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투 모링가 1 - 뱅커스 뱅크와 사라진 마지막 층
제이롬 지음 / 제이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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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투 모링가 1』는 미래 우리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해보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기 전 한 가지 짚어보고 넘어갈 일이 있다. 저자 제이롬은 필명으로 추축되어 문제 없지만 소설 작품 내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이 우리말, 우리식 이름이 아니다. 영어나 기타 알파벳을 사용하는 지역이 배경 무대가 아닌가 싶다. 실제 저자 소개란에서 단초를 찾아낸다. "제이롬,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지 않는 이야기꾼. 옛날 이야기가 아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 스토리를 제작합니다. 마름모를 의미하는 ‘롬버스’에서 따온 ‘롬’."이라고 적혀 있다. 인명, 필명이야 짓는 사람의 자유니까 무엇이라고 짓든 문제될 게 없다. 저자 소개란을 통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소설이 4부작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소개란에 이렇게 썼다. "제이롬은 크게 4 가지 브랜드의 시리즈 소설 장르물을 구상, 기획 중입니다."

유리로 만든 지폐를 '역으로 성립하는 명제'와 함께 외우면 주문이 이루어지는 이곳은 죽은 자들이 빛을 밝히는 도시, 일명 '그림자 시장'. 눈동자 색깔에 따라 도시와 계절이, 환율에 따라 도시의 빈부가 나뉜다. 검은 눈동자로 태어난 겨울바다 출신 에밀레, 엄마와 새아버지가 재혼 후 생긴 새 오빠 뤼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금빛 눈동자의 뤼오를 찾기 위해, 누구나 입사를 꿈꾸는 ‘뱅커스 뱅크’로 향한다. 그 곳에서 그녀는 실종된 사람들이 남긴 검은 그림자들의 비밀을 밝히게 되는데··· 낮에는 시장이 원하는 훌륭한 인재, 밤에는 시장의 이단아. 과연 그녀는 끝에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 소설 작품은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금융, 경제, 주식 시장의 개념을 판타지 세계관에 녹여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번역 출간한 출판사는 밝히고 있다.



이 소설 『투 모링가 1』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모두 16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의 부제는 「뱅커스 뱅크와 사라진 마지막 층」이다. 표제어, 책의 표지, 그리고 각 장의 제목들로만 보아서는 지역이 굳이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프롤로그〉엔 「눈동자들의 이야기」란 제목이 붙어 있다. 첫 줄엔 '죽은 그림자들을 위한 찬송가'란 문구가 붙어 있다. 그리고 찬송가 가사가 이어진다. 

"눈동자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지

너의 시점에서 우리의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지 

세상을 보는 시점은 너의 눈동자 색에 달렸지

세상이 너를 보는 시점 또한 너의 눈동자 색에 달렸지"(p.8)

소설의 지문처럼 이 세상에 대한 저자 제이롬의 설명이 조금씩 따라 붙는다. 이 세계의 이름은 일명 '그림자 시장'이다. 눈동자 색깔에 따라 도시와 계절이 나뉘고 각 도시의 환율에 따라 빈부가 나뉘는 참담한 이름은 죽은 자들이 빛을 밝히는 도시, 그림자 시장이다. 

피라미드 모양의 정삼각형 도시는 여름 바다, 봄 바다, 가을 바다, 그리고 차가운 겨울 바다로 나뉜다. 시민들의 삶이 철저히 구분이 된 그림자 시장에서 오늘도 죽은 자들의 영혼이 별이 되거나 혹은 그림자가 되어 밤을 만든다. 저자의 혼신을 다한 소개에도 불구하고 아직 적응하지 못한 독자들은 신비롭다 못해 공포감마저 느낀다. "이런! 내가 어쩌다 이런 세계에 왔지?" 언제부터 그래왔는지 잘 모르지만, 맥락 없는 이 세계에 눈을 뜬 이래로 마주하게된 비참에 현실이 몇 가지 있다.



그림자 시장의 문명론에 따르면 시민들의 사회적 계층과 직업 그리고 거주지는 네 가지 눈동자 색깔로 나뉜다. 플라밍고(Flamingo), 메리 골드(Marigold), 아발론(Avalon),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름 없는 모링가((Nameless Moringa).

핏빛 눈동자의 플라밍고에게 붉은 다이아몬드를

금색 눈동자의 메리 골드에게 금괴를

은빛 눈동자의 아발론에게 은구슬을

검은 눈동자의 모링가에게 검은 유리 동전을 노동의 대가로 각각 지불한다. 이어 이들 플라밍곤는 여름 바다, 메리 골드는 봄 바다, 아발론은 가을 바다, 이름 없는 모링가는 겨울 바다에 각각 거주한다. 외부로부터의 이민자들은 각 바다에 거주 가능한 경제적 기반이 취업, 결혼, 특정 재산의 형태로 증빙이 되면 입주가 허가된다. 보석들은 그림자 시장의 화폐가 되고 시민들은 화폐를 환전하며 필요한 물건들을 바다 건너 사고, 판다. 간단한 예를 들면, 그림자 시장에서 붉은 다이아몬드 하나면 보석의 가치는 붉은 다이아몬드, 금괴, 은구슬, 그리고 유리 동전 순으로 나뉜다. 책에 따르면 그중에서도 유난히 빈부격차가 심한 겨울 바다. 가치가 낮은 검은 유리 동전, 유리 동전 백 닢으로 은구슬 하나를 살 수 있을 정도이니, 말하지 않아도 이름 없는 모링가들의 빈곤한 삶을 엿볼 수 있겠지? 아직 〈프롤로그〉에서 독자는 헤매고 있지만 문득 자본주의와 차별이 제도적으로 굳어진 사회가 연상된다. 그렇다면 혹시··· 미국의 미래를 그리는 것 아닐까? 하는 상상은 독자들의 상상이다.



특히 주문을 외우기만 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그림자 시장의 유일한 유리 지폐 핍스는, 갖가지 보석들의 환율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역으로 성립하는 명제를 외우고 성냥불을 유리 거울로 만들어진 지폐 모서리에 붙이면 말하는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마법의 지폐도 등장한다. 어느 사회나 특권층은 존재한다는 이야기일까? 더욱이 핍스는 모링가들의 사전에 없는 단어라니, 요동치는 물가 덕분에 유리 지혜는 고사하고 당장 내일 구할 식량조차 문제이니 모링가들은 오늘도 희망 앞에 나약해진다. 그렇다면 가난한 삶으로부터 몸부림치는 자들을 위한 도피처는 정말 단 한곳도 없는 걸까? 저자는 점점 좌절에 빠지는 독자들을 위해 '하나의 예외'를 슬쩍 귀띔한다. "단, 모든 모노센더(Monoscender)들은 이 규칙에서 제외된다."(p.11) 단 하나를 의미하는 모노, 올라가는 사람을 의미하는 어센더, 그리고 이 둘을 합한 모노센더다.

