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너무 낯선 나 - 정신건강의학이 포착하지 못한 복잡한 인간성에 대하여
레이첼 아비브 지음, 김유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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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내게 너무 낯선 나』는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거식증,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산후우울증, 경계선 인격 장애 등 정신질환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뉴요커〉 전속 기자이자 의료윤리, 정신의학, 사법 및 교육 등을 주제로 다양한 글을 기고하고 있는 저자 레이첼 아비브의 출판 데뷔작이다. 이 책은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재능 있는 신인을 발굴하는 화이팅어워드 논픽션 그랜트상을 수상한 바 있다. 거식증, 우울증에서부터 조현병, 경계선 인격 장애까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정신의학적 해석 방식의 한계에 부딪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현대 정신의학이 정신질환의 증상을 구분하는 방식과 평범한 공동체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 증상을 경험하는 방식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전제한다. 한 중년 남성이 경험한 만성적 외로움은 ‘우울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기도, 가정불화로 압박감을 느끼는 소녀의 식사 거부는 ‘거식증’으로 명명되기도 한다는 점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외로움과 우울증, 식사 거부와 거식증이 과연 우리의 생각만큼 직선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개념일까? 저자가 의문을 제시하고 있는 대목이다. 

먼저 이 책 『내게 너무 낯선 나』는 이처럼 인간의 고유한 경험과 의학적 진단 사이에서 납작해지다 못해 ‘지워진’ 이야기들을 추적해 그 이야기들이 가능했던 본래의 모습들을 펼쳐 놓는다. 저자 레이첼 아비브가 직접 인터뷰하고 탐구, 복원한 이야기들은 평범하디 평범한 우리, 그리고 우리의 삶 속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는 「레이첼 이야기」라는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거식증'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의 어렸을 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찬찬히 적어가는 이야기는 자신의 주제를 진단으로서가 아닌, 철저히 인물-저마다 열망, 자아 성찰, 상심, 기지 그리고 희망을 갖고 있는-의 차원에서 탐구한다. 『공감 연습』의 저자 레슬리 제이미슨은 "부조리와 불평등으로 얼룩진 사회적 풍경 속에서도, 환자들의 내면에 귀기울이며 그들이 설명하는 이야기와 맞아떨어지지 않는 순간을 레이첼은 잡아낸다"는 지적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설득력을 갖는다.



외롭고 무관심하고 쓸쓸한 이 세계를 살아가다 보면 때때로 자기 자신과 평화롭게 살 수 없는 시기가 찾아오곤 한다. 마흔한 살의 백인 남성 레이도 그러했다. 신장학 전문의이자 잘나가는 투석 회사의 CEO였던 그는 자신의 경영 과실로 회사가 위기에 빠지자 우울과 강박에 사로잡힌다. 부모님이 이혼한 지 1년 정도가 지난 여섯 살짜리 소녀는 3일간 식음을 전폐한 끝에 의사로부터 식이 장애를 진단받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다름 아닌 저자 본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여섯 살의 레이첼은 음식과 몸에 대한 허무맹랑한 생각들을 키우며 거식증에 ‘채용’된 듯 보인다.

책에 따르면 거식증이라는 단어는 너무 강력해서 나는 이를 입에 담는 것조차 두려웠다. 그 당시 발음 규칙을 익히고 있던 중이었으므로, 내게 모든 단어는 의미를 체화하고 있는 구체적인 실체처럼 느껴졌다. 나는 음식의 이름을 말하려 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내게 그 이름을 말하는 것은 그것을 먹는 것과 똑같이 느껴졌지 때문이었다. "그런 단어들이 자기 앞에서 사용되면 레이첼은 귀를 막곤 했다"라고 심리학자는 기록했다. 나는 8(eight)이라는 숫자를 말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 발음이 '먹었다(ate)'와 같았기 때문이다. 내 고집에 지친 간호사 하나는 나를 "이빨도 안 들어가는 쿠키" 같다고 했고, 당연하게도 그 말은 나를 속상하게 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자신이 여섯 살 소녀 때 거식증 환자로 입원까지 하고, 그 과정에서 환자인 자신의 이야기가 얼마나 반영되지 않은 채 무시되었는지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후 학교로 돌아온 소녀 레이첼은 여섯 살인데도 순수한 의지만으로도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이 가능해 보였다고 쓰고 있다. 만약 자신이 병원에 더 오래 있었거나 학교에 돌아왔는데 아이들이 차갑게 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행히 6주만에 퇴원한 레이첼은 거식증에 관한 많은 책을 읽고 나름대로 탐구한다.

거식증을 가까스로 피했다는 생각 때문에 저자는 정신질환의 초기 상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밝힌다. 정신질환의 초기 상태란, 뭔가 강렬하게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 같지만 아직은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세상을 재구성할 정도까지는 가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고 친절한 설명도 덧붙인다.



흔히들 정신질환은 만성적이고 고치기 힘들며 삶을 송두리째 삼켜 버리는 힘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의 초기 상태에서 우리가 그 질환에 대해 이야기하는 많은 부분이 과연 그것의 진행 과정을 얼마나 많이 결정하게 될까? 자기 자신에 대한 이러한 이야기들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이야기에 스스로를 가둬 버리기도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p.41)

저자는 또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들의 정신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관련해 그 진실성을 평가하기 위해 '병식(病識)'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정신의학 분야에서 이 개념은 매우 중요하며 거의 마법적인 힘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34년 〈영국 의료 심리학 저널〉에 실린 중요한 논문에서 정신과 의사인 오브리 루이스는 병식을 "자신에게 발생하고 있는 병리적 변화에 대한 환자의 올바른 태도"라고 정의했다고 안내한다. 이를 테면 '올바른 태도'를 가진 환자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자신에게 갑자기 말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약을 복용하면 더 이상 듣지 않을 수 있는 어떤 목소리를 듣고 있음을, 그러한 병적 증상에 시달리고 있음을 식별한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자가 입원할 때마다 병식이 평가되는데, 이는 환자의 의지에 관계없이 계속해서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개념은 '올바른 태도'라는 것이 어떻게 문화나 인종, 민족성, 신앙에 의해 좌우되는지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저자의 합리적 주장이다. 연구에 따르면 유색인종의 경우 '병식이 부족하다'고 평ㄱ랍맏는 사례가 백인에 비해 더 많다.' 아마도 의사들이 유색인종의 표현 방식에 익숙하지 않거나, 아니면 이들이 의사의 말을 잘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병식이란 환자가 의사의 해석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는지를 측정하는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이에 한 가지 사실을 덧붙인다. 50년 전 정신분석학이 정점을 찍은 시기에 병식은 일종의 '계시(epiphany)'와도 같은 것으로 설명되었다는 것이다. 즉 무의식적 욕망과 갈등이 환하게 의식되는 것을 의미했다. 예를 들어 한 환자가 아버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억압된 증오를 스스로 인식하고 그 금지된 감정이 자신의 인격을 형성해 왔음을 인정할 때, 그 환자는 '병식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1980년와 1990년대에 들어서 지배적 이론으로 부상한 생물의학적 질환 설명은 이러한 종류의 병식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올바른 태도'는 이제 새로운 인식에 좌우되었다는 것. 이때부터는 환자가 자신의 뇌에 생긴 문제 때문에 정신질환을 갖게 되었다고 이해할 때 비로소 병을 식별한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생물의학적 접근 방법은 환자와 가족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의 도덕적 문제를 해결했고, 따라서 사회적 낙인으로부터 환자를 어느 정도 자유롭게 해 주리라는 기대를 받게 되었다. 1999년 미국 공중 보건부 장관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데카르트가 처음 제시한 정신과 육체라는 잘못된 이분법"에 근거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정신질환과 다른 질환 사이를 구별하는 과학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단언했다.

