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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게모노 1
야마다 요시히로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름다움을 탐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까?
누구나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가늠하는 기준이 있는데, 때로 그것은 학습 없이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듯 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에 맞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결국엔 간절히 소유하고 싶어한다. 때론 그것을 소유하는데 모든 인생을 걸기도 한다. 아름다움의 소유. 그것은 결국엔 늙고 추해져가는 육체를 지닌 것에 대한 반동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빼어난 외형만을 지닌다고, 그것으로 아름다움의 조건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외형에 걸맞는 깊이있는 '히스토리'. 그리고 희소가치. 그것들이 모여서 궁극의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그리고, 여기 이 남자.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내 나이 서른 넷,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난세에 태어나 오다 노부나가라는 희대의 리더를 군주로 삼고있는 자. 사무라이!!
그 이름 '후루타 사스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지만, 이런 와중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
그것도 노부나가의 가신들이 모인 큰 회의. 일종의 어전회의에서 말이다.
그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오다 노부나가의 작전계획이 아니라, 그가 걸치고 있는 옷이다.
그리고 오다 노부나가가 천왕에게 하사받은 '명품' . 갖고싶어하고 있다!!!
그러면서, 회의에 참석한 다른 무사들이 입고있는 갑옷을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 이 엄숙하고 중차대한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심미안을 통해 자신의 주군과 그 부하들의 패션을 체크하고 있는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활약하던 일본의 전국시대. 이 후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거쳐 막부시대, 메이지 유신등 일본 근대시대로 접어들게 되는 격변기의 첫 장이기도 하기에, 이야깃거리가 정말 풍성한 시기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의 전란기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다이묘로써 일본 통일의 기치를 내걸은 희대의 무장이기도 하지만, 대단한 심미안을 바탕으로 수많은 명품들을 수집한 풍류를 아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무장이라고 하면, 삶의 대부분을 검에 바치는 부류이다. 수많은 음모가 난무하고 하극상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던 시대, 수많은 가신과 영지를 거느리고 있는 다이묘가 풍류에까지 정력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일 터, 작은 벼슬인 '다이칸'에 지나지 않는 후루타 사스케로서는 그런 오다 노부나가의 그릇에 감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남자로서, 무인으로서 전란의 시기에 주군으로 섬기고 있는 오다 노부나가의 눈에 들만한 공을 세워 출세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의 눈은 언제나 아름다운 명품을 향하고 있다. 특히 작품 안에서는 주로 '다기茶器' 가 많이 다뤄지고 있는데, 일본의 '다도茶道' 문화와 관련되어 있다.
동양에는 어느 국가든지 차에 대한 예법이 있다. 찻잎을 오랜시간 우려내는 과정을 일종의 마음 수련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중국은 물론이고, 신라 화랑들에게도 다도법이 있었으며, 일본의 다도는 종교와 만나 조금은 독특한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하지만,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는 다도회를 금하고, 일부 충실한 가신들에게만 다도회를 여는 것을 허락함으로서 다도회는 일종의 포상과 같은 개념이 되었다. 필연적으로 다도회 자체가 횟수가 줄어서 그 자체에 대한 희소성이 생겨났고, 양민들은 제대로 먹고 살기도 힘든 전란의 시대에 소비조차 많지 않은 다기를 양산할 필요 자체가 없었다. 특히 고려나 조선에 비해 도예陶藝 의 수준 자체가 떨어졌던 일본에서 고려나 명나라 자기에 맞먹는 다기는 구경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다.
주인공 후루타 사스케는 바로 그런 명품 자기에 집착하는, 일종의 명품 매니아였던 것이다.

군주의 명을 받들어 적장과 협상을 하러 간 자리에서도 명품에 눈이 뙇~!!!!
하지만 그렇다고 사스케가 명품으로 호사를 부리고 위세를 부리려는 된장남은 아니었다.
사스케는 명품을 알아보는 '눈' 즉 심미안도 타고난 자였다!! 진정 명품을 '즐길 줄 아는' 자였다. 이것을 '풍류' 라고 한다.
사스케는 뛰어난 안목을 가진 진정한 풍류객이었던 것이다.
돼지목에 진주라고, 제아무리 아름다운 보물이라도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자의 손에 들어가야 보물인 것이다.
나같은 사람에게 샤넬 백을 쥐어줘 봤자, 돌체 엔 가바나 셔츠따위를 줘봤자, 난 모른다~! ㅋㅋㅋㅋ
난 아마도 그 백을 들고있을 여성이나(므흣~), 셔츠 밑에 있을 오랜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근육에서 더 아름다움을 느낄터다. 당연히 단단한 근육이 없으면 쳐다도 안 볼 테고. 난 샤넬 백이 왜 그렇게 비싼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 백이 가지고 있는 디자이너의 이름, 그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희소성과 가치, 그 백을 만드는데 들어간 각종 재료의 가치, 그리고 그 백이 상징하는 사회적인 위상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로고만 안다고 보는 눈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바느질 자리가 어떻고, 손잡이 고리가 어떤 식으로 매듭져있고, 그런것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명품을 보는 눈' 이 있는, 풍류를 아는 사스케의 이야기와 함께, '시대의 큰 흐름을 보는 눈' 이 있는 희대의 무장 오다 노부나가와 훗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되는 하시바 히데요시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즉, 명품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사스케의 욕구와 나라와 권력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하시바 히데요시를 대칭점에 두고 '전국시대' 라는 굵은 이야기의 흐름을 좇아간다.