그렇다면 모든 겨울 바다 시민들의 유일한 탈출구이자 신분 상승의 기회가 될 터, 그 내용에 대해 저자의 기술은 독자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오직 겨울 바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평생 단 두 번의 기회만 주어지는 토너먼트 형식의 시험의 명칭은 '모노'. 이 시험에서 우승한 최종 합격자를 모노센더라 한다. 이들에게는 그림자 시장 꼭대기에 위치한 뱅커스 뱅크(Banker' Bank)의 직원, 포 시그마(Four Sjgma)로 신분 상승의 기회가 주어진다. 이들은 여름 바다 끝에 위치한 뱅커스 뱅크의 고급 인력 포 시그마들은 핍스를 관리하고, 각 바다의 화폐 유동성을 확보하며, 시장의 균형을 바로잡는 일을 한다. 치안와 경제를 담당한다는 권력층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 기회는 과연 다행일까? 아니면 또 다른 불행의 연속일까? 신분 상승을 위한 겨울 바다 아이들의 학구열릉 그야말로 하늘을 치솟는다. 4년마다 치러지는 이 시험에서 단 한 명만이 모노센더가 될 수 있었기에 겨울 바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밤이 모자랄 만큼 책을 외우게 한다.



독자들은 이 책의 각 장의 제목을 통해 이 소설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면 좀 더 몰입도가 높아질 것으로 독자는 생각한다. 프롤로그에 나온 전체를 소개하진 못했지만 이 책 속의 세상은 묘하게도 우리가 임 경험한, 그래서 어느 정도 익숙한 기시감이 들 정도다. 낯설고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인물 이름이나 마을 이름, 각종 제도 등이 모두 외국어로 돼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뒤늦게 깨닫기 때문이다. 16개 장의 제목을 여기에 차례로 적어본다. 「눈동자들의 이야기」「검은 안경을 쓴 소녀, 에밀레」「문을 여는 소년, 뤼오」「겨울 바다에서 4년 뒤」「마지막 춤」「모노센더 연쇄 실종 사건」「할로우 휠즈」「칸델라」「인터뷰」「포 시그마 행동지침」「뱅커스 뱅크 사거리」「첫 출근」「딜러 부스」「장 마감」「To.모링가」「모든 경우의 수 층」「검은 두 눈동자, 모링가」 그리고 〈에필로그〉의 제목 「뱅커스 뱅크 남쪽 입구」이다. 

저자 제이롬은 책 뒷 부분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 독자들이 혼란과 신비감을 걷어내고 소설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투 모링가』는 자칫하면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금융, 경제, 주식시장을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흥미롭게 만든 판타지 소설입니다. 돈이라는 매개체는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자본시장을 이끌어 나가는지, 시장 안에서 형성된 정의 속 모순이 과연 사회에 어떠한 파장을 일으키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연 무엇을 궁금해야 하는지, 정답을 알려주지 않지만 질문을 유도하는 책입니다."(p.338)


죄책감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다. 자기 자신마저 적으로 돌리니 이보다 더 파괴적인 감정이 있을까. 그 어떠한 욕망도 희열도 그림자에 소멸하는 빛처럼 죄책감 앞에서는 무기력해진다.(p.313) - 「모든 경우의 수 층」 중에서


저자 : 제이롬


제이롬,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지 않는 이야기꾼. 옛날 이야기가 아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 스토리를 제작합니다. 마름모를 의미하는 ‘롬버스’에서 따온 ‘롬’. 제이롬은 크게 4 가지 브랜드의 시리즈 소설 장르물을 구상, 기획 중입니다.

투 모링가 3부작 시리즈 중 첫번째 시리즈 『뱅커스 뱅크와 사라진 마지막 층』을 시작으로 2 권 『옴브렐라와 멈춰버린 시계』, 3권 『이름없는 모링가와 이름있는 모순』을 집필 중입니다. 2부와 3부는 각각 2026년, 2027년 출간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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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우정과 무가치한 연애들 - 연인도 부부도 아니지만 인생을 함께하는 친구 관계에 대하여
라이나 코헨 지음, 박희원 옮김 / 현암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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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장 충만한 관계는, 친구·연인·부모·형제자매·스승·뮤즈처럼 우리의 삶에 존재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전형적 관계에 딱 들어맞지 않을 때가 많다. 이때 우리는 자신을 확장하는 성장통을 감내하며 이 유일무이한 관계에 맞는 형태로 새로운 틀을 힘껏 만들어내야만 한다. 아니면 돌처럼 굳고 만다."

이 책 『낭만적 우정과 무가치한 연애들』의 저자 라이나 코헨이 〈서문〉에 들어가기 전 마리아 포포바가 『진리의 발견』에서 서술한 문장을 인용해 책의 맨 앞 페이지에 수록한 내용이다. 또 코헨은 〈작가의 말〉에서는 "버젓이 드러나 있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어느 관계를 조명하고자 사람들의 사적 영역에 깊숙이 들어간다"고 선언한다. 

표제어에서 암시하듯 이 책은 보편적 관계의 공식에서 벗어나 친구와 함께 다른 길을 걷기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친구 M을 만나서 더 깊은 우정의 가능성을 깨달은 저자 코헨은 자신과 비슷하고도 다른 형태의 깊은 우정을 맺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이 친구들은 서로의 돌봄 제공자이자 유언 집행인이며, 공동 명의자이자 공동 양육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관계에 대한 관념을 다시 생각하고 새로운 각도에서 샅샅이 파헤친다. 

저자는 우리가 로맨스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 그 관계를 약화시키고, 우정에는 기대를 너무 안 해서 발전시키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우정을 대하는 역사적인 관점의 변화, 우정이 받는 제도적 차별과 제약 등을 세밀하게 살펴봄으로써 관계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자신에게는 어떤 관계가 필요한지 생각해보게 한다.

새로운 연애 상대와 데이트를 하기 시작하면 친구와의 연락이 뜸해지고, 1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보다 한 달 남짓 사귄 연인이 더 중요해진다. 아무리 친한 친구가 있어도 연인이 없다면 ‘영혼의 반쪽’이 없는 상태이기에 언젠가 생길지도 모를 연인을 위한 자리를 늘 비워 두어야만 한다. 그렇게 우리는 은연중에 친구보다 연인을, 우정보다 로맨스를 우선해야 한다고 여긴다. 