물론 그렇게 이야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그러한 생물의학적 프레임이 사회적 낙인 자체를 풀어 준 것 같지는 않다. 연구에 따르면 정신질환이 생물학적이거나 유전적 원인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질환이 환자의 나약한 성격 때문이라는 식으로 가혹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정신질환을 환자의 통제를 벗어나 있고 그들 사회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위험방편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의학이라는 사고의 틀이 특히 질환이 진행되고 있는 시기나 위기가 닥친 시기에 지속적인 자아감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해석과 이해를 되려 막아 버릴 수도 있음을 나는 이 책의 제목 『내게 너무 낯선 나』(이 문구는 하바의 일기에서 가져왔다)를 통해 상기시키고자 한다. 「숨어 있는 자아」라는 논문에서 윌리엄 제임스는 "모든 과학의 이상은 자기 완결적이고 닫혀 있는 진리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학자들은 "분류되지 않은 잔여물"을 무시함으로써 그러한 목표를 이루게 된다. 이 잔여물이란 "이상적인 체계에 맞지 않는" 증상들과 경험들을 말한다. 

이 책은 그가 말한 '자기 완결적이고 닫혀 있는 진리의 체계' 그 '바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의 삶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펼쳐지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인간 경험의 바깥 가장자리, 다시 말해 '정신의 오지'라고 불릴 만한 곳에서 펼쳐진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러한 소통 불가능성을 극복하려고 했던 환자들의 이야긱와 그 세계를 번역하고자 한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과연 그것이 나인가? 내가 아닌가? 나는 대체 무엇인가?〉, 2장 〈내게 닥친 고난은 나를 완전히 버리라는 신의 계시인가?〉, 3장 〈내 말을 좀 들어 주세요〉, 4장 〈의사는 내 마음을 읽었다. 나는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등이다. 1장은 우울증의 이야기이고, 2장은 조현병에 대한 사례 탐구로 설명되고 있다. 또 3장은 산후우울증, 그리고 4장은 조울증과 경계선 인격 장애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프롤로그〉는 자신의 거식증 진단과 치료 과정, 이후 정신질환이라 일컬어지는 병에 대한 접근 등을 대체적으로 다루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완벽한 타인이다'는 제목의 〈에필로그〉에서는 앞서 언급한 '하바의 거식증'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리짓는다.

각 장에서 발췌된 문장들은 별도로 맨 앞에 따로 배치함으로써 병증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1장(레이의 이야기)의 경우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한다. 맨 앞으로 끌어낸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야." 그의 강박적 후회는 어떤 '상실'에 다가가려는 방편이었다. 그 상실이란 바로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삶을 상실한 것을 의미했다. 레이는 자신이 실패했던 상황과 이유를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도 끝없이 반추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도달했고, 도달할 수 있었던 이상적 모습에 사로잡혀서 자신이 실패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있었다.

2장(바푸의 이야기) '조현병'에는 "저는 종교적 열정을 버릴 수가 없어요. 저 때문에 모든 가족이 혼란스러워합니다." 엄마가 조현병 진단을 받았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지만 가족들 중 그 누구도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조현병'이라는 낯선 진단명은 엄마의 경험을 이해하기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3장(나오미의 이야기)은 '산후우울증' 이야기다. "자신이 좋은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인생이 달라져요." 나오미는 자신이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이 모든 일은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흑인 여성이 처한 은폐된 현실에 다름 아니며, 그 현실이 비로소 자신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들 문장은 장의 성격뿐만 아니라 병에 대한 인식의 범주나 의학적 분류 등이 아직도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들이다.



로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술된 4장은 '조울증 그리고 경계선 인격 장애'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낯선 사람의 삶에 갇혀 있었던 거예요." 한때 로라는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의식적이든 아니든 로라는 자신의 질환에 맞게 스스로의 삶을 바꿨다. 하지만 자기 삶을 설명해 주고 인식적 명료함과 의학ㄹ적 치유를 동시에 제공해 주리라 약속했던 그 이야기가 실상은 텅 빈 강정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배신감을 느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하바의 거식증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완벽한 타인이다"는 문장이 주는 섬뜩함에 하바는 살을 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으로 가는 방법이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하지만 "완전하고도 완벽한 행복의 상태"인 비쩍 마른 상태에 가까이 다가간 순간, 하바는 다시 자신이 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써 왔는지를 생각한다. "내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 버리고, 내게 의미 있는 모든 것은 다 희생당하는구나."


레이와 바푸, 나오미와 로라는 모두 제각각 자신의 질병에 대해 글을 쓰려고 했다. 그들이 쓰려는 언어가 그들을 설명하기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그들은 깊은 자의식을 가지고 자신들의 심리적 경험을 서술했다. 또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감각이 진짜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보여 주고 싶어 했다. 자신이 신과 결혼했다고 믿든, 인종차별주의로부터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믿든 관계없이 말이다. 그들은 자신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를 권위자들에게 (바푸의 경우에는 영적 스승들에게, 나머지 경우에는 의사들에게) 알려 주려고 애썼다. 그들의 고통은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경험한 고통의 경로와 정체성은 모두 바뀌어 갔다.(p.327)


저자 : 레이첼 아비브(Rachel Aviv)


미시간주에서 나고 자랐다. 2004년 브라운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3년부터 《뉴요커》의 전속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주로 의료윤리, 정신의학, 사법 및 교육을 포함한 다양한 주제와 관련해 글을 기고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정신의학적 설명의 한계에 부딪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내게 너무 낯선 나』. 데뷔작인 이 책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뿐 아니라 《워싱턴 포스트》 《뉴요커》 《커커스》 《북포럼》 《NPR》 등 유수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비평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화이팅어워드 논픽션 그랜트상을 수상했다. 이 책이 낯선 사람으로 환영받기를 바라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문처럼 상상되길 희망한다.


