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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 인생수업 - 흔들릴 때마다 꺼내 읽는 마음의 한 줄 ㅣ 메이트북스 클래식 25
홍자성 지음, 정영훈 엮음, 박승원 옮김 / 메이트북스 / 2025년 8월
평점 :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채근담 인생수업』의 표제어에 나온 '채근담'(菜根譚)은 중국 명나라 말기의 홍응명(洪應明)의 어록이라고 한다. 표지에 저자로 나오는 '홍자성(洪自誠)'의 '자성'은 그의 '자(字)'로서 주로 한국과 일본에서 불리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이는 '호'는 환초((還初) 혹은 환초도인(還初道人)이라고 한다. 채근담은 상, 하 2권으로 나뉘어 있고, 모두 356조의 단문으로 이루어졌다. 출처진퇴, 처생훈, 인생의 즐거움 등을 유교를 중핵으로 도교 및 불교도 도입해서 대구(對句) 구성의 간결한 문장이다. 인생의 쓴맛을 본 저자가 심각하게 개진한 그의 인생훈은 사람들을 매료하고, 중국에서보다는 오히려 일본에서 선승을 비롯한 많은 독자를 얻어 자주 읽힌 책으로 꼽힌다.
채근담은 그러나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꾸준히 읽혀왔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대만, 중국에서 수양과 처세, 교양의 고전으로 지금껏 사랑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초부터는 서구 사회에도 소개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어를 비롯한 여러 유럽어로 번역되면서, 동양의 고전적 수양철학과 명상적 사유에 관심을 가진 서구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는 뜻으로 독자에게는 이해된다. 짧은 단문 속에 응축된 삶의 통찰과 고요한 성찰은 서구에서 『채근담』을 ‘동양의 『수상록』’이라 부르기도 할 만큼, 몽테뉴나 파스칼의 잠언적 사유와 나란히 놓이며 읽히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단순하고 절제된 삶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 흐름과도 맞닿아 있으며, 명상이나 자기성찰의 문구로 활용되며 서구의 삶과 정신문화 속에서도 조용한 영향을 이어가고 있다. 고전이 오랜 세월을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기존의 『채근담』 완역본들은 번역의 정확성이나 고전 특유의 문체를 살리는 데 집중한 나머지, 현대 독자에게는 다소 어렵고 멀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고 이 책의 편역자인 정영훈과 박승원은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채근담』 번역본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꾸준히 나온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앞서 언급한 대로 일본인들이 일본어로 번역한 책이 나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글로 쓰인 출판물은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한국전쟁 이후 교육용으로 번역된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나라 독자들은 특히 전후 세대는 『채근담』 문장의 뜻은 알지만 공감하거나 마음까지 움직일 정도로 자연스럽게 번역해 준 출판물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때문에 책의 이름이나 유명한 문구 몇 개 정도 알고있는 경우가 많다.
이 편역본 『채근담 인생수업』은 그런 아쉬움에서 출발했다고 정영훈은 〈엮은이의 말〉에서 출간 취지를 밝힌다. 표제어의 '채근담'은 채소 뿌리를 씹는다는 뜻으로, 검소한 삶 속에서 도(道)를 깨닫고, 고된 일상 속에서 마음을 단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 이 책이 삶의 격언집이자 마음의 거울로 읽히는 이유이다. 엮은이에 따르면 이 책은 단순히 고어를 현대어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한문 고전 특유의 어투와 번역투, 형식적인 표현을 과감히 걷어냈다. 또한 별도의 목차 없이 단순 나열식이었던 기존 원문의 구성을, 현대 독자의 삶과 연결되도록 6개의 주제별 장으로 재편했다. 원문에 없던 각 단상의 제목을 덧붙이면서, 고전의 사유가 오늘의 독자에게 감각적으로 와닿게 했다. ‘고전의 품격은 지키되, 문장은 지금의 숨결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이 편역서의 의도가 독자들의 일상에 작은 울림이 되기를 기대한다.
엮은이 정영훈은 특히 "이번 편역에서 우리가 공을 들인 부분은 각 문장에 붙인 제목이다. 원문에 없던 제목을 덧붙이면서, 고전의 사유가 오늘의 독자에게 감각적으로 와닿도록 문장형 제목을 새롭게 구성했다. 지나치게 설명적이지 않으면서도 핵심을 짚고, 정서적으로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표현의 리듬과 어감을 조율했다."(p.9)고 밝힌다.