일대일 로맨틱 관계가 정상적이며 필수적이라는 ‘강제적 커플살이’ 관념은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이런 관념이 정말로 당연할까? 연애와 결혼이라는 하나의 관계 모델이 모두에게 맞는 틀일까? 우리는 어린 시절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며 친구를 사귀고, 자라면서 친구와의 관계가 어느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를 지난다. 그 시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 친구는 뒤로 밀려나고 연인이 가장 중요한 관계로 급부상한다. 성인기의 로맨틱한 관계는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이며 로맨틱 상대가 없는 사람은 아직 불완전한 반쪽짜리이기에 사람들은 자신을 완성시켜줄 단 한 명의 소울메이트 찾기를 꿈꾼다. 

로맨틱 파트너 하나만 있으면 외로움이 사라지고 성적 만족도 얻을 수 있고 가정도 꾸릴 수 있고 아이도 함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한 명에게 과도한 역할과 기대를 부여하는 만큼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집중하느라 다른 관계에 소홀해진다. 친구를 사귀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친구와의 관계도 깊어지기가 쉽지 않다. 기대를 충족해주지 못하는 연인과는 더 쉽게 헤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더 외로워진다.

저자 라이나 코헨은 M을 만났을 때 남자친구인 마코와의 연애를 시작했을 때와 비슷한 열정을 느꼈다. 저자는 M과 급속도로 친밀해졌고 모든 것을 공유하는 친구가 되었다. 우정이 이렇게까지 강렬하고 확장될 수 있다는 알게 된 저자는 다각도에서 우정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로맨스가 우정보다 먼저여야 한다는 통념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던 진리가 아니었다. 과거에는 배우자 이상으로 친구와 마음을 나누는 것이 중요했고 그런 태도가 이상하지도 않았다. 사랑과 우정은 서로 동등한 개별적 관계였으며, 우정은 얼마든지 깊어질 수 있었다. 

출판사의 '소개글'에 나타난 앞의 글에서 저자 코헨이 왜 마리아 포포바의 말을 인용해 첫 페이지에 썼는지 이해가 간다. 『진리의 발견』에 소개된 사랑은 한 가지 형태에 머물러 있지 않다. 성별과 나이, 신분과 직업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영혼의 깊은 교류를 이어간 ‘연인’의 모습이다.



우리가 사랑의 종류에 붙이는 그 어떤 꼬리표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 이 모습에서 저 모습으로, 다시 이 모습으로 끊임없이 활기차게 형태를 바꾸는 사랑을 절대 정의할 수 없다. 포포바의 『진리의 발견』에는 마리아 미첼, 마거릿 풀러, 해리엇 호스머, 에밀리 디킨슨, 레이철 카슨 등 주요한 인물들 외에 랠프 왈도 에머슨, 찰스 다윈,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허먼 멜빌, 프레더릭 더글러스, 캐럴라인 허셜, 너새니얼 호손, 월트 휘트먼 등 수많은 주변 인물들의 삶도 실려 있다. 이들의 삶이 펼쳐 보이는 태피스트리는 음악과 여성주의, 과학사, 종교의 성쇠, 그리고 천문학과 시와 초월주의과 환경 운동까지를 아우른다. 한 인물의 삶은 친구, 우연한 만남, 모임, 편지, 심지어 연인이라는 예기치 못한 연결고리로 다른 인물의 삶과 연결된다.

마리아 포포바는 기본적인 저술과 전기뿐 아니라 편지와 메모 하나하나 모두 살펴 인물들의 복잡한 연결고리를 치밀하게 재구성했다. 그 덕에 이 책이 다루는 주제와 이야기의 다면성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진리의 발견』은 결국 여러 인물의 교차된 전기이자 과학사이자 문학사이며, 마침내 사랑 이야기로 완성된다. 우주의 무작위성이 어떻게 상호 연결되어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진리의 발견』이 연애보다 우정이, 애인보다 친구가 더 소중하다고 이분법적으로 말하거나 구분하는 건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견고한 이분법적 구분이 문제라는 걸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재밌고 분명하게 지적한다. 이 책은 다양한 관계를 상상하고 여러 방식을 시도해 보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포포바와 똑같은 이유는 아니지만 저자 코헨은 아주 깊은 친구 관계를 맺은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인종, 종교, 성별, 섹슈얼리티가 모두 다른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그 우정의 형태는 모두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가 삶의 중요한 부분들을 친구와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살며 아이를 키우고 병원에 함께 다니며 유언 집행을 맡겼다. 친구란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우정은 어디까지만 가능하다는 통념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새로운 관계 공식을 써 내려갔다.



이 책 『낭만적 우정과 무가치한 연애들』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관계를 정의한다는 것 : 과거와 현재, 플라토닉한 사랑의 가능성들〉, 2장 〈다른 반려자들 : ‘운명의 짝’을 넘어서〉, 3장 〈섹스가 무슨 상관? : 다시 생각하는 파트너 관계〉, 4장 〈저마다의 남자 되기 : 남성성과 친밀성의 길을 찾아서〉, 5장 〈가족다운 가족 : 친구에서 공동 양육자로〉, 6장 〈긴긴 세월 동안 : 나이 들며 맞춰가는 생활〉, 7장 〈애도를 허하라 : 플라토닉한 사랑을 잃었을 때〉, 8장 〈친구들에게도 권리를 : 결혼이 독점한 세상에서 우리가 치르는 대가〉 등이다. 

이 책은 각 챕터별로 각각의 우정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해병훈련소에서 만난 캐미와 틸리는 캐미의 남자친구와 틸리의 갈등 때문에 잠시 멀어졌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 사이다. 캐미는 이제 데이트 상대에게 자신에게는 언제나 틸리가 1순위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오랜 친구인 아이네즈와 바브는 자식의 죽음을 서로 의지해 견뎌냈다. 이제는 같은 집에 살며 노년기를 함께 보내며 늙어가는 서로를 돌본다. 나이가 20살 가까이 차이 나는 존과 에이밀리는 서로를 ‘비로맨틱 생활동반자’로 소개하며 어느 파티든 함께 참석하는데, 존의 유언장에는 에이밀리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그 누구보다 깊이 헌신하고 있지만 로맨스가 없다는 이유로 쉽게 간과되고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도에서 배제된 관계들이다.