역자 : 김유경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M.C. 에셔 : 무한의 공간』 『그는 지도 밖에 산다』 『강조해야 할 것』 『성 정치학』 『별에서 온 아이』 『그렌델』 등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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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김태영 지음 / 담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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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전적 에세이는 인생을 잘 산다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게 해준다. 삶은 나를 믿고 사랑하며 잘 극복해 나가는 것이고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되새기도록 해준다.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명쾌한 답을 제시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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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김태영 지음 / 담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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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는 중국 동포가 경상도 남자를 만나 20년 결혼 생활을 한 기록이자 한국 생활 적응기이기도 하다. 저자 김태영은 이른바 '조선족'으로, 스물네 살 꽃다운 나이에 한국 남자와 결혼함으로써 정치·경제·사회·문화가 다른 대한민국의 한 일원으로써, 주부로써, 아이의 엄마로써 적응은 물론 삶을 스스로 이끌어간 성공 사례로서 자신의 결혼 생활을 담담히 쓰고 있다. 힘겨운 10대 시절을 뒤로 하고 20대에서 40대에 이르기까지, 국적이 다른 사람으로 한국에서 살면서 겪은 고생과 불편함, 편견과 선입관에 맞서는 이야기부터, 소녀에서 바로 아줌마로 급진하게 되면서 겪는 가치관의 혼란과 자아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관한 이야기까지 거침없이 펼쳐져 있다. 희망을 찾아 한국으로 온 저자는 동포로서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선 편견이 가장 힘들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결혼이 확정되고 남편과 함께 지방 어느 작은 도시에서 시어머니를 처음 만나던 날의 에피소드가 쉽지 않은 결혼 생활을 예고하는 듯하다.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서 삼 남매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찍 철이 든 우리는 공부를 이어가는 대신 각자의 생계를 책임지기로 했다.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로 인해 학업을 마치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운이 좋았다. 식당에서 설거지하는 내가 안쓰러웠던 외할머니는 여기저기 부탁해 한국 기업에 취업시켜 주셨다. 당시 중국에는 제대로 된 노동법이 없어 미성년자가 일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나는 미성년 때 일을 시작해 성인이 되었다. 한국 기업에 다니면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일상을 살았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날을 보내다가 문득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다.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고 싶었다. 그때 떠오른 곳이 한국이었다. 2003년 8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나의 이민 생활이 시작되었다.”


도착했다는 남편의 말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활짝 웃으려고 표정도 다시 지어 보았다. 그러나 차에서 내리는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 하나 마중 나와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어머니를 불렀고, 한참 뒤 어느 귀퉁이에서 어머니가 천천히 걸어오셨다.

“왔나?”

단 한마디. 어머니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셨고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대단히 반겨 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중국인 며느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p.23)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가야 했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고, 독서와 운동 등 여러 활동을 통해 자신을 찾는 여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은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으로 바뀌었고,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저자가 자신을 사랑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이 에세이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는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는 따뜻한 위로와 함께, 독자들에게 ‘나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을 제안한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깨달음을 통해 긍정성을 향해 나가도록 격려한다. 사회적 편견과 도전 앞에서 주저하는 사람,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 사람, 자기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는 “한국으로 시집간 아랫집 김 씨네 딸이 술주정뱅이를 만나서 맞고 산다더라, 건넛집 박 씨네 딸은 다리가 불편한 남편을 만나서 고생한다더라”는 이야기들이 조선족 사회에 퍼져 있었지만, 남편의 서글서글한 미소와 유쾌한 성격에 이끌려 한국으로 들어온다.

한국에서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는 짐작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같은 말을 쓰지만 현격히 억양이 다른 사투리, 더욱이 북한 사람들이 쓰는 사투리라서 자칫 오해받기도 십상이다. 

저자는 “태영아! 밖에서는 중국말 하지 마. 사람들이 무시해”라는 오빠들의 말처럼, 처음에는 편견과 선입견으로 인한 아픔을 겪어야 했다. 20대 초반 또래들이 전공 서적을 팔에 끼고 캠퍼스를 누빌 때, 저자는 아이를 업고 있었다. 자격지심이 생겼고, 비교에서 오는 불행의 후폭풍을 견뎌야 했다. 30대가 되어서는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기 위해 많은 것을 시도했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자동차 사이드미러 조립원, 섬유회사 원단 검사원, 공연단 행정업무 담당자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렇게 40대에 들어섰고, 마흔세 살이 된 지금, 1,553세대 규모 아파트의 경리가 되었다. 작가는 우여곡절 많은 과정을 통해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두려움이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로 바뀌는 변화를 경험했다.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실 국적은 큰 의미가 없다. 더욱이 세계화가 진전된 지 30년 이상이 흘렀는데 우리는 남북 분단 상태라 그런지, 한민족이란 단일민족 강조 때문인지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아직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어쩌면 잦은 외침에 의해 수많은 세월 피해를 받은 민족으로서의 피해의식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진보했다. 90년대 이전에는 우리도 외국을 마음대로 여행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데다 법적으로도 해외여행이 그리 쉽지 않았다. 당연히 외국의 문물을 보고 느끼는 데 익숙하지 못했다. 거기에 국수적 느낌이 국민 전체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는 IMF라는 초유의 금융 위기 상황으로 귀결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국수주의나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는 데 일조를 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 책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는 중국 동포로서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이 상황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완전히 개방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은 저자가 대한민국에 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저자는 자신이 살기 위해 적응해야 했고, 적응하는 과정은 다른 외국인보다 훨씬 잇점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꾸준하고 부단한 노력으로 이루어냈다. 지금은 자신을 비난하던 단계에서 이젠 스스로를를 사랑하게 됐다. 원하고 바라던 것을 이루어낸 자긍심과도 일맥상통한 심경이다. 저자는 그동안 ‘무너져도 다시, 쓰러져도 다시’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살다 보니 길이 생겼고, 그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그 여정에 내가 있었다’라는 작가의 당찬 말이 아름답다. 또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어떤 역경도 헤칠 수 있을 것이란 공감도 간다.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돌진할 수 있는 용기와 열정이 저자를 지탱하고 있는 원동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나를 믿고 사랑하며 잘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살면서 부딪히는 실패와 고난 때문에 우울하고 비참할 때, 주어진 것보다 주어지지 않은 것을 부러워하며 억울해하지 말아야 한다. 나의 인생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탈북민, 중국 동포 등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말이다. 저자는 단일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대한민국에서 며느리로 산다는 것,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직접 경험한 일들을 진솔하게 이 책에 담았다.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엄청난 열정과 쉼 없는 노력이 스스로를 키우는 밑바탕이 되었고, 결국 '나다운 나' '자랑스러운 나'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 책은 저자의 진솔한 기록을 바탕으로 주위의 한국인들도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에세이지만 성장 소설처럼 스토리가 읽히는 것이 흥미롭다. 진실의 짧은 조각들을 꿰맞추니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된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재미 있다. 남의 노력을 '재미있다'로 표현한 것은 무례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독자는 저자의 노력이 우리 국민들에게 외국인 차별을 없애는 데 영감을 주기 때문에 한 표현이다. 양해를 구한다. 이 책은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 사람들에게도 명쾌한 답을 전해줄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가 무너지고 힘들어하는 자신에게 해줄 말을 몇 개 인용해 여기에 적는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비교하지 마. 너만의 속도로 가면 돼.”