책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는 혼란과 과속의 시대를 살고 있다. 빠르게 결정하고, 끊임없이 선택하며, 언제나 성과를 요구받는 시대다. 그런 현실일수록 삶의 중심을 되묻고, 마음의 균형을 되찾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이 책 『채근담 인생수업』은 우리에게 그 조용한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지혜를 건넨다. 지금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마음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 책은 전통이라는 외피로 다가오지 않고, 오히려 삶의 핵심을 꿰뚫는 직설적 문장과 단단한 사유로 우리가 오래도록 지키고 싶어 했던 가치를 되새기게 만든다. 이 책의 단상들은 짧지만 깊은 전복의 힘을 품고 있다. 문장 하나가 우리가 오래도록 믿어온 관성을 뒤흔들고, 익숙했던 기준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며, 평범한 하루를 전혀 다르게 해석하게 만든다. 단 한 문장만 제대로 만나도,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마음속의 망설임과 욕망, 고정된 생각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마음의 결을 다듬고, 삶을 보다 단단하고 유연하게 바라보게 한다. 그렇게 이 책은 오래된 문장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들이 된다. 짧은 문장 안에 담긴 통찰은 지혜로운 태도와 단단한 시선을 길러주고, 흔들리는 마음을 조용히 다잡아준다.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가라앉히고, 일상의 균형을 회복하는 데 이보다 더 간결한 조언은 없을 것이다. 혼란스러운 시대일수록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더욱 깊어지고, 이 책은 그 물음에 담백하고도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준다. 어느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필요한 한 문장을 만날 수 있도록 정리했으니 매일 조금씩 꾸준히 읽길 바란다고 세심한 도움말을 엮은이는 남긴다. 머리로 읽기보다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책, 외우는 문장이 아니라 살아가는 언어가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감을 표현하고 있다. 고전이 주는 깊이와 실용, 그 둘을 모두 갖춘 책을 찾는 이들에게 이 책은 더없이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6개 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원전에는 없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독자들의 이해와 암기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1장 〈마음이 바뀌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2장 〈사람과의 관계는 태도에서 갈립니다〉, 3장 〈원칙 있는 삶이 사람의 중심을 세웁니다〉, 4장 〈욕망과 집착을 좇다 보면 결국 길을 잃습니다〉, 5장 〈지나침 없는 조화가 삶의 균형을 만듭니다〉, 6장 〈끝을 알아 내려놓을 때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등이다. 엮은이는 각 장의 표지에 제목과 별도로 핵심 내용을 아울러 '표지말'에 압축했다. 1장의 경우 "인생의 시작은 마음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흐리고 어두운 마음은 세상을 무겁게 짓누르지만, 맑고 환한 마음은 어둠 속에서도 푸른 빛을 선사한다."고 썼다. 마음을 가다듬는 길을 안내하며, 내면의 평화가 삶을 바꾸는 진정한 힘임을 일깨우는 의미다.
또 2장은 "관계의 근본은 태도에 있다. 작은 마음씀씀이와 배려가 깊은 신뢰와 덕을 쌓고, 오해와 분노는 금세 멀어지기 마련이다."는 문장을 기록하고 태도를 통해 인연을 바꾸고,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전한다. 3장은 '원칙 있는 삶'을 강조한다. "삶의 기둥은 흔들리지 않는 원칙에서 시작된다. 바람 부는 세상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 그것이 곧 인격과 품격을 완성하는 토대이다." 흔들림 없는 삶의 자세를 제시함으로써 진정한 나로 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설명한다.
4장에서는 '욕망과 집착'을 버릴 것을 권유한다. "욕망의 바다는 끝없이 넓고 깊다. 그 속에서 우리가 길을 잃지 않으려면 집착을 내려놓고 본질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절제의 길을 말하며, 마음의 자유를 찾는 여정을 돕는다. 5장은 조화와 균형을 역설하는 문장들을 모았다. "모든 것은 조화롭고 균형을 이룰 때 빛난다. 과함도 모자람도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삶은 비로소 제 모습을 찾는다." 조화와 절제를 통해 건강한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법을 가르치는 문장들이다.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언제 '놓을 것인가'에 대한 사유의 변이다. "우리는 인생의 끝자락에 가서야 비로소 무엇을 놓아야 할지 깨닫게 된다. '내려놓음'은 결코 포기가 아니라 더 깊은 아름다움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성숙한 삶의 완성을 이야기하며, 평온하고 담담한 마무리를 준비할 것을 강조한다.

각 장에서 독자 임의로 한 문장씩 뽑아 여기에 열거한다.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해 원전의 한자는 일절 다루지 않았다. 또 마음 수양을 하는 분들에게 귀띔하기 위해서다.