이야기는 사스케의 시점에서 전개되어진다. 주변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스케의 눈과 입을 통해 나오지만, 1권의 마지막부분, 하시바 히데요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둘로 나뉠 것임을 보여준다.
"사루(원숭이)"라는 조롱을 받으면서도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그 밑에서 온 몸을 납작 업드려 자신의 때를 기다렸던 인물, 하시바 히데요시는 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되는데, 히데요시는 특히 야심과 탐욕이 남달랐던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에겐 임진왜란을 일으켜서 우리 민족에게 큰 고통을 준 인물로 유명하다. 이런 히데요시와 사스케를 대칭점에 놓음으로서 달라보이면서도 닮아있는 두 소유욕에 대해 풀어낼 듯 하다. 그리고 1권 중반에 나오는 아케치 미츠히데 또한 이야기의 큰 흐름이 될 듯 하다. 특히 사스케와 아케치 미츠히데가 함께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 복선을 드러내는데, 일본에서 아케치 미츠히데는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한 하극상의 아이콘과도 같은 인물이다. 하시바 히데요시와 아케치 미츠히데의 묘한 기류, 그리고 그에 비해 너무나 소박한 욕심을 갖고 있는 후루타 사스케.
이 작품은 단순히 아름다움에 대한 소유욕을 가지고 있는 전국시대 한 무장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의 전국시대는 현대로 따지면 거대 기업안의 파벌싸움과 비슷하다. 일본의 수많은 경영법과 관리법, 게다가 처세술까지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그 뒤에 등장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저서나 인물 평전들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현대 일본 사회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른 시각에서 풀어내고 있는 뛰어난 역사 만화인 것이다.
그 시대의 남자라면, 그리고 무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었을 출세욕. 하지만, 주인공인 후루타 사스케는 그 흐름과 다른 소박한 수집욕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출세하지 못하면 자신의 소집욕을 충족시킬 수 없다.
결국 다시 첫 페이지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나 후루타 사스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무공武功에 집중할 것인가, 풍류객으로 머물다 갈 것인가??
전란의 시대, 이름을 떨치고는 싶고, 아름다운 물건들을 더 보고, 더 보고 싶다!!
작중 등장인물 중 하나인 '아라키 무라시게' 가 이렇게 말했다.
"설령 가족을 희생시킨다 해도 더 보고 싶다, 더 가지고 싶다는 욕심에 살고자 하고 강해지지."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결국 사스케는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초반에 만나게 되는 '마츠나가 히사히데' 는 이런 말을 한다.
"언젠가 너도 선택할 날이 올 테니.
압도적인 힘을 가진 자가 나타났을때 내 길을 선택할 것인지, 포기하는 길을 선택할 것인지를 말이다."
아마도 후루타에게 이 압도적인 힘을 지닌 자는 아케치 미츠히데와 하시바 히데요시가 될 확률이 많다.
하지만 후루타는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말이 이렇게 들렸을 터다.
'충의'냐 '힘'이냐.... 가 아닌,
'출세'냐, '풍류'냐!!!!! 를 말이다.
결국 후루타 사스케는 풍류를 즐기는 필부로써 앞으로 오다 노부나가를 둘러싸고 벌어질 거대한 흐름, 즉, 하시바 히데요시와 아케치 미츠히데가 일으키는 풍랑을 거스르지 못할 것이다. 이런 급박하고 어두운 정세를 심미안과 물욕을 가지고 있는 후루타 사스케의 가벼움으로 유쾌하게 풀어내는, '의도적인 감량' 이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무기일 터다. 정말 세련된 스토리 텔링이 아닐 수 없다.
고증에 철저한 의복이나 스타일의 재현도 놀랍다. 실제로 오다 노부나가는 아방가르드 한 면이 있는 대단한 패셔니스타였다고 전해진다.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에서 들여온 갑옷을 입고 투구와 가면을 쓰고 최전방에 나섰던 아방가르드 그 자체, 전위예술가였던 것이다. 그러한 점에 착안한 작가의 발상과 그것을 유연하게 풀어내는 역량이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다.
이런 철저한 고증의 재현과 맞물려, 주인공 후루타 사스케의 우스꽝스러운 표정 연출, 명품을 봤을때 '꿍덩' 하는 느낌을 받는다거나, '하냐앙~'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언어유희가 절묘하게 뒤섞여 대단히 수준높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대단히 리얼하지만, 만화스러움을 결코 잃지 않는 엄청난 센스.
일본 역사만화라는 장르에 있어서 하나의 교과서가 될 듯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