이들은 사연만으로도 우정의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저자는 거기서 끝내지 않고 우정과 친구를 둘러싼 담론을 다각도에서 깊이 있게 탐색한다. 왜 우리는 로맨틱 관계에 있는 사람과 양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왜 친구와의 결별은 연인과의 이별만큼 슬퍼할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결혼에 부여된 수많은 특권을 다른 관계에게도 부여할 수는 없을까? 동성애자 남성인 아트와 이성애자 남성인 닉의 우정을 통해서 동성애에 대한 시선이 남성 사이의 우정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싱글맘인 너태샤와 법적 공동 양육자인 린다의 관계를 통해서 로맨틱 관계와 양육을 둘러싼 법적 권리 변화를 탐구한다.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는 사회에서 우리에게는 새로운 관계 모델이 필요하다. 우리는 타인과 우정으로 더 깊이 연결될 수 있다. 보편적인 관계 공식 밖으로 나아가는 길은 쉽지 않겠지만, 친구와 함께 가는 그곳에는 새로운 풍경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플라토닉하게 헌신하는 장기적인 관계로 자신들을 이끌어줄 수 있는 미리 정해진 틀도, 올릴 기념식도, 본보기가 될 모델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된 친구들을 다룬다. 3장 〈섹스가 무슨 상관? : 다시 생각하는 파트너 관계〉에서는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2020년 연구에서는 무성애자인 응답자가 무성애자가 아닌 퀴어 남성과 여성보다 더 강한 사회적 낙인을 체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때 성생활을 했다고 해도 어딘가 잘못된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은 매한가지다. 어디서나 보이는 비아그라 같은 약품 광고는 남성에게 나이를 먹어서도 정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을 넣는다. 이런 평가와 압력은 섹스가 '정상적'이고 만족스러운 삶을 이루는 결정적 요소이며 섹스를 원하지 않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을 부추기는 일단의 통념, 강제적 섹슈얼리티가 작동하는 사례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강제적 커플살이와 한 사슬을 이루는 고리로 이 개념을 생각해 보자고 주문한다. 섹스가 충만한 삶의 필수 요소라는 관념을 떠받치는 주장은 떨어지는 법이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섹스는 두 사람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나아가 새로운 삶을 만들어줄 가능성까지 품은 위대한 결합체로 여겨진다. 섹스는 친밀성을 길러준다. 맨몸이 되어 특정한 사람에게만 은밀히 자신의 욕망을 내보이고 그 앞에서 억제되지 않는 쾌락을 표출하는 건 취약함을 드러내는 일이다. 종교적 맥락에서 섹스는 일반적으로 신성한 행위다. 현대에 상상되는 섹스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섹스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네 권짜리 연구인 고전 『성의 역사』에서 철학자 미셸 푸코는 19세기가 서구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본다. 그 전까지 섹스는 결혼하고 가족을 이뤄 사회에서 한 개인의 자리를 확보하게 해준다는 의의가 우선시되는 행위였지만, 이대를 기점으로는 그런 의미가 아니게 되었다. 각 개인이 하는 섹스의 유형, 특히 그 섹스가 용납되는지 거부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도덕적 가치가 지각되었다. 

푸코는 섹수얼리티를 해방의 열쇠로 보는 것이 모순이라 생각했다. 푸코의 관점에서 섹스란 언제나 권력과 사회 규범에 얽혀 있었다.(p.124~125)



가까운 친구 수의 감소는 외로움과 연관되고, 외로움은 고혈압부터 우울, 인지 저하에 이르기까지 건강에 초래되는 각종 부정적 결과와 이어진다. 남편을 잃은 여성과 비교하면 배우자를 잃은 남성에게서는 외로움과 우울감이 확연하게 치솟고 그 상태도 오래 지속된다. 이들은 여성에 비해 자살로 생을 마감할 확률이 높다. 연구자들은 이 차이가 여성의 사회적 지지 체계가 더 다양하다는 데서 기인한다고 본다.(p.176~177) - 「4. 저마다의 남자 되기」 중에서


조이는 해나의 자리가 비고 나서야 그 우정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았다. 해나가 죽은 뒤에 조이는 두 사람이 나눈 우정이 얼마나 드물고 귀한 것인지 이해했다. “누리고 있을 때도 특별하단 건 알았지만, 얼마나 특별한지는 해나가 다른 세상으로 떠나기 전까지 몰랐어요.” 여기에 박탈된 애도의 어두운 아이러니가 있다. 조이가 겪는 슬픔의 깊이는 그 우정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되어야 맞다. 조니 미첼의 명곡 가사처럼, 내가 뭘 누렸는지는 그게 사라진 뒤에야 알게 되니까. 하지만 조이는 애도해도 인정받지 못했다. 회사와 정부 정책으로도 그랬고 제일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그랬다.(p.292) - 「7. 애도를 허하라」 중에서


저자 : 라이나 코헨(Rhaina Cohen)


NPR 다큐멘터리 팟캐스트의 프로듀서 겸 편집자다. 주로 사회적 연결에 초점을 맞춘 코헨의 프로그램은 수많은 팟캐스트와 라디오 쇼에서 방영되었고, 〈더 애틀랜틱〉, 〈워싱턴 포스트〉 등에 글을 기고했다. 미국 국립인문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Humanities의 장학금을 받아 노스웨스턴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했고, 그곳에서 마셜 장학생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낭만적 우정과 무가치한 연애들』은 라이나 코헨의 첫 책으로, 연애 밖의 관계들을 탐구한다. 평소 깊은 우정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남다른 친구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친구라는 개념을 둘러싼 사회적 통념을 조사해 우정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고찰한다.


역자 : 박희원


연세대학교 생활디자인학과와 언론홍보영상학부에서 공부하고 제품 개발 MD로 근무했다. 이야기를 만지며 살고 싶어 번역 세계에 뛰어들었다. 글밥아카데미 출판번역 과정을 수료하고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바이닐』 『에이스』 『무법의 바다』 『여자만의 책장』 『사물의 표면 아래』 『아케이드 게임 타이포그래피』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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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자동차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의 저자 루카 데 메오의 이력이 화려하다. 표제어처럼 '자동차의 거의 모든 것을 쓴 문화사전'이라 할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구찌, 입생로랑, 발렌시아가 등을 보유한 프랑스 럭셔리 그룹 케링의 CEO인 저자가 그동안 르노, 토요타 유럽, 피아트 그룹, 폭스바겐 그룹 등을 거치며 쌓아온 자동차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동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 산업과 인간의 열정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의 자동차는 지금 세계 3대 수출국을 위치에 올라섰지만 최근 미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관세 무역 협상을 통해 무관세에서 무려 25%의 벽에 부딪쳤다. 가장 어려운 점은 일본은 그동안 2.5%의 관세를 물다가 이번 협상에서 15%선에 무리의 일년 예산에 맞먹을 정도의 미국 내 투자를 약속하고 일단락을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협상을 마무리짓지 못해 25%의 관세를 내며 협상을 지속할 작정인 것 같다.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의 획기적 발전을 거듭하며 엄청난 자동차 수출국으로서 세계의 top10에 우뚝 섰지만 최악의 난관에 맞닥뜨린 형국이다. '자동차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는 이 책도 대한민국의 자동차 기술을 인정했던지 이 책에 등장한다. 수출 대국 대한민국의 효자 상품이었던 대한민국의 자동차는 미국에 가장 많은 자동차를 수출하고 있지만 이젠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일본의 자동차에 뒤질세라 우려하는 가운데 그래도 지난 업적을 이 책에서 인정해 주는 듯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독자는 앞으로 우리 자동차가 예전 영화를 다시 찾기를 기대하며 이 책을 읽는다. 

