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독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5
메리 웨브 지음, 정소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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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전집은 지금까지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던 책들을 초역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독자로서 반갑고 출판사에 감사하는 마음까지도 들지만. 책을 읽어보면 어쩔 수 없이, 이 책이 지금까지 소개되지 않았던 이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문학을 A급이라 한다면 이걸 B급이라 불러야 할까? 거칠다거나, 세련됨이 부족하다거나, 평면적이라거나. 하나의 작품으로서 개성은 있지만 전체적 총점의 차원에서는 확실히 유명한 고전에 비해서는 부족한 지점들이 있다. 이 책은 언청이 여주인공이 동네의 잘 생긴 총각을 사랑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이 책의 홍보 문구) 궁금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사실 매력적인 캐릭터는 언청이 여주인공보다는 그녀의 오빠인 기디언이다. 계급상승에 대한 광기에 가까운 집념을 가진 그는 폭풍의 언덕 히스클리프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소설의 캐릭터로서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건 여주인공이 아니라 오히려 조연인 기디언이며 그렇기에 여주인공의 행동이나 사건의 진행은 수동적이며 우연에 기대는 부분이 많다. 한마디로, 문학으로서의 수준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단점은 결말에 이르러 극대화된다. 이 책의 매력은 고대나 중세 문학에서 다루는 '비극'을 그 시대의 배경에서 잘 살리고 있다는 점. 한계라면 이미 문학은 그 수준을 넘어 다른 차원으로 진화했는데 우리 시대에 이 이야기를 읽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는점. 다시 말하자면 그 시대엔 왜 인기가 있었는지 잘 알겠다는 뜻도 된다. 승자만 살아남는 냉정함은 자본주의 세상에서보다 문학의 세상에서 더 극단적으로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독자들이 읽는 이전 세대의 작가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여전히, 탑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뛰어났던 작가와 작품을 돌아보는 이 기획은 유의미하고 이런 책을 읽을 기회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지만 21세기 독자로서 큰 기대는 살짝 접는 것이 실망도 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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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비싼 독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5
메리 웨브 지음, 정소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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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고통받을 때 시간이 대체 무엇이겠나? 아무것도 아니다. 오랫동안 사랑에 굶주린 신랑의 귀에 서둘러 돌아갈 시간을 알리는 야경꾼의 목소리가 들어올까? 새벽녘에 세상을 뜰 이는 어차피 보지도 못할 해가 몇 시에 뜨는지 관심이 있을까? 우리 가련한 존재들이 우리가 처한 상황의 강력한 힘에 맞서 버틸 때, 평온함 혹은 평온함으로 여기는 것을 얻으려 고군분투할 때, 투어장에 꼼짝없이 갇힌 짐승처럼 망연자실해 있을 때 우리는 시간을 잊는다. 그래서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바깥세상에서는 무수한 일이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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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소설집 音樂小說集
김애란 외 지음 / 프란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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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며칠 전 나는 화면 속 로버트의 얼굴을 보고 작게 동요했다.

‘저 남자, 날 감상하고 있어‘란 자각이 들어서였다. 동시에 ‘오랜만이다‘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눈동자에 담긴 호감과 호기심 그리고 성적 긴장을 마주하는 것은. 그런데 그게 전혀 느끼하거나 부담스럽지 ㅇ낳았다. 오히려 로버트는 욕망을 드러내기보다 감추는 편에 속했다. 처음 나는 ‘내가 너무 외로워서 그런가?‘ 스스로를 의심했다. 현수와 헤어진 뒤 누군가와 정신적으로도 또 육체적으로도 진지한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나는 내 감정이 인간적인 호감인지 성적 주체가 되는 기쁨인지 성적 대상이 되는 설렘인지 헷갈렸다. 어쩌면 그 모든게 섞인 총체적인 무엇일지 몰랐다. 감정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 P24

큰 교훈 없는 상실, 삶은 그런 것의 연속이라고, 그걸 아는 사람을 만나 반갑다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 P38

"언어도 마찬가지야. 사용할 당시에만 맞는 말이고 결국은 변하게 돼 있어. 맞았던 답이 틀려지는거지. 명심해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음악뿐이야."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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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언어를 만나다 - 당신의 시선을 조금 바꿔줄 스페인어 이야기
그라나다 지음 / 북스토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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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는 중간 이름에 dolores(고통), angustias(고뇌)를 넣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이런 단어를 이름에 넣을 수 있는지 물었다. 성경에 나오는 시련, 고통도 인간에게 필요한 과정이기에 이러한 단어도 이름에 넣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 P151

남태평양에는 섬나라가 많다. 세계에서 가장 해가 빨리 뜨는 곳인 키리바시 공화국의 키리티마티 섬과 쿡 제도(뉴질랜드령)는 매우 가깝고 시각이 같아 겉보기에는 잘 통할 것 같다. 그런데 시차가 24시간으로 실은 날짜가 전혀 다르다. 보이는 것만으로는 모른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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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와 시대착오
전하영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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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관장이 물었다.
"요새는 작가들도 다 박사더라. 심사 가면 다 박사야."
관장은 힘 빠지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작가들이 범생이라서 그런가. 스테이트먼트는 그럴듯한데 정작 작업은 재미가 없네."
네네. 정말 그래요. 미루는 장난스럽게 울상을 지으며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아무도 그 폐해를 모르지 않지만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작가들의 학력 인플레 혀상에 대해 미루도 할말이 없진 않았다. 범생이라서 박사를 따는 게 아니구요, 고령화사회라서요. 작가들이 너무 오래 사는 것 같아요. 20세기에는 마흔 정도만 돼도 죽고 그랬는데 이제는 마흔이 넘고 나서도 먹고 살아야 할 날이 구만리잖아요.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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