“실수해도 괜찮아. 세상 무너질 일 아니야.”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 완벽해지려고 발버둥 치지 않아도 돼.”

“오늘도 고생했어.”(p.182~183)



이 책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나는 조선족입니다〉, 2부 〈이방인으로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 3부 〈무너져도 다시, 쓰러져도 다시〉, 4부 〈나를 사랑하기 위한 연습〉 등이다. 각 부는 7~8개의 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합쳐 200페이지에 조금 못 미치는 작은 책이다. 그러나 진솔하고도 노력의 결정체로 만든 언어는 한 문장 한 문장 힘과 무게감이 있어 천천히 읽을수록 저자의 진심이 전해져 오는 듯한 느낌으로 가슴속이 가득 채워짐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중국에서 온 조선족아다」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두려움이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삶은 혼자서 가는 여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썼다. 그는 「나는 이제 이방인이 아니다」란 제목의 〈에필로그〉를 통해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알아내고, 나다움을 찾아가면서 삶이 바뀐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한국인들이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기보다 저자 스스로 외국인이라는 울타리를 쳐 놓고 그 울타리를 넘지 못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힘들어 주저앉던 날, 상처받아 움츠려들던 날, 두려움에 도망쳤던 날, 날카롭게 스스로 비난하며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던 날, 이런 날들을 극복하며 지금의 내가 되었다."(p.193)


저자 : 김태영


여전히 세상이 궁금하고, 또 하고 싶은 것이 많은 40대.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좋아하며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필요한 용기를 독서와 경험을 통해 얻어가고 있다. 여러 직업을 경험하며 아파트 경리가 되었다. 가장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주저함이 없다. 더 넓은 세상을 비상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중이다. 공저 『언니들, 인생을 리셋하다』,『한 번은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

인스타 @taeyeong_0211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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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도시의 선택 - 자기다움으로 혁신에 성공한 세계의 도시
최현희 지음 / 헤이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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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사랑받는 도시의 선택』은 도시 재생에 관한 연구이자, 도시 재생 방향과 방법 등을 두루 담았다. 저자 최현희는 우리나라 곳곳에 각자의 정체성을 살린 매력적인 도시가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구했던 내용을 다듬어 이 책에 담았다. 서울 등 우리나라 도시는 근대 이후 발전은커녕 오히려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의 필요에 따라 도시의 변화가 심각하게 왜곡되었고, 그나마 남은 도시도 6.25 한국전쟁으로 폐허화돼 간신히 살아난 국민들은 도시 재생 능력도 갖지 못했다. 휴전 협정으로 전쟁이 멈췄을 때는 도시 건설은커녕 재생도 꿈꾸지 못할 정도로 온 국토가 황폐화되었다. 겨우 산업화를 시작했을 때에도 도시 노동자들이 먹고 가르치기 위해 서울로, 서울로 집중됐다. 그나마 건물이 있고 교통 인프라가 조금 갖춰진 서울은 주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책 오로지 경제 발전에 전력을 기울여야 했다. 적절한 도시계획도, 도시 노동자 수용 능력이 없는 도시에는 무허가 건물들이 난립했다. 서울을 '살 만한 도시'로 탈바꿈시킨다는 것은 요원한 길인 것만 같았다.

이로 인해 수도와 지방의 균형 발전은 후순위로 밀려났고, 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도시와 지방의 인구는 기형적 인구 분포를 보였다. 경제 발전을 우선 국책 사업으로 진행하던 정부 역시 경제 발전의 주요 역할을 할 곳들만 먼저 발전시키기에 급급했다. 다행히 경공업 중심의 경제가 중공업으로 옮겨가며 도시 건설 능력도 차츰 생기기 시작했다. 국민들의 교육열은 수많은 인재를 길러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전 국토를 균형 발전시키기에는 부족했다. 정부 정책에 따라 서울과 주요 도시 몇몇은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농촌 지역 등은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농사 지어 먹고 살기 어려우니 도시 노동자로 나섰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 이런 현상은 지속되었다. 80년대 들어 산업화가 다소 진전되고 임금 수준도 향상되었지만 이젠 빈부의 차가 극심해지는 자본주의 허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파트 개발 붐이 일어났다. 집값은 도시 월급 생활자나 저임금 노동자가 넘볼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부동산 투기는 이런 과정에서 벌어진 자본 왜곡 현상이다.



그러나 이런 험난한 과정을 딛고 일어난 대한민국은 대단한 나라임에는 틀림없다고 독자는 믿게 됐다. 군부 독재를 딛고 민주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민주 인사들이 희생됐지만 짧은 시간에 민주화가 진전됐고, 산업화도 성공해 경제적으로 안정돼 갔다. 90년대는 OECD 가입 등 선진국 흉내를 내려다 IMF 금융위기를 겪었다. 이것도 국민들의 일치된 힘으로 극복해 냈다. 지금은 세계 경제력 10위 안의 '경제 대국'의 평가를 받고 있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자부심이 느껴질 정도로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라를 다시 세워 건설하고 민주화 과정이 반 세기만에 이루어진 나라는 없다고 하니 '한강의 기적'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독일이 제1, 2차 세계대전의 패전을 딛고 다시 일어선 것을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말한 데서 인용된 것이지만 독일과 일본의 기적과는 또다른 의미가 있다. 