독자 개인적으로는 자동차 마니아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남성들만큼 꽤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차도 국산차이지만 이것, 저것 많이 타본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차를 몰고 다닌 것이 벌써 35년을 지나고 있으니 그동안 관심을 가진 시간으로만 계산해도 보통 이상은 될 것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



저자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지만 이력만으로도 관심이 갈 정도로 화려하다. 저자쯤 되니 책의 맨 앞장에 '자동차 마니아를 위한 책'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자동차에 관심을 가진 순간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되살려낸다. "내 인생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자 내 삶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바로 자동차와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겨우 일곱 살이었지만, 그날 이후 내 마음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p.7)

〈서문〉에 따르면 1973년 12월 말, 저자의 가족은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코트디부아르의 아비장에 살고 있었다. 당시 저자는 아름다운 자동차에 매료된 어린 소년이었다. 아버지는 저자를 기쁘게 해주려고 이탈이아 출신의 유명한 레이싱 드라이버 아르날도 카발라리가 몰던 란치아 풀비아(Lancia Fulvia)를 타볼 특별한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카발라리는 매년 열리는 반다마 랠리에 출전하기 위해 아비장에 와 있었다. 당시, 이 랠리에는 세계적인 자동차 스타들이 대거 참가할 예정이었다. 아버지는 란치아 브랜드가 속한 피아트 그룹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기에, 카발라리와 그의 팀은 저자의 집에서 머물렀다. 그 덕에 얻은 그날의 드라이브는 숨이 멎을 만큼 감격스러웠고, 그 여운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무엇보다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카발라리가 자신의 레이싱카 사진에 직접 사인을 해 저자에게 선물했을 때였다. 저자는 그 사진을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회고한다.

이후 저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럽의 여러 주요 그룹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으며 경력을 쌓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르노·피아트·폭스바겐·부가티 등 다양한 브랜드와 모델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자동차가 국가 정체성과 사회 변화를 어떻게 담아냈는지 탐구한다. 저자뿐 아니라 여러 브랜드의 경영자와 디자이너, 레이싱 드라이버의 글과 함께 기술 혁신과 환경 위기, 전기차 전환, 자율주행으로 열리는 미래까지, ‘한 권으로 만나는 자동차 인문학 사전’인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자동차와 함께 시대를 읽는 또 하나의 눈을 얻게 될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



저자의 자동차의 열정이 본격적으로 타오른 것은 2002년 35세의 나이에 피아트 그룹에 합류하면서부터라고 털어놓는다. 당시 회사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었지만, 모국 이탈리아의 대표 기업에 몸담게 돼 무척 기뻤다고 고백한다. 르노에서 시작했고, 토요타 유럽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 경영자로 성장하기 전 예행연습 같은 시기도 거쳤다. 준비된 상태로 스카우트된 피아트의 경영 상황이 꽤 어려운 상태지만 모국의 기업이라 더욱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을 했다고 한다. 자동차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 때의 마음처럼, 원동력의 야망이 아니라 순수한 열정이었다고 역설하는 점으로 보아 더욱 그의 자동차에 대한 그의 마음이 읽힌다. 

저자는 자동차에 몸담고 있는 동안 세 명의 전설적인 인물들을 만났다고 저자는 말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로 세르지오 마르키온네를 꼽았다. 그는 이탈리아의 피아트와 미국의 크라이슬러를 동시에 회생시킨, 이탈리아의 영웅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두 번째 인물은 독일의 엔지니어 페르디난트 피에히다. 그는 포르쉐 가문의 일원이자 아우디의 창립자이며, 훗날 폭스바겐 그룹의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세 번째는 장도미니크 세나르로이다. 세계 최고의 타이어 기업 미쉐린의 전 CEO로, 회사를 모범적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섬세함과 품위, 넓은 아량 그리고 리더십과 경영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은 저자가 험난한 회생 과제에 도전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고 밝힌다. 이후 저자는 여러 나라를 넘나들며 커리어를 이어왔고, 그 과정에서 자동차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쌓았다. 그 지식은 지금도 여전히 깊어지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자동차의 세계가 얼마나 감동적인 순간들과 놀라운 일화를 그리고 세상을 바꾼 잘 알려지지 않은 혁신들로 가득한지를 보여준다. 이는 곧 현대 세계의 발전사를 따라가는 일종의 시간여행이라고 저자는 이 책에 대해 자신감을 내비친다. 

먼저 자동차 산업의 탄생부터 써 내려간다. 19세기 말, 지금도 널리 기억되는 위대한 인물들의 굳은 의지에서 자동차 산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쟁, 1930년대의 대공황, 석유 파동 등 숱한 위기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늘 다시 일어섰다는 것. 수많은 직종과 전문 기술이 이 산업에 집결돼 협업을 이뤄냈고, 오늘날에도 자동차는 우리의 산업적 운명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임을 강조한다.



앞서 이 책이 '사전'이라고 저자가 밝혔듯 책의 기술 순서도 사전식이다. 번역본인 이 책에서는 가나다 순으로 정리됐지만 원전은 알파벳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전은 '찾아보기' 쉽게 순서대로 구성된다. 그러나 일반적인 책은 대개 역사는 연대 순(順), 철학은 사상의 변화 순, 예술은 주의 순이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자동차 산업의 흐름을 짚어보는 책은 아니다. 또 인물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인명 순도 아니다. 때로는 단편적인 지식이나 경험을 혼합해 이어지기도 하지만 자동차 산업의 발달에 따른 새로 등장하는 자동차 외관, 엔진, 부품 등에 얽힌 이야기가 큰 줄기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서문〉에 이어 4개의 아라비아 숫자와 알파벳이 먼저 나온 4개 항목을 먼저 기술했다. 

「66번 국도」「F1」「SUV」「Z세대」 등이다. 나머지는 ㄱ, ㄴ, ㄷ 순으로 배열한다. 이 가운데 독자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첫 번째 항목 「66번 국도」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동해안을 따라 부산에서 죽 올라가는 해안도로를 '7번 국도'라고 해 많은 이들에 추억의 도로가 있다. 부산에서 시작되는 7번 국도는 강원도 고성까지 해안을 따라 죽 뻗어 있는 도로다. 원래 함경북도 온성까지 올라가지만 지금은 분단돼 고성에서 멈춰야 한다. 절경의 동해안을 따라 죽 뻗은 도로여서 데이트 족이나 친구들과의 여행을 위해 자주 선택되는 도로다. 

