향유고래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더불어 화자인 이슈마엘의 이러저러한 '잡소리'도 기억난다. 고래잡이들에 대한 이야기, 고래에 대한 이야기,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석유나 전기가 대체하기 전까지 기름을 얻기 위해 고래를 잡던 인류 역사의 일면을 엿보게 된다. 여기에 얽힌 괴물 흰 고래의 이야기가 하권으로 이어진다. 에이해브 선장과 흰 고래 모비 딕이 벌이는 대결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이 야릇하고 복잡한 현상에는 우주 전체를 엄청난 장난으로 여기게 되는 묘한 순간이나 상황이 있다. 하지만 거기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만 당하는 거라고 확신에 가까운 의심을 한다. - P377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5-09-02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9-02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9-02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9-02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