사실 독일과 일본은 전쟁 전에 이미 선진국들이어서 인프라와 국민들의 의식이 선진화되어 있어 회복하기가 더 쉬워졌다. 더욱이 일본은 전후 복구 보상에 대한 책임도 면제됐다는 게 알려진 이야기니 그들은 기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 한국전쟁의 호기를 맞아 미국이 군수품을 일본에서 만들어 보급한 데 따른 이익을 얻어 챙긴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갖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순전히 '운이 좋아서'라고 폄훼할 이유는 없다. 독일, 일본의 도시 재생을 보면 역시 선진국의 자격을 갖춘 것이라고 할 만하다. 

저자 최현희는 요즘 이 책에서 인구 소멸과 도시 소멸이 급속히 진행되는 시대라고 전제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북적이던 도시가 쇠락의 길을 걷는 일을 어렵지 않게 불 수 있다는 것이다. 크고 작은 도시들이 도시 재생, 도시 혁신을 목표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발표하고 추진하지만 성공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에 저자는 도시 재생이나 도시 혁신을 위해서는 어떤 문제들을 선결해야 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사례 중심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특히 국내 〈1913송정역시장〉, 〈위례스토리박스〉 등의 프로젝트 기획에 참여하고 성공으로 이끌었던 저자가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변화를 만들어 낸 세계의 도시들을 연구했다. 혁신을 위한 조직을 구성하고, 원활한 진행을 위한 법률과 제도를 개선하며, 고유한 자원과 재원을 바탕으로, 도시 안팎의 사람들에게 문화예술 활동을 통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며 사랑받는 도시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어떤 선택을 했는지 하나하나 분석하고 짚어준다.



저자는 또 이 책을 통해 각자의 도시에 적용할 수 있도록 고안한 〈도시 혁신 다이아몬드 프레임워크〉를 제시한다. 이는 도시 혁신을 통합적인 시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도구로서 저자가 직접 고안했다. 저자에 따르면 도시 혁신을 추진할 때 문화예술 활동과 자산, 커뮤니티, 행벙적 요소를 통합하는 총체적인 접근 방식 채택은 필수다. 한발 나아가 성공적인 해외 사례에서 배우고 지역 상황에 맞게 전략을 조정해야 우리의 도시가 활력을 얻어 지속 가능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살아남을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사람으로 가득했던 거리에 빈 상가가 늘고 있다는 소식이 전국 곳곳에서 계속해서 들려온다. 인구 소멸과 도시 소멸의 시대, 살고 싶고 방문하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한 사람들의 관심과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글로벌 성공 사례에서 영감을 얻어 우리만의 고유한 상황에 맞춰 독특함을 펼칠 수 있기를 저자는 기대하고 있다. 이 책이 문화예술로 재미있는 도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전하고, 다양한 도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집필된 것임을 「당신은 어떤 도시에 살고 싶나요?」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분명히 하고 있다.

도시, 특히 우리 도시는 지금 급격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그 어느 때보다 도시 혁신에 대한 방향성이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도시는 단순히 건물과 인프라의 집합체가 아니라 우리의 문화적 가치, 경제적 성장, 사회적 결속을 반영하는 살아 숨 쉬는 실체로 변화,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시의 활력은 단순히 미적 매력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거하는 도시민의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시작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우리나라의 도시 혁신은 정부 주도의 사업 추진, 민간 부문의 토지 개발, 지역·지방과 각종 위원회의 참여가 결합되어 추진된다. 문화도시 선정을 통해 문화예술 활동을 도시 혁신의 요소로 끌어들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 논리로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단절되는 일은 여전히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꼬집는다. 특히 인구 감소로 도시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 도시에게는 도시의 경쟁력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모두 6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도시의 시대」, 2장 「도시, 변화가 필요한 순간」, 3장 「도시, 문화예술로 새로 태어나다」, 4장 「도시 혁신에 성공한 네 개 도시」, 5장 「도시 혁신 사례, 다이아몬드 프레임워크 분석」, 6장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등이다. 각 장마다 2~4개의 하부 항목을 두고 각 장의 주제로 수렴된다. 1장에서는 〈도시를 도시답게 만드는 문화예술 활동〉, 〈모든 도시는 문화예술로 통한다〉, 〈창조도시에 필요한 창조계급〉, 〈도시, 문화예술 영역을 스토리텔링하다〉 등 4개의 항목을 두고 설명한다. 파리의 '모나리자'에 이어 '명실상부한 현대 문화예술의 중심지 뉴욕'의 거듭남을 말한다. 책에 따르면 뉴욕은 금융, 패션, 미술, 출판, 방송, 연극, 영화, 광고의 중심지로서 세계 경제와 문화 수도로 불릴 정도의 명성을 지녔다. 도시 곳곳에 수많은 미숡롼과 박물관, 연극 극단이 자리잡고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뉴욕은 오일쇼크로 재정이 파탄 난 폐허 같은 도시였다. 영화 〈배트맨〉의 매춘과 마약이 넘쳐나는 악명 높은 범죄도시 고담 시티가 바로 황폐했던 옛 뉴욕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 즈음 뉴욕에서는 한 해 동안 2300건 정도의 범죄가 일어났다. 범죄를 피해 80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뉴욕을 떠나 도심 공동화 현상까지 발생했다. 뉴욕시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다. 그중 하나가 공연 산업을 부흥시키는 일이었고, 브로드웨이 쇼가 그 결과다.

뉴욕은 '텍사스에 석유가 있다면, 뉴욕에는 예술가가 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수많은 문화예술 단체와 500개 이상의 크고 작은 아트 갤러리가 자리 잡고 있다. 뉴욕시의 문화예술 관련 지출이 미국 정부의 예술 기금 예산보다 많다는 마이 있을 정도로 뉴욕시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정부의 투자에서 시작, 문화예술 기업이 모이고, 창조적 에술가와 관람객이 모이며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가 뉴욕을 배경으로 형성되었다. 그리고 뉴욕은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도시의 독보적 경쟁력도 생겼다. 이를 바탕으로 뉴욕은 뮤지컬을 도시 브랜드의 자산으로 삼았다. 매력적인 도시 브랜드가 확립되면 관광객이 모이고 경제 발전의 발판이 되며 나아가 도시 전체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동력이 된다. 

이 장을 통해 저자는 "21세기에는 문화예술이 사람을 유인하는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창조적 인재가 도시의 고유한 역사와 환경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예술 콘텐츠를 생산해 낼 때 도시에는 활력이 생긴다. 이는 도시의 가치를 높이고, 도시에 고유성과 정체성을 부여한다. 도시 혁신은 여기에서 일어난다."고 밝힌다.