「66번 국도」는 미국에 있는 도로다. 부제로 '세계에서 가장 감성적인 국도'라고 붙어 있다. 미국에서 최초로 건설된 시카고와 캘리포니아의 산타모니카까지 이어지는 3,942km의 도로다. 대륙 국가라서 그런지 스케일부터 다르다. 이 긴 도로를 '마더 로드'라고 불리는 데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저자는 밝힌다. "이 길은 서부 개척의 발자취를 들려주고, 나라를 일궈온 주요 장소들을 가로지르며, 자동차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몸소 증언한다. 우리 마음속엔 실제로든 상상으로든 늘 66번의 국도의 작은 조각이 자리하고 있다."(p.21)

이 도로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유는 자동차와 도로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때문일 것이다. 유럽에는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는 도로가 있을 리 없다. 철도는 있지만. 자동차 왕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도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대규모 동서 횡단 도로망의 개념은 20세기 초에야 비로소 싹을 틔웠다고 한다. 1910년에는 미국에서 등록된 자동차가 18만 대에 불과했지만, 10년 뒤에는 무려 1,700만대로 치솟았다고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이 책에는 대부분 젊은이들의 '로망'인 「람보르기니」와 「페라리」가 등장한다. 젊었을 때의 독자에게도 이 차들은 말 그대로 로망이었다. 너무 비싸 사지 못할 스포츠카의 멋을 한껏 낼 수 있는 명차들이다. 회사 설립 연대순으로 보면 페라리가 앞서지만 가나다 순으로는 람보르기니가 먼저 나온다. 저자는 이 항목에 '분노는 지나가고 차는 남았다'는 부제를 달았다. 저자는 람보르기니의 탄생은 믿기 어려울 만큼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고 운을 뗀다. 1960년대 초, 자존심 강하고 다혈질적인 두 이탈리아 남자가 한 판 대결을 벌였다. 한 명은 일과 로메오의 전직 레이싱 드라이버이자 매니저로, 1947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회사를 창립한 엔초 페라리. 다른 한 명은 움브리아 지방 출신의 농부였지만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1948년부터 트랙터를 만들기 시작한, 야심가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였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자동차 경주의 열혈 팬이었고, 사업에 성공해 번 돈으로 여러 대의 페라리를 구입했다. 

그는 페라리의 명성과 우아함을 부러워하면서도 어딘가 경쟁심을 품고 있었다. 1960년, 자신이 소유한 페라리 차들이 자꾸 고장을 일으키자, 불만을 품은 람보르기니는 직접 항의하기 위해 마라넬로의 엔초 페라리를 찾아간다. (중략) 페라리는 람보르기니를 면전에서 노골적으로 모욕했다. "페라리 말고 트랙터나 몰 줄 알지!" 람보르기니는 엄청난 굴욕감을 느꼈고, 바로 스포츠카 제조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독자는 얼마 전 두 스포츠카 회사의 창립 기념 75주년과 60주년을 맞아 화보 같은 책을 각각 펴냈다. 그에 대한 람보르기니의 서평의 서두를 이렇게 썼다. "람보르기니는 세계 젊은이들의 '로망'이다. 동종 타사가 먼저 출발했지만 지금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부 차종은 더 인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람보르기니가 스포츠카를 컨셉으로 발전을 거듭해온 비결은 무엇일까. 이 책 『람보르기니 60년』은 표제어대로 창립 60주년을 맞은 기념으로 출간한, 출시 차량은 물론 경영 방식까지 모두 밝혀 람보르기니의 미래로 이어지는 디딤돌로 기획됐다. 세계의 명차 브랜드로 자리 잡기까지 각고의 노력이 책 속 곳곳에서 드러나며 혁신적인 경영과 컨셉트카의 상징적인 외관, 스포츠카로서의 엔진 등 람보르기니의 모든 것을 밝히고 있다. 압도적인 존재감의 슈퍼카, 람보르기니의 경이로운 60년 역사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람보르기니는 1963년, 12기통 엔진을 탑재한 350GT와 함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1947년부터 이어진 페라리 스포츠카보다 약 15년 늦은 셈이다. 그러나 람보르기니는 슈퍼카 유니버스에 지각변동을 불러온 미우라, 모든 이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은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의 쿤타치로 슈퍼카의 기준을 완전히 재정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모터스포츠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 스튜어트 코들링은 이 책에서 전 세계 슈퍼카 마니아를 설레게 하는 놀라운 자동차를 세상에 내놓으며 60년이 넘는 격동의 세월을 우직하게 걸어온 람보르기니의 역사를 가감 없이 기술했다." 독자가 자랑스러워 썼다기보다 역시 경쟁을 통해 서로의 발전을 이룬 명품 자동차 제조사들의 발전 과정에 '필'이 꽃혀서다. 


200마력 이하의 차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프랑수아즈 사강, 첫 책 『슬픔이여 안녕』의 성공 덕분에 손에 넣은 재규어 XK140을 시작으로, 재규어 E-타입, 애스턴 마틴 DB2, AC 브리스톨, 페라리 250 GT 캘리포니아, 메르세데스 SL까지 사강은 고성능 스포츠카들을 열렬히 사랑했다. 생제르맹데프레의 친구들과 함께 도로 위를 거침없이 질주하며 속도감을 만끽하곤 했다. 키는 1m 65cm에 불과했지만, 파워 스티어링도 없던 시절에 묵직한 대형 핸들과 싱크로나이저조차 없던 뻣뻣한 기어 레버를 단단히 움켜쥔 채 그녀는 도로를 지배했다. 그리고 속도에서 얻는 아드레날린을 이렇게 찬미했다. “속도를 사랑해본 적 없는 사람은 삶도, 누군가도 사랑해본 적 없는 사람이다.”(p.478) - 「프랑수아즈 사강」 중에서