① 가난은 막기 어려워도 걱정은 다스릴 수 있습니다
더위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더위를 괴로워하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몸은 언제나 시원한 누대 위에 있는 듯 편안할 것입니다. 가난을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가난을 걱정하는 마음만 없앴다면 마음은 늘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지내는 듯할 것입니다.(p.50)
② 지나친 호의보다는 작은 정성이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천금을 써도 잠깐의 환심을 사기 어려울 때가 있는가 하면, 한 끼 밥으로도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랑이 지나치면 오히려 원한으로 돌아갈 수 있고, 아주 각박하게 대했어도 오히려 고마움으로 남을 때도 있습니다.(p.67)
③ 겉은 투명하되 속은 절제된 태도여야 합니다
마음을 바르게 세우려는 사람의 자세는 하늘처럼 푸르고 해처럼 맑아야 하니, 남들이 알지 못하게 숨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재능은 옥이나 구슬처럼 감춰야 하니, 남들이 쉽게 알아차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p.141)
④ 즐거움도 과하면 독이 되고, 절제가 나를 지켜줍니다
입에 달고 상쾌한 맛은 모두 창자를 상하게 하고 뼈를 썩게 하는 독약이지만, 절반쯤에서 멈추면 탈이 없습니다.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일은 모두 몸을 망치고 덕을 잃게 하는 함정이지만, 절반쯤에서 멈추면 후회가 없습니다.(p.159)

⑤ 세상이 괴로운 게 아니라 마음이 괴로움을 만들 뿐입니다
사람들은 영예와 이익에 얽매여 쉽게 말하곤 합니다. "세상은 티끌 같고, 인생은 괴로움의 바다다." 하지만 구름은 여전히 희고, 산은 푸르며, 냇물은 흐르고, 돌은 그 자리에서 서 있습니다. 꽃은 피고, 새는 지저귀며, 골짜기는 메아리치고, 나무꾼은 콧노래를 부릅니다. 세상이 본래 티끌도 아니고, 바다가 괴로움도 아닙니다. 다만 스스로가 제 마음에서 티끌과 고통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입니다.(p.209)
⑥ 괴로움과 즐거움이 어우러져 한 사람의 복을 만듭니다
한 번의 괴로움과 한 번의 즐거움이 서로를 비추고 다듬어주기에, 그 모든 과정을 겪어낸 뒤에 얻는 복이라야 비로소 오래도록 머뭅니다. 한 번의 의심과 한 번의 믿음이 서로를 견주며 균형을 잡아주기에, 그 깊은 되새김 끝에 얻은 지식이라야 비로소 참된 자리에 이릅니다.(p.264)
지은이 : 홍자성(洪自誠, 본명: 홍응명, 자: 자성(自誠), 호: 환초(還初))
명나라 만력제 연간의 문인이다. 본명은 홍응명(洪應明)이나 한국과 일본에서는 자성(自誠)이란 자(字)로 불렸다. 호는 환초도인(還初道人)이다. 안휘성(顔徽省) 휘주(徽州) 흡현(?縣)의 부유한 상인 가문 출신이며, 그 고장의 저명한 문인 관료인 왕도곤(汪道昆, 1525~1593)의 제자로 추정한다. 대략 1550년 전후한 시기에 출생하여 청장년 때에는 험난한 역경을 두루 겪고 늦은 나이에는 저술에 종사했다. 1602년에는 도사와 고승의 행적 및 명언을 인물 판화와 곁들여 편집한 『선불기종(仙佛奇?)』 4권을 간행했고, 1610년 무렵에는 청언집 『채근담』을 간행했다.
엮은이 : 정영훈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가톨릭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에서 상담과 심리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에 줄곧 출판기획자의 길을 걸어왔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기획하고 있으며,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엮은 책으로는 『위대한 심리학자 아들러의 열등감, 어떻게 할 것인가』 『위대한 심리학자 아들러의 가족이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의 크리톤』 『키케로의 노년에 대하여』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하루에 5번 감사하면 인생이 달라진다』 『세네카의 행복론』 『생텍쥐페리, 인생을 쓰다』 등이 있다.
옮긴이 : 박승원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철학과에서 주희(朱熹)에 관한 연구로 문학석사, 정이(程?)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명대학교, 서울교육대학교, 경인교육대학교, 대전대학교, 한국체육대학교 등에 출강했으며, 재단법인 성균관 학술교육팀장, 다산학술문화재단 정본여유당전서 출간팀장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심경 철학 사전》(공저), 《논리학》(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 《명심보감》, 《채근담》, 《류성룡의 말》, 《혼자가 되면 보이는 것들》 등 다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