2장 「도시, 변화가 필요한 순간」에서 저자는 도시에도 인간처럼 생애 주기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생처럼 탄생의 순간이 있고, 성장의 순간, 그리고 발전의 순간이나 쇠퇴와 지속 가능의 기로에 선 순간이 도시에도 있다는 것. 때로는 도시의 발전이 멈춰 정체기를 맞거나, 상황이 나빠지면 쇠퇴해 소멸로 갈 수도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도시가 쇠퇴 또는 소멸하지 않고 성장과 발전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도시 스스로 변화하거나 혁신해야 할 시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에 따라 도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해 관계자들의 니즈를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도시에서 도시민과 도시 사회가 처한 절박한 문제를 먼저 인식하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한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일이 필요하고 한다. 

저자는 유럽문화 수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갈림길에 섰던 이탈리아 볼로냐를 사례로 들고 있다. 옛날에는 화려한 번영의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과거가 거추장스러울 만큼 가난한 도시의 모습이다. 차가 다닐 수 없는 좁은 뒷골목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낡은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서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쇠퇴하는 도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낡고 어두운 이미지의 볼로냐에도 남은 것이 있었고 그것이 희망이 되었다고 한다. 오렌지색 벽돌로 만들어진 13세기 중세 건축물과 그 건축물에 남아 있는 긴 주랑 포르티코였다. 볼로냐가 간직하고 있는 문화유산 포르티코는 중세시대 건축물의 특징 중 하나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천장이 있고 바깥쪽으로는 아치형으로 뚫린 회랑이 건물 외벽을 둘러싸고 있다. 포르티코가 중세시대 건축물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볼로냐처럼 건물 대부분에 적용된 것은 없다고 한다. 볼로냐의 건물로 연결된 그물망 같은 포르티코를 모두 이으면 약 38킬로미터 정도가 된다니 조선시대 수도 한양(한성)을 방불케한다. 더욱이 볼로냐에는 중세시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4킬로미터의 성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중세의 흔적을 유지하며 리모델링하는 방법을 선택하면 모두 허물고 새로 지을 때보다 두 배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다각도의 논의 끝에 도시 당국과 시민들은 비용이 더 들더라도 전통적인 중세 도시 건축물과 포르티코의 외관을 유지하고 쓰임에 문제 없도록 내부는 리모델링을 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책에는 도시 재생으로 활기를 찾은 도시 영국의 '리버풀'에 대한 소개도 있다. "리버풀이 비틀즈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문화예술 도시로, 음악 도시로 혁신에 성공하였지만, 귿 ㅟ에는 단계적이고 계획적인 도시 재생 과정이 있었다. 리버풀은 시티센터를 중심으로 낙후 지역을 개발했고 문화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늘려 가면서 지속적인 발전을 꾀하는데 그중 오래된 부두를 문화단지로 재탄생시킨 앨버트 독 보존 지역이 있다. 앨버트 독은 부두와 물류창고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곳으로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알버트 공의 지휘 아래 1846년 오픈했다. 돌을 이용하여 화재에 강한 물류창고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건축한 사례이기도 하다. 이곳은 20세기 중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입항 선박 크기의 변화로 물류창고로서의 경쟁력이 떨어지며 쇠퇴하기 시작했고 1972년, 126년 만에 파산하여 폐쇄되었다. 

1981년 리버풀 재생 사업을 착수하여 1984년부터 차례로 앨버트 독 오피스 건물과 창고 건물을 재생하고, 1986년 해양박물관 이전 개관, 1988년 테이트 리버풀 미술관 개장까지 진행하며 리버풀 경제의 부활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1990ㄴ녀 비틀즈 스토리, 2007년 국제 노예 박물관 등 박물관과 미술관, 레스토랄ㅇ, 카페 등이 들어서면서 연간 6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p.225~227)


저자 : 최현희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문화예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대카드에서 일하며 ‘1913송정역시장’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성공으로 이끌어 대통령상 등을 수상했다. 이후 성남문화재단으로 옮겨 ‘위례스토리박스’ 공간 구성과 운영 프로그램 기획을 총괄하고, 유네스코 창의도시 가입 추진 등 도시의 활기와 성장에 기여하는 비전과 전략 수립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기업 브랜딩, 마케팅을 연구하며 서강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 혁신 성공 사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기다움을 바탕으로 구성원 모두가 핵심에 집중할 때 혁신에 성공하고, 생명력 넘치는 브랜드로 누군가의 마음 속에 자리 잡게 된다고 믿는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곳곳에 각자의 정체성을 살린 매력적인 도시가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구했던 내용을 다듬어 책으로 담았다. 대한민국 국무총리 자문위원,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심사위원, 성남시 공유무역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예술과 도시 연구소 소장, (주)에이빅파트너스 대표컨설턴트를 맡아 기업컨설팅, 멘토링, 혁신 등의 강의를 한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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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위험한 이름,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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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Venu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과 미와 풍요의 여신을 일컫는 명칭이다. 원래 로마 여신의 이름이었으나 이후 아프로디테 등과 동일시되면서 모성과 아름다운 여성성을 상징하는 말로 폭넓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일본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로 평가되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비너스'를 표제어로 쓴 것은 심상찮다. 특히 비너스가 원래 품고 있는 의미와 같지 않을 것 같다는 강한 인상을 표제어로부터 받은 독자들의 머릿속은 시작부터 혼란스럽다. 소설의 시작은 천재 IT 사업가인 동생 아키토가 실종되고, 어느 날 낯선 여자가 주인공 데시마 하쿠로를 찾아오면서부터다.

“동생이…… 행방불명이에요.”

이 소설 작품 『아름답고 위험한 이름, 비너스』는 어느 날 낯선 여자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부터 시작된다. 여자는 주인공 데시마 하쿠로가 10년 넘게 얼굴 한번 보지 않고 지내 온 이부동생과 갓 결혼한 사이라며 자신을 야가미 가에데라고 소개한다. 그러고는 한술 더 떠 그 동생이 실종되었다면서 동생의 행방을 함께 찾아 줄 것을 부탁한다.