저자 : 루카 데 메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자동차 그룹 경영자이자 전략가다. 밀라노 보코니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토요타 유럽에서 경력을 시작해, 피아트, 란치아, 알파 로메오, 아우디, 세아트 등 자동차 브랜드에서 경력을 쌓았다. 마케팅과 브랜딩 분야에서 탁월한 감각을 인정받아, 아우디 A1과 피아트 500 같은 상징적인 모델의 성공을 이끌었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 르노 그룹 CEO로 활동할 당시, ’르놀루션‘ 전략을 발표하며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전동화 추진에 힘쓰며 대규모 적자를 흑자로 전환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동차를 사랑하는 가문에서 성장한 그는 뼛속까지 자동차광이자 그의 전 생애를 통틀어 자동차 산업의 현장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루카 데 메오 회장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자동차 브랜드가 없을 정도로 전 세계 자동차 회사의 러브콜을 받아온 그는 르노를 마지막으로 자동차 산업을 떠나 현재 구찌와 입생로랑 등을 보유한 럭셔리 그룹 케링의 CEO를 맡고 있다. 단지 자동차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동차를 둘러싼 거의 모든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자동차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역자 : 유상희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번역과를 졸업했다. NIA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 구축 사업, 북스인터내셔널(그림책 전문 국제NGO) 부르키나파소 그림책 지원 프로젝트, 『주미에르의 10시간 프랑스어 첫걸음』 등 프랑스 일반교양서를 번역하고 감수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 및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 리오넬 메시의 첫 공식 전기』, 『그녀가 최초였다: 세상을 바꾼 우먼 파워 1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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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타고나는가 - 유전과 환경, 그리고 경험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케빈 J. 미첼 지음, 이현숙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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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선천성과 후천성의 논쟁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다. 우리 삶의 방향은 유전자가 아닌, 우리 안에 잠든 무한한 가능성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이 책이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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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타고나는가 - 유전과 환경, 그리고 경험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케빈 J. 미첼 지음, 이현숙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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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우리는 무엇을 타고나는가』는 우리의 정체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며,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를 밝히는 안내서이다. 이처럼 현대까지 줄기차게 지속되어 온 본성과 양육의 논쟁은 공산주의와 우생학의 출현을 낳는 등 극단으로 치닫는 양상도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과학계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긴 연구 결과가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책을 번역 출판한 〈오픈도어북스〉의 '소개글'에 따르면 현대 유전학이 본성에 무게를 실어 주기 시작하면서 유전자만이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잘못된 믿음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에 저자 케빈 J. 미첼은 유전자가 현재의 모습을 만드는 데 일조하지만, 우리의 미래까지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궁극적으로 이 책에서는 유전자를 넘어 서로 다른 형질을 타고나 각자의 환경에서 자라 온 다양한 형태의 본성들을 수용하고 맞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복잡한 우리 내면 세계의 지형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인간의 본성과 유전 연구의 기본 방법론, 뇌의 구조 및 기능 발달에 관한 신경과학적 기초와 환경 및 경험, 그리고 뇌 가소성을 다룬다. 이를 바탕으로 성격 특성과 지각, 지능, 성별과 신경 발달 질환이라는 구체적인 영역을 주제로 한 후반부로 진입한다. 이들 주제는 우리 뇌의 성장과 발달에 오랜 논쟁을 유발해 온 본성과 양육의 영역 가운데 무엇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가를 중심으로 논의한다. 그리고 논의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는 현대 유전학의 성과가 인간 사회에 남기는 윤리적, 철학적 함의를 내놓는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단어 '천성' '본성' '유전' 등이 있다. 우리의 타고난 성격이나 성품을 일컫는 천성(天性), 사람이 본디부터 가진 성질을 말하는 본성(本性), 생명 어버이의 성격, 체질, 형상 따위의 형질이 자손에게 전해지거나 또는 그런 현상을 지칭하는 유전(遺傳)이다. 이 책에 수록된 내용은 모든 사람은 ①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가?와 ② 유전과 환경 사이에서 흔들리는 존재를 바라보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의 궤적을 되돌아보기 위해 서술됐다.



저자 케빈 J. 미첼은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분자유전학을 전공하였으며,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현재는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유전학과에서 발달 신경유전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미첼 교수는 뇌의 신경망 배선을 지정하는 유전 프로그램과 인간의 능력 변화 및 지각 상태와의 관련성 이해를 목적으로 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으며, 인간의 자율적 행동 및 의사 결정 능력과 관련된 행위성과 자유의지에도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는 많은 업적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 11장(章)의 본문은 앞서 언급한 대로 전·후반부로 나뉘어져 있다. 책의 〈서문〉에 따르면 전반부에서는 인간 능력의 선천적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개념적으로 정리한다. 먼저 쌍둥이 연구와 입양아 연구를 토대로 유전적 요인이 인간의 심리적 특성, 뇌의 해부학적 차원과 기능에 미치는 여행을 보여 주는 증거를 검토한다. 이에 관한 연구는 본성과 양육이 집단 내 변이에 미치는 영향을 분리하여 분석하는 출발점이 된다. 

이들 연구에는 개인의 현재 모습을 형성하는 요인을 밝히기보다는 각자의 차이를 만드는 요인을 설명하는 데 목적을 둔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러나 전자와 후자를 곡해하는 일이 흔하므로, 연구 결과가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그렇지 않은 것을 신중하게 분석한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저자는 또 유전적 변이의 근원과 영향력에 집중하여 변이 자체를 더 깊이 탐구한다고 말한다. 발달 과정을 중심으로 DNA 염기 서열의 차이가 미치는 궁극적인 영향을 살피고, 뇌내 신경 회로가 자체적으로 형성되는 기제를 심층적으로 고찰한다. 이 과정에서 유전 명령의 변이가 작용하는 방식을 검토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발달 과정의 무작위성과 선천적 변이의 가변성을 고민하고, 유전과 발달 과정의 변이 모두 각자가 타고난 성향의 차이를 형성하는 데 이바지한다는 점을 독자들이 이해하기를 주문한다.



전반부의 마지막 장에서는 양육이 인간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수십 년에 걸쳐 성숙하고 발달하며, 그동안의 경험에 따라 형성된다. 일반적으로 양육은 본성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간주한다. 특히 환경이나 경험은 개인 간 선천적 차이를 완화하거나 개인의 선천적 특징을 균등화하는 평등주의자라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다.

이 책에서는 그와 다른 대안 모델을 제시하겠다고 저자는 밝힌다. 각자의 환경 및 경험, 그리고 뇌가 그에 반응하는 방식은 대체로 선천적 특성이 좌우한다. 뇌의 발달 과정에는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라는 특성을 지닌다고 한다. 따라서 경험은 선천적 차이를 상쵀하기보다 오히려 증폭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상에서 설명한 바를 토대로 후반부의 내용을 논의할 이론틀을 마련하겠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와 함께 후반부에서는 인간 심리의 여러 영역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의 심리 영역에는 성격과 지각, 지능, 성적 취향 등이 포함된다. 이처럼 다양한 특성은 우리 삶에 여러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며, 이에 작용하는 유전적 변이는 자연 선택의 강한 영향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위 특성의 유전 구조 및 관련 돌연변이의 유형과 개수, 빈도는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이들 특성의 변이는 주로 발달 과정에서 비롯된다. 각 기능을 담당하는 회로가 다르게 작용하는 이유는 회로의 형성 방식이 일부나마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유전적 변이뿐 아니라 발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작위 변이도 능력의 선천적 차이에 중요하며, 때로는 결정적 역할을 맡기도 한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엣허는 자폐증과 뇌전증, 조현병과 같은 일반적인 신경 발달 장애의 유전적 요인도 살펴보겠다고 이야기한다. 최근 몇 년간 이들 질환의 유전적 요인을 분석하는 연구가 크게 진전된 결과, 우리가 해당 질환을 이해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유전 연구는 개별적인 신경 발달 장애가 실제로 별개의 질환이 아니라, 다양한 유전 장애의 집합체임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신경 발달 장애에서 비롯한 질환은 모두 공통된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한 결과이며, 이러한 변이가 광범위한 신경 발달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지금까지 제시한 이론 틀의 사회적, 윤리적, 철학적 의미를 다룬다고 저자는 밝힌다. 개인마다 두뇌와 정신이 작동하는 방식에서 커다란 선천척 차이가 존재한다면, 교육 및 고용 정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자유 의지와 법적 책임에 시사할 수 있는 바는 무엇일까? 이러한 차이의 존재는 결국 우리의 특성이 고정되어 변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가? 저자의 의문은 이어진다. 이와 함께 심리적 특성을 유전적으로 예측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그리고 발달상의 차이는 이에 어떤 제한을 가할까? 궁극적으로 우리의 정신과 주관적 경험이 본질적으로 다양하다는 관점은 '인간의 조건'의 이해를 어떠한 방식으로 새롭게 조명할까? 

이 책은 모두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본성이란 무엇인가?〉, 2장 〈유전의 세계〉, 3장 〈각자의 가능성〉, 4장 〈똑같은 것은 없다〉, 5장 〈선택과 집중의 뇌〉, 6장 〈마음의 전경〉, 7장 〈감각에 살고, 주관에 살고〉, 8장 〈사고의 진화〉, 9장 〈그와 그녀〉, 10장 〈기준 밖의 존재들〉, 11장 〈유전자 너머의 세상〉 등이다. 

이 책은 인문학적으로 서술되어 있지만 실제 내용은 과학, 의학, 생물학, 유전학 등 많은 학문의 영역에서 각기 다른 학설과 이론을 한데 모아 분석하고 다시 연구한 내용들인 것으로 독자에게는 이해된다. 각각의 분야에서 설명하는 이론 중 현재까지 유효한 이론, 과거에 통용됐지만 오류로 밝혀진 학설 등을 제대로 숙지하고 이 책을 읽으면 무척 쉽겠지만 이런 학문 분야에 문외한인 독자에게는 결코 쉽지 않다. 그래도 끝까지 읽어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저자의 비유적 표현이 이론이나 기존 학설을 무척 쉽게 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가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주인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잠든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하는 미공개 악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떤 연주자들이 무언가 갖추어진 환경에서 어떻게 피어나는 감정으로 연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선율이 탄생하듯이, 우리의 인생 또한 유전자와 환경, 그리고 자유의지라는 세 연주자가 들려주는 생에 단 한 번뿐인 협주곡이라는 말이다."

우리에게 과학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궤도'(과학 커뮤니케이터 및 DGIST 특임교수)의 〈추천사〉 중 일부이다. 저자 못지않게 매력적인 추천사다. 저자가 이 책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을 통해 이 책이 결코 쉽지 않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먼저 읽어본 독자로서 이제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한 가지 귀띔해줄 말은 이 책을 읽으려면 단어들을 찾을 준비를 해둘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사실 고등학교 때 생물 수업 때 익혔던 단어들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졸업 후 수십 년 동안 발전해온 뇌과학이나 유전학 등을 따라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미리 밝혀둔다. 물론 과학 분야의 발전은 매일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니까 전문가 아니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내용도 많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저자에게 맡기면 된다. 글을 풀어내는 저자의 솜씨가 '매력적'이니까. 고등학교 때 배운 단어들이라고 해도 지금은 다소 다른 뜻으로 변화한 것도 있다. 

독자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었던 부분은 9장 〈그와 그녀〉의 내용들이다. 저자는 장(章)의 첫 문장을 "남성과 여성은 정말 다를까?"로 시작한다. 이어 "물론 신체적으로는 확연히 다르지만, 행동이나 심리에도 차이가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은 새로운 소재를 찾아야 했을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확실히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르게 행동한다. 적어도 평균적으로는 그렇다. 여기에서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인간만을 별개로 놓고 본다면, 생물학적 차이의 영향과 문화적 규범 및 기대의 영향을 구분해 내기가 매우 어렵다. 실제로 두 효과는 상호 작용하면서 행동 양식에 영향을 미친다."(p.289)고 풀어쓴다.

저자는 「성 선택」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찰스 다윈이 처음 지적한 바와 같이, 성 선택은 마치 끝없이 고조되는 군비 경쟁처럼 작용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매우 기이한 적응과 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암컷이 진화적 적합도가 더 높은 수컷을 선택하기 위해 까다로워지면, 수컷은 자신이 상대적으로 더 적합한 짝임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행동한다. (중략) 따라서 경쟁은 번식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다양한 행동 가운데 특히 공격성과 폭력성에서 성별 간 차이를 만들어낸다."로 썼다.



어느 특성이 유전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서 그 특성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다. 행동은 전반적으로 뇌 기능에서 비롯되며, 일부 예외를 배제하더라도 특정 유전자의 분자적 기능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변이 가운데 상당수는 뇌의 발달 방식에 매우 간접적으로 작용한다.(p.31∼32)


우리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까? 이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로, 철학자들이 수천 년 동안을 고민해 온 주제이다. 두 사람이 주관적으로 같은 지각 경험을 하고 있음을 증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쩌면 원칙적으로도 그러할 것이다.(p.203)


누군가는 세상을 쉽게 헤쳐 나간다. 그러나 다른 이는 세상에 적응하고, 주위 사람과 잘 어울리거나 정신을 붙들고 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차이를 부정한 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에 우리는 인간 본성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받아들이기를 넘어 환영할 수 있어야 한다.(p.408)


저자 : 케빈 J. 미첼(Kevin J. Mitchell)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분자유전학을 전공하였으며,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현재는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유전학과에서 발달 신경유전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첼 교수는 뇌의 신경망 배선을 지정하는 유전 프로그램과 인간의 능력 변화 및 지각 상태와의 관련성 이해를 목적으로 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으며, 인간의 자율적 행동 및 의사 결정 능력과 관련된 행위성과 자유의지에도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러한 연구 성과에 힘입어 유럽 분자생물학 기구(EMBO)에서 젊은 연구자상을 수상하였으며, BBC, CNN, TED 등 여러 매체에 출연한 바 있다. 저서 《우리는 무엇을 타고나는가》는 《포브스》에서 뇌과학 필독서로 선정되었다.


역자 : 이현숙


중앙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영어 강사로 계속 활동했다. 글밥 아카데미 영어출판번역 과정을 수료한 뒤, 현재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거품의 배신》, 《생명을 이어온 빛: 광합성의 신비》, 《다가올 초대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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