도입부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 작품은 전체 3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임에도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이 거듭되어 독자로 하여금 그야말로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한다. 처음에는 사라진 IT 사업가(아키토)를 찾기 위해 그의 아내(라고 소개한 여자) 가에데와 형(하쿠로)이 합심해서 진상을 파헤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내막에는 일본 의학계 명문가의 유산 상속 갈등이라는 복잡한 속사정이 얽혀 있다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하쿠로가 과거에 묻어 둔 인물들-치매로 투병 중인 재력가 새아버지, 뇌종양을 앓다 세상을 떠난 무명 화가 출신의 친아버지, 16년 전 의외의 장소에서 갑작스러운 사고사를 당한 친어머니-이 현재로 소환된다. 그리고 철저한 주변인이자 조력자로서 ‘동생 실종 사건’에 뛰어들었던 하쿠로는 어느새 사건의 당사자 위치에 서게 된다.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한 잠깐의 틈을 두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행방불명이에요, 아키토 씨가. 벌써 며칠째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p.11)



이 소설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수수께끼는 네 가지로 요약된다. ① 성공한 IT 사업가의 실종과 그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아내(?) ② 의학계 명문가의 유산 상속을 둘러싼 친족 간의 복잡한 속사정 ③ 사망한 부친의 불가사의한 병과 관련한 뇌 의학의 허와 실 ④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상 등이다. 하나하나의 스토리가 상당한 무게감을 가진 문젯거리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밀하게 얽히면서 독자들의 미스터리 추리 능력을 한껏 발휘하게 한다. 아니 어쩌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노련한 소설 구성 능력에 휘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가진 채 출발해야 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하쿠로는 38세의 독신 남성으로 동물병원 수의사이다. 소설이 처음 시작하는 부분에서 그는 '두 마리째의 환자'인 갈색 얼룩무늬 수컷 고양이의 찢어진 항문낭을 치료하려던 차다. 한 통의 전화에 고양이 수술이 뒤로 미뤄진다.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남동생 아키토와 비밀 결혼을 했다는 가에데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아키토가 실종되었다는 급박한 소식과 함께 하쿠로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쿠로를 찾아 온 여성의 옷차림은 하쿠로로 하여금 꽤 이지적이고 도덕적인 성품의 여성으로 보였다. 미모도 특출할 정도로 미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녀의 미모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지만 하쿠로의 마음이 흔들리면서 점점 윤리적 갈등이 깊어진다고 우회 표현하고 있다. 그녀의 옷차림은 공들여 세팅한 웨이브 머리, 어딘지 모르게 작위적인 그녀의 태도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하쿠로는 적어도 겉으로는 '마음이 올곧고 옳지 않은 일은 정말 싫어하는' 도덕적 성품을 가진 인물이지만 그의 내면에는 매우 세속적인 욕망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런 하쿠로에게 평일 낮 시간 호텔 라운지에서 당당히 만남을 갖는 비정상적 커플, '나인틴 바'에서 자정이 넘은 시각에 목격되는 호스티스와 고객의 뒷모습 등 마치 불륜이 당연한 일상이 된 듯한 세상 흐름이 자꾸 하쿠로의 의식에 걸려든다.



그러나 히가시노 게이고는 여간 노련한 작가가 아니다. 만일 하쿠로의 속마음과 가에데의 겉모습이 한마음으로 뭉친다면 소설의 향방은 뻔한 삼류 소설로 흐를 위험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하쿠로가 자칫 위험에 빠지려 할 때마다 '멀리서 울리는 클랙슨 소리'로 퍼뜩 제정신을 차리도록 하는 장치를 아끼지 않는다. 아슬아슬하고 긴장감 넘치게 이끌기 위해서다. 장(章)을 달리하며 하쿠로의 집안 내력이 소개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하쿠로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가 다섯 살 때 떠났기에 기억에도 별로 없다. 하쿠로의 아버지는 데시마 가즈키요라는 화가였다. 어머니 데이코의 말에 따르면 무명화가였고 작품도 거의 팔리지 않았다. 

데시마가의 생계를 책임 진 것은 간호사로 일하던 데이코였다. 당시에는 간호사가 아니라 '간호부'라고 했다. 그림 붓을 드는 것 말고는 아무 재주도 없는 가즈키요는 당연히 집안일도 일절 못 했을 것이고, 데이코는 병원 일에 집안일까지 두 가지를 병행하느라 상당히 힘들었을 게 틀림없다. 두 사람이 알게 된 곳은 데이코가 근무하던 병원이었다. 맹장염으로 입원한 가즈키요가 침대에서 쓱쓱 그려낸 그림을 보고 데이코가 저도 모르게 말을 건넸던 게 계기였다.

"처음 네 아버지 그림을 봤을 때 이 사람은 틀림없이 화가로 성공해서 세상에 이름을 떨칠 거라고 생각했어. 보는 눈이 없다는 거 보통 무서운 게 아니라니까."(p.13)

결혼한 지 3년 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하쿠로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어머니 데이코라고 했다. 아버지 가즈키요와는 결국 인연이 없었던 '화백(畵伯)'이라는 호칭의 '백(伯)'이라는 한자에 거장 피카소의 이름 '파블로'를 조합했단다. 반쯤은 오기로 붙인 거야, 라고 데이코는 태연한 얼굴로 하쿠로에게 설명했다.

아버지가 그리는 그림은 하쿠로의 기억에 크게 남아 있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상세히 되새길 수는 없을 테니. 그러나 정확하지는 않지만 무슨 도형 같기도 하고 단순한 무늬 같기도 하고, 한참 들여다보면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그림이었단 사실이 떠오를 뿐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아팠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보다 자리에 누워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고 어슴푸레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 꽤 오랫동안 앓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하쿠로가 아버지의 병명을 알게 된 것은 하쿠로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였다. 뇌종양이라고 어머니 데이코가 알려 주었다. 데이코가 병원에 일하러 간 동안 하쿠로는 근처에 사는 준코 이모가 맡아 주었다. 준코는 언니와는 달리 전업주부였다. 이모부 겐조는 '대학교 선생'이었다. 무엇을 가르치는 선생인지는 꽤 오랜 동안 알지 못했다. 수학과 교수님이라고 알게 된 것은 중학생이 되고 난 다음이었다. 이후 아버지를 잃은 슬픔도 별로 없었고,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하쿠로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모집과 가까운 곳에 서로 의지하고 살던 어느 날 어머니는 재혼을 한다. 남자는 '야가미 씨'라고 성씨만 들었을 뿐 이름까지는 듣지 못했다. 무척 부자인지 첫 만남에서 하쿠로와 어머니에게 고급 식당의 프랑스 요리를 사준다. 

야가미는 대단한 부자였고, 차도 메르세데스 벤츠 대형차다. 집은 대저택이라고 할 만한 크기다. 그렇게 셋은 맨션에 따로 나와 살았다. 동생 아키토가 태어났을 때 하쿠로는 아홉 살이었다. 어린 하쿠로 입장에서는 갓 태어난 모습이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어쨌든 동생이 태어나 기쁜 일이란 것을 실감했다. 준코 이모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좋겠다' '축하한다'라고 말하고 하쿠로도 순순히 인정했다. 실제로 그 새로운 존재는 매우 신선한 공기를 실어 왔기 때문이다. 야가미가의 분위기가 환해지고 데이코와 야스하루는 항상 명랑함이 넘치는 표정이었다. 함께 살아야 할 하쿠로도 딱히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남동생에게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어떻게 지은 이름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쿠로 때처럼 데이코가 '반쯤은 오기로' 붙인 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했다. 

하쿠로를 찾아온 가에데는 전직 일본 항공 승무원이었다. 아키토와 만나 집안에 알리지도 않은 채 두 사람은 비밀리에 결혼을 했고, 자신의 집안이나 이부 형인 하쿠로에게도 연락을 잘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사업에만 몰두했을까. 그래서 그가 실종되자 각종 의문이 끊이지 않지만 속시원히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듯하다.



하쿠로 어머니의 '변사'는 소설 전체를 뒤흔든다. 어머니는 하쿠로가 대학 다니느라 독립 생활을 하면서 조금 멀어지긴 했지만 언제나 마음의 고향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느 날 이부 야스하루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쿠로, 있잖아, 힘들 일이 생겼어. 정말 힘든 일이······." 신음하는 듯한 야스하루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가슴속에 검은 안개가 뭉클뭉클 퍼져 갔다. 무슨 일입니까, 라는 질문이 쉰목소리로 튀어나왔다.

"데이코가, 자네 어머니가······ 죽었어."

머릿속이 하얘지고 눈앞이 일순 캄캄해졌다. 청각도 마비된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처음 귀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목소리였다. 사고가 거의 정지된 상태에서 "왜요? 어떻게요?"라고 묻고 있었다. 

"사고야, 욕실에서 머리를 부딪혔는데 그대로 정신을 잃고 욕조에······, 그래서 익사라고 얘기하고 있어."

"욕실? 어째서요? 왜 그걸 못 막았어요!" 휴대 전화를 움켜쥐고 야스하루를 비난하듯이 소리쳤다. 

"그게 우리 집 욕실이 아니야."

"우리 집 욕실이 아니라니, 그럼 대체 어딘데요?"

"고이즈미 집이야."

헉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고이즈미라면 데이코의 본가, 즉 외할머니가 사는 동네였다.(p78~79)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요한 기둥이다. 16년 전의 뜻하지 않은 사람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오랜 세월 이들 형제에게 남겨진 마음의 응어리였다. 고전적인 추리 소설의 재미는 아마도 이 부분에서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악인처럼 보였던 누군가는 오히려 도움을 죽는 인물이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뜻밖의 범인이 드러난다. 누가 한편이고 누가 편집증적인 집착을 가진 자인가. "관계가 없다는 근거라도 있나요? 단순히 착한 사람들이라서?"라는 가에데의 말은 독자들의 허를 찌르는 명대사였다고 책의 역자 양윤옥은 「관서의 망」이란 제목의 〈옮긴이의 말〉에서 적고 있다. 역자는 이 작품에서 조연으로 등장한 인물들도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를 더해 주고 있다고 말한다. 매사에 원리 원칙을 따지는 동물병원 보조 간호사 '가게야마 모토미'의 딱 부러진 캐릭터는 특히 매력적이라고 역자는 서술하고 있다.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ひがしの けいご, 東野 圭吾)


일본 추리소설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추리소설 분야에서 특히 인정받고 있는 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변주하는 능력을 가진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의 작품은 치밀한 구성과 대담한 상상력,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로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 독자를 잠시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든다.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히가시노 게이고는 첫 작품 발표 이후 20년이 조금 넘는 작가 생활 동안 35편이라는 많은 작품들을 써냈음에도 불구하고 늘 새로운 소재, 치밀한 구성과 날카로운 문장으로 매 작품마다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비밀』로 1999년 제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6년 초에는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제134회 나오키상과 제6회 본격미스터리대상 소설부문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2012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제7회 중앙공론문예상, 2013년 『몽환화』로 제26회 시바타렌자부로상, 2014년 『기도의 막이 내릴 때』로 제48회 요시카와에이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제까지 나오키 상에 『비밀』, 『백야행』, 『짝사랑』(片想い), 『편지』(手紙), 『환야』(幻夜)등 다섯 작품이 후보로 추천받은 바 있으나 전부 낙선하여, 나오키 상과는 인연이 없는 남자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여섯 번째 추천작 『용의자 X의 헌신』으로 결국 상을 거머쥐게 되었다. 2012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중앙공론 문예상을, 2013년 『몽환화』로 시바타 렌자부로상을 수상했으며, 2014년에는 『기도의 막이 내릴 때』 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방황하는 칼날』, 『흑소소설』, 『독소소설』, 『괴소소설』, 『레몬』, 『환야』, 『11문자 살인사건』, 『게임의 이름은 유괴』, 『호숫가 살인사건』, 『브루투스의 심장』, 『한여름의 방정식』, 『몽환화』, 『그 무렵 누군가』, 『가면 산장 살인 사건』, 『인어가 잠든 집』, 『살인의 문』, 『백야행』, 『기린의 날개』, 『한여름의 방정식』, 『신참자』, 『탐정 갈릴레오』, 『예지몽』, 『다잉 아이』,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학생가의 살인』, 『오사카 소년 탐정단』, 『천공의 벌』, 『붉은 손가락』 등이 있다. 『방과 후』, 『쿄코의 꿈』, 『거울의 안』, 『기묘한 이야기』, 『숙명』, 『백야행』, 『갈릴레오』등 지금까지 20편이 넘는 작품들이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비밀』, 『변신』, 『편지』,『용의자 X의 헌신』, 『더 시크릿』등 10여편이 영화로 제작되는 등,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역자 : 양윤옥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2005년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으로 일본 고단샤에서 수여하는 노마문예번역상을 수상했다.

사쿠라기 시노의 『호텔 로열』, 『별이 총총』,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스미노 요루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 『밤의 괴물』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눈보라 체이스』, 『그대 눈동자에 건배』, 『위험한 비너스』, 『라플라스의 마녀』, 『악의』, 『유성의 인연』, 『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나이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지옥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 『칼에 지다』, 마스다 미리의 『5년 전에 잊어버린 것』 오카자키 다쿠마의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시리즈, [가가 형사 시리즈], [라플라스 시리즈],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사쿠라기 시노의 『굽이치는 달』 등 다수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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